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78)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78화(178/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78화
폭풍 속으로 (1)
-어?
딱 그런 표정이었다.
몸만 덩그러니 남은 채, 타고 있던 선체가 사라져버렸으니.
후다닥 줄행랑을 치려던 난민 녀석은 황망한 표정으로 우리를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슈루루룩!
금빛으로 빛나는 기다란 붕대가 녀석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건······.”
뒤를 돌아보니, 죄수 한 명이 붕대 끝을 잡고 있었다.
급박한 상황에 맞춰, 눈치 빠르게 능력을 발휘해 준 것.
휘리릭! 휘리리릭!
붕대가 금세 놈의 팔다리를 감싸 쥐었고······.
“여엉-차!”
슈우우욱!
그대로 끌려온 난민은 가뿐하게 운반선의 갑판 위로 안착했다.
온몸이 꽁꽁 포박된 채로.
.
.
.
“십년감수했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고스란히 녀석을 놓쳤을 것이다.
상공회의소의 시선을 피하는 입장에서, 천공섬을 몰고 추격하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었으니까.
당장의 위험을 벗어났으니······.
“그럼 이제······.”
남은 일은 다가올 위험을 예방하는 일이었다.
휘이이이익!
가장 먼저 흑마력으로 난민을 잠재웠다.
나 또한 포탈을 열어 아공간에 곤히 잠든 녀석을 던져 넣었다.
그다음, 부엔디아는 갑판을 돌아다니며 천천히 흑마력을 피워올렸는데,
난민에게 했듯 자욱이 깔린 ‘수면’ 마법을 이용해 운반선의 선원들을 무거운 잠에 빠뜨렸다.
그 결과, 몽롱한 보랏빛 연기가 자욱하게 깔렸고······.
“······.”
“······으므므······.”
털썩!
선원들이 정신을 잃은 채 하나둘 고개를 떨궜다.
그들로부터 빼앗았던 각종 장비를 인원수에 맞춰 다시 출하했고,
“자자, 빨리들 끝내자고!”
죄수들은 짝짝 박수를 쳐 가며, 쓰러진 선원들에게 다시 조끼를 착용시켜 주었다.
우리와 만나기 전, 그대로의 상태로.
마지막으로, 부엔디아는 잠든 선원들의 머리에 한 번 더 흑마력을 주입했다.
“지난 두 시간 정도를 다른 기억으로 대체할 걸세.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경험을 짜깁도록 했으니······ 아무 일 없이 평소처럼 갑판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고 기억하게 될 게야. 운반선이 약탈당했다는 생각은 꿈에도 모르겠지.”
그들은 항해를 계속할 것이었다.
그라디바에 전달할 마석이 깡그리 털려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 다음 배가 언제쯤 도착할지 알아보고 오지.”
“부탁드립니다.”
선원들의 기억 조작을 끝마친 뒤.
나는 부엔디아와 함께 조타실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는 통신 장비 쪽으로 다가가고는, 얇고 길게 영수증처럼 출력된 통신 기록을 살펴보았다.
“분명 다음 궤도를 지나는 다른 운반선과 연락을 주고받았을 걸세. 혹시나 궤도가 겹쳐 서로 충돌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인데······ 계산해 보면 다음 타겟이 언제 우리 주변을 지나는지도 얼추 알아맞힐 수 있을 게야. 어디······.”
팔락.
그의 주름진 손이 통신 기록을 펼쳐 들었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없다고······?”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기록을 내려다보았다.
눈가에 주름을 접어가며, 깨알 같은 글씨를 읽어 내려가는 부엔디아.
하지만 그런다 한들, 없는 정보가 새로 생기는 건 아니었다.
“왜 그래요?”
“최근 다른 운반선과의 통신 기록이 없다시피 하네. 적어도 근방 24시간 거리 내에 다른 운반선이 없다는 뜻인데······.”
“운반선이 없다고요?”
그 또한 놀란 기색이었다.
수십 척의 운반선이 맴돌 것이라 예상했지 않았던가?
지금만 해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첫 번째 타겟을 무사히 털어먹은 참이었다.
갑작스러운 변수에 생각이 많아지려던 참이었지만······.
“일단 들어가시죠.”
우리는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쓰러진 선원들의 수면이 서서히 풀려가고 있었으니.
뭐가 됐든······.
“잘 먹었습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곤, 일행들과 함께 아공간으로 돌아왔다.
.
.
.
“······잘 자네.”
아공간에는 조금 전 붙잡은 난민이 있었다.
녀석은 몸을 새우처럼 웅크린 채 곤히 잠이 들어있었는데,
부엔디아는 이번에도 역시 그 앞에서 흑마력을 피워 올렸다.
우우웅!
보랏빛 연기를 자욱하게 깔아두며, 그가 내게 물었다.
“이 친구도 기억을 조작하면 되겠나?”
“음······ 그 전에, 일단 대화라도 먼저 한 번 시도해 보죠?”
어차피 도망갈 수도 없는 상황.
우리는 기억 조작은 다음 차례로 미뤄둔 뒤, 놈에게 먼저 몇 가지를 물어보기로 했다.
정체는 무엇인지.
왜 이 주변을 얼쩡거린 것인지.
다음 운반선은 언제 만날 수 있는지 등등.
그 중 첫 번째는 부엔디아가 내게 설명해 주었다.
“그라디바와 그 궤도 사이에는 ‘차원 틈새’라 불리는 불균형한 지대가 있다네. 그만큼이나 위험하고 불안정한 장소지만······ 그런데도 멸망한 차원민 중에는 이곳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지.”
따악!
부엔디아가 손가락을 튕겨 녀석을 깨웠다.
죄수들까지 모여 지켜보는 가운데, 녀석과의 대화를 시작했지만······.
“정신이 드나? 네게 물어볼 게 있다.”
“······히익.”
“······?”
녀석은 그대로 창백하게 굳어버렸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몸을 벌벌 떨어가며 주변을 살필 뿐.
겁에 질린 녀석은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단 한 마디도 대답해 주지 못했다.
‘······그냥 기억을 지워버려야 하나?’
겁에 질린 건 이해하지만, 이대로라면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
상공회의소에 흔적을 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하는 수 없이 부엔디아가 다시금 흑마력을 피워올리기 시작했을 즈음······.
“어라? 너 제르 패거리 아니냐?”
“······!?”
죄수 한 명이 빼꼼 고개를 빼 들며 다가왔다.
운반선에서 원반 고리를 던지며 활약했던 금발 머리 재소자, 브란도.
그가 어딘가 낯이 익다는 듯, 난민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브란도 님?”
“그래, 나다. 니들 왜 여기에 있냐?”
난민 또한 마찬가지였다.
얼굴을 보자마자 이름이 튀어나왔으니.
그제야 흑마력을 거둬들인 부엔디아가 브란도에게 물었다.
“아는 자인가?”
“그렇죠, 제르라고 제 고향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쪽 패거리에 있던 놈이에요.”
브란도의 차원은 이미 멸망한 지 오래였다.
그가 상공회의소에 저항하는 ‘경제사범’이 되는 사이, 제르라는 인물은 이곳 차원 틈새에 둥지를 튼 채 난민이 되어버렸던 모양.
어찌 되었든······.
“이제 말이 좀 통하겠네.”
역시나 고향 사람이 제일이었다.
브란도 덕분에 난민 녀석의 긴장이 충분히 풀어진 것 같았으니.
“그러니까 저희는······.”
그제야 녀석으로부터 자초지종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
.
.
“······운반선들이 떠나고 있다고?”
“예······. 3할 정도는 이미 자리를 뜬 상황이고, 나머지도 순차적으로 궤도를 탈출할 겁니다.”
우리로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궤도를 따라 운반선들을 하나하나 털어먹으려던 계획.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운반선들이 그라디바를 떠나가고 있었다.
난민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차원 틈새에는 안팎으로 갖가지 주파수 신호가 전해져 들어와요. 우리 제르 대장은 그걸 해석할 능력이 있어서······ 기상 변화가 있을 때마다 상공회의소에 언질을 주곤 했죠. 그쪽에선 대가로 기본적인 자원 같은 걸 보충해 주곤 했고요.”
이들은 운반선들의 기상청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라디바에서는 이따금 거대한 에너지로 이루어진 플라스마가 발생했고, 이에 대한 주의를 주는 등 운반선들의 항해에 도움을 주고 있었으니.
하지만 얼마 전, 그들에게 한 가지 변화가 찾아들었다.
“차원 폭풍의 징조가 포착됐어요.”
차원 폭풍.
처음 듣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고,
부엔디아는 내게 간단히 그 뜻을 설명해 주었다.
“그라디바가 주기적으로 방출하는 거대한 에너지 파장의 일종이네. 범위가 방대하기도 하고 위력도 상당해서, 휩쓸리는 순간 이승에서 하직하는 건 한순간이지······. 하지만 지금은 차원 폭풍이 일어날 시기가 아닐 텐데······?”
“저희도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징조 현상이 워낙 뚜렷한 탓에 도무지 두고 볼 수가 없더군요.”
그리고 바로 이 폭풍이, 그가 운반선 주위를 기웃거린 이유였다.
난민이 마저 말을 이었다.
“당연히 평소처럼 상공회의소에 소식을 전했습니다. 머지않아 수십 척 모두가 폭풍이 휘말릴 테니까요. 동시에 요청했죠. 폭풍이 가라앉기까지만이라도 우리 난민들도 함께 데리고 나가 달라고요. 하지만······.”
“뒤통수를 맞았군.”
“예······. 운반선을 하나둘 철수시키면서도, 구출 요청에는 묵묵부답이더군요.”
상공회의소는 대답이 없었다.
그라디바에 배치되어 있던 운반선들을 하나둘 철수시킬 뿐.
참다못해 난민들이 아직 남아 있는 운반선의 위치를 탐색했고, 제발 자신들을 함께 데리고 나가주십사 호소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렇게 우연히 보게 된 거죠.”
우리의 약탈을 두 눈으로 목도한 뒤,
온몸이 포박당한 채 이곳, 아공간에 잡혀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녀석은 브란도가 없었다면 그대로 거품을 물고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며, 놀란 가슴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머지않아 닥쳐올 거대한 폭풍이었다.
폭풍이 닥친다면 그 틈새에 거주하던 난민들 모두가 몰살당하게 될 테니.
하지만 자력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방법이 없었기에, 어떻게든 외부의 도움이 절실할 따름이었다.
“음.”
우주 공간을 휘감는 거대한 폭풍.
그 아찔한 광경을 상상하며, 나는 녀석에게 물었다.
“그 폭풍을 멈출 방법은 도무지 없는 건가?”
“이론적으로는 사전에 핵을 소거시키면 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르 대장은 불가능할 거라고 보고 있어요. 어떻게든 탈출하려고 한 것도 그 때문이고요.”
기상청의 입장은 비관적이었다.
그저 차원 틈새에 끼어있는 자신들을 구출해 주기를 바랄 뿐.
아공간 내부를 슬쩍 곁눈질한 녀석이, 내게 바싹 엎드렸다.
“이곳은······ 우주선 내부인 거지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희도 함께 데리고 나가주실 수는 없으실지요······!?”
“······.”
탈출을 돕는 것쯤이야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나는 녀석들을 구출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급급하게 몸을 피하는 것이 아닌, 아예 차원 폭풍 자체를 없애버리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으니까.
그래야······.
‘안 되지······. 아직 간에 기별도 안 갔는데.’
다시금 수십 척의 운반선을 평화롭게 털어먹을 수 있을 테니까.
폭풍을 성공적으로 제거하고, 제르라는 녀석을 통해 그 사실을 상공회의소에 전달할 수 있다면, 떠나간 운반선들마저 이곳 그라디바로 돌아와 줄 터였다.
“안내할 수 있어? 그 차원 틈새인지 뭔지.”
“······!”
난민의 표정이 감동으로 물들었다.
차원 틈새에 위치한, 그들의 난민촌으로 찾아가 주겠다는 뜻이었으니까.
‘이거면 되겠지.’
폭풍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대량의 마석을 얻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전해 들은 이야기로 볼 때, 제르는 폭풍을 제거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으니.
그것이 계획을 다시금 정상 궤도로 돌려놓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라디바······.’
혹시 몰랐다.
미지에 싸인 상공회의소의 조각상.
차원 틈새에서라면, 그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