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53)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53화(153/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53화
사브로스 점령전 (2)
153화. 사브로스 점령전 (2)
축축한 동굴 벽으로 이어지는 어느 장소.
황금빛 왕홀이 녹슨 병장기와 함께 뒤섞여 있었다.
“······수고했다.”
사브로스의 장군, 타르가 콧김을 내뱉었다.
동굴 내부를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체구.
사브로스의 왕좌에 앉은 그가 부하를 치하했다.
“감사합니다. 장군.”
이제 막 차원 박람회에서 돌아온 터였다.
7위계 말단에 불과했으나 난투에서 5위를 기록한, 사브로스를 위기로부터 구해낸 영웅.
장군, 타르가 만족스럽다는 듯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한시름 놓았구나. 모조리 불러들여야 했나 했는데······.”
중위 차원 중에서도 유난히 호전적인 사브로스.
수천 마리의 파충류들이 이미 하위 차원 곳곳으로 퍼져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난투에서 패배했더라면 병력들을 불러들여, 이곳 사브로스를 방어하는 일에 집중해야 했을 테지만······.
“이대로라면 그대로 진행해도 되겠어? 아니······ 오히려 증원을 해 줘야겠지.”
이제 그럴 걱정이 사라졌다.
현재 사브로스에 부여된 위계 규제는 최대 6위계까지.
제한만 유지된다면 크게 밀릴 일은 없었으니까.
여유가 생긴 타르는 오히려 더 큰 야욕을 드러낼 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토턴 인베스트라고 했었나?”
“맞습니다. 장군.”
“위계 신청서라······ 아쉽구나. 어딨는지만 안다면 전 군을 보내서라도 손에 넣을 텐데 말이야.”
병력만큼은 남부럽지 않은 사브로스였다.
위계 신청서만 마음껏 얻을 수 있다면, 상상 이상으로 전력을 키울 수 있을 터.
소문만 무성한 토턴 인베스트먼트였기에, 그로서는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지만······.
“자, 장군!”
타르는 곧 알게 되었다.
그런 태평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는걸.
다급한 목소리의 병사가 후다닥 날아들었다.
“무슨 일이냐?”
“적습입니다······! 지금······.”
“뭐? 그럴 리가? 분명 위계 제한은······.”
“개척 사업이 아닙니다! 레텔! 레텔 놈들이 들어왔습니다!”
“······레텔?”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지난 백 년 간, 철천지원수로 지내온 레텔.
점령에 실패한 것도 뼈아픈데, 한술 더 떠 놈들의 침공을 허용한 것이었으니까.
“그 말라깽이들이 어떻게······?”
의아할 따름이었다.
죽도 못 얻어먹은 듯 말라비틀어진 몸.
그것이 타르가 기억하는 레텔인들의 모습이었거늘.
하지만······.
“위계 차원에서 밀리고 있습니다······! 병사들의 공격이 먹히질 않아요!”
놀랍게도 레텔인들은 순수 체급을 키워 온 상태였다.
근력으로나, 위계로나 사브로스를 압도하고 있다는 것.
7위계 정예 리자드맨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있다는 것이 병사의 보고였다.
“위치는······! 위치는 어디냐!”
“마야르······ 마야르 성입니다!”
“젠장 하필이면!”
콰앙!
타르가 왕좌를 내리쳤다.
레텔인 포로들을 수용해두었던 마야르 성.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마야르 성만큼은 절대 내어줄 수 없었으니까.
타르가 명령했다.
“모두 따라와라! 반드시······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예!”
필사적이었다.
순식간에 열세가 된 사브로스였지만······.
‘그것’만 지켜낼 수 있다면 반전의 여지는 있었으니까.
쉬리릭!
사브로스의 도마뱀들이 순식간에 동굴을 빠져나갔다.
자신들의 고향, 사브로스를 지켜내기 위해.
***
콰아앙!
콰앙!
연신 귀를 때리는 폭음.
우리는 지금 사브로스의 성, 마야르를 마주하고 있었다.
“축축하구나······.”
성으로부터 거대한 돌덩어리들이 차례로 날아들었다.
큰 충격과 함께 지축이 울렸음에도, 작은 먼지 하나 일지 않았다.
이곳 사브로스는 온통 물기와 진흙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
늪과 진흙이 섞인 강이 흘렀다.
해자가 된 강이 높다란 성을 둘러쌌고,
바로 그곳이 레텔인 포로들이 사로잡힌 마야르 성이었다.
“감사합니다, 선조님······!”
“뭘, 여기가 제일 가깝던데.”
포로들을 먼저 구하고 싶다는 것이 테레브의 의견이었다.
마침 포탈이 설치된 장소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이었기에, 나 또한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치열한 싸움을 이어나는 레텔인들의 모습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볼 뿐.
걱정이 무색하게, 레텔인들은 특유의 완력으로 사브로스의 병력을 압도하고 있었다.
쉬이익!
쉬리릭!
쉴 새 없이 바위가 날아들었다.
사브로스의 뱀들이 성벽을 타고 넘었고, 기다란 꼬리를 채찍처럼 휘두르며 우리에게 바위를 던져댔다.
늪지대를 두른 드높은 성벽,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사브로스였지만······.
“꾸르르르르!”
이미 공략 수단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르에서 잡아 온 두꺼비 하일라.
이 두꺼비들이 레텔인들의 다리가 되어줄 테니까.
척!
여덟 명의 레텔인들이 하일라의 뿔을 잡았다.
하일라가 양쪽 뒷다리를 커다랗게 부풀렸고······.
껑충!
순식간에 하늘로 치솟았다.
드높게만 느껴지던 마야르의 성벽.
하지만 하일라에게는 한걸음 짜리 계단에 불과했으니.
상공에 떠오른 하일라가 촉수를 내려보냈고,
터엉!
텅!
촉수를 밧줄 삼아, 성벽 위로 레텔인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종종 바람에 휩쓸려 가파른 성벽 면으로 떨어지는 이들도 있었지만······.
“휘우!”
레텔인들은 이미 크로스핏으로 철저히 단련되어 있었다.
동굴석으로 만든 마야르의 성벽을 암벽등반하듯 타고 올라갔고······.
“카아아악!”
꾸드드드드드득!
단단한 이두박근을 부풀려, 철갑 악어, 리자드맨, 킹 코브라들의 목을 졸랐다.
꺽꺽 소리와 함께 툭툭 떨어져 나가는 사브로스의 파충류들.
첨벙거리는 해자가 놈들의 사체를 받아먹었다.
“안쪽까지 제압됐습니다. 선조님.”
“그래.”
마야르 성이 함락됐다.
레텔인들의 깃발이 성벽 위로 휘날렸고, 사슬 소리와 함께 해자 위로 다리가 내려왔다.
“······ 들어가 볼까.”
나는 그렇게 마야르 성으로 입성했다.
이제는 성의 주인이 된 레텔인들과 함께.
***
“테레브······?!”
“대, 대체 어떻게······!”
포로로 잡혀 있던 레텔인들.
줄줄이 나타나는 동족들의 모습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들로서는 레텔이 사브로스에 짓밟히는 모습밖에는 보지 못했을 테니까.
해후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겠지만, 당장은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즉시 포탈을 열어 포로들을 레텔 차원으로 되돌려보낸 뒤, 테레브를 비롯한 레텔인들에게 지시했다.
“숨어 있는 놈들이 있을 수 있으니······ 성안을 샅샅이 뒤져봐. 바깥도 잘 살펴보고.”
“예, 선조님······!”
포로들이 갇혀 있던 마야르 감옥.
활짝 열린 쇠창살을 뒤로하고, 레텔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레텔인들의 해방을 물씬 느끼게 하는 풍경이었지만······.
어딘가 이질적인 시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단 하나, 아직 열리지 않은 창살이 있었다.
동굴 감옥의 가장 깊숙한 곳.
그늘에 가려진 거대한 존재가 쉭쉭 불규칙한 숨을 내뱉고 있었다.
“도마뱀······ 인 것 같기는 한데······.”
나는 포탈을 방패처럼 세워, 조심스럽게 놈에게 접근했다.
사브로스이기는 하지만, 감옥에 갇힌 존재.
말이 통하는 상대라면, 사브로스의 우두머리가 있는 위치를 알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
우두머리를 날린다고 해서 전쟁이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시간을 앞당겨 줄 수는 있을 터였다.
“으으음······.”
짐승 특유의 낮은 그르릉 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그 앞으로 다가가자마자······.
번쩍!
“······!”
파충류 특유의 노란 눈이 쇠창살을 가득 채웠다.
‘크기가 대체 어느 정도인 거야······.’
눈 하나로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체구.
하지만 그 위엄과는 대조적으로, 놈의 몸은 모조리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주변을 채운 진흙과 그 몸의 경계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하지만 놈의 눈빛에서 또렷한 의식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기에, 나는 사브로스의 왕이 있느냐 물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무겁게 내리깔린 음성이 돌아왔다.
“사브로스의 왕이라······ 늘그막에 손님을 맞았군.“
“······농담이지?”
“말을 축 늘이는 나쁜 버릇이 있기는 하지만······ 농담에는 영 재주가 없다네. 사브로스는 나로부터 시작된 땅이야. 물론 자네가 찾는 녀석이 나는 아니겠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을 ‘페더’로 소개했다.
죽음이 코앞에 드리운 늙은 도마뱀, 놈은 놀랍게도 스스로를 사브로스의 왕으로 칭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허울뿐이야.”
그는 ‘타르’라는 이름의 장수가 반란으로 권력을 찬탈했다고,
자신을 철창에 가둬둔 채 수백 년간 섭정을 이어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내가 타르의 위치를 묻자, 사브로스의 왕 페더가 푸르르 한숨을 내쉬었다.
“동굴 벽을 타고 들어가다 보면······ 그 어디선가에서 왕홀을 들고 있겠지. 하지만 타르를 찾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걸세. 사브로스의 파충류들은 한 번에 열댓 개의 알을 낳아. 그리고 아주 빨리 부화하지. 물기로 흥건한 진흙을 파내고 파내도 금세 땅이 메꿔지듯이······ 꼬리를 자르고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할 걸세.”
“무슨······.”
수백 년간 갇혀 있었기 때문일까.
어쩐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부화된 알들이 자라나 우리와 싸울 것이라는 예고.
축축 늘어지는 그의 말에서는 통상적인 시간 개념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으니까.
‘그렇긴 한데······.’
적어도 한 가지는 명확했다.
싸움이 길어질 것이라는 그의 예고.
차원 하나를 통째로 정복하는 싸움이니만큼, 얼마나 더 싸움이 길어질지는 차마 가늠할 수 없었으니까.
내가 페더에게 물었다.
“다른 방법이 있나?”
“옛날로 되돌아가기만 하면 되네. 쌓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뜨리는 건 잠깐이면 되거든.”
반란에 따른 배신감 때문이었을까?
사브로스의 왕을 자처하고 있음에도, 페더는 사브로스의 패망을 바라고 있었다.
“왕좌를 되찾고 싶은 거야?”
“설마······ 그럴 리가 있나. 나는 이미 흙으로 돌아가는 중일세. 사브로스도······ 슬슬 그럴 때가 됐지. 이곳 지하를 똑바로 내려가게. 거기에 상공회의소가 남겨놓은 선물이 있을 테니.”
“상공회의소······?”
“나는 그저 진흙 만지기를 좋아하던 철부지였을 뿐이네. 하지만 어느 날 상공회의소가 특별한 제안을 하더군. 내가 데리고 있던 도마뱀들로 아주 특별한 일을 할 수 있다고 말이야. 그래······ 차원 본부가 들어설 때였어.”
차원 본부.
박람회에서도 들었던 단어였다.
지구의 중위 차원 등극을 기념하며, 상공회의소가 설치를 약속한 기관.
언젠가 사브로스에서도 차원 본부가 설치된 적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하에 선물이 있어. 그걸 없애버리게. 그러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올 테니.”
그것이 페더가 제안하는 바였다.
사브로스와의 전쟁을 일순에 끝내버릴 수 있는 방법.
“······너를 어떻게 믿지?”
“믿든 말든······ 알게 될 걸세. 타르가 선물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쓸 텐데······ 자네도 바보가 아니라면 그게 뭘 의미하는지 알지 않겠나?”
쿵! 쿵!
아니나 다를까,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테레브가 감옥으로 들어왔다.
그가 전해준 소식은······.
“완전히 포위된 상태입니다, 선조님.”
다름아닌, 사브로스의 조급함이었다.
“선조님, 그럼 말씀하셨던 것처럼 일단은 빠져나가는 편이······.”
테레브와 미리 공유했던 작전이 있었다.
도주로를 고민하지 않은 채, 최대한 적진을 꿰뚫고 들어가는 것.
그다음 아공간을 이용해 도주하는 전략이었다.
그 뒤로는 포탈을 이용해 치고 빠지며, 부단히 게릴라를 펼치면 될 일이었지만······.
“잠깐만.”
페더의 말이 진짜라면, 상공회의소의 ‘선물’을 파괴하는 것만으로도 사브로스를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있었다.
여전히 샛노란 눈자위를 드러내고 있는 페더.
그가 사브로스를 대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거지?”
“다른 존재들을 짓밟고 사느니······ 일찌감치 흙으로 돌아가는 편이 낫겠지. 그동안 사브로스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려왔어.”
그의 시선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사브로스가 가혹하리만치 잔인했다면, 페더는 자기 자신에게 그 누구보다도 가혹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자네들의 손을 더럽힐 필요도 없을 걸세. 태초의 야만은······ 오히려 순수함에 가까운 것이니까.”
성 내부를 탐색하고 있던 레텔인들.
그들로부터 지하 통로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페더의 또렷한 눈이 창살 너머로 달처럼 떠 있었지만······.
“······.”
구태여 문을 열어주지는 않았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노쇠한 왕.
이제 와 감옥에서 풀려난다 한들,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갈게.”
“반가웠네.”
인사를 끝으로, 나는 사브로스의 왕과 일별했다.
그러곤 깊고도 깊은 동굴 지하 속으로 침잠하듯 가라앉았다.
상공회의소의 오랜 선물을 찾아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