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71)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71화(171/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71화
날개 달린 화약고 (3)
휘오오오오오···
사뭇 바람 소리 처럼 들리는 소리.
하지만 정작 눈앞에서는 검은 그림자들이 휩쓸리듯 움직이고 있었다.
후오오···
비명일까, 그것도 아니면 사무친 울음일까.
원혼이라는 말 그대로, 그들은 아직 할 말이 남았다는 듯 거세게 요동치고, 또 휘몰아치고 있었다.
끝없이 되돌아가는 슬픈 악장을 연주하듯이.
“······”
아우렐이 그들의 움직임을 지휘했다.
헝클어진 흑마력을 한 올 한 올 정리했고, 길게 뻗은 선으로 만들어 원혼들의 길을 닦아주었다.
슈우우우욱!
승천하듯, 하늘로 솟구치는 원혼들.
그들이 어디로 가는 것이냐는 내 질문에, 아우렐은 다음과 같이 덧붙일 뿐이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저희도 모릅니다. 다만··· 원래 가야 할 곳으로 이끌어주는 거지요.”
그 종착지가 행복한 내세일지, 저승일지, 혹은 그 무엇도 아닌 무(無) 그 자체일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원혼들을 붙잡아 노예로 삼았던 바르나울과는 달리, 마르케스의 흑마법사들은 그저 마땅히 가야 할 순리대로 그들을 놓아줄 따름이었다.
“끝났구나.”
우리는 바르나울에 와 있었다.
본 드래곤 때문에 급하게 지구로 돌아갔었지만, 이쪽도 나름대로 정리가 필요했으니.
바르나울의 악업을 매듭짓고, 원혼들을 돌려보내는 것.
어쩌면 일종의 위령제(慰靈祭)라 불러도 무방할 듯싶었다.
그렇게, 하늘로 솟구치는 원혼들이 있는가 하면···
-쿠르르르르···
휘이이이익!
또 한편에서는 본 드래곤, 백구가 하늘을 누비고 있었다.
기분 좋다는 듯 포효하며, 흑색 철탑을 맴도는 백구.
아무래도 줄곧 여기 바르나울에 있었던 만큼, 지리가 익숙한 모양이었다.
“사이즈가 살짝 줄긴 했지만···”
아공간 포탈의 한계 탓에, 크기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몸집이 줄어든 만큼, 그 힘 또한 줄어들었기 마련이었으나···
바르나울의 잔당들을 처리하는 일에 톡톡히 활약하며, 백구는 여전한 위용을 과시했다.
사실상 우리가 지니게 된 가장 큰 전력.
하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역시 그렇겠지요, 차원 본부를 강제로 몰아내 버렸으니···”
“그래, 이제 시작이야.”
모든 위협이 사라졌다.
바르나울을 무너뜨렸고, 피렌의 천사들을 내쫓은 참.
손상된 지구의 방어 장막 또한, 차원 중핵의 성장과 함께 서서히 복구되고 있었다.
본 드래곤은 물론, 지구를 통제하려던 차원 본부까지 집어삼킨 상황.
하지만 상공회의소가 통제에서 벗어난 지구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리 없었으니까.
“머지않아··· 다른 개짓거리를 시작할 게 분명해.”
다음은 뭐가 올까?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늘 그래왔듯, 이전보다 더 강한 위협이 들이닥치리라는 것밖에는.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전력을 강화할 적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중 특히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이제야 10레벨이구나···’
나의 각성 능력을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본 드래곤을 넣기 위해, 마석을 때려 넣어 10레벨에 다다른 상황.
지금껏 나의 아공간 능력은 많은 변화를 거쳐왔다.
간단하게는 출하 시간, 속도, 사정거리부터, <카테고리 수용>이나 <실험실>과 같은 아공간에서의 특수 능력까지.
하지만 7레벨 이후로는 별달리 특별한 강화 능력이 주어지지 않았던 터였다.
그저 레벨을 올릴 때마다 새로운 대상을 아공간에 수용할 수 있었을 뿐.
“그래도 10레벨이다 이건가?”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새로운 성장 지표가 나타났으니.
10레벨에 다다른 지금, 팍스는 내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띠링!
[10레벨 기준, 생성할 수 있는 포탈의 최대 크기는 20m입니다] [레벨을 올려 포탈의 최대 크기를 늘릴 수 있습니다]포탈의 최대 크기.
그동안에는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했더랬다.
아공간에 수용된 물건들을 꺼내기엔 충분히 넉넉한 크기였으니까.
하지만 피렌의 천공섬은 물론이요, 본 드래곤을 출하하려니 이제야 그 크기가 모자란 실정이었다.
또한 뒤집어 말하면···
“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백구도 같이 강해지겠구나.”
포탈의 크기가 늘어날 때마다 더 큰 뼛조각들을 꺼낼 수 있을 터.
그렇게 된다면 백구의 크기를 기하급수적으로 키우는 것 또한 가능할 것이었다.
녀석의 전투력이 더불어 상승하는 것은 당연지사.
“일단 그것까지는 좋은데···”
잠시 멈춘 듯한 아공간의 발전이 다시금 시작된 참이었지만···
“대체 뭘까, 이건?”
내 각성 시스템에는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와 있었다.
팍스가 내게 또 다른 메시지를 추가로 띄워주었다.
띠링!
—
◈ ■※??■■&
-비용을 ■??하? ? ※■을 ???니다.
—
완전히 깨져버린 글씨들.
다른 정보들과는 달리, 딱 하나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있었다.
팍스에게 그 뜻을 물어봤지만···
[죄송합니다] [해석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녀석 또한 뾰족한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아공간 스킬은 나의 각성 능력에서 비롯된 것.
AI와 결합된 덕에 팍스가 그 능력을 관리하고 발전시켜주고 있었지만, 그 이전 단계에서부터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함께 있던 아우렐이 내게 물었다.
그에게 내 각성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가 턱을 짚으며 짐작 가는 것이 있다는 듯 내게 대답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종종 그런 사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각성 능력에 장애가 생기는 경우가요. 혹시, 정겸 님은 각성 능력의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고 계시는지요?”
“각성 능력의 힘···?”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뜬금없이 주어진 멸망과, 그것에 대처하기 위한 각성 능력.
적들의 침략에 맞서는 데에 급급한 나머지 곰곰이 살펴볼 만한 겨를이 없었으니까.
“각성 능력은 개인의 소원에서 비롯됩니다. 의식적으로 빈 소원이라기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품고 있던 내적 소망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되죠.”
몇 가지 정보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목숨을 위협하는 오크 앞에서, 안전한 공간을 원했던 나.
탁월한 운전 실력은 물론, 각종 탈 것에 광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용수.
사람들을 더 잘 치료하고 싶었던 큰누나 등등.
지금껏 만나온 대부분의 각성자가 능력을 통해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고 있었으니까.
“중요한 건 소원이 결국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데 있습니다. 소원은 문법과 구문을 가지고 있고··· 그건 언제든 다른 단어로 대체될 수도, 혹은 배열로 뒤바뀔 수도 있죠. 분명 레벨을 올리면서 각성 능력의 성격을 조금씩 변화시켜오셨을 겁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였다.
아공간 능력은 팍스와 물류센터를 넣으며 완전히 새로운 능력으로 탈바꿈했고, 레벨업을 거듭할 때마다 기존 능력을 강화하는 한편, 때때로 <실험실>이나 <포탈 설치>등 완전히 다른 능력들을 새로 장착하기까지 했으니.
결국 각성 시스템은 완전 무결하지 않으며, 사용자의 생각이나 판단에 따라 언제든 성장하고 또 퇴화할 수 있다는 것이 아우렐의 결론이었다.
그가 내게 물었다.
“사용자의 판단에 따라··· 각성 능력은 급격히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 만큼 망가질 수도 있죠. 특히나 소원을 이루고 있던 근본적인 구문이 틀어지는 경우에는요. 그리고 사실··· 강력한 능력일수록 그런 일이 더 빈번히 벌어지기 마련이죠.”
“능력을 좀 드라마틱하게 쓰기는 했지···”
지금껏 나는 별의별 사물들을 아공간에 수용해왔다.
군부대부터 시작해 카멜롯 같은 신비로운 아이템, 거기에 상공회의소의 시설들까지.
어쩌면 그중에는 ‘물류센터’라는 이름이 감당하기 어려운, 규격 외의 대상들도 존재했으리라.
오류로 표시된 정보 한 줄.
어쩌면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한 번 어긋난 문장은 살을 붙일수록 점점 더 크게 망가지게 됩니다. 말씀드리기 곤란하지만··· 가지고 계신 다른 능력에까지 문제가 번질 가능성이 크고요.”
“뭐···?”
마치 병에 걸린 것만 같았다.
오랜 시간 품고 있던 암세포를 뒤늦게 발견한 기분.
전력을 키워도 모자랄 판에, 각성 능력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마르케스에게는 각성 능력의 오류를 교정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부엔디아 님이라면··· 정겸님의 각성 능력을 교정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 감옥에 갇혀 있다던?”
“맞습니다.”
마르케스의 전설적인 흑마법사, 부엔디아였다.
경제사범으로 사로잡혀,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일전에 전해 들었던 터.
하지만 부엔디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아우렐은 여전히 난색을 거두지 못했다.
그곳이 다름 아닌 상공회의소의 감옥이었기에.
“하지만··· 사실 이건 불가능한 방법입니다. 지금 저희의 능력으로는 수용소의 감시망을 뚫고 들어갈 방법이 없어요.”
아우렐은 이미 수차례 부엔디아의 탈옥을 시도했었노라 덧붙였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더더욱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
그저 당분간은 내게 레벨업을 자제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 조언해줄 뿐이었다.
썩 마음에 들지 않는 해결 방안에 고심이 깊어지려던 찰나···
“음?”
멀찍이 하늘을 누비는 백구가 눈에 들어왔다.
줄곧 바르나울의 흑탑을 빙빙 돌던 녀석이다.
이내 녀석이 꿀렁꿀렁 목뼈를 움직였고···
슈화아아아악!
갑자기 새파란 얼음 숨결을 내뱉었다.
그러자 꽁꽁 얼어붙은 흑탑은 백구의 꼬리를 얻어맞고는 고드름처럼 뚝 하니 부러져버렸다.
“입에서 뭔 저런 게 나가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흑마력을 뿜어가며 적들을 짓이기는 모습은 보았어도, 저렇게 푸른 숨결을 내뱉는 모습은 좀처럼 보질 못했으니까.
백구가 보여준 정체 모를 장기에, 의아해지려던 찰나···
“······?”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쩍 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아우렐을 발견했다.
그는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쿵쿵 발자국을 찍으며 산책하는 백구의 모습을 두려움과 함께 바라볼 뿐.
몇 분 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아우렐이 내게 말했다.
“정겸님··· 아무래도 일이 너무 커진 것 같습니다.”
“뭐? 왜?”
아우렐은 내게 긴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아케인의 마법사들이 오랜 시간 사라진 귀족, 로베르토의 시체를 찾아왔다는 것.
그리고 저 본 드래곤이 바로 그 로베르토의 시체로 추정된다는 것.
로베르토가 빙결 마법을 사용하는, 아케인의 용족 마법사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 시체가 바르나울에 있었다는 것도 설명이 됩니다. 시체를 탐내는 그들이라면 이유도 충분하고··· 이곳에는 아케인의 추적 마법도 닿지 않았을 테니까요.”
“우리 백구가······ 귀족?”
“아케인의 추격이 이어질 겁니다. 지옥 끝까지 따라올 거예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각성 시스템의 문제를 확인하자마자, 백구의 정체가 드러난 상황.
힘을 키우기도 전에, 강력한 적을 우리 손으로 끌어들인 셈이 되었으니.
아우렐이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어떻게든··· 최대한 추적을 피할 방법을 찾아 보겠습니다. 바르나울의 장막이 있기는 하지만 완벽하지 않을 수 있으니···”
“잠깐만.“
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로베르토의 시체를 찾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법사들.
그들이라면 우리 대신 지옥에라도 들어가 주지 않을까?
“백구를 날려 보내자. 수용소 쪽으로.”
그들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수용소의 굳건한 문을 열어젖히는 것이.
그 틈에 우리는···
“부엔디아를 꺼내오자고.”
더 중요한 보물을 꺼내오면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