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86)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86화(186/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86화
판례 (2)
“뭐, 뭣······!”
장서관장이 뒷걸음을 쳤다.
부엔디아에게는 십수 구절의 저주를 걸어두었던 참.
하지만 자그마치 3위계에 달하는 척력이 장서관장의 저주를 밀어내고 있었으니.
뿌득. 뿌드득.
참으로 답답했다는 듯, 부엔디아는 가뿐하게 몸을 풀었다.
그러곤 옆에서 갸우뚱 몸을 일으키는 아우렐을 부축해주었다.
“부엔디아 님······.”
“고생했네, 이제 다 됐어.”
두 사람이 그렇게 몸을 일으킬 때쯤······.
“지엄한 법령 앞에서······. 어딜 감히 고개를 쳐드느냐!”
장서관장이 목을 틔우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수십 개의 나무 기둥이 나타나 공중을 부유했고, 그대로 책장의 형태로 짜 맞춰지며 흑마법사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슈우우웅!
“상품회수.”
“······.”
내가 곧장 아공간으로 아우렐을 빨아들였고,
부엔디아는 말없이 자신에게 날아드는 구절들을 직시했다.
포탈을 통과한 아우렐은 장서관장의 저주를 벗어던지며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부엔디아는······.
터엉!
터엉!
터엉!
파사삭!
날아온 책장들을 주변으로 흩어버렸다.
“이놈! 부엔디아!”
자신의 저주문이 산산이 조각나는 모습을 보며, 장서관장은 분노에 찬 노호를 내질렀다.
그러곤 기존의 방법만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여겼는지, 이곳 장서관의 자원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
쑤우우욱!
땅에 박혀 있던 책장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위계가 한 단계 낮다고는 하지만, 이곳은 다름 아닌 차원 재판소의 장서관.
장서관장은 책장에서 구결을 흑색의 파동으로 추출했고, 그대로 부엔디아를 향해 쏟아부었다.
“아무리 위계를 되찾았다고 한들······ 이곳 장서관에서 나를 이길 순 없을 거다!”
“위압이 어마어마하군. 그만큼 모두 억울했겠어······.”
부엔디아는 ‘판례’가 되어 굳어 있는 석상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곤 그로부터 사념을 추출해, 장서관장이 쏟아낸 저주의 파동을 받아쳤다.
카가가각!
서로를 짓누르고, 갉아먹는 두 개의 힘.
장서관장이 지엄한 법의 권위를 빌렸다면, 부엔디아는 그 권위에 희생된 석상들의 넋을 변호하고자 했다.
그렇게······.
꽈아앙!
장서관 중심 구역에서 치열한 법리 공방이 시작됐다.
.
.
.
부엔디아가 장서관장과 일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 나는 돌아온 아우렐과 함께 한 번 더 상황을 점검했다.
부엔디아와 마르케스의 위계를 되찾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아직 위계 신청서의 조건을 수정하는 일이 남아 있었으니.
포탈을 넘은 덕에 저주에서 벗어난 아우렐이 입을 열었다.
“저희에게 부여되어 있던 위계 박탈은 특정 사례에 적용된 하위법에 속합니다. 하지만 위계 신청서는 다차원 만인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원형법······. 이곳 장서관의 헌법 구조를 이루고 있는 뿌리에서 다시 한번 <위계>를 찾아야겠죠.”
“뿌리라면······ 설마 지하에 있다는 건가?”
“일반적으로는 그렇겠습니다만, 이건 법이니까요. 상위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더군요.”
아우렐이 손을 들어 위를 가리켰다.
어둠에 가려진 천장에는 붉은 책장들이 우후죽순 늘어서 있었다.
바로 저곳에 있는 법령을 수정해야 한다는 뜻.
나는 한 번 더 아우렐에게 물어보았다.
“괜찮겠어?”
“최대한······ 빨리 끝내보겠습니다. 부엔디아 님도 힘 써주고 계시니까요.”
그것만 바꾸면 이제 끝이었다.
이후로는 더 이상 이곳 장서관에 볼일이 없었으니.
나는 아우렐을 아공간 내로 들인 후, 다시 나지막하게 덧붙였다.
“출하.”
쐐애애애애액!
그렇게, 나는 천장을 향해 아우렐을 ‘발사’했다.
높이 떠오른 아우렐은 두 눈을 보랏빛으로 물들이며, 붉은 책장 사이에서 <위계> 관련 조항을 필사적으로 찾아다녔다.
하지만 공중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고작 2초 남짓.
그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금 낙하를 시작했고, 나 또한 그의 추락에 맞춰 <상품 회수> 발동했다.
그리고······.
“한 번 더······!”
또다시 그를 발사했다.
쏜살같이 천장을 향해 날아가는 아우렐.
그때, 부엔디아와 힘을 겨루던 장서관장이 그 모습을 목격했다.
“안 된다! 이놈들!”
슈화아아악!
장서관장은 흑색 파장의 경로를 급격하게 꺾어버렸고,
그렇게 구부러진 공격은 그대로 솟구치던 아우렐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아뵤!”
타아아아앙!
이번에 날려 보낸 것은 아우렐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날려 보낸 김솔이 장서관장의 공격을 튕겨냈고, 비껴간 파장이 붉은색 책장 어딘가를 강하게 타격했다.
꽈아아앙!
후두둑······!
“이이익!”
장서관장은 단단히 열이 받은 모양이었지만,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그는 한창 부엔디아와 팽팽히 합을 겨루고 있었으니.
그러는 사이, 나는 또다시 아우렐을 아공간으로 수용했고,
이번에는 김솔은 물론, 다이치까지 한데 묶어 다시 하늘로 쏘아 올렸다.
쐐애애애액!
서로의 옷깃을 부여잡은 채, 하늘로 솟구치는 세 사람.
그렇게 다시금 천장에 다다랐을 즈음······.
“봉진!”
다이치가 사방으로 부적을 날려 보냈고, 주변 일대의 시공간이 고정되며 셋은 그대로 공중에 체공하게 되었다.
조금씩 추락하고는 있지만 현저히 느려진 속도.
덕분에 30초에 가까운 시간 동안 붉은 책장들을 탐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찾았습니다!”
[차원 존재] [는] ······ [신청서에] [기재된] [조건에] [따라] [새로운] [위계] [를] ······ [부여받을 수 있다]그토록 찾아 헤매던 ‘헌법 원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배자들에게 위계를 부여해주기 위해 고안한 상공회의소의 기초법.
권력자들을 위한 그 법령을 향해, 아우렐이 손을 뻗었다.
그리고,
화아아악!
[기재된] [마석에] [따라] ······ [위계] [를] ······ [부여받을 수 있다]당초 우리가 논의했던 대로, 놈들의 법령을 뜯어고쳤다.
‘······이걸로 됐겠지.’
조건을 아예 없앨 수는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위계 신청서가 요구하는 조건을 다른 것으로 우회하는 것이지, 그 비용 자체를 무마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물론 위계를 쌓기 위해서는 상당한 양의 마석을 모아야 할 테지만, 이제 식민차원을 거느려야 하는 식의 무리한 조건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후우우욱!
그렇게 아우렐, 김솔, 다이치는 무사히 역할을 마쳤다.
이번에도 아공간을 이용해 그들의 착지를 도왔고, 곧장 장서관장과 겨루고 있는 부엔디아를 지원하기 위해 다 같이 움직였다.
그러던 사이······.
수용소에서처럼 부엔디아로부터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얼추 일이 마무리된 것 같군······.] [최대한 티 내지 말고, 바로 아공간을 이용해 빠져나가세.] [위계 덕분에 더 이상 놈의 저주에 휘말릴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놈을 해치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부엔디아의 흑마술은 지원과 조작, 교란에 특화돼 있었다.
3위계의 척력을 되찾았음에도 4위계를 두른 장서관장을 처리할 방법이 없는 것.
때문에 부엔디아 또한 불필요한 싸움을 이어가기보다는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자 제안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필요한 조항은 모두 뜯어고쳤으니······.’
우리로서는 더 이상 이곳 장서관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곧장 포탈을 열었고, 부엔디아와 우리 네 사람을 대상으로 <상품 회수>를 발동했다.
하지만······.
“······뭐지, 이게?”
터엉!
아공간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공간 사이의 연결망이 끊어진 것처럼, 포탈의 표면에는 짙은 검정이 두껍게 칠해져 있을 뿐이었으니.
다름 아닌 장서관장의 소행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4시간 동안. 나는 물론이고, 너희 중 누구도 이곳 장서관에서 나갈 수 없다.”
치이이이이······.
그가 모아놓았던 ‘판례’ 석상들이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그 직후, 거대한 장서관 내부가 두꺼운 막으로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장서관장이 덧붙였다.
“너희 같은 버러지들 탓에 피 같은 판례를 남김없이 소모했다. 그 죗값은 너희가 직접 치러야겠지. 너희를 새로운 판례로 만들고······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조항들을 도로 고쳐 놓겠다!”
저주에 휩싸여 석화된 희생자들.
‘판례’라는 이름의 석상들은 장서관장의 자원이기도 했다.
그 모두를 소모한 대가로, 이곳 장서관을 외부와 완전히 차단하게 된 것.
‘······필사적이군.’
개정된 법 조항들은 최소 수십 년간은 수정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방법, 개정에 참여한 우리를 ‘판례’로 만들어 처벌하고, 지금까지의 과정을 역순으로 뒤집는 것을 통해 개정된 법령을 원복할 수 있었다.
타닥!
포탈을 통한 탈출이 불가능해진 상황.
부엔디아를 향해 달려가며, 나는 아공간 능력을 다시 점검했다.
‘다행히······ 모든 능력이 막힌 건 아니야.’
무기를 출하하거나 회수하는 능력들은 여전히 잘 작동했다.
사람은 안 돼도, 사물은 왕래가 가능한 모양.
공간 전체를 봉인한 장서관장이었지만, 사물까지는 봉인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곧 부엔디아와 합류했다.
장서관장이 그새 자취를 감추었지만, 부엔디아는 눈을 부릅뜨고 그의 흔적을 쫓고 있었다.
그가 내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긴장하게······. 놈에게 아직 수가 남아 있는 것 같아.”
과연 그의 예상대로였다.
장서관장이 커다란 말뚝을 들고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으니.
말뚝에는 붉은색 저주 술법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고, 장서관장은 여간 불쾌한 표정이 아니었다.
“이건 다차원의 몇 안 되는 보물 중 하나다. 전설적인 주술사가 직접 만든 토템으로······ 지엄한 위계 법령을 위반한다는 이유로 압수된 물건이지. 영광인 줄 알아라. 너희에게 쓰기엔··· 정말······ 정말 너무나 아까운 물건이니까.”
관장은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파각!
기습적으로 말뚝을 지면에 꽂아 넣었다.
슈화아아아악!
토템에 새겨져 있던 저주 술법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 얼룩 같은 글씨가 발밑을 스치고 지나갔고, 정신이 아득해지며 풀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저, 저주가······ 갑자기······?”
“뭘 그리 놀라나? 너희의 위계를 끌어내렸을 뿐인데. 네놈들이 놀라야 할 건 따로 있다. 이 토템이 주변 일대 적들의 위계를 세 단계나 끌어내릴 수 있는 귀물, 마음만 먹으면 중상위 차원 하나를 정벌해 버릴 수 있을 말도 안 되는 보물이라는 사실이지.”
“세 단계······?”
세 단계의 위계 하락.
그것이 저 말뚝이 가진 괴물 같은 능력의 정체였다.
그 효과 또한 확실했다.
단번에 위계가 하락했고, 장서관의 저주가 엄습했다.
부엔디아는 6위계로, 나와 김솔은 9위계로 떨어졌고, 그 이하로 내려간 아우렐과 다이치는 거의 졸도 직전에 이르렀다.
한편······.
“······.”
장서관장은 여전히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아깝다는 말은, 저 토템이 재사용이 불가능한 물건이라는 뜻일 터.
토템에서 새어 나온 문자들이 뿌리처럼 바닥을 파고 들어간 것으로 보아, 한 번 박으며 다시 뽑을 수 없는 말뚝인 듯했다.
“끄륵······.”
저주가 온몸을 조여왔다.
눈앞이 흐려지는 중에도, 나는 끝끝내 장서관장에게 물었다.
“이 토템은······ 너 같은 저주술사들만 다룰 수 있는 건가······?”
“흥. 다 죽어가는 마당에 궁금한 것도 많구나. 그야 당연한 소리다. 저주문의 구결이 고르게 퍼질 수 있도록 고루 행간을 배치할 수 있어야 하니까. 하지만 이 물건이 괜히 보물이 아닌 것은······ 아무리 엉망으로 행간을 배치해도 그 힘으로 최소 1위계를 하락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오······!”
“흐흐. 하위차원 찌꺼기 주제에 그 가치를 알아보는구나. 그뿐인 줄 아느냐? 광역 저주의 단점은 그 적용 대상을 고를 수 없다는 것······. 하지만 이 토템은 영역 내에서라면, 술자가 원하는 대로 저주 대상을 선정할 수 있다. 너희와는 달리 내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이유지.”
“햐아······!”
“이 토템만 있다면, 불리한 전황을 한 번에 뒤집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위계는 차원 간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력이 되는 법이니······.”
“캬아······!”
사실 이미 팍스를 통해, 그 가치는 진즉 알아본 참이었다.
마석 817만 개.
그것이 저 토템의 가격이었으니.
<쇼퍼홀릭>으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가격이었지만,
내게는 아직 레벨업으로 얻은 ‘공짜 티켓’이 남아 있었다.
‘이것 참······.’
사실 나는 절약 정신이 굉장히 투철한 사람이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 있어도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그런 사람.
하지만······.
‘저렇게 세일즈를 잘하는데······ 못 참지.’
장서관장의 말에는 깜빡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저 말을 듣고 어떻게 안 사고 배긴단 말인가?
땅에서 뽑아 올리는 게 불가능한 말뚝 토템이라지만, 감쪽같이 그대로 아공간에 수용되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을 터였다.
그렇게······.
“팍스.”
띠링!
[알겠습니다]토템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