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52)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52화(152/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52화
사브로스 점령전 (1)
152화. 사브로스 점령전 (1)
해리스는 지구에 대해 은근한 호의를 품고 있었다.
파리에서 만나 조각상들을 보여준 이후, 호사가들에게 지구의 가치를 부단히 설파했던 그였으니.
하지만 해리스가 이곳 박람회를 방문한 이유는 지구 때문이 아니었다.
“토턴 인베스트먼트에 대한 소식을 찾고 있어요. 위계 신청서를 출품한 사업체라고 하더군요.”
이번 경매를 위해 차명으로 사용한 이름.
기자라 소식이 빠른 것인지는 몰라도, 토턴 인베스트먼트에 대한 소식이 그새 곳곳으로 퍼진 모양이었다.
해리스가 마저 말을 이었다.
“그 작은 투자사 이야기로 전 우주가 떠들썩합니다. 상공회의소가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겉으로는 이야기 못해도······ 알 만한 자들은 모두 다 알고 있죠. 심지어 그 마르케스까지 관심을 보인다고 하니······.”
마르케스.
공교롭게도 그 이름이 해리스의 입에서 나왔다.
방금 전 대뜸 내게 마석 1개를 적선한 세력이었는데······.
하필이면 토턴 인베스트먼트를 찾고 있다는 말에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설마······ 들켰나?’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문제였다.
마르케스가 보여준 행보라고는 내게 제안을 찔러넣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
하물며, 그 접근 방식 또한 독특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개는 뭐야?’
사실상 없다시피 한 투자 제안이다.
마석 하나쯤이야, 받든 안 받든 이득도 손해도 없었으니까.
대관절 무슨 의도인지 아리송할 따름이었기에······.
“마르케스가 뭐지?”
일단은 놈들에 대한 정보를 캐보기로 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해리스는 다차원 제일의 정보통이기도 했으니.
눈을 껌뻑이던 그가 대답했다.
“아, 잘 모르실 수도 있겠네요. 흑마법사들로 이루어진 세력인데······ 바르나울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해리스는 우리가 바르나울과 사이가 나쁘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파리에서 바르나울의 침공 소식을 처음으로 전해주었던 것 또한 해리스였으니까.
바르나울과는 또 다른 흑마법사들의 세력, 마르케스.
해리스가 설명을 덧붙였다.
“흑마법이라는 뿌리 자체는 같지만······ 뭐랄까 조금 더 감성적인 면모가 강하다고나 할까요.”
“······뭐야 그게.”
어딘가 어정쩡한 설명.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다음에 있었다.
“상공회의소에 의해 대부분 궤멸되었다는 게 정론인데······ 잔존 세력이 남아 있기는 합니다. 이번처럼 종종 소식이 들려올 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사실 반쯤은 우주 전설 같은 존재들이죠.”
“상공회의소에 의해?”
“네, 사이가 엄청 나쁘거든요.”
그것만큼은 좋은 소식이었다.
나로부터 무언가 냄새를 맡은 마르케스의 흑마법사들.
토턴 인베스트먼트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한들, 나를 상공회의소에 고발할 일은 없을 테니까.
어쩌면 되레 내게 협력을 제안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무슨 근거로 협력을 제안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이런저런 정보를 더 캐고 싶었지만, 시간이 많지 않았다.
서서히 폐막에 다다르고 있는 차원 박람회.
대로를 가득 메우고 있던 중위 차원들의 홍보부스가 낙엽처럼 가라앉고 있었다.
그렇게, 지구로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을 즈음······.
[차원박람회에서 안내드립니다.]놈들의 새로운 공지가 떠올랐다.
[‘위계 난투’ 및 ‘투자 전략 컨퍼런스’에서의 결과에 따라, 행사에 참여한 차원들에 대한 공식 평가 점수가 최종 집계되었습니다.] [평가 점수는 상공회의소의 누적 평가에 반영되었으며, 그 결과에 따라 단계 변동이 발생하였습니다.]“단계 변동?”
다시 말해, 등수에 변동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뾰족한 피라미드에 상공회의소의 계층 사다리가 걸쳐졌다는 것.
바로 그 단계 변동의 주인공은······.
[현 시간부로, ‘지구’ 차원이 ‘중위’ 차원으로 분류됩니다.] [‘지구’ 차원에는 상공회의소 차원 본부가 설치될 예정이며, 초기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예하 부처가 신설됩니다.]다름아닌 지구였다.
어엿한 중위 차원에 올라 상공회의소의 특별 지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
위계 난투에서부터 우리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었던 해리스가 축하한다며 물개박수를 쳤지만······.
“좋은 거야······?”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예전보다는 나을 겁니다. 하위차원들에 비하면 비교적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거든요. 중위 차원이 되었다는 건······ 본격적으로 상공회의소의 관리하에 놓인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상공회의소의 관리하.
나로서는 찜찜함이 한층 더 가중될 뿐이었다.
더욱이, 상공회의소는 아마 지금쯤 눈에 불을 켜고 토턴 인베스트먼트를 찾고 있을 터였다.
바로 그 토턴 인베스트가 마지막으로 있었던 장소는······.
‘런던이었지······ 지구의.’
토턴 인베스트먼트가 있던 지구, 그리고 새로이 설치되는 차원 본부.
이 모두를 과연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
‘비교적 공정한 대우’라는 좋은 소식에도, 마냥 반길만한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해리스의 생각 또한 비슷한 생각이었다.
“토턴이 있던 지구에 차원 본부 설치라······ 상공회의소가 칼을 빼든 느낌이군요. 사실 이렇게 빨리 중위 차원으로 진입하는 사례는 처음 보거든요.”
아이템 경매에서 있었던 소란을 취재하러 왔다던 해리스.
그가 조금은 기운 빠진 듯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후속 기사를 쓰려면 지구가 딱인데······ 취재 허가가 날지 모르겠네요. 사실 여기도 생떼를 부려서 넘어온 거라······.”
아무래도 이 귀여운 수달께서는 다시금 지구에 방문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위계 신청서를 팔아먹었던 희대의 아이템 경매, 그 소란의 주인공인 토턴 인베스트먼트의 흔적을 찾기 위해.
그리고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었다.
“토턴에 대해서 알고 싶은 거지?”
“예, 뭔가 알고 계신 게 있나요?”
“그쪽한테서 투자받은 각성자를 알고 있어서. 유럽 쪽에.”
“그게 정말입니까?”
반색하는 해리스.
그에게 미안하지만, 토턴 인베스트먼트의 진짜 정체를 알려줄 수는 없었다.
혹여나 기사를 통해 내 정체가 사방팔방으로 팔려나간다면 그보다 더 곤란한 일은 없을 테니까.
다만······.
‘포부를 보여주는 것쯤은 괜찮겠지.’
토턴 인베스트먼트의 행보를 언질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는 상공회의소를 대척하고 있으며, 놈들이 쌓아놓은 위계를 모조리 무너뜨려 버릴 수 있다는 경고를.
차원 존재들의 불안을 야기하고, 상공회의소의 신뢰와 기반을 야금야금 깎아 먹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다차원 언론, 에코스의 쓸모였다.
나는 해리스에게 제안했다.
“토턴 인베스트먼트에 대해 알아봐 줄 테니······ 다음에 만날 때까지 마르케스에 대한 정보를 모아줘.”
“마르케스를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은 해리스였지만······ 이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르나울과는 대척점에 있는 또 다른 흑마법사들의 차원.
해리스는 우리가 바르나울과 척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위험한 길을 가시는군요······ 좋습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죠.”
다만 그렇게 덧붙일 뿐이었다.
띠링!
[차원 박람회가 종료됩니다.] [포탈로 복귀하십시오.]어느덧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오래간만에 재회한 해리스와 손을 마주 잡으며, 마지막으로 안부차 그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기사는 잘 나올 것 같고?”
“아무렴요. 제목도 정해뒀습니다.”
해리스가 가느다란 수염을 씰룩였다.
그가 정한 기사의 제목은······.
<차원박람회 경매 긴급 중단, 귀족들 경악, 충격! 망신!>
“허 참······.”
정말이지 기사다웠다.
***
우리는 그렇게 지구로 돌아왔다.
회의장에 갇혀 있었던 시간을 합하면, 열흘 남짓한 기간.
그동안 줄곧 떨어져 있었던 탓에 모두가 반갑게만 느껴졌다.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주군······!”
“정겸 씨의 복귀를 환영하는 의미에서 단체 물구나무를······.”
“꾸.”
카멜롯의 기사들부터, 엘븐하임의 엘프들, 그리고 아공간에 들여놓았던 방랑의 매까지.
아공간의 이종족 식구들이 한목소리를 모아 우리를 환영해주었지만······.
“일단은 다녀올 곳이 있어서······.”
인사는 차차 하기로 했다.
먼저 만나봐야 할 이종족이 있었으니까.
.
.
.
“선조님!”
포탈을 넘자마자, 테레브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의 등 뒤로 쿵하니 떨어지는 거대한 바벨.
미묘하게 커진 몸집을 보아하니, 꾸준히 훈련을 이어가던 모양이었다.
“꾸르르르······.”
그뿐만이 아니었다.
회의장으로 넘어가기 전, 나는 우르에서 붙잡은 하일라를 레텔 차원에게 건네주었으니까.
새로운 탈 것을 보급받은 레텔인들이 하일라를 이용한 크로스핏 훈련을 이어 나갔고, 이제 고작 열흘이 지난 시점이었음에도 마치 제 수족처럼 두꺼비들을 다루고 있었다.
사브로스의 본진을 채우고 있을, 늪지대에 대한 방비가 이루어진 참이었지만······.
‘살짝 아쉬운데······.’
압도적인 승리를 장담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테레브를 포함한 레텔인들 대부분이 아직 7 내지 8위계에 머무르고 있었으니까.
김솔이나 운양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마석이었다.
‘······아직은 배고플 시기지.’
지금껏 잘 싸워왔던 레텔인들이었지만, 사브로스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위계 제한에 걸리지 않은 사브로스의 ‘진짜’ 전력이 그 안에 있을 테니까.
확실한 승리를 위해 전력 증강, 다시 말해,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마침 내게는 아이템 경매에서 벌어들인 어마어마한 양의 마석이 주어져 있었으니.
상공회의소의 추적이 걱정되는 만큼, 나 자신에게 쓸 수 있는 돈도 아니었다.
“테레브, 잘 들어봐······.”
그에게 말해주었다.
투자 계약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를.
투자를 받아 강해지는 순간, 내게 레텔인들의 고삐를 쥐여주는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투자라는 달콤한 말로 하위차원들을 농락하는 상위차원들,
그들과 같은 행보를 걸을 수는 없었으니까.
“투자금은 언제든 회수할 수 있어. 너희가 몇 레벨을 찍고, 몇 위계로 올라서든······ 내가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지.”
더욱이,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공회의소의 추적을 받고 있는 토턴 인베스트먼트.
그 법인 계좌에 들어있는 마석은 말 그대로 위험천만한 돈이었으니까.
“이 돈을 받는 게 위험할 수도 있어. 사실 너희야 전에도 투자받은 적이 있으니 이제 와 달라질 건 없지만······ 위험한 건 확실하지.”
레텔인들에게 선택을 맡기기로 했다.
투자자인 내게 종속된다는 것, 그리고 상공회의소의 추적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것.
두 가지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무조건 받아야죠. 저희가 선조님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습니까?”
“선조 아니라니까.”
“에이, 부끄러워하시기는······.”
테레브는 씨익 웃음을 짓더니, 뒤편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되찾은 성지, ‘틀뢴’에서 맑은 땀을 흘리는 레텔인들이 있었다.
“성지와 유적······ 이곳 레텔 차원 모두가 저희가 선조님께 진 빚입니다. 이제 와 마석 몇 푼 얹는다 한들 그 빚이 얼마나 커지겠습니까? 설령 위험하다고 해도······ 저희가 살아계신 선조님의 유지를 이어간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거고요.”
테레브는 나를 신뢰하고 있었다.
비록 나는 그들의 선조도 무엇도 아니었지만······.
“그래.”
달라질 건 없었다.
나 또한 이들을 배반할 생각이 없었으니.
띠링!
[상대가 투자를 수락했습니다.]토턴 인베스트먼트의 계좌를 열어, 레텔인들에게 마석을 지급했다.
순식간에 레벨을 올리며, 7위계 또는 6위계까지 단숨에 치고 올라가는 레텔인들.
이제 사브로스에 못지않은 힘을 구가하게 된 터였다.
“그럼 이제······.”
지이이······.
성지 한쪽에 설치된, 사브로스로 향하는 포탈을 바라보았다.
우리에게는 비교적 짧은, 하지만 레텔인들에게는 기나긴 악연.
비로소 끊어낼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