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64)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64화(164/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64화
하이잭 (2)
164화. 하이잭 (2)
“그게 무슨 소리야!”
거센 호통 소리에 촛불이 흔들렸다.
각지고 뾰족한 기둥 장식과 문틀이 어둠에 싸였고, 사이사이 얇고 긴 바르나울의 휘장이 칼날처럼 내려와 있었다.
제의 도구들의 매끈한 금빛 표면에는, 잔뜩 구겨진 장로, 루펜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씩씩거리는 루펜에게 상황을 보고한 흑마법사가 후드를 벗었다.
“······죄송합니다, 장로님. 난데없이 지구 전체에 방어막이 둘러진 탓에······.”
바르나울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지구를 군수 공장으로 만들고자 했던 계획.
암암리에 상공회의소와 손을 잡은 만큼, 실패할 수 없는, 아니 실패해서는 안 될 계획이었다.
“비행선도 부숴 먹고······ 견습들까지······.”
사념 폭탄을 실은 폭격선이 지구인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비밀리에 키워 온 지구의 바르나울 추종 세력마저 전멸했다.
루펜은 미치고 펄쩍 뛸 지경이었다.
바르나울의 전략 무기의 원료가 되는 사념.
하지만 지구에서 사념을 캐내기는커녕 본진의 흑마력만 탕진한 셈이 되었으니.
“이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성은 그만 포기하라 다그치고 있었다.
지구에 아발론을 빼앗긴 뒤로부터 모든 것이 꼬여버렸으니.
남은 사업들을 제대로 유지하기만 한다면 적어도 수십 년 안으로는 지금까지의 피해를 복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지구는 우리 바르나울의 공장이 되어야 해. 대계를 더 이상 미뤄둘 수는······.”
바르나울은 이미 잃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핵심 생산 인력이었던 아발론, 수십 명의 흑마법사들, 사념 폭탄을 가득 실은 폭격선에, 막대한 양의 흑마력까지.
피눈물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자원이었으니까.
그 아득한 기분이 전해진 것인지, 상황을 보고 했던 부하 흑마법사가 루펜에게 물었다.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장로님.”
“결정했다. ‘그걸’ 되살려야겠어.”
“그거라면······ 아, 안 됩니다! 장로님!”
아연해진 흑마법사가 만류했다.
하지만 루펜은 이미 결심을 굳혔다는 듯,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흑마법사가 루펜의 옷깃을 잡으며 사색이 된 표정으로 매달렸다.
“아케인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장로님······!”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냐? 사념 폭탄으로도 뚫을 수 없는 방어막······ 우리에게 저 방어막을 뚫을 수 있는 수단은 그것밖에는 없어. 일단은 시작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시작해야만 해.”
내려앉은 눈주름 사이로, 루펜의 동그란 두 눈이 촛불을 빛냈다.
그러곤 자신의 결정을 보호하듯, 늙은 입을 달싹거리며 중얼중얼 무언가를 되뇌기 시작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지구가 지옥이 되어야······.”
***
“······!”
천공섬이 내 아공간으로 수용되는 순간.
짜릿한 충격이 전신을 휘감음과 동시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한편, 천공섬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천사들은 완전히 당황한 눈치였다.
의식이 날아가 버릴 듯한 찰나의 순간에서, 나는 잔뜩 구겨진 아드리엘의 입술을 확인했다.
-이 새끼부터 잡아!
무슨 직감이라도 느낀 것일까?
천공섬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아드리엘은 내게 체포 영장을 들이밀었다.
펄럭!
날개를 펼친 천사들이 내게 그림자를 드리웠고, 금색 지팡이를 휭휭 돌려가며 높게 하늘을 향해 들어 올렸다.
그러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내 정수리를 향해 십수 개의 지팡이가 날아들었다.
나를 지옥까지 박아 넣으려는 것처럼.
파아아아아앙!
강렬한 타격음이 들려왔고,
섬광탄이라도 터뜨린 듯, 찬란한 빛이 퍼져 나왔다.
나를 잡아 죽이려는 것인지, 죽여서 잡으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무차별한 공격이었지만······.
“사, 사라졌습니다!”
놈들이 때린 것은 내 잔상에 불과했다.
마르케스의 흑마법사들이 은근슬쩍 환영을 세워둔 참이었으니.
천사들의 빛으로는 쫓을 수 없는 신속하고 정확한 손놀림이었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힘이 왜 저래······?”
지팡이가 내리꽂힌 자리는 싱크홀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지하수가 터져 나온 것으로도 모자라, 타격 지점을 중심으로 커다란 크레이터가 오목하게 뻗어 있었다.
상위 차원이라 불리던 피렌.
그 수준을 정확히 알 길은 없었으나, 사브로스나 에메스 따위의 중위차원과 차마 비교할 수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찾아! 주변에 있다!”
타깃을 놓친 천사들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시뻘건 눈으로 나를 찾기 위해 연신 고개를 돌리는 피렌의 천사들.
그 모습은 마치 먹이를 찾아 헤매는 탑골공원의 비둘기 떼와도 같았다.
하지만······.
“······후우.”
나는 이미 아공간에 들어와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팍스FC의 모든 일원까지.
덕분에 천사들은 애꿎은 백골을 뒤지며, 묘연한 나의 행방을 뒤지고 있을 따름이었다.
.
.
.
샅샅이 수색을 이어가는 피렌의 천사들.
포탈 너머로 그들을 보며, 나는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상공회의소와의 싸움이 본격화됐다는 사실을.
“결국 이렇게 됐구나.”
사실상 시간문제였다.
나는 지구로의 침략을 방관할 생각이 없었고, 상공회의소는 꾸준히 침략을 시도했으니.
심지어 이번에는 바르나울까지 합작해, 대규모의 살육 작전을 꾸미고 있었으니까.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상공회의소가 자신이 세워놓은 원칙에 스스로 휘둘린다는 점이었다.
해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덧붙였다.
“상공회의소가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원칙을 지킨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걸 감시하는 게 다차원 언론들의 역할이기도 하고요.”
다차원에서 상공회의소의 원칙들은 일종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다.
아무리 뒤로 갖은 더러운 공작을 벌인다고 해도, 겉으로는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상공회의소가 짊어지고 있는 굴레이면서, 동시에 역린이었다.
“뭐, 쟤들도 비슷하겠구나.”
상위 차원, 피렌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구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온, 상공회의소의 대리 업무.
지구의 문제에 사사로이 개입할 수 없다는 원칙은 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테니까.
간단히 정리하자면······.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겠지.”
실제로 천사들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수배자를 찾겠다며 해골바가지를 뒤적거리고 있을 뿐.
지금 피렌에게 허용된 활동은 나 김정겸을 체포하는 것밖에는 없을 테니.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면 안전할 것이다.
나는 아발론의 경비단장 베론을 불렀고, 그에게 팍스맨 성기사들을 데리고 나가, 아직 런던에 남아 있는 테러범들을 제압해 달라 부탁했다.
재빨리 성기사들을 소집한 베론은, 런던 포탈을 앞에 둔 채 내게 되물었다.
“대표님께서는 당분간 이곳 아공간에 계실 생각이십니까? 바깥의 천사들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럴 리가.”
내 계획은 천공섬을 이용해, 바르나울로 가는 것이었다.
지구에 여러 차례 집착해 왔던 만큼, 그대로 둔다면 더 큰 위협으로 돌아올 것이 분명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잠시 엘븐하임으로 넘어가 있던 아우렐이 돌아왔다.
“얼추 추적이 끝났습니다, 정겸 님.”
리치를 처치한 뒤, 놈의 라이프 베슬을 엘븐하임으로 던져둔 참이었다.
아우렐은 라이프 베슬을 통해 바르나울의 흑마법이 흘러들어왔으며, 이를 역추적하면 바르나울의 본진이 있는 좌표를 특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좌표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진입할 즈음에는 실시간으로 경로를 수정해야겠지만요.”
여러모로 당장은 지구를 떠나는 편이 좋았다.
그래야 지구로 향한 상공회의소의 시선이 조금이나마 분산될 테니.
더욱이 바르나울은 시시각각 좌표가 변하는 무법지대가 아니던가?
상공회의소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로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바르나울이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는 것이었지만······.
“바르나울의 차원 중핵에 접근할 수만 있다면······ 승산은 있습니다. 흑마법은 왜곡과 착각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중핵에 담긴 의식 회로를 교정하기만 한다면, 놈들의 흑마력도 흩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요.”
위계가 전무한 유리 몸, 아우렐.
그를 바르나울의 차원 중핵까지 데려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그의 회로 조작 능력을 이용한다면, 리치를 쓰러뜨렸을 떄처럼 바르나울을 단번에 일망타진할 수 있을 테니.
.
.
.
휘이이이······.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곳은 한때 우르족들을 처치했던 몽골 초원.
밝은 햇살 아래, 드넓은 평야 지대가 시원하게 드리워 있었다.
“뭐, 당장은 괜찮겠지.”
피렌의 천사들은 지금 런던에 있었다.
내 위치가 발각된다 한들, 곧장 추격해오기는 쉽지 않을 터.
만약 온다고 하더라도 재빨리 아공간으로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그럼, 한번 꺼내 볼게.”
“예, 그다음에는 저희에게 맡겨주시지요.”
구태여 이곳 몽골 초원으로 넘어온 것은, 다름 아닌 천공섬을 꺼내놓기 위함이었다.
역대급으로 거대한 크기의 차원본부, 천공섬.
이 운송 수단에 탑승하기 위해선 그만한 활주로가 필요할 것 같았으니.
팍스를 통해, 이곳에 천공섬을 꺼내달라 요청했지만······.
띠링!
[개체의 크기가 출하 가능한 최대 크기를 초과하였습니다.] [더 작은 개체로 시도해주십시오.]“······어?”
출하가 되질 않았다.
천공섬의 크기가 너무 크다는 것이 팍스의 설명.
‘그러고 보니······.’
지금껏 H형강이나 잠수함 같은, 커다란 물건을 꺼낸 적은 많았지만, 지형이나 건물을 째로 출하해본 적은 없었다.
천공섬은 운송 수단이지만 동시에 거대한 지형지물.
한눈에 보기에도, 내가 펼칠 수 있는 포탈의 크기를 아득히 넘어선 크기였다.
“어쩌지······? 너무 크다는데?”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떼어내면 될 것도 같습니다만······.”
곧장 아공간으로 들어가 <실험실>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곤 아우렐의 조언에 따라, 운항에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잘라냈다.
조종석, 연료탱크, 마력 엔진, 그리고 출력부와 같은 핵심 부위를 남겨 놓은 결과······.
“무슨 돌처럼 생겼네.”
특유의 웅장함을 자랑하던 천공섬은, 길쭉하면서 울퉁불퉁한 형태가 되었다.
흔히 역사책에서 ‘간석기’라고 보았던 기다란 돌의 형태.
포탈을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올 수 있는 크기였기에, 이제야 비로소 초원에 천공섬을 꺼내놓을 수 있었지만······.
쿠우웅!
콰아아앙!
노력이 무색하게, 우리는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다.
천공섬이 날아오르는 족족 땅 아래로 처박혔으니까.
“이번에는 또······.”
조종이 문제였다.
비행선을 몰던 마르케스의 흑마법사들에게 조종을 맡겨둔 상황.
원래라면 무난히 비행할 수 있었을 테지만, 역시나 외곽을 깎아 내버린 것이 문제였다.
울퉁불퉁한 표면 탓에 좀처럼 균형이 잡히지 않는 것.
달리 방법이 없다는 듯, 흑마법사들마저 난색을 표하려던 그때······.
“혹시······ 저도 한 번 몰아봐도 될까요?”
“아······!”
군침을 흘리며 조종실 핸들을 바라보고 있던 이용수.
그가 몸을 일으켰다.
망설일 것이 없었다.
당장 해치를 열고 들어가, 메인 조종석에 이용수를 앉혀놓았다.
마르케스의 흑마법사들이 계기판에 표기된 문자들과 조종 방법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고, 완전히 뒤틀려 있는 기체의 균형에 대해 주의를 거듭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이용수가 핸들을 쥐어 잡자······.
으르르르릉!
“음······?”
차원 본부의 엔진이 기분 좋은 소리를 울렸다.
지금까지는 결코 들어볼 수 없었던, 참으로 안정적인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