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51)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51화(151/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51화
위계 난투 (2)
151화. 위계 난투 (2)
운동장 몇 개를 합쳐놓은 듯한 크기의 거대 원형 경기장.
주최 측은 그 모서리 한편에 마치 공항 검색대처럼 생긴 문턱을 설치했다.
수백 명에 이르는 참가자들이 문턱을 통과했다.
십수 명의 직원들이 스캐너로 참가자들의 위계를 측정했고, 문턱의 끝에서 은색 브로치 하나씩을 건네주었다.
김솔이 트레이닝복에 끼운 은색 브로치를 만지며 물었다.
“······이게 뭐지?”
“브로치에서 소리가 울리면 밖으로 나오라고 하더군요.”
브로치는 일종의 충격 감지 센서였다.
이곳 박람회장은 서로가 서로에게 그 어떤 위해도 가할 수 없는 안전지대.
모든 참가자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얇은 보호막에 씌워져 있는 상태였고, 타격이나 충격에 의한 약간의 반발력만이 발생할 뿐이었으니.
참가자들 간의 우열을 가리기 위해선 별도의 장치가 필요했다.
“밖으로 나와도 안 된다는 거죠?”
“예,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최후의 5인을 가린다고 하니까요.”
시간을 끌 수도 없었다.
경기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경기장의 면적은 차츰 작아졌으니까.
바닥 타일 아래 숨겨진 톱니바퀴가 맞물리며, 커다란 원형이 작은 점까지 줄어드는 구조.
위계와 차원을 상징하는 상공회의소의 모형을 본떠 만든, 그들만의 콜로세움이었다.
김솔이 맨땅을 걷어차며 투덜거렸다.
“귀찮기시리······.”
“하하······ 확실히 소저의 임무가 까다롭긴 하겠더군요.”
두 사람 모두 별도의 작전을 부여받은 터였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는 작전.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김솔과 운양은 각자의 역할을 위해 서로 멀찍이 떨어졌다.
이윽고······.
삐빅!
와아아아!
관중들의 함성과 함께,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콰아아앙!
투카앙!
경기 시작과 함께, 수백 명의 차원 존재들이 벌이는 대규모 난투가 시작됐다.
절대다수가 서로에 대해 벌이는 무차별 전투.
때문에 각성 능력이나 아이템을 활용한 광범위한 공격이 경기장 곳곳에서 쏟아져나왔다.
삐빅!
삑!
타격을 받은 탈락자들의 몸통에서 전자음이 울려 퍼졌다.
탈락자들은 넋 나간 표정으로 경기장 밖으로 빠져나갔고, 저마다 초조한 표정으로 아직 경기장에 남아 있는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몸에는 작디작은 생채기 하나 남아있지 않았지만······.
“제발!”
“밀리면 안 돼! 안쪽으로!”
현장의 분위기는 전장을 방불케 했다.
‘위계 난투’는 보호막으로 뒤덮은 가짜 싸움이다.
하지만 동시에······.
“······끔찍하네.”
차원의 안위를 걸고 싸우는 지독하리만치 현실적인 싸움이기도 했다.
지구에 ‘위계 규제 완화’가 걸려있는 것처럼, 각 차원마다 그들에 걸맞은 무시무시한 페널티가 준비되어 있을 테니까.
우리는 상공회의소와 상위 차원들이 여유롭게 관망하는 경주마들이었고,
권위자들의 발자락 근처에라도 앉기 위해 서로를 채찍질하며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던져진 지구인들은······.
“······오?”
의외로 제법 선전하고 있었다.
어느덧 절반가량의 탈락자가 발생했음에도, 김솔과 운양을 포함해 아직 여섯이나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까.
일대일, 또는 이대이 규모의 국지전이 곳곳에서 벌어졌고, 그중에는 바지 없는 리암 파커가 붉은 검신을 휘두르고 있었다.
화르르륵!
검에 따라 그어지는 선명한 불길.
정확한 효과는 알 수 없었지만, 불을 사용한다던 파커의 능력에 딱 맞는 검이었다.
‘······ 아무렴 막 고르진 않았겠지.’
소위 ‘영끌’을 해서 얻은 아이템일 터다.
미숙한 검술을 보완할 수 있을 만큼, 각성 능력과 탁월한 상성을 보여주는 아이템.
자신의 전략이 옳았음을 증명하려는 듯, 파커는 파죽지세로 참가자들을 쓸어 넘겼다.
그가 마침내 마주한 사브로스의 도마뱀 병사에게 칼을 내질렀을 즈음······.
카아아앙!
“······??”
그의 검은 무참히 튕겨 나갔다.
커다란 검은색 방패를 든, 트레이닝복 차림의 젊은 여성에 의해.
“찾았다, 도마뱀!”
그녀는 다름 아닌 작은 누나 김솔이었다.
파커는 물론이요, 목숨을 건진 사브로스의 병사마저 어리둥절한 표정.
리암 파커가 성난 표정으로 김솔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뭐가?”
“적을 보호하다니요! 당신들은 지구······.”
카앙!
파커는 마저 말을 잇지 못했다.
김솔이 보호한 도마뱀 병사가 그에게 창을 내질렀으니까.
틈틈이 검을 내질러봐도 김솔이 공격을 차단해버리는 탓에, 파커로서는 방어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서서히 주변에서 적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경기장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던 탓에, 파커로서는 반드시 안쪽 구역으로 파고 들어가야 했지만······.
“바지 입고 오면 알려준다.”
“이이익······!”
김솔은 등 뒤로 도마뱀 병사를 숨긴 채, 조금의 공간도 내어주질 않았다.
심지어 도마뱀 병사가 그녀를 공격했음에도, 방어막을 두르며 잠자코 충격을 흘려낼 뿐.
동맹이 아니라는 것쯤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제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파커도 검을 빼내 들었다.
새빨간 불길이 검신을 소용돌이처럼 타고 올랐고, 온 힘을 다해 김솔을 향해 내리쳤다.
위해를 가할 수 없는 친선 경기.
동족을 공격하는 일은 찜찜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상대가 죽을 걱정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콰아아아앙!
운철을 덧씌운 아이기스.
더욱이 배리어까지 두른 김솔이 방어를 뚫을 수는 없었다.
열리지 않는 문을 하염없이 두드리듯, 파커는 김솔에게 연신 검을 내리쳤다.
열 번, 스무 번, 그렇게 그의 공격이 거듭났을 즈음······.
파창!
“······어?”
파커의 검이 무참히 깨져버렸다.
반쪽만 남은 붉은색 검신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파커.
그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어갔다.
사실 예견된 일이었다.
지갑을 탈탈 털어 아이템을 구매했던 지구의 각성자들.
그들이 걸친 장비들이 하나둘 터져나가고 있었으니까.
“······좋은 장사를 해줄 리가 없지.”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인 초심자들이다.
그들이 합리적인 첫 거래를 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그 사회가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라면 더더욱이.
물론 공정거래 위원회와 같은, 별도의 감독 기관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리암 파커가 상공회의소에 기대한 것이 바로 그런 역할이었겠지만······.
“믿을 놈들을 믿어라······.”
놈들이 신뢰를 보여줄 대상은 우리가 아니었다.
상공회의소는 철저히 강자들의 편에 서 있었으니까.
“······.”
잘못된 믿음의 대가는 컸다.
뒤에서 진격해 들어오던 무리가 파커에게 창을 찔러넣었고······.
쿠당탕!
캐나다의 각성자, 파커는 바닥을 나뒹굴었다.
삑삑 소리를 울리는 파커의 브로치.
그의 탈락을 알리는 소리였다.
“계속······.”
비참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 파커가 김솔에게 물었다.
어느덧 참가자가 50명 내외로 줄어든 시점이었다.
“그렇게 가만히 있을 작정입니까? 지구에 5위계를 불러들이는 게······ 그게 당신들의 목적이에요?”
버럭버럭 성을 내며 퇴장하는 리암 파커였지만······.
“누가 가만히 있겠대?”
우리 쪽 참가자는 김솔 뿐만이 아니었다.
운양이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사방에서 종횡무진으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김솔과는 전략이 정반대였다.
운양이 검기를 싸인 검을 좌우로 흔들었고,
촤아악!
“꺼흑!”
그럴 때마다 에메스의 성기사들이 하나둘 탈락했다.
사브로스의 도마뱀을 붙잡아 애당초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김솔과는 달리,
운양은 점점 좁아지는 거대한 경기장을 바깥으로부터 돌아들어왔다.
단 한 명의 에메스인도 남기지 않기 위해.
모든 에메스인을 처리한 운양이 다가오자, 김솔이 물었다.
“얘 이제 죽여도 돼요?”
“안 됩니다, 소저. 아직 많이 남았잖아요.”
“에잉.”
우리의 목적은 간단했다.
에메스를 조기 탈락시키고, 사브로스를 5위권 안에 집어넣는 것.
머지않아 시작될 사브로스와의 전쟁을 염두에 둔 전략이었다.
‘둘이 동맹차원이라 했으니······.’
레텔인들이 사브로스를 공격한다면 에메스가 가만히 있을까?
박람회 내내 짝짜꿍했던 것으로 보아, 십중팔구 지원군을 보낼 것이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럴 여유를 없애주면 되지.’
에메스를 전쟁터로 만들어야만 했다.
6위계, 7위계 난투에서 모두 탈락한 에메스.
곧 상공회의소의 페널티에 따라 상위 차원의 침략자들이 에메스로 들이닥칠 테니.
사브로스를 지키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었다.
레텔인들과의 전쟁에 또 다른 차원이 끼어드는 일은 방지하고 싶었으니까.
5위권을 사수한만큼 사브로스 또한 페널티를 벗어날 테니, 안심하고 레텔인들을 통해 놈들을 요리할 수 있었다.
“됐다.”
마침내 최후의 5인이 남았다.
김솔이 파르르 떨고 있는 도마뱀을 장외로 날려버렸고······.
“소저, 살살······!”
콰아앙!
곧장 운양마저 바깥으로 날려버렸다.
이제 단 세 명만이 남은 최종전이었다.
나머지 두 참가자들이 김솔에게 달려들었고······.
“휴우!”
김솔은 여유롭게 공격을 허용했다.
삑! 삐익!
우렁차게 울리는 탈락 알림.
그렇게, 지구의 최종 순위는 3위에 머물렀다.
***
경기가 끝난 직후, 김솔이 투덜거리며 돌아왔다.
“왜 져야되는데?”
“이겨서 좋을 게 없잖아.”
정말이지 웃기는 경기였다.
상금도 수상도 없는 대난투.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곤, 상위 차원들의 관심이 고작이었으니까.
“뭐······ 파커 같은 애들한테는 그게 필요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는 아니었다.
투자를 받는 것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허울뿐인 우승을 차지해 놈들 앞에서 곰돌이 춤을 추느니, 차라리 관심 밖으로 벗어나는 것이 상책이었다.
어차피 목적은 달성한 참이다.
에메스는 전쟁터가 될 테고, 사브로스는 우리가 직접 전쟁터로 만들 것이다.
반면 지구에 걸려 있던 위계 제한은 유지되어, 이전과 같은 평화를 구가할 것이다.
‘이제 남은 행사는······.’
딱 하나, ‘투자 전략 컨퍼런스’를 남겨두고 있었다.
아이템 경매나 위계 난투와 달리,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던 행사.
이를 어찌 대비하면 좋을지 고민해보려던 찰나,
“여기서 다 뵙는군요. 경기 잘 봤습니다.”
“음?”
익숙한 목소리가 내게 인사를 건넸다.
갈색 털로 뒤덮인 외인종.
긴 얼굴 수염과 수달을 닮은 외양은······.
“해리스?”
“기억하시는군요!”
지구에서 만난 적 있었던, 차원 기자 해리스였다.
여기는 어쩐 일이냐는 내 물음에, 해리스는 목에 건 기자 신분증을 들어 보였다.
“아이템 경매에서 재밌는 일이 있었다고 들어서 말이죠. 부랴부랴 넘어왔습니다.”
“하하······.”
내가 소동의 범인이라는 것을 짐작한 것일까?
아직은 확실하지 않았다.
나는 다음 진행될 ‘컨퍼런스’로 화두를 옮겼고, 해리스가 수염을 쓸어 넘기며 대답했다.
“그건 상위차원들을 위한 행삽니다. 이미 계속 진행되고 있었을 거고요.”
“이미······?”
“예, 그리고 지금이 본격적인 투자 타이밍이죠.”
위계 난투가 중하위권 차원들이 참여하는 행사라면, 투자 컨퍼런스는 반대였다.
지금껏 난투에서의 활약을 지켜본 상위 차원들이 참여하는 행사.
그들은 중하위 차원들의 발버둥을 지켜보며, 저들만의 ‘투자 전략’을 논의하고 있었으니까.
해리스의 말대로였다.
위계 난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참.
아니나 다를까, 김솔과 운양 앞으로 수십 개의 투자 제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헐 마석 5만 개 준다는데?”
“받지 말라고······.”
두사람과는 달리 내게는 단 한 건의 제안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템 경매 때부터 철저히 행동을 삼가고 있었으니까.
해리스를 통해 이런저런 정보를 얻으려던 찰나······.
[‘마르케스’에서 마석 1개 투자를 제안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낯선 놈들이 투자를 제안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