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62)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62화(162/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62화
폭발 (5)
바람이 나부끼는 천공섬의 목장.
이제는 온몸에 혈관이 돋아난 게이트 핵을 보며, 피렌의 천사들이 수군거렸다.
“정말 빠르군요. 벌써 성장을 마치다니···”
“그래야지. 들어간 마석이 얼마인데.”
게이트 핵을 줄기에 매단 이후, 일주일이 흐른 시점이었다.
이례적으로 빠르게 성장한 지구의 차원 중핵.
지구인 각성자들의 노력도 있었으나, 피렌 또한 적지 않은 마석을 쏟아부은 결과였다.
지구에 군수공장을 세우겠다는 목적 아래, 모든 일들이 차곡차곡 진행되는 듯싶었지만···
“바르나울, 그 멍청이들은······”
천공섬의 책임자, 아드리엘이 입술을 깨물었다.
바르나울의 폭격선이 습격으로 인해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으니.
마르케스의 소행으로 보인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되는대로 해봐야지. 다행히 오르골은 적당히 주워 왔다고 하니까.”
바르나울은 단 한 명의 흑마법사도 파견하지 않았다.
피렌 또한 상공회의소를 대리하고 있는 탓에, 직접 지구의 문제에 개입할 수 없는 상황.
결국 지구인들, 그중에서도 바르나울의 추종자들에게 이번 사업의 성패가 달려 있었다.
“흑마도구를 이용하면 비행선과 비슷한 효과는 낼 수 있어. 뭐가 됐든 공중에서 오르골을 투하하면 될 테니까.”
지구에 직접 발을 들이는 대신, 바르나울은 추종자들에게 도구를 전해주었더랬다.
흑마력을 뿜어내 하늘 위로 움직일 수 있는 흑마도구를.
습격으로 인해 오르골의 양이 십분의 일로 줄어든 것은 뼈아픈 일이지만, 결국 공중에서 폭탄을 투하한다는 계획 자체에는 달라질 것이 없었다.
다름 아닌 지구인들이 그 폭발의 희생자가 될 터였지만···
-얼마 안 남았다!
-바리케이드! 곧 있으면 지구에 바리케이드가 자라날 거야!
그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침략의 핵심 수단을 자신들의 손으로 키워내고 있었다는걸.
그저 애지중지 키워낸 게이트 핵의 개화에 꿈을 부풀리고 있을 뿐이었다.
“미련한 지구인들 같으니···”
아드리엘이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지구인들의 바람대로 바리케이드는 곳곳에 자라나겠지만, 그래봤자 당장은 손바닥만 한 방벽들이 고작일 테니까.
바르나울이 퍼뜨릴 죽음의 전염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일 것이 자명했다.
“힘껏 발버둥 쳐 봐라. 그렇게 좋은 자원이 되어다오.”
목장에 있는 게이트 핵에는 바르나울의 흑마법이 종양처럼 숨겨져 있었다.
차원 중핵이 개화함에 따라 서서히 지구인들의 정신을 오염시켜나갈 터.
불안과 혼란을 자원으로 삼는 바르나울에게, 한층 농익은 사념을 보충해줄 것이었다.
머지않아 쑥대밭이 될 지구의 모습을 상상하던 중···
걱정스럽다는 듯, 수하가 아드리엘에게 물었다.
“그런데 괜찮은 걸까요? 상공회의소가 특별 관리를 시작한 지역에서 바르나울의 군수공장이 들어서는 셈이니까요. 상공회의소와 바르나울의 관계를 의심하지는 않을지···”
“그게 바로 우리 피렌 차원이 필요한 이유지.”
어엿한 상위 차원으로서, 상공회의소의 든든한 조력자로서 평판을 쌓아온 피렌.
아드리엘은 천공섬을 통해 ‘지구인들의 친구’ 행세를 계속할 생각이었다.
“우리 피렌은 바르나울의 불법 행위를 규탄할 거다. 물론 대외적으로만 말이지. 지구인 생존자들과 함께 농성을 계속하겠지만··· 바르나울과는 팽팽한 균형을 유지할 거야. 지구가 영원히 군수공장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말이지.”
지구는 흔해 빠진 분쟁지역이 될 것이다.
피렌은 지구인들과 함께 길고 지루한 싸움을 연출할 것이고···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된 지구는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질 것이다.
“상공회의소도 그렇고, 피렌도 그렇고··· 왜 이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겁니까? 대체 바르나울이 준비하고 있는 무기가 뭐길래···”
“그야, 다차원 우주의 판도를 뒤바꿀 무기지.”
궁금해 미치겠다는 듯한 수하의 반응.
아드리엘은 그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핵심은 아이템이다. 이제는 위계 제한에 상관없이 누구나 서로를 공격할 수 있게 될 거야. 하위 차원은 물론이고··· 상위 차원들도 예외는 아니지.“
아드리엘은 고개를 들었다.
높다란 목장의 오르막 끝에 게이트 핵을 단 줄기가 출렁이고 있었다.
무르익은 열매, 게이트 핵을 지구에 심어내기 위해.
“슬슬 때가 된 것 같군. 준비해라.”
게이트 핵 위로 솟아오른 혈관을 보며, 두 천사는 날개를 펼쳤다.
지구에서 벌어질 참극을 똑똑히 관망하기 위해.
***
바르나울의 폭격선을 파괴한 며칠 뒤.
우리는 차원 중핵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며, 흑마법사들의 회복에 전념했다.
그동안 나는 틈틈이 아우렐, 그리고 해리스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명실상부하게 바르나울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으니.
정보를 공유하며, 차원 중핵의 개화와 함께 시작될 싸움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나저나··· 진짜 위계가 없는 거야?”
“그렇습니다.”
“8위계도?”
“예, 상공회의소의 분류대로라면··· 9위계라고 보면 정확하겠죠.”
해리스를 통해 이미 한차례 정보를 전해 들었던 터다.
다차원에서도 심심치 않게 이름이 거론되는 마르케스.
그런 그들이 일정 위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우렐은 그것이 상공회의소와의 적대적인 관계 때문이라며, 의아해하는 나에게 바르나울과 마르케스의 차이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바르나울과 상공회의소는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르나울은 흑마력을 어떻게든 위력으로 치환하려고 하고··· 상공회의소 또한 오로지 마석을 모으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으니까요. 때문에 우리 마르케스는 그들과 아주 오랜 싸움을 해왔고요.”
해리스에게 전해 들었던 대로였다.
바르나울과의 격전 끝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본 마르케스.
거기에 더해 상공회의소의 노골적인 견제를 받았던 탓에, 다차원 곳곳에서 정체를 숨기고 암약하는 것이 고작이었을 테니까.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쯤···
“말씀 중에 미안하지만, 이것 좀 확인해주쇼.”
도면을 든 쿠퍼와 제임스가 아우렐에게 다가왔다.
마력 회로가 그려져 있던 마르케스의 비행선.
포탈을 넘어오던 중 파손된 상부를 우리 기술자들이 손 봐주고 있었으니까.
제임스가 전반적인 설계를 담당하는 한편, 세공사 브로크가 구동부의 마력석을 교체했고, 쿠퍼가 끊어진 마력회로를 복구하고 있었다.
도면을 받아든 아우렐은 쿠퍼가 그려놓은 회로 몇 개를 수정해달라 요청했고, 그가 회로에 손가락을 얹을 때마다 쿠퍼는 감탄하듯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시구랴. 합선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부분인데, 그걸 의도적으로 활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소.”
“뭘요. 흑마법사라면 마땅히 생각해내야 할 설계입니다. 흑마력의 회로는 마력회로를 비트는 데서 시작하니까요. 저야말로 놀랐습니다. 이렇게 효율적인 회로 설계는 처음 봤거든요.”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며, 엄지를 올리는 두 사람.
쿠퍼가 효율적이고 정석적인 회로 제작에 일가견이 있었다면, 아우렐은 창의적인 수를 놓는 번뜩이는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옅은 미소를 띠며 덧붙였다.
“가능하다면··· 놈들의 계획도 제대로 비틀 수 있다면 좋겠군요.”
그것이 당면한 목표였다.
게이트 핵을 바꿔놓고, 폭격선까지 난파시켰음에도 상공회의소와 바르나울은 자신들의 계획을 강행하고 있었으니까.
놈들의 회로를 망가뜨리기 위해, 마지막 한 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시작됐습니다!”
수정구슬로 런던을 관찰하고 있던 흑마법사가 외쳤다.
화면에는 천공섬의 목장이 담겨 있었고, 내 게이트 핵이 꽃봉오리처럼 맺힌 채 파르르 진동하고 있었다.
차원 중핵으로 거듭나려는 명백한 징조.
꽈드드드득!
줄기가 괴이하게 고개를 꺾었다.
그러자 천공섬을 감싼 두꺼운 뿌리를 중심으로, 게이트 핵으로 만들어진 열매가 매달렸다.
차르르르륵!
그러고는 커튼 고리처럼, 뿌리를 타고 천공섬 하단부를 향해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아우렐이 덧붙였다.
“차원 본부에는 크게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하나는 다차원을 이동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이고··· 다른 하나는 차원 중핵을 뿌리내리는 역할이죠. 중핵이 설치되면 런던을 중심으로 빠르게 효과가 퍼져나갈 겁니다.”
바르나울이 차원 중핵의 효과를 노리고 있는 것이라면, 일전의 테러범들 또한 런던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 때문에 우리 또한 런던 방향으로 포탈을 열어둔 채, 언제라도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휘리릭! 휘익!
미끄러져 내려온 열매가 천공섬 하단에 단단히 고정되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슈우우웅- 꽈아아아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열매가 지상을 향해 뿜어져 나갔다.
쿠구구···
자욱한 먼지가 일었다.
이내 불어온 바람과 함께, 거대한 크레이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런던의 도심은 두부처럼 산산이 뭉개져 있었고, 그 중심에는 열매가 된 나의 게이트 핵이 반쯤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
모두가 숨을 죽였다.
심판의 신호를 기다리는 달리기 선수처럼.
운명처럼, 게이트 핵이 땅을 파고 들어갔고···
촤아아아악!
순식간에 뻗어 나온 혈관이 주변 일대를 잠식했다.
사브로스의 마야르 성 지하에서 모았던, 바로 그 광경이었다.
“나, 나왔습니다···!”
해리스가 번뜩 고개를 세우며 외쳤다.
당초 예상했던 대로, 바르나울의 테러범들이 제트팩을 탄 채 상공을 날아오르고 있었으니까.
제트팩에서 연기가 쏟아져나왔기에, 그들이 움직이는 궤적에 따라 런던의 하늘이 순식간에 불길한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삐이익! 삐익!
그들은 뭔가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서로 신호음을 주고받으며 서서히 진형을 잡아가고 있었으니.
고루 산개한 것으로 보아, 곳곳에서 폭탄을 투하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차원 중핵의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모양이었지만···
“고맙다. 기다려줘서.”
지면을 중심으로, 푸른 알갱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비가 자리에 멈춘 듯, 세로줄 모양으로 눈물처럼 박제된 푸른색 포탈들.
한낱 점에 불과했던 포탈들은 손가락 굵기까지 성장해 있었다.
“······?”
모두가 당황스런 표정이었다.
테러범들은 물론, 중핵의 개화를 기대하고 있던 파커 일행까지.
기대하던 효과는 온데간데 없이, 푸른 물방울만이 사방을 채우고 있었으니까.
그들을 위해 내가 준비한 것은, 지구 전역에 박힌 회로를 거꾸로 뒤집는 것이었다.
“팍스. 포탈이 상징물로 등록되어 있는 거 맞지?”
[맞습니다.] [포탈이 설치된 장소 주변으로, 필드 효과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중력, 버프, 최면 등등.
토턴 인베스트먼트는 여러 다양한 필드 효과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특히 그중에는···
“방어막으로 효과를 변경해 줘.”
이런 것도 있었다.
내 요청에, 팍스가 빠르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방어막’ 효과를 적용했습니다.]그에 덧붙여, 마지막으로···
“폐쇄형으로 변경해.”
필드효과를 ‘폐쇄형’으로 전환했다.
개방형에 비해 몇 배는 적용이 까다로웠던 폐쇄형 구조.
상징물 하나만으로 효과를 사용할 수 있었던 개방형과 달리, 수백 개의 상징물을 빙 둘러야 하는 것이 그 적용 조건이었다.
하지만···
[조건 충족되었습니다.] [폐쇄형 구조로 전환합니다.]각성 능력을 뿌려주는 차원중핵 덕분에, 지금 지구는 내 아공간 포탈로 뒤덮인 상태였다.
지이이이이잉!
거품처럼 사방에서 방어막이 뿜어져 나왔다.
서로서로 중첩된 방어막은 폐쇄형 구조를 통해 하나가 되어, 지상 위로 강력한 방어 장막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공격! 공격해!”
변화를 눈치챈 테러범들이 서둘러 폭탄을 투하했지만···
콰아아아아앙!
꽈아아앙!
투명한 금색 방어막에는 작은 실금하나 가지 않았다.
제트팩을 맨 테러범들은 길 잃은 파리처럼 우왕좌왕 움직일 뿐.
불현듯, 각성자들의 기대 어린 눈빛들이 떠올랐다.
“···바리케이드?”
그것 참 웃기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