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72)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72화(172/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72화
장독 (1)
“음.”
이곳은 축축한 수감동 내부.
회색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한 노인이 우두커니 벽을 보며 서 있었다.
“오늘따라 날이 침침하군.”
하늘색 죄수복을 입은 그의 정체는 세군도 부엔디아.
통칭 ‘부엔디아’라 불리는 마르케스의 전설적인 흑마법사였다.
그가 주름진 손을 미세하게 떨었다.
창살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 아래로, 접시를 들고 무언가를 데우고 있었으니.
흑마력을 가미한 으깬 넝쿨 콩이 열에 반응하며 한층 더 부드럽고 진한 풍미를 자아내기 시작했다.
“좋구나.”
그가 주머니에서 딱딱한 빵 한 조각을 꺼내 들었다.
수십 년간 먹어 온 지겹기 짝이 없는 음식이었지만, 부엔디아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나름의 변주를 주고 있었다.
부엔디아가 낡은 스푼을 꺼내 들었다.
빵을 먹기 좋게 반으로 갈랐고, 방금 데운 소스를 먹기 좋게 꼼꼼하게 발랐다.
한 입 크게 베어 문 그는 새삼스럽다는 듯 홀로 중얼거렸다.
“흑마력을 이런 데 사용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지.”
흑마법사들의 장기 중 하나인 ‘부패’.
하지만 부패의 또 다른 이름은 ‘발효’였다.
보는 시각에 따라 음식은 상한 것으로도, 발효된 것으로도 볼 수 있었으니까.
부엔디아는 흑마법의 묘리에 통달한 천재 중의 천재였고, 그런 자신의 능력을 이곳 감방에서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게 빵을 씹으며, 발효의 깊은 맛을 음미하고 있을 즈음···
-텅! 텅!
마력봉을 든 간수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복도를 누비며 창살을 깡깡 두드려댔고, 부엔디아는 익숙하다는 듯 남은 ‘특제 샌드위치’를 서둘러 씹어 넘겼다.
그러곤 소매로 입가를 훔치며, 때 묻은 죄수복에 묻은 빵가루를 털어냈다.
“산책 시간인가.”
매일 같이 돌아오는 시간.
부엔디아가 매일같이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낸 간수가 그에게 말했다.
“나오시오.”
“알겠네.”
철컹!
드르르륵!
두꺼운 철문이 열렸다.
그가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밖으로 향했지만···
그곳은 여전히 사방이 담으로 둘러싸진, 상공회의소의 감옥 내부일 뿐이었다.
.
.
.
“아르르르···”
“아, 그러니까 내가 그때 차원선으로 밀항을 했었는데···”
간수들의 통제하에 죄수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섰다.
노망난 뱀파이어, 유력 차원의 회계사, 차원 금고에 잠입했던 간 큰 도둑들까지.
이곳 수용소에는 상공회의소에 의해 잡혀 온 별의별 차원 존재들이 떼거리로 몰려 있었다.
바깥에서 어떤 생활을 했었는지는 죄수들의 끊임없는 대화거리였기에, 조금이라도 이름을 날렸다 싶은 죄수들은 다른 수감자들에게 자신의 위용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늘도 시끌벅적하군.”
이들 모두는 하나 같이 ‘경제 사범(經濟事犯)’으로 불렸다.
상공회의소의 지상 과제는 다차원의 모든 마석을 긁어모으는 것이었고, 이에 방해되는 적수들은 모조리 경제사범이라는 이름으로 처벌했으니.
이곳 감옥의 이름 또한 ‘다차원 경제 사범 수용소’였다.
“자, 빨리들 모이자고!”
하루, 단 1시간만 주어지는 산책 시간.
간수가 공터에 커다란 마력 공을 던져주자, 수감자들이 게임을 위해 서둘러 팀을 짜기 시작했다.
각자의 능력을 사용해 골대에 공을 넣는, 이른바 ‘초능력 매치’였다.
삼삼오오 팀을 이뤄가던 중···
재소자 한 명이 부엔디아에게 다가왔다.
“흑마법 할아범, 오늘도 안 끼실 거요?”
“난 됐어. 자네들이나 하게.”
“어째, 점점 우리랑 잘 안 놀아주시는 것 같소?”
“애 같은 소리 하기는··· 장 독 봐야 해서 오늘은 안돼.”
“에잉.”
입을 삐쭉 내민 채 투덜거리며 떠나가는 노랑머리 재소자.
저래 봬도 소싯적에 상위 차원의 차원 금고를 세 번이나 털어먹은, 유명한 금고 털이 조직의 수장이었다.
팀을 꾸린 동료 재소자들의 면면이 화려했다.
힘이 약화된 이곳 감옥이 아니라면, 제아무리 상공회의소라고 한들 간담이 서늘할 수밖에 없는 라인업.
하지만 그런 그들을 뒤로하고 부엔디아가 향한 곳은 구석진 그늘 한 편이었다.
“어디 보자···”
그곳에는 부엔디아가 직접 빚은 항아리 네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부엔디아는 공터 담장에 넝쿨 콩과 마력초를 키웠는데, 수확한 콩과 햇빛에 말린 마력초 씨앗을 빻아 흑마력을 가미한 특제 발효 장을 만들곤 했다.
부엔디아는 장독에 며칠 사이 소진된 흑마력을 채워 넣었고, 잠시 맛을 본 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도로 뚜껑을 덮어놓았다.
“맛이 아주 제대로 들었어.”
고소한 맛, 짠맛, 매운맛 등등.
그것은 무미건조한 감방 생활에서 추구할 수 있는, 작지만 유의미한 변주였다.
이에 동조하듯, 항아리 옆에서 찍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쓰읍, 안 된다. 제로야.”
“찍.”
항아리 구석에서 작은 해골 쥐 한 마리가 고개를 빼 들었다.
녀석은 작은 두 손을 입가로 모은 뒤, 하얀 두개골을 긁으며 한껏 애교를 피웠다.
먹을 것을 달라는, 제 나름의 표현이었다.
“거, 안 먹어도 잘만 사는 놈이··· 산 사람 먹이를 뺏어가는구나. 이놈.”
부엔디아가 투덜거리면서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러곤 제로를 위해 미리 떼어 두었던 작은 빵조각을 꺼내 들었다.
실제 빵은 해골 쥐에게 아무런 영양도 될 수 없었기에, 부엔디아는 약간의 흑마력을 가미해 해골 쥐의 입에 물려 주었다.
“찍!”
고맙다는 듯 꼬리를 흔드는 제로.
게 눈 감추듯 빵을 해치운 녀석은 다시금 애교를 부리며 부엔디아의 옷깃을 타고 올라왔다.
그러곤 두 눈을 보랏빛으로 물들이며, 자신이 보고 온 것들을 부엔디아에게 천천히 흘려 넣어주었다.
“이제 됐대도··· 너도 참 열심이구나.”
제로가 보여주는 것은 이곳 수용소의 숨은 비밀 통로들이었다.
운이 좋다면 간수들의 눈을 속여, 통로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을 터.
하지만 부엔디아는 그래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스르륵.
부엔디아가 팔을 걷었고, 팔뚝에 새겨진 선명한 문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로야, 할아버지는 이게 그려져 있으면 못 나가요.”
모든 재소자에게는 낙인이 새겨져 있었다.
낙인은 수감동 중앙에 위치한 특수 마도구에 반응했고, 죄수들을 언제든 자석처럼 수감동으로 끌어당길 수 있었다.
감옥을 벗어난다 한들, 반나절도 못 가 끌려 올 것이 분명했으니.
문신의 역할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수감자들의 능력을 극도로 약화시키는 봉인 능력.
전설적인 흑마법사로 이름을 날린 부엔디아마저, 장독이나 담그는 평범한 옆집 할아버지가 되었을 따름이었다.
찍찍.
장독에 올라선 제로를 보며, 부엔디아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새록새록 떠올렸다.
“참 치기 어렸지···”
젊은 시절, 그는 다차원의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었다.
어쩌면 대마도사까지도 넘볼 수 있는 재능이었으나··· 부엔디아는 아케인이 아닌 마르케스에 투신했고, 타고난 마나 감응력을 흑마법에 활용했다.
모든 전쟁의 원흉, 상공회의소와 맞서 싸우기 위해.
“그땐 내가 모든 걸 안다고 생각했어.”
탁월한 마나 감응력의 결과였다.
다차원 곳곳에 놓인 상공회의소의 주요 거점 위치를 감지할 수 있었고,
실제로 마르케스를 이끌며 상공회의소의 숨통을 끊는 대규모의 작전을 계획했다.
그리고···
“처음엔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만 같았지.”
실제로 그는 성공을 맛봤다.
차원 무역소와 인재 개발원을 파괴했고, 마석 수송선을 수도 없이 탈취했으니.
마르케스와 부엔디아는 상공회의소의 유력한 적대 세력으로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다만 한 가지, 그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면···
“그걸 잊으면 안 된다, 제로야.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그걸 상대가 알고 있을 수 있다는걸.”
다름 아닌 그 자신이었다.
그 당시, 부엔디아는 알지 못했다.
감응력을 발휘하는 동안에는 그 자신 또한 위치를 노출하게 된다는 걸.
그 결과 부엔디아는 사로잡혔고, 이곳 경제 사범 수용소에 가둬졌다.
상공회의소는 그를 죽이지 않았다.
부엔디아는 흑마법사였고, 원혼이 되어 도주할 위험이 있었으니까.
그들은 부엔디아를 이곳 수용소에 산 채로, 영원히 가둬두기로 결정했다.
“뭐··· 이제는 다 옛날 일이지.”
처음 몇 년간은 분노와 억울함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생은 이어지는 법.
부엔디아는 다른 재소자들과 동고동락하며, 작디작은 삶의 조각들을 발견해나갔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차츰 자신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달그락.
그 오랜 깊이를 들이마시며, 부엔디아는 장독을 닫았다.
수용소의 삼엄한 담벼락이 여전히 그를 둘러싸고 있었지만···
“삶은 짧지만, 역사는 길다.”
그는 자신이 갇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차원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언젠가 누군가는 자신의 투지를 이어가 줄 테니까.
부엔디아는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끝’을 담담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위이이이이이이잉!
“······이건?”
그의 다짐을 비웃듯,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부엔디아가 표정을 구긴 것은 결코 경보음 때문이 아니었다.
거대한 무언가가 이곳 수용소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흑마력?”
그 힘을 알아채지 못할 부엔디아가 아니었다.
우르르르르!
중앙 건물로부터 간수들이 뛰쳐나왔고, 서둘러 죄수들을 수감동으로 들여보내기 시작했다.
“이게 뭔 일이래?”
“아, 한참 재밌어지던 와중에···”
투덜거리는 상공회의소의 경제사범들.
그 소란 통에서···
“······”
부엔디아는 인생의 두 번째 격동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
슈화아아아아악!
화면이 빠르게 움직였다.
나와 아우렐이 위치한 곳은 아공간 내에 위치한 상공회의소 지부.
다른 이름으로는 ‘통합 물류 상황실’이라 부르는 곳이었다.
“그렇지, 우리 백구 날쌔다.”
본 드래곤 백구가 경제 사범 수용소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녀석의 손에는 커다란 넓적 뼈 하나가 들려 있었고, 그 뼈에는 내 아공간 포탈의 좌표가 지정돼 있었다.
그 결과···
슈와아아아아악!
우리는 백구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지부의 <위성 관측> 기능으로 포탈이 설치된 곳 주변을 모니터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크르르르르···
보랏빛 흑마력으로 충만한 백구.
비록 몸은 작아졌지만, 그 위용만큼은 어디 가질 않았다.
오래지 않아 녀석의 눈앞으로 강고한 수용소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고···
“저, 저게 뭐야···!”
“드래곤? 뼈, 뼈다귀잖아···?”
경비병들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댕댕 종이 울렸다.
건물 사 면에 놓인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타격에 대비하려는 듯, 경비병들이 바쁘게 움직였지만···
“겁먹기는.”
우리는 놈들과 싸울 생각이 없었다.
쿵 소리와 함께 수용소 앞에 내려앉은 백구.
녀석은 들고 있던 뼈다귀를 지면에 깃발처럼 꽂아 넣을 뿐이었다.
경비병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본 드래곤의 행동을 관찰했고···
“······?”
나는 즉시 포탈을 열어 백구를 아공간 내부로 집어넣었다.
결과적으론···
“어, 없어졌다?”
수용소 앞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대한 뼉다구 하나가 덩그러니 꽂혀 있을 뿐.
나는 팔짱을 낀 채, 아우렐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군요.”
“그래, 미끼는 던졌으니까.”
보안을 위해, 수용소에는 차단막이 둘러져 있다.
죄수들이 바깥과 소통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지만···
이번만큼은 그 장치가 아케인의 상상력을 키워줄 것이었다.
“···안쪽이 꼭 뒤져보고 싶을 거다.”
아케인의 마법사들은 본 드래곤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었으니까.
덩그러니 놓인 넓적 뼈.
끊어져 버린 나머지 시체의 흔적.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로베르토의 남은 시체가 이곳 수용소 안으로 옮겨졌다고 보는 편이 당연했으니.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비병들은 뼈를 앞에 두고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그들이 뼈를 치우기 위해 그 주변을 둘러쌌을 즈음···
“왔네.”
청색 끈을 매단 마법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