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79)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79화(179/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79화
폭풍 속으로 (2)
그라디바의 난민과 이야기를 마친 직후,
우리는 그가 타고 왔던 우주선으로 향했다.
너덜너덜한 장갑은 여전했지만, 그가 타고 왔던 그대로 아공간에 그대로 수용되어 있었으니.
“이건······.”
사라진 우주선이 고스란히 놓여있는 걸 본 난민은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훌쩍 조종석으로 들어가 핸들에 꽂혀 있던 얇은 판때기를 꺼내주었다.
차갑게 빛나는 은색 판 위로, 생채기 같은 빗금이 만져졌다.
“음, 이걸 통해서 돌아가는 건가.”
“맞습니다. 지금껏 지나온 항로가 기록되어 있거든요.”
판에는 지그재그 모양의 직선이 빼곡하게 일렬로 늘어져 있었다.
얇은 바늘로 그려진 아날로그 좌표판이었는데, 판때기를 반전시켜 꽂아 넣으면 곧장 선체에 복귀 동선이 입력되는 구조였다.
난민은 장갑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낡은 우주선을 두드리며 덧붙였다.
“파괴된 운반선이나 다른 해적선들의 잔해를 모아 만든 선체입니다. 보긴 이래도 시스템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아마 타고 오신 물건에도 호환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의 말대로였다.
천공섬의 운항 시스템은 운반선과 같은 설비를 공유하고 있었고,
좌표판을 뒤집어 꽂아 넣자, 차원 틈새로 향하는 길이 홀로그램처럼 펼쳐졌다.
물론, 천공섬의 윤곽은 여전히 못생긴 돌덩어리 그 자체였기 때문에······.
철컥!
드르르르륵!
“허허허허허.”
운전만큼은 이번에도 역시 이용수가 맡아줘야 했다.
슈우우우우욱! 파앙!
좌표판의 직선이 끊어지는 지점에서 몇 차례 공간을 도약했다.
그라디바에서 흘러나오는 차원풍의 영향으로 선체가 수 차례 흔들렸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좌표판이 안내하는 방향을 따라 곧장 반나절 가량을 항해했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도 ‘그라디바’의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텅 빈 우주를 공연히 바라보고 있는 내게 부엔디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었다.
“그라디바는 상공회의소의 마석이 모여드는 장소이지만······ 하나의 물리적 실체가 아닐세. 오히려 그 모두를 끌어당기는 거대한 욕망의 집약체라고 볼 수 있지. 물살을 집어삼키지만, 정작 자신은 텅 비어있는 배수구와 같다고나 할까.”
마치 블랙홀과도 같았다.
거대한 중력으로 주변 일대를 집어삼키지만,
빛까지 집어삼키는 바람에 정작 눈에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라디바를 둘러싼, 그 아슬아슬한 경계면에서만큼은 이야기가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마치 수면으로 잠수하듯, 좌표판에 찍힌 직선이 수평선 아래를 내다 박았을 때,
“······아.”
우리는 두 눈 똑똑 그라디바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으니까.
쿠구구구······.
노랑과 보랏빛 색채가 점점이 박혀 있는 거대한 푸른색 파도.
그 물결이 소용돌이처럼 둥글게 뭉쳐 올랐고, 위로 쏟아진 마석 덩어리들은 저마다 펑펑 터져 나가며, 은은한 하늘빛의 가스 구름이 되어 주변을 뒤덮였다.
두꺼운 유채 추상화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
그라디바의 모습은 지금껏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던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한눈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그 크기는 거대했으나, 한쪽 면으로부터 반투명한 직선이 구름길처럼 나선방향으로 꼬아져 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 한 곳에서는······.
“······사람?”
정체 모를 수십 명의 사람이 줄을 이루며 얇은 길을 내딛고 있었다.
익숙한 풍경이라는 듯, 난민은 내게 덧붙였다.
“구직자들입니다. 상공회의소의 직원이 되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들이죠.”
“구직자······?”
그들은 한걸음 발을 내디딘 뒤, 눈을 떠 그라디바를 한참이고 응시하고는 다시금 눈을 감아 중얼중얼 무언가 암송하기를 반복했다.
고난의 길을 담담히 걸어 나가는, 경건한 수도사와도 같은 모습.
무언가 할 말이 있었던지, 이번에는 부엔디아가 설명해 주었다.
“상공회의소의 직원이 되기 위해서는 마석에 대한 특유의 감수성을 체화해야 하네. 얽히고 섥히는 세계를 순수한 마석의 차이로 읽어낼 수 있어야 하지. 그라디바는 앞선 것도 늦은 것도 없는······ 순수한 차이의 종합 그 자체. 가족도, 친구도, 사사로운 인연까지도. 순수한 아름다움을 위해 망설임 없이 내던질 수 있는 이들만이 상공회의소의 직원이 될 수 있으니까.”
신비롭고 고상한 상공회의소의 내막.
부엔디아는 뿌득 이를 갈며, 나지막이 덧붙일 뿐이었다.
“그런 끔찍한 놈들만이······.”
그리고 그때,
화아아아악!
덜컹!
“윽!”
화들짝 놀란 이용수가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그라디바의 소용돌이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갑작스레 덮쳐왔으니.
우리는 뒤집힌 선체에 부유하며,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흑색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난민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덧붙였다.
“그라디바가 내뿜는 플라스마입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요······.”
머지않아 차원 폭풍이 예고된 상황.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플라스마의 파도는 거대한 재난의 전조 현상 중 하나였다.
“하하······.”
한순간에 저승을 오간 기분.
넋이 나간 듯한 이용수를 위해, 부엔디아가 천천히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조금만 힘내게. 거의 도착한 것 같으니······.”
그의 말대로, 우리는 좌표판의 끝에 다다라 있었다.
얼추 10여 분가량을 마저 날아간 결과······.
“······저곳인가.”
차원 틈새.
즉 그라디바의 경계면에 자리한 정착촌이 눈에 들어왔다.
***
슈우우우우······.
난민이 암호가 담긴 착륙 신호를 날려 보냈고,
덕분에 우리는 아무런 제지 없이 정착촌에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다.
우르르르!
전부 다 합하면 오십 명가량 될까?
멀리 나갔던 난민의 복귀 소식에, 그들 모두가 몰려나온 것 같았다.
“제르 대장님······!”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그중에는 난민 정착촌의 수장, 제르도 있었다.
차원 전파에 감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근방 우주의 일기를 예보할 수 있다던 그.
차원 폭풍의 예후를 읽어낸 것 또한 그의 재주였다.
난민이 제르에게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했고,
나와 부엔디아, 그리고 이용수를 그에게 소개해 주었다.
그가 우리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려던 즈음······.
“제르, 이 새끼!”
“브, 브란도?”
내가 열어둔 포탈을 통해, 수용소의 죄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르는 살아 돌아온 고향 친구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감옥에 있는 거 아니었어?”
“왜, 밀고해서 도로 집어넣으려고?”
“아니, 그게 아니라······.”
상공회의소에 저항하다가, 끝내 옥살이까지 한 브란도였다.
제르가 상공회의소와 도움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이 좀처럼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
제르는 어쩔 수 없었다는 듯,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도무지 발붙일 곳이 없었어. 자유 개척에 끼어들거나 다른 중위 차원에 신세를 져야 했는데······ 침략에 참여하고 싶지도 않았고, 다른 차원에서도 받아주질 않았거든.”
차원이 아예 멸망했다고 했던가.
침략자들에 의해 모든 땅을 빼앗긴 뒤, 그들은 오갈 데 없는 유랑민으로 전전했다.
그러던 중 그라디바의 일기를 읽을 수 있는 제르의 특기를 살려, 이곳 경계면에 둥지를 틀게 됐다는 것.
하지만 그라디바로부터 끊임없이 차원풍이 쏟아졌던 탓에, 그들로서도 상공회의소의 지원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차단막을 주기로 설치해야 했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지. 비겁한 소리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어. 상공회의소로부터 기후 조사 명목으로 수고비도 받고, 그라디바를 오가는 구직자들에게 자잘하게 장사도 할 수 있었으니까.”
집들은 차원풍에 떠밀린 우주선들의 잔해로 만들어졌고,
구직자들의 길이 이어지는 얇은 차단막 그늘에는 싸구려 식료품이나 지팡이, 침낭 따위와 같은 물건들이 매대에 진열돼 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치열한 삶의 흔적들이었으나······.
“정말이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어.”
제르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곧 차원 폭풍이 몰려와 정착촌을 뒤덮어 버릴 테니.
상공회의소는 이들의 구조 요청을 가뿐히 무시했고, 그라디바를 오가는 구직자들 또한 그들의 운명을 하찮게 관조할 뿐이었다.
애당초 그들은 직원이 되기 위해 인정(人情)을 내버려야 하는 냉혈한들이었으니.
그때, 부엔디아가 제르에게 물었다.
“이보게. 갑자기 폭풍이 발생한 원인이 뭔가? 차원 폭풍의 주기는 아직 수십 년이나 남아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아, 그게 말입니다······.”
부엔디아에 따르면, 차원 폭풍은 일종의 자연적인 현상이었다.
상공회의소가 실어 나르는 마석에는 어쩔 수 없이 불순물이 섞여 있게 되는데,
그라디바는 내부의 용융 과정을 통해 순수한 마석 물질로 정제되고, 그로부터 걸러진 불순물이 터져 나오게 된다고.
자잘한 불순물은 앞서 보았던 플라스마 파도를 통해 분출되지만,
그럼에도 걸러지지 못한 불순물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거대한 차원 폭풍을 통해 방출된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당연한 이야기지만, 불순물의 양이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이 최근 들어 가속화됐다는 것.
소용돌이에 박혀 있던 색색의 점들이 바로 그 불순물이었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것만 같은 위험 속에서, 그라디바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색채를 뽐내고 있었으니.
이에 질세라, 상공회의소의 직원을 꿈꾸는 구직자들 또한 이례적으로 급증한 상태였다.
행여나 자칫 탈출 시점을 놓치기라도 한다면, 그들 모두가 폭풍에 휘말려 산채로 산화하게 되겠지만.
“불순물이 왜 늘어났는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플라스마부터, 색점 발광, 소용돌이 중첩 같은······ 전조 증상들은 모조리 나타나고 있어요. 새어 나오는 파장으로 미루어 보자면······ 당장 내일 폭풍이 시작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입니다.”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제르는 한 가지만큼은 확신하고 있었다.
상공회의소 또한 폭풍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걸.
“전조 증상들을 보고했을 때에도······ 관할 직원들은 그리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폭풍을 예고한 우리가 귀찮다는 듯한 반응이었죠. 공연한 사실을 떠벌리지 말라는 듯이······. 그 이후로는 아예 연락이 닿질 않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이야기를 끝마쳤다.
상식대로라면 최대한 빨리 이곳 경계면을 벗어나야 하는 상황.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탈출이 아닌 해결이었기에, 곧장 제르에게 질문을 던졌다.
“폭풍을 멈출 방법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 그건 그냥 지나가다 한 말이었을 뿐입니다. 이론적으로나 그렇다는 거지, 현실적인 방법이 아니에요.”
제르는 자신의 공상에 불과했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내가 끈질기게 물어보자 결국 그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아시다시피 폭풍의 원인은 그라디바에 축적되는 불순물입니다. 지금 여섯 개의 소용돌이가 연쇄적으로 맞물리고 있는데, 그중 절반이 한 번에 합쳐지면서 폭풍이 급속도로 가속화되는 시점이 있을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때 표면에 드러난 불순물을 순간적으로 제거할 수만 있다면······ 폭풍도 동력을 잃고 천천히 사그라들겠죠.”
그러곤, 다시금 한숨을 꺼뜨리며 내게 덧붙였다.
“부탁하시니 말씀은 드렸습니다만······ 그라디바 한복판에 떠오른 불순물을 무슨 수로 제거하겠습니까?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차원풍에 휩쓸려 가루가 될 텐데요.”
“그야······.”
정착촌의 난민들은 물론이요, 주변을 맴도는 구직자들까지.
그라디바는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성역이었다.
하지만······.
“그 불순물, 사들이면 되죠.”
적어도 살 수는 있었다.
돈만 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