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8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80화(180/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80화
폭풍 속으로 (3)
“불순물을······ 산다고요?”
혹여나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제르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내게 되물었다.
아무래도 내 능력을 모르는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던 모양.
간단하게 능력을 설명해주자, 그는 눈빛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깔끔하게 제거할 수만 있다면······ 분명 폭풍은 소멸할 겁니다. 아니, 그뿐일까요? 폭풍이 다가올 만한 시기를 훨씬 뒤로 미룰 수 있겠어요.”
“어디서 불순물을 확인할 수 있죠? 적어도 볼 수는 있어야 해서.”
“그거라면 어렵지 않죠. 안내하겠습니다.”
그가 좋은 위치가 있다며 몸을 일으켰고, 우리 또한 그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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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가 앞장선 곳은 구직자들이 걷는다던, 경계면의 기나긴 띠였다.
띠는 그라디바를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었는데,
무빙워크를 타듯 더 빨리 이동하거나, 혹은 반대로 걸으며 제자리에 머물 수도 있는 구조였다.
저벅저벅.
그렇게, 띠를 따라 얼마간 걸어갔을 즈음······.
“음?”
상공회의소의 구직자들.
그들이 반대 방향으로부터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그냥 걷고만 있다고 봐야 하나.’
그들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었다.
그라디바를 향해 시선을 던진 채, 행진하듯 기계적인 걸음을 내딛고 있었으니.
코앞까지 가까워진 우리를 조금도 의식하지 않고, 그저 하염없이 눈이 빠져라 그라디바를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제르가 익숙하다는 듯 내게 덧붙였다.
“저 치들은 매일 저러고 있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하시죠.”
해바라기처럼 그라디바를 바라보는 구직자들.
저들은 언젠가 상공회의소의 직원이 되어 차원 곳곳으로 흩어질 것이었다.
구직자들, 그리고 상공회의소의 생태를 묻는 내 질문에, 제르는 천천히 대답해 주었다.
“상공회의소는 정기적으로 ‘공채’를 진행합니다. 경계면에 그들의 우주선이 착륙하는데, 구직자들을 태워 면접 장소로 데려가죠. 합격하게 되면 인재개발원으로 들어가 적성이나 특기를 평가받고······ 재능에 따라 개척 차원이나 중상위 차원, 정말 가끔은 본청에 발령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구직자들은 경계면의 띠를 하염없이 맴돌았다.
한 바퀴 지날 때마다 정착촌에서 필요한 식량이나 물품을 구매하곤 했기에, 제르는 구직자들에 관한 것이라면 제법 이것저것 알고 있노라 덧붙였다.
정작 저 ‘구직자’들이 상공회의소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출신이야 다양합니다. 멸망한 차원의 생존자부터, 상위 차원의 도련님까지······. 그라디바 앞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어지니까요.”
“거참······.”
정말이지 수도사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귀천까지도 내던지고 수행 길에 나서는 자들이라니.
“······.”
나는 무심코 방금 지나쳐 온 구직자들을 돌아보았다.
시선이 무색하게 우두커니 그라디바를 바라보고 있는 그들.
그러던 중······.
츠츠츠······.
구직자들의 머리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찰나의 순간에 잘 못 본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착시 현상인지 알 수 없었지만,
‘뭔가······.’
무언가 그들로부터 스멀스멀 빠져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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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자들을 지나친 뒤,
우리는 반투명한 경계면의 띠를 따라 조금 더 걸었다.
그러자 오래지 않아, 반원 모양의 뭉툭한 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깁니다. 따라오시죠.”
그곳에는 녹슨 철판으로 덧댄 구조물이 한 채 지어져 있었는데, 벽면에 붙은 사다리를 통해 곧장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래봤자 3층 남짓한 높이였지만.
텅! 텅!
층계에 발소리를 울리며 옥상에 다다랐다.
전체적으로 허접한 모양새였지만, 중앙에는 제법 그럴듯한 모양의 긴 원통이 고정돼 있었다.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이건······.”
그것이 망원경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바깥으로 넓게 퍼져나가는 원통이 그라디바를 향해 있었으니.
제르가 원통 하단에 끼워져 있던 덮개를 벗기자, 깨끗한 유리 렌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나마 좋은 부품을 구해 만든 겁니다. 여기, 이쪽으로 눈을 한번 대어보시죠.”
그의 말대로 눈을 가져다 댔다.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그라디바의 무늬가 눈앞에 드리웠고,
결정적으로는 제르가 말했던 여섯 개의 소용돌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기서 불순물이 튀어나올 거라는 거죠?”
“예, 말씀드렸다시피 우측에 있는 소용돌이 세 개가 모여 하나가 되면······ 불순물이 솟아오를 겁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망원경으로부터 물러났다.
그러자 이번에는 부엔디아가 관측을 시도했다.
그는 흑마력을 이용해 허공에 여섯 개의 좌표를 찍어두고는, 소용돌이의 움직임에 대해 제르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이내 폭풍이 시작될 시점을 정확히 계산해 냈다.
“계산이 틀리지 않았다면······ 모레 이 시간대에 시작될 것 같군.”
“모레······.”
생각 이상으로 가까운 날짜였다.
때맞춰 불순물을 제거한다면 차원 폭풍을 잠재울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된다면 이전처럼 평화롭게, 상공회의소의 운반선들을 털어먹을 수 있을 것이었다.
결행일은 모레.
우리는 그날, 그 시간에 맞춰 다시 이곳 천문대로 돌아오기로 했다.
***
그렇게 다다음 날이 되었다.
부엔디아가 계산했던 것보다 족히 여섯 시간은 이른 시점.
그럼에도 서둘러 나선 것은, 갑작스레 폭풍의 조짐이 거세졌기 때문이었다.
부엔디아가 소용돌이의 위치를 다시 관측했고,
새로 좌표를 찍어 실시간으로 계산식을 수정했다.
그 결과,
“이상하군······.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졌어. 아무래도 바로 준비해야 할 것 같네.”
벌써부터 조짐이 드리우고 있었다.
벌써 두 개의 소용돌이가 합쳐진 상황.
소용돌이는 그대로 북상하면서, 다른 소용돌이 하나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저것만 겹쳐진다면······.’
이제 불순물이 표출되며 차원 폭풍이 급속도로 가속화될 터.
더 늦어지기 전에 그 불순물을 아공간에 수용해야 할 것이었다.
쿠구구구구······.
불길한 소리가 그라디바로부터 쏟아져나왔다.
거대한 진동으로 인해 경계면 띠가 우글우글하게 찌그러졌고,
차원풍이 요동치며 천문대 앞에 세워놓은 차단막이 현수막처럼 펄럭였다.
휘이이이이잉!
덜컹! 드륵!
천문대 또한 남아나질 않았다.
그라디바로부터 불어오는 차원풍이 점점 더 거세진 탓에, 급기야는 울타리처럼 둘려 있던 철판들이 훌렁훌렁 휩쓸려 날아가 버렸다.
한편······.
“아직인가······?”
기다림의 연속.
주변 기물들이 하나둘 깎여 들어가던 중,
마침내 두 개의 소용돌이가 서로 인접했다.
휘이이이이익! 휘이이익!
두 개의 소용돌이는 서로를 채찍질하며 속도를 겨뤘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집어삼키는 형국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나왔다!’
불룩.
검은 비석처럼 생긴 불순물이 소용돌이 중앙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나 또한 때를 놓치지 않았다.
즉시 팍스를 불러냈고, ‘쇼퍼홀릭’을 이용해 불순물을 아공간에 수용하라 지시했다.
하지만······.
띠링!
[불가합니다.]“뭐? 왜?”
[눈앞에 보이는 대상만 아공간에 저장할 수 있습니다.]무엇이든 수용할 수 있었던 아공간 능력.
팍스는 ‘눈앞에 보이는 대상’이라는 조건을 강조하고 있었다.
지금껏 눈에 보이는 대상이면 무엇이든 저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젠장, 눈 ‘앞’이어야 한다고······?”
놀랍게도 거리 제한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금껏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수용이 불가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그라디바는 먼 것을 넘어, 어찌 보면 하나의 ‘천체’라고도 할 수 있었으니.
밤하늘의 별을 눈에 담을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눈 ‘앞’에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쿠우우우웅!
“정겸 씨! 아직입니까?”
뒤늦은 깨달음의 대가는 컸다.
천문소의 기둥 한 짝이 그대로 날아가 버렸으니.
차원풍은 점차 거세게 들이닥쳤고, 부엔디아와 제르가 괴로움에 몸서리쳤다.
“흐읍······!”
“끄으으윽······!”
나와 이용수에 비해 현저히 위계가 낮은 두 사람.
나는 포탈을 열어, 서둘러 그들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포탈을 넘어가며, 부엔디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어떻게······ 어떻게 할 생각인가?”
다른 방법이 없었다.
눈 ‘앞’에 있는 대상만 수용할 수 있는 아공간 능력.
그렇다면 저 그라디바를 눈 ‘앞’에 담아주는 수밖에.
나는 새로 천공섬을 출하해, 이용수와 함께 폭풍을 뚫고 들어갈 작정이었다.
“출하.”
덜컹!
경계면 띠 위로, 아슬아슬하게 천공섬이 출하됐다.
땅콩 모양으로 주변을 깎아낸 소행성 버전의 천공섬으로, 우리를 불순물에 가깝게 데려다줄 것이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요.”
“면목 없습니다, 용수 씨.”
이제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통했다.
우리는 훌쩍 조종 칸에 올라탔고, 이용수는 그대로 시동을 걸었다.
사방에서 차원풍이 몰아쳤음에도 그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오늘은 반품 택배 수거군요.”
“네, 그 전에······.”
띠링!
[대상의 가격은 1,913 개입니다.]지이이잉!
이륙하기 전, 나는 천문대에 설치돼 있던 물건 하나를 사들였다.
정착촌은 물론이고, 이곳 천문대에도 세워져 있던 차단막.
애당초 이것은 차원풍을 막아내기 위해 설계된 물건이었으니.
“사들여.”
[알겠습니다.] [남은 마석은 1,464,528개입니다.]번쩍!
아공간에 수용된 차단막이 사라졌다.
그 즉시······.
콰과과과과과!!
불어닥친 차원풍이 우리가 서 있던 천문대를 그대로 집어삼켰다.
산산이 가루가 된 채 나부끼는 잔해들.
말로만 듣던 차원 폭풍이 시작되고 있었다.
키이이이이잉!
이용수가 컨트롤 스위치를 올렸다.
천공섬이 연료를 뿜으며 그라디바를 향해 솟구쳤고······.
“출하.”
차아아아앙!
나는 우리의 진로를 따라, 눈앞으로 차단막을 전개했다.
불어닥친 차원풍이 차단막을 때린 덕에, 천공섬을 무사히 날아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푸과과과과과곽!
차단막은 종잇장처럼 구겨진 채, 옆으로 휙 하니 날아가 버렸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
예상했던 바였다.
나는 곧장 <자동 출하>를 발동했고, 5초 단위로 끊임없이 차단막을 전개했다.
슈콰아아아아악!
불순물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는 상황.
가면 갈수록 폭풍이 거세졌던 탓에, <자동 출하> 시간을 실시간으로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4초.
그리고 3초.
반투명한 차단막이 속절없이 걷어졌지만,
그라디바에 박힌 불순물의 모습 또한 점차 뚜렷해졌다.
망원경이 아닌, 육안으로.
휘리리릭!
철컥! 기이이이이잉!
이용수 또한 바삐 손을 움직였다.
위아래로 달린 레버를 10초 단위로 수정했고,
사선으로 불어오는 폭풍의 결을 따라, 수동 기어를 그림 그리듯 휘어잡았다.
키를 부여잡은 채 거대한 파도와 맞서는 항해사처럼.
“······!”
차단막은 실시간으로 걷어졌고,
<자동 출하>의 시간 또한 점차 짧아졌다.
이제 불과 2초.
현재 출하의 쿨타임은 최대 1초였다.
사실상 거의 한계치에 다다랐다는 뜻.
하지만 여전히 내 능력은 그라디바에 닿지 못했다.
띠링!
[불가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대상만 아공간에 저장할 수 있습니다.]“젠장······.”
그렇게, 출하 시간은 1초에 다다랐다.
파스락!
파스락!
눈앞에서는 실시간으로 차단막이 구겨져 나갔고,
둥둥둥둥!
다라라락! 다라락!
조종칸의 레버들이 제멋대로 요동치며,
이용수가 끝까지 붙잡고 있던 핸들마저 뿌리째 뽑혀 나갔다.
파드드드드득!
차원풍에 휘말린 천공섬의 앞코가 빠르게 뭉개지기 시작했을 즈음······.
띠링!
[대상의 가격은 1,228,335개입니다.]마침내, 나는 그토록 고대하던 계산서를 받아 들 수 있었다.
‘······뭐가 이렇게 비싸?’
‘불순물’치고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
하지만 이제 와 돌이킬 수도 없었다.
나는 곧장 팍스에게 대답했고,
“사!”
[알겠습니다.] [남은 마석은 236,193 개입니다.]소용돌이에 박혀 있던 불순물,
검은색 비석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그렇게 폭풍의 핵을 이루던 불순물이 사라지자마자,
“아······.”
슈우우우우우우······.
휘몰아치던 소용돌이가 거품처럼 꺼져 들었다.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라디바는 빠르게 안정되어 갔고, 차원풍 또한 잦아들었다.
소용돌이가 거둬지자, 그라디바의 깨끗한 표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그것은 하나의 얼굴이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한 얼굴.
하지만 보면 볼수록 시야가 흐릿해지며, 좀처럼 기억에 담아둘 수가 없었다.
지나치고 나면 사라지는, 마주한 행인의 어렴풋한 인상처럼.
하지만 이 또한 잠시였다.
다른 소용돌이들이 몰려오며, 비어있던 공간을 순식간에 메워 버렸으니.
쿠구구구구······.
눈꺼풀이 덮이든, 얼굴은 묘연히 자취를 감출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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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일은 간단했다.
넝마가 된 천공섬을 <상품회수>로 거둬들인 뒤.
이용수와 함께 아공간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포탈을 타고 나가 천문대가 설치돼 있던 장소로 돌아왔다.
휘이이······.
안정을 되찾은 그라디바를 올려다보았다.
구직자들이 주변을 맴돌고, 어마어마한 폭풍을 내뿜는 정체불명의 조각.
지이잉!
나는 그 자리에 새로운 아공간 포탈을 설치했다.
“······.”
조금 전 나와 눈을 마주쳤던,
놈의 정체를 차근차근 두고 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