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48)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48화(148/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48화
아이템 경매 (1)
148화. 아이템 경매 (1)
어느덧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외부와 단절된 회의장.
아공간 포탈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줄곧 회의장 안에서 머물렀다.
회의장을 벗어나는 순간 박람회 참여를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으니.
“좀 지루하긴 했지만······.”
신비한 공간이었다.
회의장 안에서는 식욕도, 수면욕도, 심지어는 배설욕조차 느낄 수 없었다.
마치 그대로 시간이 멈추어버린 것처럼.
팔랑.
일주일 내내 나는 ‘아이템 경매’의 규칙을 살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결과 몇 가지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첫째, 누구나, 언제든 아이템을 출품할 수 있다.
둘째, 아이템은 낙찰되는 즉시 소유권이 바뀌며, 차원 계좌를 통해 자동으로 마석이 지급된다.
주식 시장을 방불케 하는 무한한 자율성.
그것이 바로 이 ‘아이템 경매’의 특징이었지만······.
‘······사기꾼이나 다름이 없구나.’
결국에는 허울에 지나지 않았다.
각성자들은 지금 모두 회의장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
수중에 있는 것이라고 해봤자, 평소 애지중지 수족처럼 차고 다니는 장비들.
경매에 출품할 아이템 같은 게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결국 각성자들에게 남겨진 선택이란, 사고 또 사는 것뿐이었다.
운양이 내게 말했다.
“정겸씨, 그 말씀은······.”
“네, 저한테는 해당사항이 없죠.”
비록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지만, 아공간에 있는 물건들은 얼마든지 출하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이 능력을 십분 활용해, ‘아이템 경매’에 물건을 출품할 생각이었다.
한편······.
“신상이다!”
“오······ 이번엔 도끼인가? 브렌든한테 잘 어울릴 거 같은데?”
지구 대표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아이템 경매 카탈로그.
그 신묘한 책자에는 경매에 출품된 아이템들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다음에는 질풍참을 업그레이드 해야 돼. 여기 연계 스킬을 보면······.”
“오히려 위력에 치중해 스킬을 찍는 방식이군. 방어력은 아이템으로 어떻게든 보완이 가능하니까.”
테이블 한쪽에서는 <각성자 스킬 트리 컨설팅>이라는 이름의 책자가 각성자들의 성장 욕구를 자극했고······.
“사수자리는 집중력 강화 물약이랑 상성이 좋대. 이게 원래는 외부로는 유통이 안 되는 물건인데 이번 경매에서는······.”
“아무리 탱커여도 치유 목걸이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니까? 여기 봐! 특히 방어력이 체력에 비례하는 경우에는 체력을 일정량 유지시켜주면서······.”
다른 한쪽에 놓인 <나만의 아이템 상성 찾기>따위 같은 책자가 각성자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하나같이 ‘구매욕’으로 이어지는 상공회의소의 정교한 설계 속.
각성자들은 저마다 자신을 육성하고 계발하는 데 온 정신이 팔려 있었다.
콰아아앙!
각성자들의 손끝에서 휘황찬란한 스킬이 뿜어져 나왔다.
비산하는 번갯불 탓에, 마치 눈앞에서 불꽃놀이가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앞서 확인했던 바다.
회의장에서는 무엇 하나 파괴되지 않으며,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각성자들은 이러한 회의장의 성질을 활용해, 24시간 내내 ‘위계 난투’에 대비한 모의 전투를 벌였다.
“하아압!”
“헛!”
퍼어엉!
꽈아아아앙-!
각성자들의 절도 있는 동작에 따라, 컴퓨터 특수효과처럼 곳곳에서 불길이 터져나갔고······.
합을 맞추던 각성자들이 빙긋 웃으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오! 방금 콤비네이션 좋았어!”
“시합 때도 이 기세로 가자고!”
“이제 여기서 원거리 공격만 견제하면 돼. 경매에서 ‘반원 창’만 확보할 수 있으면······.”
있지도 않은 아이템을 머릿 속으로 그려가며, 상상의 전투를 이어가는 각성자들.
다치는 사람도, 파괴될 대상도, 그 모든 실체마저 존재하지 않는 허공에서 난투가 펼쳐졌다.
흐물거리는 구름 위를 걷는다.
사상누각과도 같은 몽상 위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단합심은 최고조에 다다랐다.
“조금만 힘냅시다!”
“할 수 있다! 아자!”
그 소리가 마지막이었다.
나는 다른 각성자들에 대해 관심을 끄기로 했다.
***
“와아아아아!”
차원 박람회의 개막일.
거리는 환호성과 웅성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상공회의소가 예고한 대로였다.
정확히 일주일 뒤, 회의장에 박람회장으로 이어지는 게이트가 생겨났고,
이를 통과하자 흰 벽돌로 켜켜이 다져 넣은 중세풍의 백색 도로가 눈앞에 이어졌다.
“상상 이상으로 성대하군요······.”
대로 주변을 채운 형형색색의 천막들을 두리번거리던 운양.
그가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이게 다 뭘까요?”
“무슨 부스 같은 게 아닐까요? 이름부터가 ‘박람회’라고 하고 있으니······.”
산업과 문명의 발전을 뽐내는 교류의 장, 박람회(博覽會).
아니나 다를까, 천막에는 해당하는 차원의 명패가 걸려 있었고, 종족 구성, 구성원들의 위계 비율, 특산품과 자원 매장량, 문화적인 성향, 투자 현황과 부채 상환율과 같은 세세한 정보가 정리된 도표가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많기는 많구나······.”
대로의 양옆으로, 빼곡하게 늘어선 각 차원의 홍보 부스.
나는 최대한 천천히 걸으며, 부스에 전시된 여러 차원의 정보를 틈틈이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 침략자들이 입에 주워섬기던 상위니, 하위니, 깡촌이니 하는 말의 구분을 대략적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운양과 김솔에게 조용히 덧붙였다.
“일단 상위 차원은 없는 것 같습니다.”
“상위 차원이요?”
“대충 이런 식으로 구분하는 것 같아요.”
하위 차원이 지구처럼 그저 얻어맞기만 하는, 초기의 개척 차원들을 의미한다면, 중위 차원은 그 단계를 벗어나 본격적인 침략자로 거듭난 차원들을 의미했다.
그리고 중위 차원부터는······.
“그때부터는 구성원들의 위계로 차원들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5위계가 많은 차원은 6위계가 많은 차원보다 더 높은 수준의 차원이라는 식으로요. 3위계, 4위계만 되어도 얼추 상위 차원으로 분류되는 것 같고요.”
“그러면 여기에 모인 차원들은······.”
“살펴보니 대부분 6위계에서 7위계······ 끽해야 5위계가 섞여 있는 중위 차원들이네요. 이런 홍보부스를 세워서 상위 차원들의 투자를 유치하려고 하는 걸 테고······ 보아하니 우리 같은 하위 차원들은 부스를 설치할 자격조차 없는 거겠죠.”
마석과 위계로 구분되는 전 우주적 계층 사다리.
이것이 상공회의소가 규정하는 다차원의 생태계,
즉 경제 권력을 중심으로 한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그렇게, 한참이고 자잘한 중위 차원들의 부스를 지나쳤을 즈음······.
“어라?”
공교롭게도 낯익은 놈들을 발견했다.
에메스와 사브로스.
각각 서울과 인천을 공격했던 두 침략자들이 나란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것저것 장식이 되어 있는 에메스 차원의 부스와 달리, 사브로스의 것은 바람에 휩쓸리기라도 한 듯 텅텅 비어 있었다.
운양이 턱을 매만졌다.
“여기는 박람회를 할 여유가 없는 모양이군요?”
“뭐 그럴 만 하죠. 지금 한창 바쁠 때니······.”
식민지 레텔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브로스.
어쩌면 그들 또한 레텔인들과의 전면전을 예감하며 전력을 가다듬고 있는지도 몰랐다.
텅 비어버린 사브로스의 부스를 보며, 싸움의 성과를 발견한 것 같아 묘한 감정이 차오르기도 했지만······.
‘······아직 멀었구나.’
부스에서 놈들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배층이 끽해야 5위계쯤 되는 전형적인 중하위 차원.
에메스나 사브로스나, 많고 많은 중위계 차원 중 고작 하나일 뿐이었다.
이제는 단위가 바뀌어야만 했다.
일개 침략자들과 아웅다웅하는 단계를 넘어, 놈들을 단번에 상회할 수 있는 수준으로.
.
.
.
마침내 경매장 입구에 다다랐을 즈음.
누군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은······.”
뉴런들을 연결해가며, 부단히 전두엽 속 장기 기억을 뒤진 결과, 마침내 놈의 이름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리암 존슨.”
“······리암 파커입니다.”
시큰둥하게 제 이름을 고쳐잡는 리암 존슨.
녀석은 어딘가 불만스럽다는 듯, 뾰로통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위계 난투에는 쏙 빠지는 것 같더니······ 경매에는 참여할 생각인가 보군요.”
나름 조용히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용케 나를 주목하고 있었던 모양.
하기야 고작 11명 틈새에서 존재를 숨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자기소개는커녕,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그 소꿉놀이 같던 모의 전투에도 참여하지 않았으니 각성 능력을 노출한 적도 없었다.
리암을 비롯한 지구의 각성자들에게 있어 나는 완전한 미지수 그 자체일 터.
동시에 지구를 지키기 위한 위계 난투에도 참여하지 않는 파렴치범이기도 했다.
척!
리암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각성 능력을 공유하고, 같이 전략을 짜봅시다. 우리 모두 지구인들이잖아요. 난투만 성공적으로 끝낸다면······ 당신도 올림푸스 쪽에 줄을 만들어 주겠습니다. 저런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닌, 진짜 상위 차원이라고요!”
부전자전이라고, 리암은 어느덧 올림푸스의 전도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올림푸스니, 올림피아니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팔이 안쪽으로 굽는다고, 같은 지구인인 그에게 마지막 충고를 건넸다.
“니들 돈 쓰는 거야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투자는 안 받는 게 좋을 거야. 진심이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 리암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내게 제 생각을 이야기해주었다.
“공짜가 아니라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상위 차원들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할 리가 없으니까요. 우리를 쥐어짜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투자금을 회수하려 들 테고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 올림푸스의 투자가 늘어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병신 짓을······?!”
“······.”
잠시 목울대를 다듬은 리암이 마저 말을 이었다.
“아무리 이득을 위해 움직였다 한들······ 자신들의 투자금이 쏠린 지구를 방치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다른 침략자들에게 지구가 먹히도록 놔둘 리가 없다는 말이죠.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올림푸스는 지구를 도울 수밖에 없게 될 겁니다.”
결국, 리암의 결론은······.
“지구는 약합니다. 그러니 다른 상위 차원의 보호를 받아야 해요. 지구 차원이 올림푸스의 휘하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지구는 다시금 안전해질 겁니다. 평화를 되찾을 거라고요.”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런 뜻이었다.
다른 침략 세력들로부터 조리돌림을 당하느니, 비교적 신사다웠던 올림푸스께 지구를 헌납하겠다는 것.
평화로운 식민지로서의 지위를 감사히 받아들이겠다는 것.
이제 보니 100년 전 친일파들의 논리와 다를 바가 전혀 없었다.
“경매가 끝나는 대로 다시 만나죠.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겁니다. 지구를 위해서라도요.”
그 말을 끝으로 리암은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경매가 끝나는 대로 때리기로 했다.
.
.
.
웅성웅성.
좌중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경매장.
반원 모양의 무대가 그 중심에 놓여 있었고, 최소 천 개 이상의 좌석이 계단식으로 그 무대를 내려다보는 구조였다.
“여기 자리가 있군요.”
운양을 따라 자리에 앉았다.
아이템 경매는 박람회의 개막을 알리는 상징적인 행사.
중위 차원들의 부스로 가득 채워져 있었던 대로변과는 달리, 이곳 경매장에는 매우 다양한 수준의 차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가 앉은 곳은 등급이 표시되지 않은 ‘막’ 자리.
하지만 상위 차원, 중위 차원, 하위 차원들의 구역이 각각 구분되어 있었고, 그중에서도 높은 위계를 가진 차원 존재들이 더 높은 자리를 배정받을 수 있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민주적인 아이템 경매였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이 경매에 아이템을 출품할 수 있는 차원은 몇 되지 않을 터였다.
그처럼 부유하거나, 혹은······.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터벅터벅.
무대 중앙으로 경매사가 걸어 올라왔다.
그는 깨끗한 정장 차림에, 순백과도 같은 흰 장갑을 끼고 있었다.
짝짝짝!
우레와 같은 갈채 소리가 이어졌다.
과장스럽게 허리를 굽힌 경매사는 이내 성큼성큼 걸어가, 마치 겁 없는 투우사처럼 테이블을 덮은 붉은색 융단을 거침없이 걷어냈다.
슈우우욱!
소달라이트 발광석을 깎아 만든 투구가 모습을 드러냈고, 좌중이 감탄과 함께 술렁거렸다.
지구의 각성자들이 반드시 낙찰받아야만 한다고 떠들던 물건 중 하나.
경매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듯, 손가락 세 개를 펼치며 또렷한 목소리로 시작가를 외쳤다.
3만.
4만.
4만 5천.
경매사의 목청이 높아질수록, 소달라이트 투구 또한 두둥실 하늘로 떠올랐다.
날개처럼 퍼득거리는 입찰자들의 팻말 사이로, 리암과 다른 각성자들의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무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가벼워 하늘로 치솟아버리는 그 무게를 어떻게든 붙잡으려는 듯이.
그랬다.
경매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