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54)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54화(154/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54화
양육자 (1)
154화. 양육자 (1)
테레브를 따라 내려간 곳은 캄캄한 동굴의 심층부.
축축하게 젖은 종유석으로부터 똑똑 물방울이 떨어졌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둠이었다.
하지만 이내 굽은 벽면을 따라 휘어지는 여러 가닥의 빛을 발견했고, 자세히 관찰하자 그것이 얇게 퍼진 일종의 빛줄기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십에서 수백, 수백에서 수천 가닥으로 뻗어 나오는 빛줄기.
얼핏 보기에, 나무뿌리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지만······.
“······혈관?”
사방으로 잘게 퍼져나가는 모습이, 마치 복잡하게 얽힌 미세혈관처럼 느껴졌다.
차츰 촘촘해지는 혈관 벽을 따라 우리는 꾸준히 걸었고,
그렇게 얼마간 더 걸어간 끝에, 페더가 이야기한 상공회의소의 ‘선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테레브가 조금은 넋 나간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선조님, 이건······.”
나무뿌리와 닮았다는 인상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커다란 동굴 중심부에는 거대한 나무 기둥이 천장과 바닥을 잇고 있었고, 위아래로 각각 수백, 수천 가닥의 줄기를 뻗어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모두가 사실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찐득찐득한 신경 섬유들로 이루어져 있었던 탓에, 혈관이라는 추측 또한 타당한 것이었다.
땅에 뿌리 내린 나무이자, 살아있는 생명.
사브로스의 본원이 이곳 마야르 성 지하에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이 생명의 나무의 중심에 바로, 상공회의소가 남겨놓고 간 선물이 열매처럼 맺혀 있었다.
“······게이트 핵?”
그것이 열매의 정체였다.
몸 전체가 울긋불긋한 핏줄로 뒤덮인 채, 한껏 쪼글쪼글해져 있었지만······.
아무렇게나 뒤섞인 눈코입, 균형감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팔다리까지.
아무리 봐도 게이트 핵이 틀림없었으니까.
놈은 가지에 매달린 채, 커다란 눈을 굳게 감고 있었다.
잠에 든 것처럼 잠잠한 표정이었으나, 눈꺼풀 사이로 까끌거리는 진흙이 꾸준히 흘러나왔다.
툭.
투둑.
마치 완전히 잠그지 않은 수도꼭지 같았다.
진흙을 빚어 만든 사브로스의 꿈이 게이트 핵의 동공을 타고 흘러나온 것만 같았다.
“이제 끝내자, 사브로스.”
스릉!
아공간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페더가 ‘선물’이라고 했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지만······.
그 정체가 게이트 핵이라는 걸 확인한 만큼 망설일 필요가 없었으니.
촤하아악!
“까아아아아아악!”
게이트핵의 이마에 붙은 입이 활짝 열렸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치열 사이로, 두어 가닥의 혓바닥이 꿈틀거리며 비명을 뱉었다.
내 공격이 무색하게, 얇은 자상 하나만 남았을 뿐이었지만······.
후우욱!
후욱!
아무래도 꿈이란 촛불처럼 단숨에 꺼지는 신기루가 아닌 모양이다.
검을 뻗을 때마다 게이트 핵이 비명을 질렀고, 그럴 때마다 동굴 벽 곳곳으로 뻗어나가는 혈관의 중심 줄기들이 하나둘 빛을 잃어갔다.
몸서리치는 게이트 핵.
환부로 뒤덮인 환자처럼, 그럴 때마다 상처에서 거무죽죽한 진흙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끄으으으으으······.”
형광등 불빛처럼 점멸한 끝에, 마지막 남은 줄기가 빛을 잃었다.
.
.
.
우리는 곧장 지상으로 올라왔다.
게이트핵과 놈으로부터 뻗어 나온 신경들을 모조리 제거한 참.
그 결과를 두 눈 똑똑이 확인할 수 있었다.
“······포위되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분명······.”
당황스레 말을 흘리는 테레브.
야마르 성을 중심으로 모든 싸움이 종식되어 있었다.
갖은 병장기로 무장한 채, 갑옷을 절그럭거리며 몰려들었던 사브로스의 군대들.
하지만 눈앞에 놓인 것은······.
철벅!
찰박!
그저 진흙 위로 꿈틀거리는 수천 마리의 파충류뿐이었다.
수백 년 전, 페더 왕과 함께 놀았다던 태고의 어린 도마뱀들처럼.
상공회의소의 ‘선물’을 제거한 것만으로, 놈들은 탐욕은 물론 이지마저 잃어버린 채 평범한 자연의 생물로 되돌아갔다.
문득 사브로스의 왕, 페더가 내게 남긴 말이 떠올랐다.
“손을 더럽힐 필요가 없다는 게······ 이런 의미였나.”
살육도, 전쟁도 필요 없었다.
그저 뿌리 깊게 박혀 있던 게이트 핵을 제거했을 뿐.
비록 단칼에 벨 수는 없었던 치열한 꿈의 회로였으나, 수천수만 마리의 적을 베어 넘기는 것에 비하면 놀라우리만치 간단한 일이었다.
그 덕분에······.
“그런 거였구나.”
얼추 짐작되었다.
상공회의소의 ‘선물’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테레브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뭔가 짚이는 게 있으십니까?”
“상공회의소도 일종의 투자를 하고 있었던 거야. 원래도 그랬고, 이번에도.”
투자는 이 끔찍한 다차원 세계의 생태계였다.
하위 차원에게 마석이나 아이템 따위를 지원해주던 상위 차원들.
언제든 자원을 회수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상대를 볼모로 만들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좋은 걸······ 상공회의소가 안 할 리가 없지.”
파산을 선고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힘.
상공회의소 또한 그 칼자루를 쥐고 있었다.
다름 아닌 사브로스에 내려준 ‘선물’을 이용해.
테레브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게이트 핵이라면 몰라도······ 레텔에서 저런 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중위 차원들에만 적용되는 거겠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상공회의소의 관리하에 들어간다고 했으니까.”
박람회가 끝났을 즈음, 상공회의소는 지구가 중위 차원이 되었다고 공지했다.
차원 본부를 설치해, 본격적으로 지구의 성장을 돕겠다는 말과 함께.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도움이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난 것일 리 없었다.
“정확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저 게이트 핵에 사브로스 차원 전체의 성장치가 모조리 쌓여있었던 게 분명해.”
한순간에 모든 힘을 잃어버린 사브로스.
그 이유를 달리 설명할 방법이 과연 있을까?
정리하자면 이렇다.
상공회의소는 피라미드에 사다리를 놓아주었다.
하지만 언제든지 그 사다리를 걷어찰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들의 선물인 게이트 핵만 파괴된다면······ 어느 차원이건 단숨에 나락까지 무너져버릴 테니까.
그리고······.
“지구에서는 이제 시작이지.”
지구에도 곧 선물이 들어설 차례였다.
***
이튿날, 테레브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특별한 건 찾지 못했습니다, 선조님. 사브로스가 남겨놓은 병장기나 몇 가지 시설 정도뿐입니다.”
“음······.”
레텔인들에게는 사브로스를 둘러보라고 일러둔 터였다.
지하에 숨겨진 나무뿌리를 잘라낸 참이지만, 그와 비슷한 게 또 있지는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지금껏 찾아낸 것이 전부였다.
동굴석을 깎아 만든 주거지, 녹슨 병장기, 훈련시설, 그리고 마야르를 비롯한 몇 개의 성채.
거대 파충류 특유의 전투력을 뽐내던 사브로스였지만, 전반적인 문명이나 기술적인 수준을 형편없기 짝이 없었다.
더욱이······.
“별다른 시설도 없었다는 거지?”
“예, 전부 비활성화되어 있기는 했지만······ 말씀하신 지부 크기의 시설은 더러 있었습니다. 본부급도 하나 발견했고요. 하지만 그 이상되는 시설은······.”
어엿한 중위 차원이었던 사브로스다.
지구에 차원 본부가 설치되는 것처럼, 언젠가 사브로스에서도 설치된 적이 있었을 터.
하지만 폐허가 된 지부나 본부가 남아 있을지언정, 차원본부 급의 시설은 발견할 수 없었다.
지구로 들어오게 될 차원 본부라는 것이 그저 아리송하게만 느껴질 뿐.
그리고 그때······.
“정겸 씨······!”
물류센터에 있던 이용수가 물류상황실로 들어왔다.
물류센터에는 구획된 복도마다 팍스FC의 각 지역으로 향하는 포탈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중 한 지역에서 소식을 전해왔기에 이용수가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무슨 일인데요?”
“런던에 상황이 생겼답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판단이 서질 않는 모양이에요.”
유럽에는 리디아 그룹을 비롯한 현지 각성자들이 고루 퍼져있었다.
언제 다시 레드 게이트를 통해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될지 알 수 없었으니.
나는 즉시 이용수와 함께 런던에 위치한 아공간 포탈로 향했고, 이용수의 말에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뭐죠 저게?”
“10분 전에 발견했다고 하더군요. 갑자기 떡하니 나타났다고······.”
머나먼 하늘이다.
하지만 거대한 크기의 섬이 흐린 하늘 위로 두둥실 떠 올라 있었다.
섬 안에는 은은한 백색 성채가 드리워 있었고, 구름으로 둘러싸인 채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천공섬?”
그 특이한 모양새와는 별개로, 위치가 실로 절묘했다.
토턴 인베스트먼트가 있던 런던, 바로 그 런던에 나타난 천공섬이었으니까.
상공회의소가 토턴 인베스트먼트를 찾아 나섰다는 점을 떠올리자······.
“······저거구나.”
섬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사브로스의 땅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것.
하지만 지구에 설치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시설.
즉, 상공회의소의 차원 본부였다.
과연 어디에 설치될지 궁금해하던 참이었는데, 아예 하늘에다 띄워놓을 줄이야.
아니나 다를까, 정체를 알 수 없는 흰색 비행체들이 천공섬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띠링!
[다차원 상공회의소에서 안내드립니다.]놈들의 메시지가 시작되었다.
[지구의 중위 차원 등극을 축하합니다.] [지구 차원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차원 본부 설치가 완료되었습니다.] [원활한 지원을 위해, 차원 본부 운영과 관련한 세부 사항을 안내드립니다.]드디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지구.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 축복이 될지, 고난이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는 결연한 표정으로 상공회의소의 다음 메시지를 기다릴 뿐이었다.
띠링!
[지구의 차원 본부는 위탁으로 운영됩니다.] [상위 차원인, ‘피렌’이 운영을 담당하며, 지구 차원의 성장을 보조하게 됩니다.]“위탁 운영······?”
다시 말해 상공회의소가 고삐를 쥐되, 직접 운영하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믿을 만한 상위 차원에게 맡겨 우리를 키워내겠다는 심산.
지금으로서는 반가워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와는 별개로······.
슈우우우아아악!
세찬 바람 소리와 함께, 천공섬 주변의 비행체들이 한결 가깝게 땅으로 내려왔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새하얀 날개와 인간형 몸체, 거기에 기다란 금색 지팡이까지.
“······천사?”
이용수가 놈들의 생김새를 한 단어로 요약해주었다.
푸드덕.
놈들이 날갯짓을 하며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둘러보았다.
무언가 찾고 싶은 것이 있다는 듯이.
“······.”
외견상으로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였지만······.
내 눈에는 상공회의소가 내려보낸 악마들이나 다름없었다.
상공회의소의 메시지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끔찍하게도, 녀석들은 선물을 잊지 않고 있었으니까.
사브로스에게 주었다던 바로 그것이었다.
띠링!
직접 만들어가야 한다는 아리송한 조건.
선물이라는 말에 혹하는 각성자들도 분명 있겠지만, 나는 이미 선물의 정체를 확인한 터였다.
지구인들을 상공회의소의 검투사 노예로 만들기 위한 과정.
바로 그것을 위해 놈들은 우리의 참여를 촉구하고 있었다.
머나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선물이라니······ 크기도 하지.”
커다란 천공섬이 둥둥 떠올라 있는 하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