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5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50화(150/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50화
위계 난투 (1)
150화. 위계 난투 (1)
타다다닥!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타자기 소리.
기다란 직사각형의 사무실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이종족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은 채, 손가락을 놀리고 있었다.
“뤼스 차원은 이번에 차원 관세 도입을 통해······.”
“상공회의소의 세부 금융정책 발표가······.”
웅얼웅얼 산발하는 텍스트.
다차원 곳곳으로 뻗어나갈 새로운 소식들이 기자들의 입을 오르내렸다.
타닥! 타다닥!
이곳의 정체는 다차원 언론사, ‘에코스’의 편집부.
다차원을 주름잡는 양대 언론 중 하나로, 개방된 차원 존재 중 절반은 이들이 쓴 기사를 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기자들이니만큼······.
편집부 휴게실은 전우주에서 가장 가장 뜨거운 감자가 들끓는 도가니나 다름없었다.
누군가는 비늘로 뒤덮인 꼬리를 흔들고, 또 누군가는 털로 뒤덮인 세모난 귀를 쫑긋거리며 오늘도 다차원 우주의 가십거리가 오르내렸다.
“그거 들었어?”
“박람회 말이지?”
이날 대화의 주제는 다름 아닌 차원 박람회에 관한 것이었다.
말이 박람회지,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지루한 행사.
하지만 어제, 박람회의 상징과도 같은 아이템 경매가 참사로 마무리된 참이었다.
“미친 거 아니야? 어떻게 위계 신청서를······ 그것도 떨이로 팔 생각을 하지······?”
“부럽다······ 이럴 줄 알았으면 취재 핑계 대고 박람회나 가보는 건데······.”
“웃기시네. 누가 박람회 건으로 취재나 보내준다든?”
기자들 모두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전 우주의 화합을 주장하는 차원 박람회였지만······.
그 실상은 상공회의소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허울뿐인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때문에 몇 년 전부터 에코스 또한 직접 기자를 파견하는 대신, 제공된 홍보자료를 짜집어 기사를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기자 한 명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근데 어차피 상공회의소로서도 나쁠 건 없지 않아? 경매 수수료도 쏠쏠했을 텐데 그거.”
“오히려 그래서 문제지. 상공회의소가 나서서 위계 신청서를 판매한 것처럼 됐잖아.”
각성이 축복이라면, 위계는 특권이었다.
귀족들로서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
물론 상공회의소로서는 억울함에 펄쩍 뛸 노릇이었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림이 영 그랬다.
이번 경매는 다름 아닌 상공회의소 자신이 개최한 행사.
바로 거기서 위계 신청서가 매물로 올라온 상황이었으니까.
그것도 절대 개인의 소행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대량의 매물이.
“상공회의소가 아니면 누가 그랬을까? 마르케스?”
“규모로 치면 그 정도는 돼야 설명이 되지.”
“소식통 통해서 물어보니까 자기들은 아니라던데?”
예리한 촉과 인맥을 뒤져가며 사건의 행방을 추리하는 에코스의 기자들.
얼른 이 소식을 우주 곳곳으로 퍼 나르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했지만······.
“적당히 하자.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는 게 재미가 없다······ 없어.”
이건 독이 든 성배나 다름이 없었다.
그 당사자가 다름 아닌 상공회의소였으니.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나섰다간, 어쩌면 편집부 절반이 고스란히 날아갈지도 몰랐다.
쯧쯧 혀를 차며, 하나둘 휴게실을 벗어나는 에코스의 기자들.
하지만,
“그럼 내가 쓴다?”
딱 한 명, 관심을 거두지 않는 이가 있었다.
둥그스름한 몸통, 짧은 털로 뒤덮인 꼬리.
영락없는 수달의 모습을 한 그는 문화부 선임 기자, 해리스였다.
“해리스······?”
“왜? 문화부에서 쓰면 상관없잖아?”
지금껏 사담을 나누던 기자들은 모두 경제부, 또는 정치부 기자들이었다.
따지자면 이 에코스에서 가장 전도유망하면서도 목소리가 큰 부서라 할 수 있었지만······.
주 독자층 또한 상위차원의 유력자들이나 귀족들로 이루어져 있었던 탓에, 그만큼 상공회의소의 빠듯한 검열을 통과해야만 했다.
반면, 해리스가 몸담고 있는 문화부에서는······.
“걱정 마. 이쪽은 괴짜들이랑 떨거지들 밖에 안 보니까. 발행 부수도 코딱지만 하고.”
흙밭을 뒹구는 탓에, 상공회의소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문화부 기사.
가끔 심기를 거슬리는 기사를 써도, ‘웃겨서 실었는데요?’라는 말로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에코스 문화부의 매력이었다.
해리스 또한 이번 아이템 경매를 의혹이 아닌, 일종의 해프닝으로써 취재할 생각.
아이템 경매라는 첫 단추가 엉클어진 만큼, 어쩐지 박람회의 남은 행사들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버릴 것만 같았다.
“엉망진창······ 이건 못 참지.”
입안 가득 차오르는 침을 삼키며, 해리스는 바삐 짐을 챙겼다.
산업과 문명을 나누는 교류의 장, 박람회.
그것은 누가 뭐래도 본디 문화부의 기삿거리였으니.
***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위계 신청서가 나올 때마다 입찰자들은 공격적으로 팻말을 들었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가격 경쟁 끝에, 매번 적지 않은 금액으로 낙찰됐다.
입찰자들의 주머니에도 한계가 있었던 탓에, 경매를 거듭할수록 낙찰가격이 점점 내려앉았으며······.
“······.”
앞서 낙찰받은 입찰자들이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는 묘한 그림이 연출됐다.
내가 벌면 좋고, 남이 벌면 배가 아픈 자연스러운 생리.
그 치졸하면서도 인간적인 감각이 열기처럼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결과······.
-벌써 끝이라고······?
-아, 안돼! 한 번만 더······!“
아이템 경매로 할애된 행사 시간을 넘긴 탓에, 경매는 강제로 종료되었다.
출품된 상품이 있는 한 경매는 계속된다는 식의, 나름의 관례도 있는 모양이었지만······.
‘기대도 안 했지.’
당연한 수순이었다.
위계 신청서로 두들겨 맞고 있던 상공회의소가 추가 시간을 허용할 리 없었으니.
소달라이트 투구도, 청금석 갑옷도, 카넬리안 목걸이도 아닌······ 그저 종이 쪼가리.
상공회의소 시설의 프린터를 통해 쭉쭉 출력한 수십 장의 땔감이 이날 경매를 가장 뜨겁게 달군 물건이었다.
물론 상공회의소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신분을 숨긴다 한들, 돈 받을 계좌마저 숨길 수는 없었으니까.
경매장으로부터 판매 대금을 수령하는 즉시, 역으로 추적이 들어올 것이 터였지만······.
“캐치 미, 이프 유 캔.”
출품자는 나, 김정겸이 아닌 토턴 인베스트먼트였다.
당연히 판매 대금 또한 토턴 인베스트먼트의 법인 계좌로 들어가게 될 것.
상공회의소는 위계 신청서를 판매한 범인으로 나를 추적하기는커녕, 지구인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할 것이다.
“차명계좌 너무 좋고.”
토턴 인베스트먼트는 지금 내 아공간 속에 있다.
런던의 이면 공간에 있던 옛날이라면 모를까, 위치를 추적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터.
그야말로 버진 아일랜드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이번 경매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은 자그마치 마석 260만 개에 달했다.
몸소 직접 비밀부스에서 들어가, 수십 장의 위계 신청서를 영웅적으로 살포하신 김솔께서 자신의 몫을 주장하셨으나······.
“위험수당이 200만 개라고 하지 않았나?”
“그럴 리가.”
지금은 상공회의소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상황이다.
돈을 옮기다 추적에 걸리는 일만큼은 피하는 것이 좋을 터.
토턴 인베스트먼트로 들어온 돈은 잠시 묵혀두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아이템 경매가 끝이 아니었다.
다음 행사인 ‘위계 난투’가 시작될 예정이었으니까.
김솔이 운양의 어깨를 짚으며 투덜거렸다.
“재주는 미녀와 중국인이 부리고······ 돈은 동생 새끼가 챙기는구나.”
“이게 다 협(俠) 아니겠습니까, 소저.”
우리 셋은 곧장 행사가 진행될 경기장으로 향했다.
김솔와 운양이 참가할 7위계 난투의 순서는 6위계 다음.
규칙이라도 숙지할 겸, 6위계들의 싸움을 먼저 관람하기로 했다.
바글바글한 인파 사이로 파고들며, 자리를 잡아갈 때쯤······.
“와아아아아아!”
관중들의 함성과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운동장 몇 개를 합쳐놓은 듯한 거대한 원형 공간.
공간을 벗어나지 않은 채, 최후의 최후까지 남기 위해 참가자들은 아이템을 휘두르고, 각성 능력을 발휘하며 싸움을 이어 나갔다.
그들의 필사적인 싸움을 바라보던 운양이 턱을 짚으며 말했다.
“뭔가 걸려있는 건 우리뿐만이 아닌 모양이군요.”
“그렇겠죠. 완전히 똑같지는 않겠지만······.”
지구에 걸린 조건은 ‘5위계 출입’이지만, 어쩌면 저들에게는 더한 조건이 걸려있는지도 몰랐다.
더욱이 이다음 진행되는 행사는 다름 아닌 ‘투자 전략 컨퍼런스’.
투자자와 침략자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은 비단 지구와 같은 하위차원뿐만이 아니었다.
“놈들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 거겠죠.”
하위 차원은 중위 차원에, 중위 차원은 또다시 상위 차원에 짓밟히는 약육강식의 세계.
그 꼭대기 위에 선 상공회의소는 ‘위계 난투’에서의 성적을 통해 뾰족한 피라미드에 사다리를 놓아주고 있었다.
재능 있는 존재는 위로, 약한 존재는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도록.
그렇게 치열한 난투 속, 100명에서 50명으로, 50명에서 30명으로 줄어드는 생존자들을 바라보고 있을 즈음······.
“······저건?”
낯익은 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에메스와 사브로스, 성기사와 도마뱀들이 연합해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었으니까.
“어쩐지 유난히 붙어 다니더라니······.”
서울과 인천을 나란히 침공했을 때도,
홍보 부스에서도 나란히 옆 칸을 차지하고 있었던 두 차원.
모르긴 몰라도 사이가 유달리 돈독하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지만······.
“크윽!”
에메스와 사브로스 모두 채 10위권에 진입하지 못한 채 낙방해버렸다.
더욱이 표정이 급격히 굳어가는 것으로 보아, 놈들에게도 상공회의소가 부과한 ‘페널티’ 조건이 부여되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삑! 삐익!
승자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이제 곧 7위계들의 싸움이 시작될 터.
상공회의소가 내건 조건은 간단했다.
6위계 난투든, 7위계 난투든, 둘 중 하나에서라도 5위 안에 진입할 것.
조건이 동일하다면 에메스와 사브로스는 이제 남은 7위계 난투에서 사활을 걸 것이 분명했다.
좋으나 싫으나 맞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
참가자들의 소집을 알리는 메시지에, 김솔과 운양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던 즈음······.
“잠깐 이야기 좀 하시죠.”
“······음?”
손님이 찾아왔다.
정확히는 경매장에 들어가기 전, 내게 엄포를 놓았던 캐나다의 각성자 리암 파커.
경매가 끝나는 대로 다시 만나자던 약속대로 나를 찾아온 참이었다.
한데······ 그의 차림새가 어쩐지 조금은 허전해 보였다.
“······아랫도리는 어디다 팔아먹으셨는지?”
“······그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그러고 보니, 경매장에서 대뜸 바지 한 벌이 출품되었더랬다.
마석 만 오천 개쯤에 낙찰되었던 드레이크 가죽으로 만든 밤색 긴 바지.
어쩐지 낯이 익다 했었는데, 파커의 바지였을 줄이야.
파커는 등 쪽으로 붉은색 검 한 자루를 차고 있었다.
사려던 아이템의 가격이 치솟아, 제 바지까지 벗어제낀 모양.
번번이 유찰되었던 그의 흉갑과 건틀릿이 기억에 떠오르자,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었다.
“존경스럽군요. 목표를 위해 바지까지 내려버리는 그 졸렬함······ 노출증 올림푸스의 후예······.”
“······그만하시죠.”
얼굴이 한껏 달아오른 파커가 내게 덧붙였다.
“협력했으면 합니다. 당신들도 지구로 5위계나 되는 괴물들이 처들어 오기를 바라지는 않겠죠. 물론 막판에는 승부를 가려야 할 수도 있겠지만······ 그전까지는 같은 지구인끼리 연합해 싸움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파커는 ‘당신도 동족이니 믿겠다’는 말로 끝으로, 경기장으로 떠나갔다.
지구의 위계 규제가 풀리는 일을 막기 위해, 다 함께 5위권을 사수하자는 것.
다시 말해, 조금 전 사브로스와 에메스가 했던 것과 같은 연합을 펼치자는 뜻이었지만······.
‘······미안하다. 리암 존슨.’
아쉽게도 그 부탁은 들어줄 수가 없었다.
온 차원이 뒤섞이는 위계 난투.
내게는 5위권 사수와 더불어 또 다른 목적이 있었으니까.
경기가 시작되기 전, 김솔과 운양에게 내 전략을 설명해 주었다.
“······엥?”
두 사람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