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83)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83화(183/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83화
공문서 조작 (3)
콰앙! 퍼어엉!
이곳은 북아프리카 서쪽 해안에 위치한 모로코의 해안.
연달아 울려 퍼지는 폭음이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 모래바람 사이로······.
“흐흐흐······.”
한 남자가 미소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정체는 티아고.
스페인 출신 각성자로, 이곳 모로코에 넘어온 이래 매일 같이 학살극을 벌이는 살인자 중 한 명이었다.
키이이잉!
그가 양손을 X자로 교차했다.
은은한 파동이 팔뚝 주변을 맴돌더니, 이내 염화로 휩싸였다.
티아고는 양팔을 휘둘러 매캐한 먼지를 한순간에 걷어버렸다.
“좋아, 아주 좋군.”
세상이 멸망한 지금.
티아고는 하늘이 자신에게 내려준 두 가지 계기를 떠올렸다.
첫 번째는 그가 각성의 축복을 받아, 양팔에 에너지 파장을 생겨났다는 것.
다음 두 번째는······.
화르르륵!
에너지 파장 위로, 이 염화를 두르게 되었다는 것.
타차원의 존재가 그의 각성 능력을 강화해준 것이었다.
살생을 통해 그에게 꾸준히 공물을 바치는 것이 그 대가였는데, 티아고는 이런 식의 거래를 으레 ‘피의 계약’이라고 부르곤 했다.
“······나는 피의 계약자. 이 염화의 불꽃으로 생명을 바칠 때마다 새 힘을 내려받으니······. 으하하!”
그는 이마를 부여잡고는 허리를 꺾으며 광소를 터뜨렸다.
타차원의 악마가 그에게 힘을 부여한다.
더더욱 강해진 그는 더 많은 공물을 바치고, 또다시 더 큰 힘을 부여받는다.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선순환! 지옥에서 내려온 운명의 사다리!”
그런 혼잣말을 뇌까리며, 티아고는 익살스럽게 혀를 날름거렸다.
그러던 중······.
“호오······?”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
작은 움직임이 그의 시선에 포착됐다.
길쭉한 그늘이 드리운 것으로 보아 짐승이 아닌 사람.
얼마 전 주변을 배회하던 생존자 중 한 명일 것이 분명했다.
티아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되지. 그건 안 될 일이야.”
그는 참을 수 없었다.
비각성자, 각성의 축복을 누리지 못한 도태 생물이 멀쩡히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을.
또 하나의 희생 제물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티아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못 도망간다!’
타닥!
티아고가 거칠게 발을 구르며 쏘아져 나갔다.
그렇게 쓰러진 건물 틈새를 여러 차례 비집고 들어가자, 마침내 한 남자의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화르르륵!
티아고의 팔뚝이 불꽃에 휩싸였다.
빨갛게 달아오른 팔은 이내 날카로운 칼날처럼 벼려졌다.
“순순히 목을 내놓아라!”
지금껏 십수 명의 목을 베어 넘긴 힘.
공물을 추수하는 낫을 휘두르는 그의 행동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자신감 있게 칼날을 내밀었고···
쩌어어엉!
“······???”
남자의 목을 베지 못한 채, 그대로 가로막혔다.
정체 모를 알력에 부딪힌 것처럼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칼날.
티아고가 어쩔 줄 모르는 사이, 공격당한 남자가 스르륵 몸을 일으켰다.
티아고는 얼굴 위로 드리우는 그늘에, 황당하다는 듯 동공을 키웠다.
‘······뭐가 이렇게 크지?’
머리 두 개쯤은 되는 듯한 키 차이.
남자는 다부진 체격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우스운 세상이 되었지. 격투기 선수로만 10년 차. 각성을 못 했다는 이유로 이렇게 약자가 될 줄은······. 직접 약자가 되어보니 세상이 이런 것이었나 싶더군. 남의 발걸음 소리만으로도 벌벌 떨어야 하는 그런 삶이라니······.”
남자의 말처럼, 티아고는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각성자들로부터 그가 느꼈던 감정이기도 했으니까.
아연이 실색하진 티아고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각성자였나? 아니, 분명히 이 근방에 각성자는 없다고 했는데······ 그새 각성을······?”
하지만 남자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각성은 무슨, 계약을 맺었다.”
“계약자······! 그렇군! 너도 계약자였······!”
퍽!
남자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며 티아고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의 손이 떠나자, 티아고의 얼굴에는 낯선 종이 한 장이 들러붙어 있었다.
[차원 존재 등록 신청서]라는 제목의 문서였다.우득! 우드득!
남자가 주먹을 풀었다.
돌덩이 같은 크기의 주먹에, 티아고의 표정에는 경악이 서렸다.
“계약의 조건은 살생 금지. 따라서 널 죽일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이 계약 조건이라는 듯, 남자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에 버금가게 패줄 수는 있지. 그게 내 전문이거든.”
비명과 함께, 남자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
슈우우- 화아아악!
우리는 천공섬을 탄 채, 머나먼 공간을 도약했다.
지구의 하늘을 벗어나. 한차례 이상 공간을 뛰어넘고 나면, 우리는 자연적인 우주와 비슷한, 하지만 조금은 다른 ‘다차원’이라는 세계에 진입했다.
바르나울의 본진, 경제 사범 수용소, 그리고 그라디바는 물론, 이번에 향하게 될 차원재판소 모두 그러한 다차원에 속해 있었다.
부엔디아가 덧붙였다.
“다차원의 모든 공간은 서로서로 연관되어 있네. 도약은 다른 말로 비약(飛躍). 그 연관을 뛰어넘어 또 다른 의미계(意味界)로 넘어가는 것이지.”
그의 말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다.
흑마법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다차원 세계.
그는 그 세계를 언어의 사슬로 이루어진 방대한 회로의 일종으로 해석했으니.
“슬슬 도착한 것 같군. 본격적으로 계획을 짜보도록 하지.”
한차례 끌려간 적이 있어서인지, 부엔디아는 재판소가 위치한 좌표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장 재판소로 날아드는 데에는 위험부담이 있었기에, 조금 떨어진 행성 궤도에서 재판소의 상황을 관찰하며 진입 방법을 논의해 보기로 했다.
슈우우우······.
얼마 지나지 않아 천공섬이 엔진을 꺼뜨렸고,
아우렐이 큼지막한 정찰용 구슬을 들고 나타났다.
“현재 재판소 상황입니다.”
부엔디아와 나, 그리고 김솔과 다이치까지, 모두 수정구슬로 몰려들었다.
아우렐이 수정구슬에 비친 재판소의 설비들을 가리키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재판소 주위를 빙 둘러, 수비용 마력포가 설치돼 있습니다. 설치된 각도로 보아 바깥만 겨냥할 수 있는 듯한데······ 공해를 침범한 미확인 비행체를 자동 격추하는 대공무기로 판단됩니다. 그 밖에도 마력 파장이 부과된 철조망이 둘러져 있고, 출입구는 이곳, 정문 하나뿐이네요.”
아우렐이 가리킨 곳은 경비병들이 한껏 배치된 검문소였다.
양방향으로 이루어진 통행로에는 ‘차원왕복선’이라는 이름의 비행체가 왕래했는데, 아우렐은 그 용도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했다.
“그라디바와 마찬가지로, 재판소에서는 보안을 위해 포탈이 아닌, 이 ‘왕복선’을 사용합니다.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피의자들을 끌고 들어오는 연행용, 다른 하나는 법률인들이나 배심원들을 태우고 다니는 셔틀 용도죠. 검문소는 이 ‘왕복선’이 아니면 출입이 불가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구분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왕복선 자체는 동일한 종류의 기체였지만, 연행용에는 곳곳에 철조망이 둘려 있었으니.
그에 반해, 셔틀용 왕복선에는 고급스러운 검은색 유광이 덧씌워져 있었다.
슈우우웅.
그때, 재판소 앞에 셔틀 한 대가 멈추어 섰다.
그러곤 건물에서 빠져나온, 검은 법복(法服)을 입은 사람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무언가 알아본 것인지, 부엔디아와 아우렐은 침음을 흘렸다.
“음······. 나를 수용소로 처박아 주신 법관께서 저기 계시는구만.”
“마르케스를 통째로 차원 재판에 회부하셨던 검사 나으리도 계시는 것 같고요.”
부엔디아와 아우렐에게 죄를 덧씌우고, 위계까지 박탈한 장본인들.
그들 모두는 상위 차원, ‘파우스트’ 법조인들이었다.
법조인들을 태운 셔틀은 다시금 시동을 걸었고, 부르르 떨리며 이내 재판장을 벗어났다.
“자, 그러면······.”
그만하면 됐다는 듯, 부엔디아는 시선을 거뒀고, 아우렐 또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방법은 잠입, 또는 침입 두 가지입니다. 전자는 셔틀이나 연행선을 탈취해 잠입하는 방법이고, 후자는 그대로 강행 돌파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가능한 한 잠입해 들어가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지만······ 왕복선의 설계상 쉽지 않을 겁니다.”
“어째서지?”
내 질문에, 이번에는 부엔디아가 대답해주었다.
“내부에는 언제든 경보를 울릴 수 있도록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네. 나 또한 재판소에 진입하기 전에 난동을 부려봤네만······ 간수가 경보가 울리면서 왕복선이 그대로 잠겨버렸었지. 어떻게 조종석까지 점거했지만, 마력포를 얻어맞으면서 결국 격추됐고.”
한때 연행선에 몸을 실어보았던바.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연행선의 설계에는 빠삭한 모양이었다.
아우렐이 마저 말을 이어 나갔다.
“일단은 좋으나 싫으나 강행 돌파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그래도 정겸 님의 능력이 있으니까요. 중간에 대공포를 몇 번 얻어맞고, 착륙하자마자 경비들이 몰려들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을 듯합니다.”
아무래도 바르나울에서의 일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우리는 이 천공섬을 타고 그대로 놈들의 본진에 박아버렸으니.
아공간 포탈이 있었기에 가능한 ‘착륙’ 방법이었다.
하지만······.
“잠입과 침입······. 둘 다 하기로 하죠.”
“둘 다······?”
이번에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아보기로 했다.
첫 번째로 해야 할 것은 잠입을 위한 왕복선을 손에 넣는 것.
그리고 나는 연행선을 탈 생각이 없었다.
“유전무죄(有錢無罪)거든요.”
돈 있는 자는 죄가 없는 법.
마침 파우스트의 법조인들을 태운 셔틀이 근처를 비행하고 있었다.
나는 수정구슬에 비친 셔틀을 바라보며, 팍스에게 지시했다.
“팍스, 사들여.”
[알겠습니다.]팍스가 책정한 차원 왕복선 셔틀의 가격은 마석 40만 개.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대당 100만이 넘어가는 마석 운반선보다야 훨씬 저렴한 금액이었다.
컴컴한 다차원 공간 한 가운데, 셔틀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고······.
-?
수십 명에 달하는 파우스트 법조인들이 허공에 앉은 채,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
-!!
주변을 맴돌던 다른 행성의 궤도에 휘말리며, 끝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 팍스. 기왕이면······.”
[알겠습니다.]기왕 사는 김에, 좀 더 쓰기로 했다.
그들이 입고 있던 검은 법복을 사들였고, 파우스트의 법조인들은 흰 살갗을 내비치며 다시금 추락을 이어 나갔다.
-!!!
시원하게 벗겨진 법률가들.
부엔디아와 아우렐을 허탈한 웃음을 뱉을 뿐이었다.
“그럼, 침입은 따로 준비해두는 것으로 하고, 일단은······.”
지이잉.
아공간에 등록된 파우스트의 법복을 출하했다.
부엔디아와 아우렐, 김솔과 다이치, 그리고 이용수에게도 한 벌씩을 나눠준 뒤, 나 또한 고급 융단으로 된 법복 가운을 걸쳤다.
그렇게······.
“출두하죠.”
우리는 당당하게 잠입해보기로 했다.
***
위이잉.
이곳은 차원 재판소의 지엄한 검문소.
기다란 차단기 앞에, 건은 윤기를 빛내는 왕복선이 멈추어 섰다.
쿠구구구··· 치익!
증기를 내뿜는 왕복선.
부착된 식별 코드를 살펴보던 검문소 직원은 머리를 긁적였다.
“뭐지? 방금 나갔던 선체인데······.”
팔랑팔랑.
기록을 넘겨봐도, 틀림없이 조금 전 검문소를 빠져나갔던 왕복선이었다.
이상함을 느낌 직원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검문소 밖으로 나가, 왕복선의 창문을 두드렸다.
“놓고 가신 물건이라도 있으십니까? 왜 다시······ 응?”
그는 흠칫했다.
스르륵 올라간 창문에는 운전수가 새카만 법복을 입고 있었으니.
파우스트의 차장검사를 뜻하는, 혁띠가 그의 허리에 감겨 있었다.
‘뭐지? 운전수가······ 법 공부를 했나?’
하지만 이상함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
뒷좌석 쪽에서 다른 법조인 한 명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고등 판사를 뜻하는 금색 배지가 달려있었기에, 직원은 서둘러 허리를 접었다.
“무슨 일이지?”
“아, 판관님이시군요! 혹시 돌아오신 이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출입 기록에 사유를 기재해야 해서요.”
“아, 그건······.”
어딘가 나른한 표정.
그의 얼굴을 본 직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껏 재판소에서 저렇게 새파랗게 젊은 판관은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꽈아아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발이 재판소 한쪽에서 일어났다.
“뭐뭐, 뭐야??”
화들짝 놀란 직원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폭음이 들려온 곳에는 흉측하게 생긴 길쭉한 소행성이 창처럼 꽂혀 있었다.
자욱한 연기 아래로 경보음이 울렸고, 사방에서 경비 병력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침입자다!
누군가 목놓아 외쳤고, 직원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리고 그제야, 법관의 복귀 사유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뜯어고쳐야 할 게 좀 있어서.”
그는 썩어빠진 사법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