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81)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81화(181/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81화
공문서 조작 (1)
181화. 공문서 조작 (1)
그라디바에 박혀 있던 불순물을 걷어냈다.
폭풍은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고, 제르는 상공회의소의 운반선들이 궤도로 돌아왔노라 귀띔해주었다.
장애물도 없앴겠다, 우리는 이전처럼 다시 해적질에 돌입했고······.
“하나, 둘, 셋, 넷······.”
네 대의 운반선을 추가로 털어먹었다.
약 270만 개에 달하는 마석이 내 계좌로 쏟아졌다.
남아 있던 마석까지 합하면 거의 300만 개에 육박하는 양.
불순물을 빨아들이며 막대한 지출이 있었지만, 그 두 배 이상의 소득을 벌어들인 참이었다.
“일단 필요한 곳에는 썼고······.”
나는 곧장 레벨부터 올려두었다.
11레벨을 달성하고 남은 마석은 170만 개 정도.
레벨을 하나 더 올릴 수도 있는 액수였지만, 당장은 보류하기로 했다.
‘공짜 티켓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
11레벨이 되었으니, 원하는 대상 하나를 아공간에 넣을 수 있을 터.
하지만 곧장 12레벨을 찍는다고 해서 그 개수가 적립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일단은 이게 나아.’
12레벨까지는 능력을 소진한 다음에 올리기로 했다.
필요한 마석이야 그대로 계좌에 머물러 있을 테니.
‘그건 그렇고······.’
폭풍을 잠재운 뒤 목격했던, 그라디바의 얼굴을 떠올렸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 같은 기억 속.
나는 어쩐지 놈과 시선을 마주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대체 뭐였을까?’
그라디바를 맴돌며 마석을 탈취했다.
소용돌이에 꽂힌 불순물을 제거하며 폭풍을 막아냈다.
하지만 정작 그라디바의 정체에 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저 상공회의소가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정체불명의 조각상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
-난 봤어! 난 봤다고!
폭풍을 멈추고, 천문대에 포탈을 설치하고 난 뒤.
나는 일전의 구직자들이 흥분에 차 소리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 또한 찰나에 드러난 그라디바의 얼굴을 목도한 모양이었는데, 평생 그것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 환희에 젖은 얼굴로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네 번째 운반선을 정리하고 돌아오는 길.
나는 부엔디아에게 그라디바의 정체에 관해 한 번 더 질문했다.
그는 만물에 새겨진 자연의 회로를 읽어낼 수 있었고, 그라디바에 새겨진 ‘본질’마저 참오할 수 있었으니.
부엔디아는 환한 빛을 내뿜는 그라디바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조금은 환멸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완전한 아름다움. 그것이 그라디바에 속한 본질일세. 다시 말해······ 결코 완성될 수 없는 구조인 셈이지.”
완전한 아름다움.
과연 그런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
부엔디아는 아름다움이 보는 이의 시선에 달려 있으며, 모든 존재에게 통용되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그게 내가 상공회의소와 맞서기로 결심했던 이유일세. 놈들은 다차원에 그라디바라는 밑 빠진 독을 십수 개나 설치해 두고, 차원 존재들의 고혈을 쥐어짜 그깟 관상품에 쏟아붓고 있어. 그런 헛짓거리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네.”
부엔디아는 특유의 감응력으로 그라디바의 ‘본질’을 읽어냈다.
덕분에 다차원에서 모인 귀중한 자원이 한낱 장식품에 결집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고,
마르케스에 투신하며 상공회의소에 대한 대대적인 저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그것 뿐일까?’
나는 어딘가 석연찮은 기분이 들었다.
그라디바의 목적이 궁극적인 아름다움의 체현이라면,
그것이 다차원 곳곳에 열 몇 개나 뿌려져야 할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일단은 두고 보자.’
지금으로선 의문을 해소할 방법이 없었다.
천문대에 있던 위치에 아공간 포탈도 설치해둔 상황.
차원 폭풍을 막아낸 덕에 난민들의 정착촌도 지켜냈으니, 제르를 통해 그라디바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을 부탁할 생각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부엔디아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어쩔 셈인가?”
“일단은 지구에 들리죠, 다음 운반선이 오기까지 2주 정도는 걸린다면서요?”
천공섬은 지금 그라디바의 궤도를 돌고 있었다.
차원폭풍이 가라앉고, 상공회의소의 감시가 다시 시작된 상황.
우리는 또다시 평범한 소행성을 연기해야 했기에, 다짜고짜 다른 운반선을 향해 날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2주.
주어진 공전 주기를 따랐을 때, 자연스럽게 다음 운반선을 만나게 될 시점이었다.
‘무슨 월급 타 먹는 것 같네.’
주기적으로 돼지 저금통이 하나씩 날아오는 느낌이었다.
들키지만 아마도 계속 대량의 마석을 수급할 수 있을 터.
빵빵한 자본을 거느린 채, 레벨을 올리는 것은 물론, 가족들이나 팍스FC의 다른 각성자들까지도 지원할 수 있을 터였다.
“일단 들어가죠.”
이곳에서 할 일은 모두 마친 상황.
나는 부엔디아를 데리고, 포탈을 타고 아공간에 진입했다.
.
.
.
“후우.”
참으로 오랜만에 돌아왔다.
물론 아공간이야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거렸지만,
제대로 쉬는 일도 없이 통행로처럼 사용하는 것이 고작이었으니까.
“정겸아,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들어?”
어머니도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다.
막내아들이 지구를 구하겠답시고 바깥만 전전하고 있었으니.
그라디바에서의 일을 처리한 뒤, 참으로 오랜만에 어머니를 보러온 참이었다.
어머니는 직원 식당 부엌에 있었다.
선반에는 무언가로 똘똘 뭉쳐놓은 갈색 덩어리 몇 개가 큼지막하게 올려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무언가 꼬릿꼬릿한 냄새가 전해져 오는 것도 같았다.
“이게 뭐예요?”
“여기 창고에 있는 것들은 생각했던 맛이 안 나서, 한 번 만들어 봤다.”
덩어리의 정체는 청국장이었다.
프레시 센터에서 콩을 꺼내 와, 직접 숙성해 만들었다는 것.
상품으로 진열돼 있는 청국장에서는 어딘가 원하는 맛이 나지 않았다는 것이 어머니의 설명이었다.
“허 참······.”
물류센터에는 모든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없는 것도 명백히 존재했고,
이를 위해서는 손수 팔을 걷어붙이고, 콩을 불려야 했던 모양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것을 만들곤 했다.
“잠깐만 있어 봐, 밥 안 먹었지?”
어머니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작은 뚝배기에 불을 올리고,
두툼하게 무너진 두부와 고춧가루, 청양고추를 썰어 넣으며 맛을 끌어올렸다.
언제 만들어 두신 것인지 몇 개의 밑반찬과 함께,
밥솥에서 꺼내 온 흑미밥이 모락모락 김을 피워올렸다.
“아니 이게 언제······.”
눈 깜짝할 사이에, 어머니표 밥상이 눈앞에 나타났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절로 돌았다.
하지만······.
“죄송해요, 어머니.”
나는 들었던 숟가락을 도로 내려놓았다.
내게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식사.
그걸 모두에게 나누고 싶었으니까.
“팍스.”
나는 어머니표 밥상을 아공간의 ‘상품’으로 등록했다.
.
.
.
“휘우!”
“정겸 군, 이건······?”
팍스 물류센터의 직원 식당에, 수용소의 죄수들, 마르케스의 흑마법사들, 그리고 부엔디아가 삼삼오오 자리를 잡았다.
그들 앞에는 방금 전 내가 등록했던 ‘밥상’이 하나하나 그대로 진열되어 있었다.
식은 것 하나 없이, 동시에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리는 청국장.
모두 숟가락을 든 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뚝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겠지······?’
더할 나위 없는 훌륭한 음식.
하지만 그들에게는 사정이 다를 수도 있었다.
죄수들은 물론이요 마르케스까지 외국인을 넘어, 외차원의 존재들이었으니까.
청국장이라는 음식이 아무래도 퍽 낯설지는 않을까.
일단은 한국의 전통 ‘스튜’라는 식으로 소개해둔 터.
혹여나 입에 안 맞는다면 <상품회수>로 상을 물리고, 그때 다시 프레시 센터에 있는 다른 음식을 꺼내주면 될 일이었다.
“······.”
부엔디아는 참으로 신중한 표정이었다.
숟가락으로 반쯤 청국장을 떠올린 뒤, 조심스레 국물을 그의 입으로 가져다 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탁!
거칠게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내게 소리를 질렀다.
“자네······ 지금껏 나를 속인 건가? 이만한 수준의 흑마법사가 있다고는······!”
“······?”
“대체 누군가? 누군데 이 수준의 부패의 묘리를······!”
처음에는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발효가 흑마법사들의 수준을 알아볼 수 있는 섬세한 기예라느니, 부패를 또 다른 생명으로 연결하는 것은 흑마법이 추구할 수 있는 궁극의 영역이라느니 하는 식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이 대뜸 남의 엄마를 흑마법사로 만든 이유였다.
“휘우! 흑마법 할아범~.”
“할아범이 만들던 것보다 훨씬 나은데?”
죄수들이 청국장을 퍼먹으며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부엔디아 덕분인지, 발효 음식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던 모양.
부엔디아 또한 그 수준을 인정하는 모양이었다.
“그분을 만나 뵙게 해주게······! 분명 고차원의 흑마법을 대성하신 분일 터! 우리가 힘을 합치면 분명히 상당한 전력이······.”
“아니······.”
고위 흑마법사와의 발효 대전.
그 싸움은 너무나 싱겁게 어머니의 승리로 끝났다.
***
그렇게 한바탕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언뜻 보면 평화로운 모습이었지만, 지구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야 아공간에만 계시니······.”
지긋지긋한 멸망이 걷어진 것처럼,
모든 것이 정상 궤도로 돌아오고 있는 것처럼 말씀드리곤 했지만,
사실 상공회의소의 흉계와 타차원의 침략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 봐야 정확했으니까.
물류센터의 그늘진 곳에 우두커니 서 있자니, 검은색 연기가 불어와 어느덧 형체를 이뤘다.
“주군, 보고드리겠습니다.”
다름 아닌 란슬롯이었다.
내가 타차원을 전전하는 동안, 지구에서의 임무를 맡고 있던 카멜롯의 기사들.
더욱이 드워프들이 <역천의 카멜롯>을 한층 더 강화해준 덕에, 이제는 카멜롯에 들리지 않고도 망령과 기사 상태를 편하게 오갈 수 있는 상태였다.
“그래, 어떻다던?”
기사들은 내게 틈틈이 지구에서의 소식을 전해주고 있었다.
아무리 아공간 포탈이 있다지만 매번 일일이 건너가 상황을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카멜롯의 망령들이라면 빠르게 곳곳의 정보를 수집해올 수 있었으니.
그동안 전해 들었던 소식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내가 없는 사이 한차례 몬스터 웨이브가 진행되었다는 것.
하지만 아버지의 포탑이나 합참의 훈련된 병력이 준비되어 있었던 덕에, 몇 개의 도시를 제외하고는 큰 어려움 없이 괴물들의 공세를 막아낸 참이었다.
둘째는 지구 곳곳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란슬롯은 바로 이 전쟁에 관한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대부분의 교전지에서는 교착상태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프리카 쪽 상황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전쟁은 다른 지역을 공격하기 위함도, 그렇다고 쳐들어오는 공격을 막기 위함도 아니었다.
팍스FC는 명실상부하게 지구인 생존자 그룹 중 가장 강력한 집단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같은 지구인이라면 어느 쪽에서도 섣불리 싸움을 걸어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밖의 지구인들끼리의 싸움이었다.
“희생자들이 상당합니다. 근 며칠간 접경지역에서만 4천 명 정도······ 각성조차 하지 못한 민간인들이 대부분이었다더군요.”
아직 팍스FC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지역들.
바로 그곳에서 타차원과 손잡은 일부 각성자들이 학살을 벌이고 있었다.
“각성자들이라고 한들······ 저항조차 못 하고 휩쓸리는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위계 차이가 벌어지는 순간, 걷잡을 수 없게 되니까요.”
그들은 무력한 사람들을 살해하며 마석을 긁어모았다.
그렇게 모은 마석으로 레벨을 올리고, 위계를 올렸던 탓에, 침략자들과 희생자들 간의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져만 가고 있었으니.
김솔과 민우, 일본의 다이치나, 운양을 비롯한 무림인들까지 나서 일반인들을 지원하고 있었지만, 그 많은 전투에 일일이 개입하기엔 인력이 역부족이었다.
물론 그대로 둘 수도 있었다.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대로는 안 돼.’
이 멸망을 걷어내겠노라 다짐하지 않았던가?
미친 학살범들이 판을 치고 다니는 지금의 상황은, 내가 고대하던 일상과는 멀어도 너무나 먼 풍경이었다.
‘뭔가······.’
보다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던 중, 문득 떠오른 생각에 란슬롯에게 물었다.
나는 위계 신청서를 무한으로 출력할 수 있었으니.
“그 사람들······ 위계를 싹 올려주면 혹시 안전해질까?”
“물론 그럴 겁니다. 8위계만 되어도 어지간한 공격은 버텨낼 테고, 7위계 수준이라면 죽는 사람도 거의 사라지겠지요.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을 어찌······.”
위계 신청서를 이용한다고 해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8위계에 다다르기 위한 비용은 자그마치 마석 1,000개에 달했으니.
수십, 수백 명까지라면 몰라도, 수천, 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위계를 부여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펄럭.
갓 출력된 위계 신청서를 꺼내 들며, 나는 한 가지 생각에 다다랐다.
‘각성 시스템도 조정이 가능했었지.’
부엔디아는 내 각성 시스템을 고쳐주었다.
‘소원’을 둘러싼, 시스템의 구문법을 고쳐줌으로써.
각성 시스템 못지않게 ‘언어’로 이루어진 것이 다름 아닌 이 ‘위계 신청서’였다.
어쩌면 이번에는······.
‘이거······ 내용을 위조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부여된 조건을 좀 바꾸면 될 것이다.
마석이 없이도 위계를 얻을 수 있도록.
누구나 쉽게 위계를 쌓고, 침략으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도록.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사방에 신청서를 뿌리고 다니는 게······ 확실히 의미가 있게 되겠지.”
이미 한차례 경매장에서 신청서를 뿌려봤던 참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제값을 받고 팔려나갔을 뿐, 상공회의소의 시스템을 완벽히 무너뜨렸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놈들의 체면을 구겨준 것까지는 좋았지만, 정작 신청서들은 암시장으로 넘어가 더 비싼 가격에 팔려나갔다고 들었으니까.
그러니 이번에는······.
‘지구부터.’
여기서부터 출발할 생각이었다.
모두가 위계를 갖고, 서로가 서로를 다치게 할 수 없도록.
더 나아가······.
거대한 위계 ‘인플레이션’의 파도를 일으킬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