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6)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6화(16/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16편
(새로운 국면)
“성벽이요?“
내가 되물었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을지로와 남산을 끼고 거대한 성벽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저도 스스로 이런 설명을 하는 게 황당하지만, 정말 어린 아이 이빨 나오듯이 지하로부터 석벽이 솟아 올라왔습니다.”
그의 말대로 황당했다.
현대전에서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인,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완전한 관광지로 전락한 성곽들이다.
그런 성벽이 땅에서 자라다니?
“가까스로 탈출했습니다. 성벽에 완전히 갇혀버릴 뻔했어요. 그랬다면··· 영영 어머니와도 생이별을 해야 했겠죠.”
“그 외에 다른 일은 없었을까요? 위험한 거라든지···”
내가 걱정스런 마음에 물었다.
“성벽이 세워지기는 했지만, 그 안이라고 바깥과 다를 건 없었습니다. 아, 그건 좀 차이가 있었네요. 저도 여기 내려와서 조금 놀랐는데··· 괴물들의 종류가 달랐습니다.”
오크와 와이번, 그리고 저글링과 변종 늑대까지.
지금까지 목격한 괴물의 종류가 아주 다양하지만은 않았다.
송현구는 거기에 또 한 가지의 바리에이션을 추가했다.
“아무래도 가장 많았던 건··· 스켈레톤이었습니다.”
솟아나는 성벽부터 스켈레톤까지.
멸망은 카멜레온처럼 다재다능한 테마를 선보이고 있었다.
문제는 그 언데드 테마파크에 내 작은누나, 김씨스터즈 2호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명실상부하게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을지로가 될 터였지만···
송현구가 한 가지 걱정거리를 덧붙였다.
“성벽 탓에 을지로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분명··· 마지막까지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었거든요. 그간 얼마나 자라났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 속도라면 지금쯤 어지간한 빌딩 높이까지는 올라왔을 겁니다.”
빌딩 높이.
달리 말해 차로 넘어갈 생각은 엄두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런 현대 세계에 ‘진짜로’ 기능하는 성벽이라니.
내심 황당한 기분이었다.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자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아뇨, 제가 받은 도움만 할까요.”
세뇌가 풀린 직후, 알게 모르게 각성자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그였다.
내가 병원을 떠난다면 자연스레 이곳의 지도자가 될 그였기에, 그들을 대표하여 물이나 보존식량, 발전기와 같은 적당한 물자들을 출하해주었다.
송현구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꼭, 반드시 갚겠습니다.”
“그러려면 꼭 살아남으셔야겠네요.”
“물론입니다. 정찰대도 새로 꾸리고 마석도 수급해서, 잘 한번 살아남아 보겠습니다.”
내 도움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이제 이곳에서 멸망한 세계에 대처해나가는 일은 그들 자신의 몫이었다.
다만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필요는 있었다.
을지로에 성벽이 세워지고, 난데없는 스켈레톤이 돌아다니는 상황.
이런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는 정보가 곧 힘이자 생명이 될 수 있었다.
하여, 마지막으로 군용 통신기인 P999K를 출하해주었다.
정확한 사용 방법이야 모르겠지만, 같은 물건을 복사한 것이니 주파수가 얼추 맞춰져 있을 것이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회색 코란도가 바퀴를 굴렸고, 병원 사람들이 바리케이드 앞까지 나와 박수로 우리를 배웅했다.
우리는 그렇게, 강남을 빠져나왔다.
***
송현구가 전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옥수동과 금호동으로 이어지는 동호대교는 진즉 위쪽에서부터 끊어져 있었다고 했다.
하여, 우리의 계획은 바로 왼쪽에 있을 한남대교를 통해 한강을 넘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한 지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포탈 안에서 큰누나가 소식을 전해왔다.
“그 사람 정신 차렸어. 찰리··· 라고 했던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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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한남대교를 향해 달리는 동안,
나는 잠시 찰리의 상태를 보기 위해 아공간으로 들어왔다.
“정말 고맙습니다.”
넓적한 하관을 가진 40대 초반의 남성.
그가 내게 고개를 숙였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다행히 기억상실증에 걸리지는 않았다.
나의 도움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고, 다행히 ‘찰리’를 대신 할 멀쩡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저는 국통사 50정보통신대대를 맡고 있는 중령 한경호라고 합니다.”
국통사는 국군 지휘 통신 사령부의 준말이다.
즉, 그는 내가 아공간으로 흡수한 부대의 장교인 셈이었다.
내가 물었다.
“국통사 장교분께서 왜 정부청사에 계셨습니까? 그것도 죽을 위기까지 처해가면서요.”
“그게 실은···”
그의 말에서 한 가지만큼은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정부가 멸망에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는 것.
“과천, 그리고 안양 지역에 있는 사병 각성자들을 소집하고 있었습니다. 예비군들까지 포함해서요. 저희 대대는 통신 지원을 맡았고, 알고 계시겠지만··· 지금 군용 통신망을 제외하면 마땅한 통신수단이 전무한 상황입니다.”
그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지금 군과 행정부에서는 각성자들로 구성된 새 부대편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지요.”
듣기로는 그럴싸했지만, 정작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제발 살려줘 폭스트롯 개새끼들아를 외치던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선했다.
때마침, 궁금증을 풀 차례였다.
“어째서 군이 괴멸당한 겁니까? 괴물들에게 총이 통하지 않는 것도 아니던데요.”
“그야 대부분은 그렇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놈들이 있습니다.”
총이 통하지 않는 괴물.
개중 하나는 나도 알고 있는 녀석이었다.
“과천, 안양의 병력들이 드래곤 한 마리에 괴멸됐습니다. 검은색 몸통에, 하반신이 무지개색으로 번들거리는 녀석이죠. 놈에게는 총알도, 포탄도, 그 무엇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안양에 나타난 사이클롭스, 청계산에 나타난 거대 두더지도 그랬습니다. 타지역에서도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고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군이 어째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
하지만, 정작 한경호는 여전히 어딘가 석연찮은 표정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곤 하지만··· 분명 지원이 오기로 했었습니다. 최소한 발을 묶어 대피할 수는 있었죠. 하지만 지원부대도, 지통실도 모조리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만일 통신기를 확인하러 옥상에 가지 않았더라면··· 저도 다른 전우들처럼 거기에 묻혔을 겁니다.”
나는 국통사를 조직폭력배들이 점거했었노라 말했지만, 그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
“본부가 그 지경이 되었다면, 분명 저희 쪽에도 기별했을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그런 것보단··· 뭔가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저희를 내팽개치듯이요.”
그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어디죠? 부대로 가봐야겠습니다. 지통실을 뒤져본다면 뭐라도 나올지도 몰라요.”
“아마도··· 아직은 강남입니다. 그래도 부대는 보실 수 있어요.”
“···예?”
“여기 있거든요. 국통사.”
나는 물류센터의 창밖을 가리켰다.
국군 지휘 통신 사령부의 위병소가 내다보이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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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장에 지통실로 뛰어가려는 그를 잡아 세웠다.
그러곤 팍스에게 물었다.
“혹시 전에 한다던 전산 작업 다 끝났나?”
[현재 모든 전산 작업이 완료되어 있습니다. 섹터2에 존재하는 모든 개체를 다른 상품처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잘됐네. 따라오세요. 직접 찾는 것보다 빠를 겁니다.”
나는 한경호를 데리고 픽킹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그리고 PC에 ‘기밀문서’를 검색했다.
3급, 2급, 심지어는 1급 보안문서까지.
국통사가 가지고 있던 모든 기밀 서류들의 제목이 주르륵 목록에 표시되었다.
“싹 다 가져다줘.”
[알겠습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AGV 로봇이 두꺼운 서류철을 가져다주었다.
펼쳐보니, 안의 서류들이 작성 시기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세련된 AGV 로봇들이 군의 기밀문서들을 실어 나르는 모습을 보며, 한경호는 황망한 표정을 보았다.
“아니 이게 무슨··· ”
.
.
.
팔랑팔랑.
한경호는 말없이 서류를 넘겼다.
자신이 확인한 정보가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아니, 그것이 사실이 아니길 애타게 바라며.
하지만 명백한 증거에 그는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결론을 내렸다.
“1군단이··· 쿠데타를 일으켰군요.”
그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
나는 한경호와 함께 포탈을 빠져나왔다.
운전석에서는 이용수가 여전히 차를 몰고 있었다.
나는 한경호를 뒷좌석에 앉힌 뒤, 조수석으로 돌아왔다.
한경호가 말했다.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사실을 알려야 해요.”
그는 합동참모본부가 있는 용산으로 가고 싶어 했다.
목적지가 달랐기에, 우리는 한강 다리를 건너는 대로 그를 내려주기로 했다.
도로의 괴물은 뜸했다.
휑한 노면을 달리며, 나는 궁금증을 풀었다.
“파주에 있을 1군단이 왜 안양에 훼방을 놓은 겁니까?”
“1군단에서도 산하에 각성자 부대를 편제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안양과 과천에 모인 각성자들은 모두 수도 방위 병력으로 편제될 예정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부가 병력을 모으는 걸 방해하고 있는 겁니다. 국통사 사령관도 그쪽에 붙었던 모양이고요. 세상이 이 지경인데··· 한다는 짓이 정권 탈취라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네요.”
멸망이라는 적 앞에, 또다시 적으로 갈라서는 것이 인간들의 사회였다.
어쩌면 그들에게 있어 멸망은 조력자일지도 몰랐다.
모든 기반을 뒤집고, 새로운 시작을 이뤄주기 위한 밭 갈기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차를 멈춰 세운 이용수가 말했다.
“···다리가 끊어졌네요.”
한강진과 남산 1호 터널을 지나 을지로로 향하려던 계획이 무산됐다.
서둘러 반포대교를 통해 녹사평을 지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으나···
정작 도착해보니 반포대교는 물론 잠수교마저 무너진 상태였다.
그렇게 얼마간을 더 달렸을까.
이용수가 반색했다.
“아, 여기는 갈 수 있겠습니다.”
유일하게 성한 동작대교.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아무래도 용산을 거쳐서 가야겠는데요.”
동작대교 앞에 선 용산공원을 끼고 돌면 자연스레 합참본부 근처에 다다랐다.
이용수의 말에 한경호의 표정이 화색이 되었다.
정말이지, 억세게 운이 좋은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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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심장을 졸이며 한강을 건넜다.
강물 속에서는 난생처음 보는 괴생물체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탕!
타앙!
중간에 날아드는 와이번들을 몇 마리 잡아내기도 했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다리를 건너 삼각지역에 다다랐을 때 드러났다.
“저건 설마···”
이용수가 하늘을 가리켰다.
실로 거대한 건축물.
창백한 회색 벽이 하늘에 기하학적인 도형을 그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높이.
송현구가 말한 바로 그 ‘성벽’이었다.
‘···차로는 절대 못 넘어가겠네.’
서서히 합참 본부 근처에 다다랐을 즈음이었다.
이때다 싶었는지 한경호가 내게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김정겸 씨, 저와 같이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정부에서는 각성자들에게 마석을 제공하는 등 초기 성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만일 정겸 씨가 정부 소속이 된다면··· 분명 적지 않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병원에 있을 때부터 나의 능력을 지켜본 그였다.
걸어 다니는 인간 황금마차에 전투 능력까지.
나를 탐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했다.
“을지로에 있을 작은 누나에게 먼저 가봐야 합니다. 마석이라면 제 스스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요.”
쓸데없이 정부의 명령을 받고 씨름할 여유는 없었다.
지금 나는 우리 김씨 일가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으니.
하지만 그리 순탄치만은 않아 보였다.
나는 잠시 대답을 멈춘 채, 물끄러미 차창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드높은 성벽.
그 누구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는 철옹성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제야 필요한 물건이 하나 떠올랐기에, 한경호에게 물었다.
“합참본부라면··· 헬기 한두 대쯤은 가지고 있겠죠?”
“헤···헬기요? 예, 그렇죠.”
그는 그렇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