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67)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67화(167/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67화
레일로드 (2)
167화. 레일로드 (2)
“······.”
바르나울의 장로, 루펜은 반쯤 앓아누울 수밖에 없었다.
지구에 ‘마지막 한 수’를 던져놓느라 온 힘을 쏟아놓은 상황.
그런 와중에 느닷없는 소행성을 얻어맞았으니까.
“······타이밍 한 번 끔찍하군.”
손이 벌벌 떨렸다.
조금이라도 소식을 일찍 접했더라면 어땠을까?
미리 알았더라면 힘을 아껴, 사전에 소행성을 요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제 의미가 없는 질문이었다.
사태는 벌어졌고, 차원입국처는 그대로 날아가 버렸으니.
호사가들이 “천하의 바르나울이 소행성을 처맞았다‘며 입방아를 찧을 것이 틀림없었다.
장로, 루펜으로서는 녹초가 된 몸으로 그들의 비웃음을 기다릴 뿐.
하지만 그때······.
“장, 장로님?”
조사를 마치고 복귀한 흑마법사들이 그를 찾아왔다.
그들이 전해준 의외의 소식에, 루펜은 깜짝 놀라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소행성이 아니었다고?”
“예, 흩어진 잔해를 분석해본 결과······ 자연적인 소행성이 아닌, 인공물이었습니다.”
“인공물? 대체 누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다차원을 통틀어 손에 꼽는 상위차원, 바르나울.
누군가 겁도 없이 그런 바르나울을 직접 타격했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흑마력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추정하기로는, 마르케스······ 놈들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마르케스······?”
그 정체는 한층 더 놀라운 것이었다.
오랜 악연을 이어 온 또 다른 흑마법 차원.
까다로운 상대임에는 틀림없었지만, 고향을 잃고 부랑자처럼 살아가는 그들이 감히 바르나울을 공격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루펜의 복잡한 생각과 함께, 흑마법사의 보고가 이어졌다.
“충돌로 인해 지하 시설로 이어지는 통로가 노출됐습니다. 흔적 또한 지하 쪽으로 이어지고 있고요.”
“지하라면······ 그렇군, 차원 중핵을 노리는 거겠어.”
당연한 계산이었다.
정면승부로는 바르나울의 상대가 될 수 없는 마르케스였으니까.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다름 아닌 바르나울의 차원 중핵을 노리는 것이었다.
“······아우렐이군. 회로 조작이라면 놈을 주특기니까. 차원 중핵에 부여돼 있는 흑마력 회로를 뒤집어버릴 생각인 게야.”
“큰일이군요. 리치들의 라이프 베슬 모두가 중핵에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까?”
차원 중핵은 바르나울의 힘의 집약체라 할 수 있었다.
리치들의 목숨은 물론, 흑마법사들의 흑마력 또한 중핵에 저장돼 있는 상황.
원혼들이 에너지를 공급하는 혈액이라면, 차원 중핵은 그런 혈액을 펌프질하는 심장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루펜은 여유로운 반응이었다.
바르나울의 핵심이자, 약점인 차원 중핵.
하지만 거기에는 특별한 효과가 부여돼 있었으니까.
“산 자는 절대 바르나울의 중핵에 접근할 수 없다. 아우렐 그놈이 그새 리치라도 됐다면 모르겠다만······ 알다시피 마르케스의 흑마법사들에게 그런 재주는 없으니까.”
루펜은 낄낄 웃음을 지었다.
동시에 왼쪽 얼굴이 스르르 녹아내렸고, 창백한 백골의 모습이 드러났다.
인간과 리치, 생명과 죽음을 오갈 수 있는 것이 루펜의 능력이었으니까.
“운명의 수레바퀴에 갇힌 자는 결코 중심에 다다르지 못한다. 영원히 돌고, 또 돌 뿐이지. 놈들은 절대 중핵에 다다를 수 없어.”
펄럭.
로브를 펄럭이며, 루펜이 몸을 일으켰다.
“잘 왔다 아우렐. 이제 떠나지 말거라. 다시는······.”
옛 친구와의 재회를 기대하며.
***
후욱.
후욱.
원혼으로 가득 찬 거대한 광장.
막대한 수의 원혼이 파도처럼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럼······.”
처음에는 진로가 단순했다.
쭉 뻗은 통로를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으니.
하지만 광장을 지나친 시점부터, 경로는 조금씩 복잡해져 가고 있었다.
“아직이야?”
“죄송합니다. 여기서 그러니까······.”
갈림길이 연달아 나타난 탓이다.
아우렐이 흑마력을 탐지해 길 안내를 해주어야 하는 상황.
하지만 원혼들마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통에, 그 또한 탐색에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무슨 전시장 같기도 하고······.”
지나온 통로가 유리벽으로 가로막힌 쇼윈도 같았다.
반면, 지금은 끝없이 이어지는 지루한 전시장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곳곳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골동품들이 둥둥 떠올라 있었다.
“······저건 뭐지?”
“모두 사념을 자아내기 위한 아이템입니다. 원혼들을 위한······ 일종의 토템이라고나 할까요.”
바르나울의 특기였다.
원혼을 사물에 속박해두는 것.
기사들 또한 오랜 세월 카멜롯에 붙들려 있지 않았던가?
“원혼들은 이미 죽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토템 때문에 지나간 삶에 집착하게 되죠. 그것이······ 바르나울이 사념을 끌어모으는 방법입니다.”
아이템마다 수십 개의 원혼이 몰려들었다.
그러고는 과거를 추억하듯,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연출했다.
원혼들의 모습도, 아이템의 모양도 제각각이었지만, 지나간 추억을 비극적으로 추종한다는 점만큼은 모두가 같았다.
그렇게 여러 아이템과 원혼들의 그림자를 수차례 지나쳤을 즈음······.
“······강?”
거대한 강이 우리의 길목을 막아 세웠다.
원혼들은 멈추지 않고 부유하듯 강을 가로질렀다.
하지만 멀쩡한 두 발을 지닌 우리로서는 우두커니 자리에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주변을 둘러보던 아우렐이 흠칫 놀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정겸 님. 당했어요. 저건······.”
그의 시선은 강가에 머물러 있었다.
소박하게 세워진 초라한 천막 하나.
이 또한 아이템의 일종인지, 주변으로 원혼이 몰려들고 있었다.
“······마르케스의 유물입니다. 놈들이 저를 유인했군요.”
차원 중핵이 내뿜는 흑마력을 추적하고 있던 아우렐.
하지만 그가 이끌린 것은 바르나울의 중핵이 아닌, 사라진 고향의 냄새였다.
천막으로 몰려든 수백의 원혼들 또한, 바르나울에 의해 죽어간 옛 마르케스의 주민들이었으니.
그리고, 그때였다.
후욱!
우리를 둘러싸고, 곳곳에 새카만 연기가 내려앉았다.
연기는 곧 소용돌이치며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에 흑색 로브를 두른 바르나울의 흑마법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우렐이 착잡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루펜······.”
“오랜만이구나, 아우렐.”
아우렐과 인사를 주고받은 사내.
그는 기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절반은 인간, 절반은 해골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죄송합니다, 정겸 님. 제가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됐어. 뭐 하는 놈인데?”
“바르나울의 장로, 루펜입니다. 큰일이군요. 처리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기사들이 바르나울의 흑마법사들과 대치하는 가운데, 아우렐은 내게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었다.
삶을 버리는 순간, 흑마법사는 리치가 되어 영원한 죽음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
단, 흑마법사로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그 대가였다.
하지만······.
“루펜은 젊은 흑마법사 하나를 살해했습니다. 그러곤 그 시체를 자신에게 이식했죠. 그리고 그건······.”
“······.”
“······제 동생, 아르카였습니다.”
그것이 루펜의 비결이었다.
리치가 됨과 동시에, 흑마법에서의 재능과 성장을 이어가는 것.
공교롭게도, 그 희생양이 된 것은 아우렐의 혈육인 아르카였다.
바르나울과 마르케스의 오랜 악연.
그 질긴 인연은 루펜과 아우렐 두 사람의 원한으로도 이어지고 있었다.
“······.”
결국, 루펜의 얼굴 반쪽은 아우렐의 동생, 아르카의 것이었다.
놈이 반만 남은 얼굴 가죽을 씰룩이며, 입을 열었다.
“너희가 중핵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뭐,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살아서는 어렵겠지만 말이야.”
원혼들이 우르르 강을 건너고 있었으나, 정작 우리에게는 허락된 길이 아니었다.
오직 죽은 자만이 건널 수 있다는 것이 아우렐의 설명이었으니까.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덧붙였다.
“······바르나울이 가진 차원 중핵의 효과입니다. 벌써 이 정도까지 발전했을 줄은······.”
차원 중핵이 바로 저 너머에 있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목숨을 통행료로 지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를 모르지 않는지, 바르나울의 장로 루펜 또한 꽤나 여유 만만한 표정이었다.
“아우렐. 그만 고향으로 돌아오거라. 네 동생도 여기에 있지 않으냐?”
루펜의 몸이 다시금 살갗으로 뒤덮였다.
완전해진 얼굴, 그러니까 아우렐의 동생, 아르카의 것이었다.
그러곤 가증스럽게도 꺼이꺼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루펜.”
“너도 흑마법사이니 잘 알겠지. 원혼이 되면 영원히 꿈꿀 수 있다. 너희들의 그 잘난 고향에서 가족들과······ 영원히 살아갈 수 있게 내가 도와주마.”
루펜이 천막을 가리켰다.
마르케스의 유물이라던 남루한 천막.
놈이 제안한 것은 원혼이 되어, 영원히 바르나울의 지하를 떠도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그의 고향은 물론, 동생의 원혼까지 살아 움직이고 있었으니.
아우렐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하지만 끝끝내 힘을 내, 쥐어짜듯 그에게 대답했다.
“······동생과 만날 기회를 마련해 주어 고맙다, 루펜.”
고마움을 표하는 아우렐.
하지만 그의 시선은 루펜이 차지한 얼굴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준비됐습니다, 정겸님.”
“그래.”
슈슈슉!
슈슉!
사방으로 아공간 포탈이 열었다.
수십, 아닌 수백 개에 달하는 물체를 출하했고, 그 모두는 빠르게 천막을 맴돌고 있던 마르케스의 원혼들에게 전달됐다.
워낙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던 탓에, 바르나울의 흑마법사들마저 다급히 상황을 살필 뿐이었다.
장로, 루펜 또한······.
“······상자?”
의아한 표정으로 되뇌일 뿐이었다.
물체의 정체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택배 상자였으니.
하지만······.
“야바위 좋아하나?”
적어도 하나는 평범하지 않았다.
그 안에 아공간 포탈을 담아두었으니까.
사물에 좌표를 지정해 둘 수 있는, 딱 하나뿐인 포탈이었다.
그리고······.
“······원혼들이······?”
기다렸다는 듯, 마르케스의 원혼들 또한 일제히 택배 상자를 받아들었다.
천막 주변을 맴돌던 그들은 매듭이 풀린 듯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결과 수백 개의 택배 상자들이 공중 위로 두둥실 떠 오르기 시작했다.
“아우렐, 너 이 새끼······.”
루펜이 뿌득 이를 갈았다.
아우렐은 줄곧 원혼들의 속박을 풀어내고 있었으니까.
비록 한시적이라고는 하나, 원혼들은 바르나울이 부여한 사념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우렐이 대답했다.
“루펜, 힌트를 주마. 포탈은 내 동생 아르카가 들고 있다. 네가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
슈화아아아아악!
택배 상자를 든 수백 명의 원혼이 소용돌이치듯 솟아올랐다.
루펜은 시선을 혼란으로 물들인 채, 하늘을 향해 무력하게 팔을 휘두를 뿐이었다.
“이이익······!”
퍼어엉!
뻐어어어엉!
흑마력으로 된 올가미를 던져, 원혼들을 하나둘 붙잡았지만······.
“그건 레메디오스야. 아, 그쪽은 페르난다인데······.”
수백 개의 원혼을 일일이 구별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원혼 하나하나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아우렐과는 달리.
아우렐은 그 중 어딘가 섞여 있는 동생의 원혼, 아르카와 눈빛을 주고받으며, 루펜이 마련해준 형제간의 재회를 만끽할 따름이었다.
슈우우우욱!
슈우우욱!
마르케스의 원혼들은 줄기차게 강을 건넜다.
산 자는 건널 수 없다던 죽음의 강.
하지만······.
“산간지방이기는 한데······.”
택배는 예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