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55)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55화(155/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55화
양육자 (2)
155화. 양육자 (2)
메시지가 날아드는 중에도, 나는 상공회의소의 속셈을 추측해보고 있었다.
“위탁 운영이라······.”
역사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상공회의소는 ‘피렌’이라는 이름의 상위 차원에게 지구를 떡하니 맡겨두었으니.
대기업이 귀찮은 업무를 하청업체에 던져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왜지?’
단순한 인력 부족은 아닐 것이다.
대륙 본부는 물론이요, 하물며 국가별 지부에도 직원들을 파견하던 상공회의소였으니까.
‘하나 생각나는 건······.’
단서는 놈들이 택한 위치에 있었다.
토턴 인베스트먼트가 숨겨져 있던 런던.
경매를 망친 범인을 잡고 싶은 거라면······ 가장 먼저 여기를 뒤져봐야 할 테니까.
펄럭!
피렌의 천사들이 날개를 젖히며 날아들었다.
놈들이 우뚝 솟은 빅벤을 중심으로 맴돌았고, 사방으로 난 웨스트민스터 궁전 입구로 나머지 천사들이 몰려들었다.
만약 저 비둘기들에게 숨겨진 탐색 능력이 있는 것이라면?
물론 아공간에 통째로 집어삼킨 만큼 별다른 흔적이 남아있을 리 만무했지만, 당분간은 신중히 피렌 차원의 행보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띠링!
상공회의소의 메시지가 이어졌다.
[지금부터 지구의 ‘차원 중핵’ 형성을 시작합니다.]차원 중핵.
그것이 상공회의소가 준비한 선물의 이름이었다.
마야르 성 지하에서 보았던, 신경 회로에 뒤얽힌 게이트 핵의 모습.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게이트를 넘어, 차원의 중심이 될 핵 중의 핵이었고······.
[7위계 이상이라면 누구나 ‘차원 중핵’ 형성 작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참여를 원하는 경우 정해진 통로로 입장하십시오.]선물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지구인임을 천명하라는 것일까?
상공회의소는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다름 아닌 세계 각지에 설치되어 있는 레드 게이트를 통해.
우우웅······.
갖은 진동과 함께 꿀렁거리던 레드 게이트는······.
화아아아악!
이내 쌍방으로 통행할 수 있는 푸른색으로 뒤바뀌었다.
***
휘이이이잉!
청명한 바람이 나부꼈다.
두꺼운 바위 사이에 심긴 수풀이 깃발처럼 휩쓸렸다.
“예상하기는 했지만······.”
게이트 포탈, 그 너머는 다름 아닌 천공섬으로 이어져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파괴된 런던의 모습이 알갱이처럼 내다보였으니.
우리가 도착한 곳은 높다란 바위기둥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광장이었고, 먼저 도착한 세계 각지의 각성자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웅성거리는 소리에 김솔이 덧붙였다.
7위계 이상이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차원 박람회에 비해 훨씬 느슨한 조건인 만큼,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려든 것.
나 또한 김솔과 운양, 그리고 이용수를 대동한 참이었다.
“많기는······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을 거야.”
지구의 생존자 중, 상공회의소를 신뢰하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신뢰는커녕 쌍욕을 내뱉는 쪽이 더욱 많을 것이다.
놈들은 우리에게 있어 침략자들을 대표하고 있었으니까.
강제 참여가 아닌 이상, 보통의 각성자들로서는 생존에 집중하는 편이 나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트를 넘어온 이들에게는 특별한 목적이 있기 마련이었다.
‘나처럼 차원 중핵을 노리고 있거나, 아니면······.’
상공회의소의 적어도 ‘한 부분’을 신뢰하고 있거나.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얼굴이 내 앞에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여기서 볼 줄은 몰랐군요. 이제 와 지구의 안위가 걱정되시나 봅니다?”
“음?”
사뭇 비아냥거리는 목소리.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박람회에 참여했던 파커였다.
올림푸스에 들러붙은 캐나다의 각성자였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제대로 바지를 챙겨 입고 있었다.
녀석이 내게 덧붙였다.
“이건 지구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행사입니다. 당신같이 사명감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사람이······.”
“그때 바라던 대로 5위권 먹어줬잖아. 뭐가 불만이야?”
“결국 투자를 모조리 거절했잖습니까!”
이것이 바로 그 ‘한 부분’이었다.
냉혹하기 짝이 없는 상공회의소일지언정, 원칙에 근거해 성장을 도와준다는 믿음.
파커는 상공회의소를 돈벌이 집단이 아닌, 일종의 전략적인 조력자로 이해하고 있었다.
“투자를 받았어야지요! 그걸로 레벨을 올리고······ 위계를 올리면 다 같이 지구의 전력을 강화할 수 있었을 게 아닙니까······!”
답답하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는 파커.
그 순수한 생각이 나 또한 가슴이 미어터질 지경이었지만······.
“닥쳐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파커의 말을 끊어냈다.
흰 날개를 접은 천사들이 사방에서 모여들고 있었다.
지구의 위탁 운영을 맡은 상위 차원, 바로 ‘피렌’의 천사들이었다.
“이곳 천공섬은 피렌의 신성한 영토이자, 위대한 소명을 지닌 차원 본부다. 경망스러운 행동은 용납하지 않겠다.”
2미터쯤 되어 보이는 거대한 체구.
놈들은 상체를 훤히 드러낸 채, 하나같이 두꺼운 철 가면을 쓰고 있었다.
“원래라면 너희 같은 하위 차원의 존재들이 감히 들어올 수 있는 땅이 아니다. 예외가 있다면 지금······ 그러니까 차원 중핵을 만들 때뿐이지.”
상공회의소의 공지대로, 놈들은 우리의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지구인들이 차원 중핵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것, 물론 그 진정한 역할이 조력일지 감시일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자, 따라와라.”
통로는 천공섬 상층부로 이어지는 높은 계단.
머리에 은색 관을 두른, 대표 격이 되는 천사가 먼저 걸어 올라갔고······.
“멀뚱멀뚱 서 있지 말고!”
“서둘러 움직여!”
다른 천사들이 훈련소 조교들처럼 각성자들을 다그쳤다.
그렇게 피렌의 천사들을 따라 도착한 곳은······.
“오······.”
넓디넓은 초원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경관이었다.
단······.
“끄읏!”
“끗!”
“끄으으으으읏!”
그 위를 누비는 수백 마리의 ‘게이트 핵’만 없었더라면.
요컨대 이곳은 차원 본부가 운영하는 ‘게이트 핵 농장’이었다.
녹색 창살로 이루어진 양 문에 빗장을 걸어둔 채, 우두머리 천사가 입을 열었다.
“차원 중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기본을 쌓을수록······ 탄탄한 밑거름이 되겠지. 너희 차원이 상위 차원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기반이 되어줄 거다.”
멍청한 파커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머지 각성자들 또한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 모인 대다수가 상공회의소가 자신을 성장시켜줄 것이라 믿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이 모두를 일종의 게임 퀘스트처럼 여기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던 대로······.
“너희가 지금부터 할 일은 이곳에 있는 게이트 핵을 길들이는 것이다.”
천사 또한 임무를 내려주었다.
‘길들인다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사브로스에서 차원 중핵의 모습을 보고 온 터.
재료로 게이트 핵이 사용되리라는 점은 어렴풋이 짐작했지만, 그걸 직접 키워야 할 줄은 몰랐다.
“아니 무슨 저런 걸 다······.”
“저게 길들여지는 거였어?”
지구의 각성자들 또한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들 또한 타차원의 게이트를 열고 닫으며 게이트 핵을 처치해봤을 터.
눈코입이 뒤섞인 샛노란 괴생물체를 애지중지 가꿔야 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까.
게이트 핵 수백 마리의 괴성 앞에서, 천사가 덧붙였다.
“단 한 마리······ 이 중에서 단 한 마리만이 지구의 차원 중핵이 될 수 있다.”
차원 중핵이 될, 단 한 마리의 게이트 핵을 키워내는 것.
그것이 ‘차원 중핵 형성’ 프로젝트의 전모였다.
전혀 내키지 않는 일거리였지만······.
“너희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다. 차원 중핵을 길러낼 수 있다면······ 차원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되니까.”
그럴 만한 보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게이트 핵은 너희의 각성 능력을 보고, 배우며 성장할 거다. 중핵은 차원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중의 핵심. 결국 지구는 너희의 각성 능력을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되겠지.”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
무림인 운양, 만일 그가 차원 중핵을 키워낸다면 지구는 충만한 기와 내공으로 가득 찬 공간이 될 것이다.
이용수가 키워낸다면, 지구 곳곳에 트랙과 레일, 터널이 생겨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솔이 키워낸다면 지구 곳곳에 방어 장막들이 생겨날 것이다.
각성 능력이 일종의 초능력이라면,
그 초능력을 외부 환경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미쳤는데?’
각성 능력의 궤 자체를 달리하는 능력이었다.
지구 내로 한정된다는 한계가 있기는 했지만.
곰곰이 생각하던 이용수가 내게 말했다.
“정겸 씨, 이거 어쩌면······.”
“네, 차원 중핵을 길러내는 데 성공한다면······.”
어쩌면 지구를 대표하는 왕이 될지도 몰랐다.
한 사람을 중심으로 세계가 재편된다는 것은, 명백히 그런 뜻이었으니.
한껏 술렁이는 소리.
다른 지구의 각성자들 또한 그 의미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최대한 빨리 게이트 핵을 선점하기 위해, 하나같이 대문 앞으로 촘촘히 밀려들었고······.
“그럼 시작하지.”
우르르르!
천사의 신호와 함께 너나 할 것 없이 목장으로 뛰어들었다.
각성자들이 목장 곳곳으로 퍼져나갔을 즈음, 천사는 게이트 핵을 길들이는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핵에게 너희의 각성 능력을 꾸준히 보여주는 것이지. 그게 수천 번이 될지, 수만 번이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조언해주자면 기초적인 스킬부터 천천히 보여주는 편이 더 좋을 거다. 그리고 행여나 게이트 핵을 공격하거나 때리는 일은 없길 바란다. 겁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야. 게이트 핵이 너희를 따르도록 만들어야 할 테니······.”
기초 튼튼부터 체벌 금지까지.
인간들의 교육 과정의 공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천사의 조언을 참조한 각성자들이 저마다 게이트 핵들에게 자신의 각성 능력을 선보였고······.
“끗끗!”
“끄으으으읏!”
게이트 핵들은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으며 팔다리를 휘저었다.
하지만······.
“끗!”
이 또한 잠깐이었다.
마주하는 순간, 게이트 핵들은 서로를 맹렬하게 공격했으니까.
눈을 부릅뜬 채 손을 할퀴고. 이빨로 귀를 뜯은 탓에 유혈이 낭자한 곳도 있었다.
놈들의 과격함은 훈육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야, 야! 잠깐만! 아악!”
게이트 핵 한 마리가 캐나다의 각성자, 리암 파커의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발로 차이고 뺨을 맞는 둥, 게이트 핵의 폭력성에 유린당하는 각성자들이 속출했지만······.
때리는 것은 물론, 겁을 줘서도 안 된다던 천사의 조언 탓에, 각성자들은 속수무책으로 게이트 핵들의 만행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악마다······ 이 새끼들은 악마야······.”
피눈물을 흘리며, 자포자기하는 각성자들이 하나둘 늘어만 갔다.
그리고······.
“······.”
놀랍게도, 우리 네 사람은 완전히 다른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운양.
검을 쥔 그가 이리저리 장소를 바꿔 보았지만······.
“끄흐으읏!”
게이트 핵들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쏜살같이 거리를 벌릴 뿐이었다.
나, 김솔, 이용수에게도 똑같이 구는 걸 보면, 운양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결국 다른 각성자들이 하나씩 게이트 핵을 차지한 채 자신의 각성 능력을 전해주고 있는 동안, 우리는 그저 셋이 똘똘 뭉쳐 공연히 초원의 바람을 느끼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제 어떡하냐?”
김솔이 내게 물었다.
각성 능력을 둘러싼 막대한 이점.
이대로라면 다른 각성자들에게 중핵을 넘겨줄 수밖에 없을 테지만······.
“꼭 여기서 키우리라는 법 없잖아?”
내게도 이미 게이트 핵이 있었다.
레텔 차원으로 진입한 뒤, 케이지에 가둬놓았던 게이트 핵이.
폭력적이지도, 딱히 우리를 피하지도 않던 천진난만한 녀석,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녀석을 지구의 중핵으로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