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75)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75화(175/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75화
해적질 (1)
휘이이···.
짹짹!
서늘한 바람 소리와 함께, 새소리가 재잘댔다.
숨이 절로 트이는 듯한 울창한 삼림.
두꺼운 거목은 단 한그루도 없었지만, 세계수들은 서로 얽히고 섥히며 그에 못지않은 크고 작은 나무 형상으로 모여들었다.
그 결과 엘븐하임은 왕년의 싱그러운 모습을 되찾았으니.
마침 나 또한 수용소의 재소자들을 이끌고 이곳 엘븐하임에 도착한 터였다.
“와···!”
“아니, 공기가 이렇게 좋을 수 있나?”
죄수복을 펄럭이며, 오래간 잊고 지냈던 자유를 만끽하는 재소자들.
그들은 물론, 부엔디아 또한 울창한 엘븐하임의 삼림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놀랍군···. 내가 살면서 본 숲 중에 가장 놀라운 숲일세.”
세계수에 기겁했던 바르나울과는 달리, 부엔디아의 흑마법은 숲과도 퍽 잘 어울렸다.
어느덧 쌀쌀해진 날씨에 세계수가 벗어던진 낙엽들이 즐비하게 깔려 있는 바닥.
부엔디아는 틈틈이 낙엽을 모아 썩힌 뒤, 도로 토양에 다져 넣곤 했다.
자신의 흑마법 또한 크나큰 자연의 흐름에 속해있다는 듯이.
“세계수라는 점도 그렇네만··· 모두가 똑같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군. 사실 세상에 완벽히 똑같은 물질이란 존재할 수 없는데 말이야.”
“덕분에 상공회의소와도 싸울 수 있는 거지요.”
아우렐이 맞장구쳤다.
내 복제 능력은 물론, 상공회의소의 침략에 대한 이야기까지.
엘븐하임의 언덕을 오르며, 우리는 부엔디아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으니.
그렇게 도착한 곳은···.
“일단, 이쯤이면 되겠네요.”
탁 트인 공터였다.
세계수 잎을 잔디처럼 깔아놓은 널찍한 풀밭.
수용소의 재소자들을 모조리 데리고 온 만큼, 그들이 지낼 장소를 마련해줄 참이었다.
나는 합참에 이들의 거처를 지어줄 건축 각성자들을 요청했고, 필요한 자재들을 한쪽 구석에 양껏 출하해 놓았다.
그리고······.
‘그러고 보니, 뭔 이상한 골대가 하나 있긴 하던데···.’
띠링!
[이동식 높이 조절 농구대, 블랙, 가격은 196,500원입니다.] [윌슨 NBA 게임 오피셜 볼 콜렉션 PU소재 농구공 브라운, 1개, 가격은 237,240원입니다.]겸사겸사 농구대와 농구공을 여럿, 추가로 꺼내놓았다.
“아니 이게 뭐야!”
“휘우!”
뭐라도 설명하기 전에 재소자들이 공터로 뛰어들었고,
농구대를 마주 보게 설치해 놓고선 서로 팀을 나누며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까 못다 한 경기를 마저 해야 한다나 뭐라나.
거처가 완성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상황.
그전까지는 공놀이로 시간을 보내도 좋을 성싶었다.
.
.
.
한편 우리는 본론에 들어갔다.
부엔디아에게는 꼭 부탁할 일이 있었으니.
“그럼 어디 한 번 봅시다.”
각성 시스템의 오류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부엔디아의 지시에 따라 곧장 내 시스템 창을 띄워 올렸다.
띠링!
—
◈ ■※??■■&
-비용을 ■??하? ? ※■을 ???니다.
—
이번에도 역시, 알 수 없는 문자로 가득 찬 설명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음··· 이건···.”
뚫어져라 내 고장 난 시스템 창을 들여다보는 부엔디아.
오래지 않아, 그가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아우렐에게 들어서 알겠지만, 이 시스템은 신의 산물이 아닐세. 소원을 이루는 어휘나 구문이 파도처럼 뒤엉키는 각축장에 가깝지. 보통은 그 모두가 단 하나의 소원으로 재편되고, 이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스킬 트리가 뻗어나가게 되지만······.”
그것이 일반적인 각성자들의 생태였다.
오죽하면 김솔이 여덟 종류의 정권을 보유하고 있을까.
그 모두가 상대를 ‘더 잘 때리고 싶다’는 소망에서 시작되었을 터.
내 각성 시스템이 그러한 중심을 이루지 못했으리라는 것이 부엔디아의 진단이었다.
“혹시, 능력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한 적이 있지는 않았는가?”
“아, 그런 거라면···.”
딱 하나 있었다.
내 각성 능력이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던 것이.
다름 아닌 아공간 능력을 각성하고 나서 ‘물류센터’를 집어삼켰을 때.
바로 그 직후, 내 각성 능력은 대대적인 체질 개선을 겪게 되었으니까.
“운영체제 업데이트니, 뭐니 하면서, 팍스가···.”
원래 내 능력은 실로 단순했다.
아공간에 눈에 보이는 대상을 수용하는 것.
하지만 팍스로 인해 능력은 물류센터에 관한 것으로 새롭게 재편되었고, 그 결과 출하 스킬을 비롯한 각종 개방 능력들이 나타났더랬다.
부엔디아가 지적하는 것 또한 정확히 그 지점이었다.
“아공간과 물류 창고. 처음에는 그 두 가지가 공존했던 것 같네. 사물을 들이고 내보낸다는 구조가 잘 맞아떨어졌을 테니 말이야. 하지만 점점 다양한 사물들을 수납하면서, 각성 시스템을 이루는 전반적인 문법에 균열이 가해진 것으로 보이네. 그렇지 않은가? 천공섬도 그렇고, 본 드래곤도···.”
“···물류센터가 취급할 만한 물건은 아니죠.”
“각성 시스템은 혼란스러워하겠지. 왜 이런 사물을 들여오는 것인지, 대체 어떤 능력을 새롭게 개방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퍽 어려울 테니 말이야.”
참으로 인간적인 고민이었다.
각성 시스템이 내 의중을 읽는 데 실패했다는 것.
그것이 내 시스템의 문자가 깨져버린 이유였다.
“그럼 어떡해야 합니까?”
“자네가 직접 설명을 해줘야겠지. 일종의 문장 퍼즐처럼 된 것이니··· 그에 어울리는 단어를 찾아주면 될 게야.”
“어울리는 단어라···.”
나는 곧장 시스템에 띄워진 깨진 글자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띠링!
—
◈ ■※??■■&
-비용을 ■??하? ? ※■을 ???니다.
—
부엔디아의 말이 단서가 된 것일까?
나는 지금껏 개방되었던 여러 능력들을 떠올렸다.
그러곤 ‘비용’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구문을 짜 맞춰가기 시작했다.
“비용··· 그리고 아공간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
그렇게, 완성된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띠링!
—
◈ ■※??■■&
-비용을 소모하여,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아공간에 담을 수 있습니다.
—
“그래, 그럴듯한 조건문이군.”
부엔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강력한 능력.
<카테고리 수용>과 비슷한 효과였지만, ‘카테고리에 해당해야 한다’는 조건이 사라졌다.
무엇이든 그에 상응하는 대가만 지불할 수 있다면 아공간에 들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게 주어질 수도 있었던, 그러나 갈피를 잃고 헤매던 능력의 전모였다.
다만···.
“이제 이름을 남았군.”
“그러네요.”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부엔디아에 따르면, 이름이 완성되어야 비로소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좋은 이름을 지어줘야 하네. 시스템이 겪고 있던 혼란을 단번에 해소해 줄 수 있는··· 그런 명쾌한 이름 말이지.”
각성 시스템은 내게 묻고 있었다.
대체 어떤 이유로 이 많은 물건들을 집어넣고 있는 거냐고.
갖은 돈을 쏟아부으며,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자신의 집에 집어삼키는 사람.
내가 판단하기에,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쇼퍼홀릭.”
물류센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상품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 모두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아우른 것은 불가능한 일.
하지만 다음 하나만큼은 분명했다.
‘사고 싶다.’
그것이 물류센터에 상자가 밀려드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였으니까.
나의 욕망이었든, 남의 욕망이었든지 간에.
그렇게 이름이 정해졌고···.
“알겠네. 그 이름으로 한번 해보지.”
부엔디아 또한 곧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츠츠츠츠···.
그가 손을 뻗어 올렸다.
굵게 빠져나온 흑마력은 얇디얇은 실처럼 풀려나왔고,
날카롭게 수직선을 세우며 내 각성 시스템을 찔러 들어왔다.
띠링!
띠링!
띠링!
메시지 창이 셀 수 없이 솟구쳤다.
아무런 내용도 적히지 않은, 텅 빈 네모 칸.
하지만 부엔디아의 실이 그들 하나하나를 옭아매자, 흐릿한 글씨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러곤,
차르르르륵!
차르륵!
그의 지휘하에, 질서정연하게 배치됐다.
마치 거대한 알고리즘 수식을 그리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붉게 점멸하는 메시지창이 중앙으로 떠올랐다.
흑마력 실을 조종하는 부엔디아가 부단히 손을 놀렸고, 메시지창에는 촘촘히 자수로 된 글씨가 하나씩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은···.
띠링!
—
◈ 쇼퍼홀릭
-비용을 소모하여,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아공간에 담을 수 있습니다.
—
“됐다.”
새로운 나의 능력이었다.
.
.
.
마석을 이용해 대상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
사실상 지금껏 개방해 온 능력 중, 가장 강력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카테고리와 상관없이, 돈만 내면 고스란히 먹어버릴 수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다만···.
‘마석이 별로 없는데.’
사정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았다.
경매장에서 제법 쏠쏠한 수익을 거뒀지만, 두 차례의 레벨업을 통해 200만 개에 가까운 마석을 소진했으니.
지금으로서는···.
띠링!
[남은 마석은 584,169 개입니다.]이 정도가 전부였으니.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앞으로의 레벨업까지 고려한다면, 점점 더 많은 마석이 필요한 상황.
‘정복 전쟁이라도 벌여야 하나···?’
하지만 그건 안 될 일이었다.
지구를 지키겠답시고 다른 차원은 침략하는 꼴이었으니.
다른 침략자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그때,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부엔디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네. 다른 이들의 마석을 갈취하는 건 상공회의소와 상위차원들로도 충분해. 차라리 그들이 모아 놓은 마석을 도로 빼앗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지. 혹시, ‘그라디바’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라디바···?”
“자네도 궁금했을 테지. 상공회의소가 왜 그렇게 마석을 끌어모으는지 말이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놈들은 마석을 이용해 ‘그라디바’라 불리는 조각상을 만들고 있네. 그것도 다차원 곳곳에 수십 개를 만들어 대고 있지. 하지만 그중에 완성된 건 아무것도 없어.”
정체불명의 거대 조각상을 완성하는 것.
놀랍게도 그것이 상공회의소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 조각상은 당장 내가 필요로 하는, ‘마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곧장 부엔디아에게 물었다.
“그 조각상을 빼앗아 오자는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닐세. 상공회의소가 눈에 불을 켜고 지키는 장소이기 때문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을 거야. 더욱이 그럴 필요도 없네. 한 번 그라디바에 녹아 들어간 마석은 다시는 채취할 수 없거든. 그보다는···.”
그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잃어버린 열정을 되찾은 사람처럼.
“그라디바로 향하는 루트를 장악하고, 그리로 모여드는 마석 운반선들을 탈취하면 어떻겠나? 위치는 내가 알려줄 수 있으니.”
그라디바로 향하는 상공회의소의 마석 운반선.
그거라면 틀림없이 상당한 양의 마석을 싣고 있을 것 같았다.
운반선들의 운항 루트는 완전히 비밀에 부쳐져 있었지만, 부엔디아의 탐지 능력으로 그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으니.
딱 하나, 운반선을 지키는 병력이 만만치 않다는 문제가 남아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우리 또한 상당한 전력을 확충한 터였다.
“끼얏호!”
“아, 파울!”
죄수들이 즐겁게 농구를 하고 있었다.
능력의 제한이 사라진, 초능력 슈퍼 리그.
수용소에 있던 마도구를 파괴한 덕분에, 그들 모두가 왕년의 능력을 되찾았다.
‘생각보다 라인업이 화려한데?’
금고 털이범, 운항 통신 교란범, 차원 주가 조작범, 상습 밀수범까지.
그들 하나도 빠짐없이, 상공회의소가 지정한, 흉악한 ‘경제 사범’이었으니.
그렇게 우리의 다음 목표가 정해졌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럼··· 한 번 설계를 짜보죠.”
시원하게 털어먹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