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85)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85화(185/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85화
판례 (1)
어두컴컴한 공간.
건조하고 퀴퀴한 공기 탓에, 나는 옅은 기침을 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다들 어디 갔지?”
장서관장의 손짓과 함께 문 속으로 빨려 들어온 참이었다.
아마도 이곳은 헌법서 원문이 놓여있다던 차원 재판소의 장서관.
하지만 분명 다 함께 끌려들어왔음에도, 덩그러니 혼자 놓여있었다.
“여긴···”
장서관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밀실 공동이었는데, 사방에는 두꺼운 각진 나무 기둥이 우후죽순 박혀 있었다.
미로나 다름없는 아득한 공간 속 무심코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빽빽한 나무 기둥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이곳이 장서관이라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책장인가.”
수천 개의 나무 기둥은 각각이 아래가 통로처럼 뚫린, ‘門’자 모양의 책장이었다.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질서정연한 도서관의 풍경과는 퍽 달랐다.
이곳 장서관의 책장은 저마다 다른 높이로 어지럽게 얽혀 있었으니.
하물며, 그 위에 꽂힌 것 또한 책이 아니었다.
[상공회의소] [는] [차원] [간] ··· [개척사업] [제한] [의] [기준은] ··· [재판절차] [구금] ···책장을 채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활자들.
수십 개의 블럭이 책장을 채우며 저마다 몇 줄로 이루어진 법률 조항을 완성했다.
“···그래서 장서관이었군.”
물론 따지자면 책들이 보관된 장소는 아니었다.
차원재판소의 법률 조항들이 보존되고 있는 장소.
문장들이 담겨있다는 점에서, 이곳 장서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법전>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나저나···’
얼추 파악을 끝낸 뒤, 나는 곧장 발을 내디뎠다.
장서관에 진입하자마자 영문도 모르게 뿔뿔이 흩어진 상황.
김솔, 부엔디아, 다이치, 아우렐까지, 모두 이곳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테니.
그렇게 책장의 기둥 사이를 천천히 지나쳤을 즈음···
키이이잉!
스산한 초음파 소리가 귓가를 스쳤고,
쇠공을 매단 듯 두 다리가 급격히 무거워졌다.
‘······여기에서도 저주인가.’
밖에서 보았던 기둥들처럼 이곳 책장들에도 마력 회로가 흐르는 모양.
몇 개의 기둥을 추가로 통과하자, 저주가 중첩되며 도무지 걸을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지이잉!
나는 아공간 포탈을 열어 나 자신을 <회수>했고,
포탈을 지나며 장서관의 저주를 말끔히 씻어버릴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아공간 포탈을 이용해 저주를 지워버리며, 꾸준히 발걸음을 이어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이잇···!”
“히이이이익!”
익숙한 기합, 그리고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김솔, 그리고 다이치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지이이잉!
두 사람 모두 이곳 장서관의 저주와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다.
김솔은 방어막을 전개해 기둥에서 내려오는 저주를 받아쳤고,
다이치는 부적을 붙여가며 저주가 내리는 속도를 최대한 늦추고 있었으니.
“상품 회수.”
“끼약!”
“허억!”
나는 즉시 두 사람을 아공간에 넣었다 빼 저주를 씻어주었다.
“허억··· 헉···!”
저주가 풀리자 김솔은 금세 정신을 차리는 듯했다.
하지만 다이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좀처럼 몸을 추스르지 못했다.
저주를 풀었음에도 힘겨워하는 그의 모습.
김솔이 말했다.
“좀 옅긴 한데, 여기 안에 그 저주인지 뭔지 하는 게 꽉 차 있는 거 같다. 방어막으로 막을 수 있는 걸로 봐선, 위계로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얘가 몇 위계라고 했더라?”
우리 둘은 6위계를 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다이치의 위계는 아직 고작 8위계에 불과했다.
낮은 위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그야말로 권위적인 공간.
그리고, 그것이 지금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럼 부엔디아랑 아우렐은 지금···?”
“빨리 구해야겠지?”
내 질문에, 김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8위계조차 두르지 못한 두 명의 흑마법사.
다이치조차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걸 보면, 그들은 완전히 저주에 짓눌려 있을 것이 분명했다.
지이잉!
우선은 상태가 좋지 못한 다이치를 아공간에 들여놓았다.
그러곤 아공간으로 저주를 풀어가며, 김솔과 함께 길을 나섰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지?’
사방이 책장으로 뒤덮인 미로 같은 공간.
이렇다 할 논리도 없이 뿔뿔이 흩어진 탓에, 부엔디아와 아우렐의 위치가 묘연하기만 했다.
그러던 그때···
“···!”
쿠구구구구···
공동의 중앙 구역.
높게 치솟은 책장이 서서히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고,
그 중심에 놓인 책장에는 틀림없이 [위계] 라는 단어가 올려져 있었다.
‘···조항을 뜯어 고쳐야한다고 했었지.’
이곳 장서관에서 우리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위계 신청서의 조건을 고치기 위해, 이곳 헌법서 원본을 수정하는 것.
둘째는 부엔디아와 마르케스 차원의 위계 박탈 조치를 취소하는 것.
둘 다 <위계>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었으니까.
‘저쪽에서 움직인 모양이군.’
문제의 조항을 찾아, 서둘러 작업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라면 수정은커녕, 제대로 힘도 못 쓴 채 저주에 뒤덮여버릴 가능성이 농후했다.
“바로 가자.”
탓!
우리는 곧장 뛰어나갔다.
그러곤 그대로, <위계> 단어가 들어있는 책장까지 빠르게 접근해나갔다.
.
.
.
포탈로 저주를 걷어가며, 수십 개의 책장을 지나쳤을 즈음.
“···여긴가.”
우리는 장서관 중앙에 드리운, 거대한 중앙 공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변에는 인간, 또는 이종족들의 형상을 한 섬세한 조각상들이 사방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였다.
미지의 공간 속으로 뿔뿔이 흩어진 우리.
부엔디아와 아우렐은 수정할 조항을 발견해, 이곳 중앙 공간까지 넘어온 모양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젠장, 벌써···’
이미 저주에 뒤덮여 있었다는 것.
아우렐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부엔디아 또한 두 눈을 부릅뜬 채 제 자리에 가만히 멈춰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리에서 석화(石化)가 진행되고 있었다.
“···저게 저주의 말로인가.”
장서관을 뒤덮은 저주.
방어막도, 위계도 없다면, 점차 가중되는 저주에 손쓸 방법이 없을 터였다.
위계가 없는 부엔디아와 아우렐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을 상황.
그리고 그때, 위에서부터 얇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들 속셈이야 뻔하지, 부엔디아. 네가 이곳 <위계> 조항을 찾아올 거라는 건 예상하였다.”
우리를 이곳에 몰아놓은 장서관장의 목소리였다.
나와 김솔을 발견하지는 못했는지, 구름을 타고 부엔디아의 주변을 맴도는 녀석.
내가 <위계> 단어를 보고 부엔디아의 행방을 찾았던 것처럼, 장서관장 또한 같은 방법으로 그를 찾았던 것이었다.
정신을 잃은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부엔디아와 아우렐.
그들 위로는 ‘門’자 모양의 책장 십수 개가 저마다 다른 높이로 겹겹이 쌓여 있었다.
‘저렇게나 많이···’
그 위압적인 모습에 숨을 죽이고 있을 찰나.
장서관장은 부엔디아의 코앞을 낮게 날며,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범법자에게는 그에 맞는 결과가 필요한 법이지. 나 또한 네가 그렇게 별일 없이 수용소에 갇혀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 너희의 자리는 바로 이곳이니··· 얌전히 이곳 <헌법서>의 ‘판례(判例)’가 되어라.”
드르르르륵!
타아아앙!
장서관장이 손짓하자, 책장 하나가 스르륵 딸려 움직였다.
위로 또 한 겹의 책장이 늘어났고, 부엔디아와 아우렐의 발을 타고 오르던 석화가 한결 더 빨라졌다.
“흐흐··· 잘 돌아왔다, 부엔디아. 제 발로 잘 걸어들어와 주었어. 세상에 너만 한 판례, 반면교사는 좀처럼 없지. 네놈을 먹어 치워··· 다차원 최고의 저주법술을 완성해보겠다. 3위계··· 3위계 승급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그랬다.
널브러져 있던 조각상들은 모두 놈의 저주에 의한 것.
그렇게 석화가 된 ‘판례’들은, 놈의 저주 법술을 위한 자원이 되는 것이었다.
“젠장···”
나는 불끈 주먹을 말아쥐었다.
부엔디아와 아우렐에게 <상품회수>를 사용해보았지만, 이미 저주에 의해 단단히 고정된 것인지 좀처럼 딸려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김솔이 주먹에 방어막을 두르며, 내게 물었다.
“때리면 되냐?”
“안 통할 거야. 말하는 걸로 봐선 최소 4위계라는 소리니까.”
자그마치 4위계.
지금껏 만나본 적이 없는 위계였다.
저주술이 특기인 만큼 전투력 자체는 그리 강해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4위계나 되는 괴물을 처리할 만한 무기도, 방법도 없는 상황이었으니.
“위계라도 되찾아준다면 혹시 모르지만···”
위계가 있다면 저주를 막아낼 수 있다.
부엔디아와 마르케스의 ‘위계 박탈 조항’을 찾아 철회한다면, 그들에게 위계를 되돌려줄 수 있다는 뜻.
하지만 그 조항이 어디에 있는지, 과연 내가 그 내용을 수정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
‘···이건?’
아주 얇은 실낱같은 빛.
부엔디아가 손짓으로 피워내곤 하던, 얇은 흑마력의 실이 아른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실은 몇 개의 책장을 우회하며 뻗어나갔고, 나는 김솔과 함께 천천히 그 빛을 따라 완만한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X
그렇게, 실이 끝나는 지점.
그곳에는 부엔디아가 남겨놓은 표식이 선명하게 남겨져 있었다.
“그렇군···”
표식 위에 올라선 나는, 부엔디아가 남겨놓은 ‘안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부엔디아와 아우렐 위로 뒤덮여 있는 책장 중, 하나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완성돼 있었다.
[부엔디아] [및] [죄인들] [과] ··· [마르케스] [차원] [의] [위계를] ··· [전면] [박탈] [한다]그리고, 좀 더 가까운 또 다른 책장 하나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 [상위] [차원] [의] [식민지] [개척] [권한을] ··· [보장] [한다]
한쪽 눈을 감은 채, 두 개의 문장을 겹쳐 보며.
나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팍스, 준비해.”
지이이잉.
포탈 표면에, 드워프들의 강화망치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새로운 법령을 개정하기에, 망치만큼 상징적인 물건은 없었으니.
그리고···
“출하.”
타아아아앙!
망치가 총알처럼 날아들었다.
따악!
경쾌한 소리를 내며, 망치가 문장 한구석을 때렸다.
망치가 때린 것은 [보장]이라고 쓰인 블럭 하나.
그 블럭이 망치를 대신해 추진력을 얻었고···
따아악!
앞서 보았던, 다른 문장을 연달아 타격했다.
그러곤 원래 있던 다른 단어를 대신해, 그대로 새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게 완성된 문장은···
[위계를] ··· [전면] [보장] [한다]부엔디아와 아우렐의 부활을 알리는 ‘개정안’이었다.
“웬 놈이냐!”
소리를 들은 장서관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곤 구름을 탄 채, 망치를 발사한 우리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한편···
와르르!
덜그럭!
[보장] 글씨가 사라진 책장이 균형을 잃고 와르르 쓰러졌다.완성된 개정안은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만약 무너진다면 부엔디아와 아우렐의 위계도 없는 일이 되겠지만···
“이렇게 하는 게 맞겠지···?”
이미 부엔디아로부터 법령을 안정화하는 방법을 전해 들은 터였다.
지금은 물론, 차후에도 상공회의소가 법령을 다시 뜯어고칠 수 없도록, 별도의 처리 작업이 필요했으니까.
“출하.”
나는 그렇게 줄줄이 마석을 출하했다.
[남은 마석은 1,276,180개입니다.] [남은 마석은 1,223,958개입니다.] [남은 마석은 1,198,066개입니다.] [남은 마석은···]파삭! 파사삭!
완성된 법령 ‘책장’에 부딪힌 마석들이 산산이 깨져나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보장]이라는 글씨가 전체 문장에 점점 더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법률 개정에는 역시··· 로비지.”
개정을 위한 금품 청탁.
방대한 마석 에너지야말로 개정 내용을 고정하기 위한 가장 좋은 재료였으니.
“이 새끼들이···! 감히···! 신성한 법전에 감히 무슨 짓이냐!”
장서관장이 날아들었다.
녀석이 양팔을 쳐들자, 허공에서 길쭉한 나무 기둥이 창처럼 생겨났다.
즉석에서 판결을 내려, 우리에게 저주를 꽂아 넣겠다는 심산이었지만···
“어?”
후우우욱!
놈이 타고 있던 구름이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대처할 새도 없이 장서관장은 무너져 내렸고, 그가 만들었던 ‘판례’들 위로 철퍼덕 쓰러졌다.
휘이이이···
자욱하게 솟아오르는 먼지.
그 사이로, 흑마법사 두 명의 인영이 비쳐 보였다.
“흥미롭지 않소? 장서관장.”
그렇게 부엔디아는,
“오늘 새로운 판례가 생겨났잖소.”
왕년의 3위계를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