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82)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82화(182/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82화
공문서 조작 (2)
“그런가······. 확실히 그랬겠군. 이런 때일수록 약자들이 가장 고통받는 법이니까.”
부엔디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막 그에게 지구의 상황을 전한 참이었으니.
차원 박람회에서 진행된 위계 난투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에 따른 보상으로 지구로 진입할 타차원 침략자들의 수준을 6위계 이하로 못 박았다.
거기에 지구인들을 학살하려던 바르나울의 계획까지 저지했으니, 상식적으로는 지구에서의 전황은 호전돼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침략적 성향이 강한 녀석들을 위주로, 타차원과 협력한 지구들이 득세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이 모든 상황에는 상공회의소가 연루되어 있었다.
“진행하던 사업 계획이 어그러졌으니, 새로운 방향으로 수익 모델을 잡아가는 것일세. 당분간 위계 제한도 풀 수 없게 되었으니······ 이곳 주민들을 성장시키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겠지.”
지구인들이라면 위계 제한과는 무관하게 무한히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상공회의소는 타 차원들의 강자들을 불러들이고, 침략자로서의 자질이 다분한 각성자들에게 중개해 줌으로써 지구에서의 분쟁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각성자들은 직접 죽여 차원 계좌를 빼앗고, 민간인들은 인신 공양의 제물로 쓰곤 한다더군요.”
“그랬을 걸세. 다차원에 존재하는 차원 종족들의 종류야 셀 수 없으니······. 마석보다도 생명 갈취에 혈안인 녀석들도 얼마든지 있고.”
가장 큰 희생자들은 아무런 힘이 없는 비각성자들이었다.
하다못해 위계라도 있었다면 인신 공양의 술법에 저항할 수도 있었겠지만, 각성조차 못 한 그들에게 위계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했으니까.
그것이 내가 지구에 위계 신청서를 뿌리고 싶어 하는 이유였으며, 부엔디아를 찾은 것 또한 그 때문이었다.
내가 건네준 위계 신청서를 보며, 부엔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이만해도 적은 금액이 아니겠지. 7위계 조건은 더더욱 그렇고······.”
8위계 조건은 마석 1,000개.
7위계 조건은 5만 명 이상이 소속된 단체의 대표가 되는 것.
평범한 비각성자들이 이런 조건을 맞출 수 있을 리 없었다.
“위계 신청서를 위조하는 건 나도 한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네. 하지만 신청서에 우회 회로를 그리는데 마석 만 개가 든다는 걸 확인한 뒤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실정이니까. 하지만······.”
부엔디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물건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거대한 물류창고.
여기에 적재된 상품은 무엇이든 복제가 가능했으니까.
“지금이라면 아예 배가 터져버리겠구먼. 무한히 복제해버리면 그만일 테니 말이야.”
“오······!”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위계신청서를 위조해, 우리 입맛대로 바꿀 수 있다는 뜻.
부엔디아는 곧장 8위계 신청서를 펼쳐놓더니, 그중 한 문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조건식 자체는 충족시켜야 하네. 그건 이 문서의 기본 형식이니까. 그래서 말인데······. 이렇게 바꿔보면 어떻겠나?”
부엔디아는 손끝에 흑마력을 두르곤 위계신청서 위로 빗금을 그었다.
그러곤 마르케스의 주문 언어로 신청서에 슥슥 새로운 조건을 새기기 시작했다.
조건 : [살생을 하지 않았을 것.]
※ 살생의 대상은 지구인으로 한함.
※ 위계를 얻은 이후로 살생을 벌일 경우 부여된 위계를 박탈함.
지이잉.
마석을 꺼내어 비추자, 그가 적어놓은 주문 언어가 자동으로 번역됐다.
그리고 나 또한 부엔디아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렇구나, 이거라면······.’
위계신청서는 적들의 손에 들어갈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침략자들의 전력을 키워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살생 금지’가 달려있다면 신청서가 놈들의 자원이 되는 걸 막는 동시에, 위계를 얻은 사람들이 또 다른 침략자가 되는 걸 막을 수 있었다.
“8위계는 이 정도면 될 테고······. 7위계에서는 ‘살생 금지’와 함께 마석 1,000개를 지불하는 것으로 조건을 바꿔보겠네. 그래야 조건과 보상의 저울이 맞는군.”
부엔디아라고 한들 아무렇게나 수식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건과 보상의 균형을 맞출 때만 위계신청서는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니까.
부엔디아는 하루 이틀 정도면 위조 작업을 마칠 수 있겠다며, 자신의 주머니에 8위계, 7위계 신청서를 챙겨 넣었다.
하지만······.
6위계, 5위계 신청서만큼은 내게 돌려주었다.
“아쉽네만······. 이것들은 조작이 불가하네.”
6위계 신청서는 유럽 본부 시설에서,
5위계 신청서는 천공섬에 속한 차원 본부 시설에서 출력한 물건이었다.
각각 100개의 산하 단체, 10개 이상의 식민 차원 보유를 조건으로 달고 있는 신청서.
나 또한 5위계 조건만큼은 달성할 요량이 없어, 아직 6위계에 머물러 있는 참이었다.
“7-8위계까지는 좀 까다롭긴 해도 문서에 담긴 마력 회로만 해체하면 될 일이네만······. 6위계 신청서부터는 외부의 ‘차원법률’과 연계되어 있군. 연결된 헌법서 원문을 수정하지 않는 한 바꿀 수 없을 것 같네.”
“차원법률···? 그게 뭡니까?”
“차원재판소라는 곳이 있네. 상공회의소가 상위 차원 중 하나인 ‘파우스트’와 차원 법률을 제정한 곳인데, 애먼 사람 잡아다 경제사범으로 만들어 가두는 게 그 용도지. 이곳 재판소 장서관에 헌법서 원본이 보관되어 있는데, 여기 6위계 신청서부터는 헌법서 원본과 상응하며 위계를 부여하도록 만들어져 있어. 여기서 멋대로 내용을 수정해봤자······ 헌법서 원문 쪽에서 위조된 내용을 판별하고 효과를 박탈해 버리겠지.”
“저런······.”
당장은 5, 6위계를 위조할 방법이 없다는 뜻.
더욱이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나 마르케스, 수용소 친구들도 마찬가지일세. ‘위계 박탈’은 여기 신청서를 수정한다고 해서 어찌 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위계 박탈.
앞서 확인했듯, 마르케스의 흑마법사들은 위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한때 신청서를 이용해 아우렐에게 위계를 부여해 주려고도 시도했었으나······.
‘······그냥 마석만 날리고 끝났었지.’
이 또한 부엔디아가 이야기한 ‘차원 재판소’의 영향이었다.
상공회의소는 재판소에서 부엔디아와 죄수들의 위계를 ‘박탈’해버렸고, 마르케스에 대해서는 아예 차원 전체에 ‘위계 박탈’이라는 조치를 내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문득 내가 토턴 인베스트먼트의 주인이라는 사실이 발각되었을 당시, 피렌의 천사 아드리엘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를 차원 재판에 회부하겠다고 했었나······.’
분명 저 차원재판소를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만약 잡혀갔다면 지금껏 쌓아온 위계를 깡그리 박탈당한 채, 각성 능력을 억제당한 뒤 수용소에 갇혀 부엔디아와 한솥밥을 나누어 먹었을 터.
하지만 이번만큼은 재판소로 자진 출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 헌법서 원본이라는 것······. 어르신께서 수정할 수 있는 물건입니까?”
“직접 만질 수만 있다면야 가능하겠네만······. 설마 재판소 장서관을 뚫고 들어갈 생각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엔디아와 흑마법사들, 그리고 죄수들은 내게도 중요한 전력이었으니.
더 큰 싸움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들에게도 위계를 부여해줄 필요가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도 중요했다.
5위계의 문턱 앞에서 멈춰 서 있는 상황.
식민 차원 10개라는 어처구니없는 조건을 우회하기 위해서는, 장서관에 있다는 그 헌법서부터 당장 뜯어고쳐야 했다.
“가능할까요?”
“차원재판소는 파우스트 놈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네. 법률과 계약을 다루는 게 특기인 녀석들인데······ 보안 시스템에 저주 계약을 걸어두는 것으로 유명해. 경비 병력이 몰려 있는 건 물론이고, 위계를 찢어먹는다는 삼두견(三頭犬)이 장서관 입구를 지키고 있지. 세 종류의 법률을 상징한다나 어쩐다나······. 아무튼 쉽지는 않을 걸세.”
직접 다녀왔던 장소이기 때문일까.
부엔디아는 제법 상세하게 재판소의 풍경을 기억하고 있었다.
“보안 시스템에 걸려있는 저주는 내가 어떻게든 해 볼 수 있네. 그래봤자 모두 마력 회로를 기반으로 한 조건식으로 이루어져 있을 테니까. 하지만 해주(解呪) 작업 때문에 싸움에 가담하기는 힘들어. 자네나 다른 누군가가 경비 병력을 뚫고, 삼두견까지 처리해 주어야 하네.”
여러모로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무력으로 경비병력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 것은 물론,
위계까지 찢어먹는다는 삼두견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으니.
“그러면 혹시······.”
아예 재판소를 통째로 아공간에 넣어버릴까도 싶었지만, 부엔디아는 고개를 저었다.
“파우스트가 고안한 법률들은 설정된 시공간 좌표를 기반으로 효력을 발휘하네. 갑자기 재판소나 장서관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다면······. 현재 다차원에 적용되고 있는 조항들이 지금 그대로 고착될 게야. 상공회의소에게는 오히려 좋은 일이 될 테지.”
“결국 어떻게든 뚫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군요.”
부엔디아는 많아도 다섯을 넘기지 않을 것을 당부했다.
침입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보안시스템의 저주가 곱절로 가중된다는 것.
따라서 어중간한 자원들로 침입하느니, 확실한 인원을 꾸려 침입하자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다.
나와 부엔디아, 그리고 아우렐까지는 확정이었다.
나야 명실상부하게 가장 좋은 공격자원이었고, 재판소의 보안시스템을 최대한 빨리 해체하기 위해서는 실력 좋은 흑마법사가 한 명 더 필요했으니.
“두 명 남았군요.”
그 나머지 두 명을 데려오기로 했다.
***
부엔디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난 이틀 뒤.
“아, 바빠 죽겠는데.”
김솔이 콧구멍을 후비며 들어왔다.
보기엔 저래도, 모로코에서 한창 전투를 벌이다 돌아온 참이었다.
최근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인신공양을 벌이는 일당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으니.
하지만 이번만큼은 재판소의 경비병력을 뚫어내기 위해, 김솔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오랜만이에요. 정겸 님······.”
음울한 표정의 다이치.
봉인사 능력을 가지고 있던 일본의 각성자였다.
“무슨 일 있었어요?”
“며칠 전에 기르던 요괴가 죽었거든요. 갓파 닮아서 귀여웠는데······.”
그 또한 싸우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 남쪽 해안에서는 주기적으로 괴물들이 출몰했는데,
그들은 심해에 게이트를 세워둔 강력한 수중 종족으로, 심심치 않게 민가를 공격해왔다고 했으니까.
‘뭔가 기묘한 취미가 생긴 것 같긴 하지만······.’
장서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삼두견.
상대의 위계까지 씹어 삼킨다던 그 괴물을 다이치가 봉인해주었으면 했다.
놈은 생명체인 탓에 내 아공간 능력으로도 빨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했으니.
“자 그럼······.”
나는 두 사람에게 차원재판소로 잠입하기 위한 계획을 설명했다.
위계 신청서 위조를 위해 장서관에 있는 헌법서 원본을 조작해야 한다는 것.
따라서 김솔이 경비 병력과 맞서주고, 다이치가 삼두견을 봉인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문지기의 머리가 세 개라는 이야기에, 다이치는 반색했다.
“아니, 강아지 머리가 세 개라고요?!”
“음, 강아지라고 하기는 좀 어려운데······.”
“그럼 귀여움이 세 배잖아요!”
“······.”
얼마 전 게한나의 불을 품은 이후로 어딘가 이상해진 그였다.
삼두견을 품에 안을 생각에 기뻐하는 다이치.
반면, 김솔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지금도 모로코 쪽에서는 다른 팍스FC의 일원들이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었으니까.
“그럼 여기는 어떻게 하고? 가뜩이나 사람이 없는데.”
“괜찮아, 이제 할 일이 확 줄어들 거거든.”
모두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타차원과 붙어먹은 침략자들을 척살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사실 민간인들을 보호하는 일에 몇 배의 인력과 할애됐다.
방어에는 공격 이상의 노력과 자원이 필요한 법이니까.
하지만 더이상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팔락.
내 손에는 부엔디아가 위조해준 새 위계 신청서가 있었으니.
설치된 포탈을 이용해 사방 곳곳으로 위계신청서를 무한정 흩뿌려줄 생각이었다.
‘살생 금지’를 조건으로 한, 선한 사람만 입을 수 있는 투명 위계 옷을.
그러니······.
“전단지처럼 뿌려만 주면 돼.”
그것이 전부였다.
이제 할 일은, 차원 재판소의 장서관을 털어먹는 것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