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47)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47화(147/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47화
조각난 초대장 (3)
147화. 조각난 초대장 (3)
“그렇군요. 캐나다에서는······.”
각성자들의 목소리로 가득 채워진 회의실.
자기소개를 마친 지구의 대표들은 자신들이 속한 지역의 소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김솔이 팔꿈치로 툭툭 내 옆구리를 건드렸다.
“너 자기 소개 안 했는데 아무도 모르는 듯?”
“조용히 해라······.”
부끄럽게도 존재감이 전혀 없었다.
도포 차림의 운양은 초반부터 주목을 받았고, 김솔은 아이기스라도 들고 있었지만, 나는 어디서 주워 입은 듯한 검붉은 코트가 고작이었으니까.
멸망한 세계, 또다시 옷차림으로 서로를 평가한다는 것이 황당하면서도 사뭇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들 모두는 상공회의소가 선발한 지구의 대표였다.
지구를 지킨다는 사명감, 또는 인류의 선두에 서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고, 각자의 지역에서 벌어진 상황을 서로 공유하며 점차 분위기를 고취시켜나갔다.
운양이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대부분 상황이 그리 다르지는 않네요.”
우리 세 사람은 잠자코 각성자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제 막 다들 입이 트이기 시작한 시점.
그로부터 대략적이나마, 지금껏 상공회의소가 지구를 침략해 온 방식을 정리해볼 수 있었다.
자유개척.
입찰경쟁.
그리고 몬스터 웨이브.
자유개척에서는 지구 곳곳에서 괴물들이 쏟아져나왔지만, 대부분 위계가 낮은 하위 개체들이었다.
입찰경쟁에서는 지역 점령이라는 개념이 도입됐다.
침략자들이 게이트 포탈을 통해 지구로 건너왔고, 마치 전쟁을 수행하듯 점령과 방어가 반복됐다.
자유개척과는 달리 고위계가 섞여 있었으며, 지역을 점령한 침략자들은 점차 주변으로 세를 불려 나가며 침략을 이어 나갔다.
몬스터 웨이는 3차 자유 개척의 일환이었다.
지구 곳곳에 생긴 레드 게이트에서 괴물들이 쏟아져 나왔고, 창궐한 괴물 떼가 지구인들의 방어선을 뚫고 지역 곳곳을 점령해 나갔다.
“징글징글했지······.”
지금껏 몸소 경험해 온 지구의 멸망.
당연하게도, 이곳에 모인 각성자들 모두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모두가 공통적으로 실감하는 바가 하나 있었다.
캐나다 대표, 리암 파커의 말이었다.
“위계 제한이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겁니다. 언제까지 유지해줄지는 미지수지만······ 상공회의소가 우리에게 성장할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요.”
“6위계······ 그 이상은 본 적이 없다 이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각성자들이 정보를 모았다.
지금껏 맞닥뜨린 적들의 수준은 최대 6위계.
아마도 그것이 상공회의소가 지구에 걸어둔 ‘한도’일 터였다.
“지금으로서는 6위계만 해도 버겁죠. 단체 레이드를 벌여야 겨우 잡을 판이니······.”
하지만 그들 대다수는 아직 7위계에 머물러 있었다.
바로 그 6위계에 다다르기 위해 부단히 마석을 모으고 있는 상황.
이들이 자신보다 강한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은 다름 아닌 ‘아이템’이었다.
노르웨이에서 왔다던 미나 안드레센, 그녀가 자신의 목걸이를 매만졌고······.
“이 ‘카쟈드의 눈물’이 없었다면······ 전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거예요.”
“나 또한 그렇소. 이 ‘황철 건틀릿’ 덕분에 때려죽인 괴물들이 몇인지······.”
호주에서 온 브렌든이 자신의 주먹을 매만졌다.
번쩍번쩍 빛나는 각성자들의 아이템.
지구를 대표한다는 것이 저 각성자들인지, 아니면 그들이 착용한 아이템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야 나도 저런 거 좀 사줘.”
“장비에 의존하지 않는 천하제일인······ 김솔,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나도 달라고.”
그렇게 치근덕거리는 김솔을 떼어내고 있었을 즈음······.
띠링!
[여러분의 차원박람회 참여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참여에 앞서 중요한 안내사항을 전달드릴 예정이오니, 반드시 메시지를 잘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마침내 상공회의소로부터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왔군요······.”
“······드디어.”
회의장에는 적막이 가라앉았다.
저마다 왁자지껄 떠들던 각성자들도 이제는 상공회의소가 띄우는 메시지 창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그렇게, 상공회의소의 안내가 시작됐다.
[차원박람회에서는 다음, 세 가지 행사가 차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첫째는 ‘아이템 경매’로, 출품된 아이템을 구매하시거나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출품하실 수 있습니다.] [둘째는 ‘위계 난투’로 동일한 위계를 가진 차원 존재들이 한데 모여, 서로의 전력을 겨루는 행사입니다.] [셋째는 ‘투자 전략 컨퍼런스’로 다차원 투자 전략을 논의하여, 활발한 개척 및 투자를 도모하는 행사입니다.]상공회의소에 의해 안내된 세 가지 행사.
간단히 경매, 쌈박질, 발표회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 세 행사.
안내를 들으며 지구의 대표들은 남모를 기대감에 차올라 있었지만······.
[위계 난투는 안전이 보장된 친선 전투이며, 희망자에 한해 참여가 가능합니다.] [단 참여자가 없거나, 상위 5위 안에 진입하지 못한 차원의 경우 별도의 패널티가 주어집니다.]“······패널티?”
안타깝게도 이건 만인의 축제 따위가 아닌, 축제를 가장한 침략 전쟁의 일환이었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해당 차원의 5위계 통행이 전면 허가됩니다.]“뭐?”
“말도 안 돼. 5위계라니?”
각성자들이 웅성거렸다.
6위계마저 사력을 다해야 잡을 수 있었던 지구 대표들.
5위계가 들이닥친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운양이 내게 속삭였다.
“사실상 강제 참여네요. 무슨 목적일까요······?”
“그야······.”
[‘아이템 경매’ 참여 및 ‘위계 난투’ 참여 여부를 결정해주십시오.] [개인별로 각성 시스템을 통해 진행하실 수 있습니다.]“물건 팔아먹으려고 하는 거 같은데요?”
순서가 참으로 절묘했다.
아이템 경매 다음, 지구의 안위가 걸린 싸움이라니.
대놓고 아이템을 사서 전력 증강을 하라는 소리가 아닌가?
각성자들의 목소리는 한층 더 심각해졌다.
“동 위계끼리의 싸움이라면······ 더더욱이 아이템 수준으로 판가름이 나겠군요. 위계가 같다면 각성 능력의 위력도 엇비슷할 테니까요.”
“하지만 섣불리 마석을 쓸 수도 없습니다. 위계를 올리려고 모으던 돈인데······.”
각성자들의 지갑이 쉬이 열릴 리 없었다.
위계를 올리지 않으면 레벨업 또한 멈추게 되고, 각성 능력 또한 성장을 멈추게 되니까.
고대하던 6위계를 달성하기 위한 10만 개에 가까운 돈.
그 피 같은 돈을 쉬이 쓸 턱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
“아뇨, 써야 합니다.”
캐나다의 대표, 파커가 의견을 개진했다.
“지금은 위계를 올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에요. 아이템을 사서라도 반드시 난투에서 이겨야 합니다. 5위계가 지구로 들어오는 일만은 절대 막아야 해요.”
“하지만 한 명만이라도 5등 안으로 들어간다면 되는 거 아닙니까? 우리 중에 한 명쯤은······.”
“아뇨, 최대한 높은 등수를 노려야 합니다.”
실로 파국적인 결과.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위계 난투’ 다음의 행사는 다름 아닌 ‘투자 전략 컨퍼런스’였으니까.
‘······지구가 어마어마한 맛집이라고 소문이 나겠지.’
이제 막 규제가 풀린 따끈따끈한 그린벨트.
군침을 흘리던 고위계 괴물들이 상공회의소의 ‘투자 전략’을 듣고, 미친 듯이 지구로 쇄도할 것이 분명했다.
만약, 오히려 반대로 높은 등수를 차지한다면······.
“등수가 높다면 다른 차원들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투자 전략 컨퍼런스’는 일종의 논공행상의 성격을 띨 가능성이 컸다.
승리한 이들에게는 투자금이 몰려들 테고, 패배한 차원에게는 잔인한 침략이 시작될 테니까.
주도권을 잡은 파커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마석을 쓰세요. 그리고 난투에서 좋은 결과를 낸 다음······ 다시 투자를 받으면 됩니다. 그때 투자받은 마석을 이용해 위계를 올리면 되는 거죠.”
“과연······.”
“그런 시스템이었군요. 역시 상공회의소는······.”
파커가 내린 결론에 따라, 각성자들의 감탄이 이어졌다.
나로서는 저 캐나다의 각성자가 ‘투자’에 대한 개념을 빠삭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 여간 신기할 따름이었지만······.
“제가 알기로는······ 여기 저 말고도 올림푸스의 투자를 받는 분들이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올림푸스라면 아주 높은 등수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위계를 올릴 수 있을 만큼 마석을 지원해 줄 겁니다.”
“아, 당신도 투자를 받고 있었군요!”
그의 다음 말에서 숨겨진 전말이 드러났다.
올림푸스, 이 난봉꾼 새끼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또 씨를 뿌리고 있었으니까.
과연 모두들 다른 차원의 지원을 받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다시 소란스러워진 각성자들은 저마다 올림푸스니, 아스가르드니 하며 투자처 향우회를 열기 시작했다.
“허참······.”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는 운양.
지구를 지키러 모인 대표들은 이미 상당수가 타차원에 의해 잠식되어 있는 상태였다.
‘어쩐지 아이템이 휘황찬란하더라······.’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었다.
대장장이도, 세공사도 없는 그들로서는 오직 전투를 통한 전리품으로밖에 얻을 수 없는 아이템.
하지만 한 가지 방법이 더 있다면, 그건 다름 아닌 상위차원의 지원을 받는 것이었다.
김솔이 내게 물었다.
“······저래도 되는 거냐?”
“당연히 안 되지······.”
그들은 모르는 것이다.
투자가 사실상 빚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 리가 없지. 나도 사업체를 얻은 뒤에야 알 수 있었으니까.”
투자자들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지원해준 자원을 강제로 회수할 수 있다는 것.
심지어 그 회수 방법 또한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마석이 없어도 뭐로든 뺏어갈 수 있어. 아이템을 뺏는 것도 가능하고······ 그마저도 없다면 아예 위계나 레벨을 낮춰버릴 수도 있으니까.”
마석을 소모해 힘을 강화하는 각성 시스템.
그것마저 되돌려버린다니, 세상에 빚쟁이도 이런 빚쟁이가 없었다.
운양이 소름 끼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받아서는 안 되는 거였군요.”
나날이 강한 괴물들이 쏟아져나오는 세상이다.
하루아침에 레벨이 떨어지는 것은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는 소리.
상위 차원의 후원을 받은 지구의 대표들은 머지않아 그들의 입맛대로 움직이게 될 터였다.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냥 두죠. 이미 오래전부터 투자를 받아온 것 같은데······ 말해봤자 듣지도 않을 테고요.”
각성자들은 이미 삼삼오오 모여, 아이템 경매 카탈로그를 뒤적이고 있었다.
돈독이 오른 상공회의소가 인원수에 맞춰 회의장에 놓아둔 책자.
그 안에는 생과 힘을 추구하는 각성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갖가지 아이템들이 종류별로 소개되어 있었으니까.
김솔이 내게 물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할 거야? 저 위계 난투인지 뭔지 하는 건······?”
“그건 두 사람이 나가줘. 저건 지면 확실히 곤란하니까.”
난투만큼은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
5위계는 우리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으니.
저 순진한 지구 대표들보다야, 김솔과 운양이 천 배는 믿을 만했다.
나는 이번 전투에서 빠지기로 했다.
다차원의 모든 존재가 모인다던 차원 박람회.
그 북새통에 내 능력을 노출해 좋을 게 없었으니까.
“그럼 너는 뭐하게?”
“뭐하긴, 나도 물건 팔아먹어야지.”
내 관심사는 차라리 아이템 경매였다.
입찰은 물론, 자유롭게 출품도 가능한 민주적인 시스템.
물류센터의 주인으로서, 이보다 더 구미가 당기는 행사는 없었으니까.
“아주아주······.”
특별한 물건을 팔아먹어 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