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57)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57화(157/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57화
양육자 (4)
157화. 양육자 (4)
지이잉······.
게이트 핵을 데리고 아공간을 빠져나왔다.
따라 나온 녀석은 큼큼 뒷짐을 지고는, 이내 주변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가지런한 이목구비에 어울리는 신중한 발걸음.
천방지축이었던 이전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괄목할만한 성과였다.
김솔이 게이트 핵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덧붙였다.
“······묘하게 닮은 것 같냐.”
“······.”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차마 부정할 수가 없었다.
눈매부터 콧대까지, 너무나도 친숙한 것이 사실이었으니.
심지어······.
-꺼윽.
“저거 봐라. 판박이네 아주.”
트림을 내뱉기까지 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 했던가?
능수능란하게 몸을 늘어뜨리는 나태함을 보며,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커다란 몸체 한 곳에 눈코입을 몰아놓은 탓에, 여전히 괴상한 얼굴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었지만······ 녀석은 너무나 나를 닮아 있었으니까.
하물며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
게이트 핵이 내뱉은 트림.
그로부터 작은 무언가가 뭉게뭉게 떠올랐다.
워낙에 작고 희미한 탓에 유심히 보지 못하면 놓치기 십상이었지만······.
“이게 뭐지?”
틀림없이 푸른 알갱이 같은 것이 그 자리에 떠 있었다.
바늘 하나가 들어갈 만한 좁디좁은 틈.
그 순간 녀석이 배운 것이, 다름아닌 내 아공간 능력이라는 점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띠링!
[자수바늘 15개입, 혼합색상, 1세트, 가격은 2,400원입니다.]즉시 팍스를 통해 주문을 넣었다.
얇은 바늘 하나를 꺼낸 뒤, 드대로 푸른 알갱이를 찔러넣었다.
그 결과······.
“오······.”
쏘오옥!
바늘은 아공간 포탈로 수용되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틀림없는 아공간 포탈이었다.
설치형 포탈처럼 물리력이 없는 작은 포탈.
워낙에 크기가 작은 탓에, 바늘 이상의 물체는 넣을 수도, 뺄 수도 없었다.
“이런 의미였나?”
우두머리 천사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게이트 핵에게 각성 능력을 학습시켜 중핵으로 키워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성장한 차원 중핵이 장차 지구의 환경을 재편하게 된다는 것까지.
다가올 미래가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이 녀석이 무럭무럭 자라주기만 한다면······.’
내 아공간 포탈이 지구 곳곳에 꽃처럼 피어나는 미래가.
***
우리는 다시 천공섬의 목장을 찾았다.
게이트 핵을 교육하느라 꼬박 하루가 지난 시점.
하지만 고작 하루가 지났음에도, 벌써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다.
“······상태가 왜들 저렇지?”
헝클어진 머리부터, 뜯어진 단추, 찢어진 바지까지.
대단한 전투라도 벌인 양, 목장 위 각성자들의 행색은 거렁뱅이가 따로 없었으니까.
“살······ 살려줘······.”
“끄르륵······.”
모두가 패잔병처럼 풀밭에 널브러져 있었고, 게이트 핵들이 껑충껑충 뛰어올라 그들의 배와 얼굴을 짓눌렀다.
“끗끗!”
“끗깟깟!”
악마 같은 웃음을 띄우는 게이트 핵들.
하룻밤 사이, 목장은 육아라는 이름의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이제야 오셨나.”
리암 파커가 지팡이를 짚으며, 절뚝절뚝 걸어 나왔다.
그의 몰골도 별반 차이는 없었다.
순백의 셔츠는 앞섬이 모조리 뜯겨 있었고, 머리는 헝클어지다 못해 옆머리가 죄 뜯어져 있었으니까.
불쌍하기 그지없는, 처참한 모습이었지만······.
“흐흐······ 이미 늦었습니다. 중핵은 ‘우리’ 차지니까요.”
그간의 노력이 허사가 아니라는 듯, 녀석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뭐······?”
놀라운 일이었다.
공부라면 학을 떼던 게이트 핵.
시시포스를 동원한 우리보다도 먼저 핵을 성장시켰다는 소리였으니까.
더욱이, ‘우리’라는 말이 유독 신경이 쓰였다.
“알고 있잖습니까? 이 목장이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걸. 세상에는 다양한 양육법이 존재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중 가장 강력한 방법은······ 바로 ‘공동 육아’죠.”
“······공동 육아라고?”
상상조차 못 했던 방법.
아니나 다를까, 파커는 캐나다에 있던 휘하의 세력들, 그리고 박람회에 참여했던 다른 각성자들까지 불러와 게이트 핵을 양육했던 모양이었다.
“흥미를 잃을 때쯤······ 계속해서 교대로 게이트 핵과 놀아주며 학습에 대한 흥미를 고취시켰습니다. 더욱이 각성 능력을 사용한 놀이를 가미해 그 효과를 배로 끌어 올렸죠. 후후······ 협력이라곤 할 줄도 모르는 당신이라면 상상조차 못 할 방법이었겠지만······ 우리는 해냈습니다!”
놀이 학습과 공동 육아.
파커는 찢어진 앞섬을 나풀거리며, 자신의 교육 철학을 뽐내고 있었다.
다만, 그 게이트 핵은 파커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류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각성 능력을 골라 선택했고, 그 결과 한 각성자가 가지고 있던 ‘바리케이드’ 능력을 게이트 핵에게 집중적으로 학습시켰다.
“끄끗.”
뒤뚱거리며 모습을 드러낸 파커 세력의 게이트 핵.
놈이 미간을 찌푸리자, 바닥으로부터 손톱 크기의 돌비석이 치솟아 올랐고······.
파커를 비롯한 각성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새끼가 황금 똥이라도 싼 양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렇지, 그렇지!”
“아휴! 잘한다! 누굴 닮아서 이렇게 잘할까!?”
“이게 바로 인류의 미래······! 괴물들로부터 인간들을 수호할······.”
파커 또한 거들었다.
그는 이제 괴물들이 나타나도 바리케이드를 세운 채 싸울 수 있을 것이라며, 게이트 핵의 남은 성장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곤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아직은 더 성장해야겠지만······ 우리는 인류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조금만 더 힘내자고요!”
“오우우!”
“바리케이드라······.”
일시적으로 벽을 세우는 능력.
유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 아공간은 물론이요, 김솔의 방어막만도 못한 능력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동육아 세력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때, 파커가 음흉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던 기회입니다. 공통으로 주어진 과제였으니까요. 그 점을 살리지 못한 당신의 패배인 겁니다. 뭐······ 이번만큼은 시도조차 못 하신 것 같지만.”
“······.”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천사들이 내세운 조건은 가장 먼저 게이트 핵을 성장시키는 것.
비록 더럽게 못생긴 얼굴이긴 해도, 놈들의 핵은 완성되어 있었으니까.
시간상으로는 비등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놈들은 이곳 목장에 있었고, 나는 부랴부랴 이제 막 목장에 도착했을 따름이었다.
“······저 새끼 때려도 되냐?”
“······하지 마라.”
혀를 날름거리는 리암 파커.
김솔이 팔을 걷어붙였지만 싸움은 금물이었다.
주변에는 아직 피렌의 천사들이 지팡이를 들고 배회하고 있었으니.
목장에서의 무력 충돌을 가만히 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펄럭.
아니나 다를까, 우두머리 천사가 날개를 펼치며 다가왔다.
그러곤 게이트 핵을 집어 들고는, 녀석의 오밀조밀한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음······ 확실히 얼굴이 제대로 모였군.”
“됐다······! 됐어!”
승리가 선언되자, 파커와 각성자들이 서로를 얼싸안았다.
천사는 그대로 게이트 핵을 들고 움직였고, 각성자들 또한 우르르 그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당도한 곳은······.
“······낭떠러지?”
목장의 끝쪽 구역, 아찔한 절벽이 드리운 곳이었다.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목책이 고루 둘려 있었지만, 딱 한 군데 비어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는 두꺼운 나무뿌리 하나가 심어져 있었었는데, 기이하게도 가지 하나 없이 위로 두루미처럼 긴 목을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자······.”
우두머리 천사가 게이트 핵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러자 나무의 목 줄기가 스르륵 내려왔고······.
“끗······!”
뽁!
게이트 핵이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반대로 꺾어진 줄기는 게이트 핵을 절벽 방향으로 데롱데롱 매달았는데, 그 모습이 절벽에 핀 꽃봉오리 같기도, 탐스러운 과일 같기도, 어느 짐승의 알 같기도 했다.
우두머리 천사가 입을 열었다.
“중핵이 되기 위한 마지막 과정이다. 너희의 각성 능력을 학습했겠지만, 그걸 현실화시킬만한 힘이 아직은 부족할 테니. 성장에 필요한 것은······ 햇빛과 물, 그리고 마석이다.”
그의 말대로였다.
좁쌀만한 포탈, 손톱만 한 바리케이드.
게이트 핵들이 발휘하던 각성 능력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으니.
그 힘을 증폭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마석이었다.
천사가 두꺼운 줄기를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이 줄기는 해를 따라서 움직인다. 해가 지면 절벽 너머로 가지가 넘어가게 되지. 그러니 이제 너희가 할 일은 아침마다 이곳으로 돌아와 게이트 핵에게 마석을 먹이는 것이다. 밤에는 핵이 절벽 너머로 넘어간 채, 단잠을 자고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중핵은 언제 될 수 있는 겁니까······?”
파커가 물었다.
그는 물론이고, 공동육아에 참여한 각성자들 모두 초조한 기색이었다.
친절하게도, 천사가 그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마석만 충분히 공급된다면 말이지.”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였다.
단, 마석만 넉넉히 먹여준다는 조건 하에.
게이트 핵이 단 한 명의 각성 능력으로 틔운 새싹이라면······ 그것을 꽃 피우는 것은 결국 인류 모두에게 달린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대다수의 각성자들이 목장에서 빠져나간 상태였다.
남은 것이라곤 우리, 그리고 파커를 비롯한 수십 명의 공동 육아 세력들 뿐이었지만······.
“자자! 이제 막바지입니다!”
“그까짓 마석! 배불리 먹여주지!”
그들은 의기를 투합하며, 서로를 응원했다.
인류의 공용 자원으로서, 지구 곳곳에 피어날 바리케이드를 꿈꾸며.
파이팅을 외치는 그들을 뒤로하고, 김솔이 내게 물었다.
“······어쩔 거야?”
이제 선택해야만 했다.
바리케이드를 품은 게이트 핵에게 마석을 먹일 것인지, 아니면 내버려 둘 것인지.
충분한 마석이 공급되지 못한다면, 지구는 반쪽짜리에 불과한 차원 중핵을 얻게 될 테니까.
지갑을 아낄 것인가, 아니면 대의를 따를 것인가?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양자택일의 문제였지만······.
“파커의 말대로 해야지.”
“순순히 마석을 대주겠다고?”
“아니? 쟤들이 대줘야지?”
“······?”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 목장은 모두에게 24시간 열려 있다는 것.
그건 다름 아닌 파커가 해준 이야기였으니까.
“탁란이라고 들어봤나?”
뻐꾸기들은 남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는다고 한다.
다른 새가 자신의 알을 품고, 부화시키고, 먹이를 먹여줄 수 있도록.
나는 저 바리케이드를 품은 핵을 내 아공간 핵으로 바꿔버릴 생각이었다.
“어떻게······?”
물론, 핵은 지금 절벽 너머에 매달려 있었다.
등에 날개라도 달지 않은 이상, 게이트 핵을 탈취할 수는 없을 테지만······.
“그러니까, 이렇게 될 거야.”
오늘 밤, 목장에는 꾸꾸 소리를 내는 매 한 마리가 날아들 것이다.
절벽에 다다른 녀석은 줄기에 매달린 못생긴 알을 떨어뜨릴 것이다.
그러곤 텅 빈 줄기에, 유난히 똑똑하고 잘생긴 새로운 알을 달아둘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까지······ 목장에는 뿌듯한 꾸꾸 소리와 흐뭇한 끗끗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기회니까.”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
짹짹!
이튿날 아침, 우리는 천공섬의 목장으로 향했다.
유난히 청명한 새벽 공기가 구름을 머금었고, 그 사이로 공동 육아 세력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호호!
“이야······.”
유토피아가 따로 없었다.
게이트 핵을 둘러싸 춤을 추고, 기타를 가져와 태교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들.
과연 그들의 사랑이 닿은 것인지, 게이트 핵 또한 끗끗 환한 웃음을 내보이고 있었다.
또한······.
“하하, 많이 먹어라 욘석아!”
“양껏 가져왔으니 배 터지게 먹어 봐! 흐흐······!”
마석을 아예 삽으로 떠먹이고 있었다.
게이트 핵 또한 이에 질세라, 주는 족족 마석을 오독오독 씹어 넘겼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공동육아고 자시고······ 최소한 제 자식 얼굴은 기억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각성자들은 승리를 자축하며, 게이트 핵에게 마석을 상납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유 잘 먹네, 내 새끼.”
내 응원에 화답하듯······.
-꺼윽.
게이트 핵이 입술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