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87)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87화(187/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87화
판례 (3)
“······??”
적막에 휩싸인 공간.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장서관장의 멍한 표정이었다.
한순간에 우리의 위계를 옥죄던 말뚝이 사라져버렸으니.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진짜 나가야지.’
이제는 우리가 이곳 장서관을 빠져나갈 차례였다.
위계를 되찾으며, 모든 저주를 벗겨낸 참이다.
하지만 장서관에 걸린 봉쇄는 그래도 남아 있었고, 아공간 또한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질 않았다.
<출하>나 <상품회수>는 가능하지만, 아공간을 이용한 통행은 불가한 상황.
그리고 나는 이 봉쇄를 사물이 아닌, 오직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장서관의 벽면은 두껍고 불투명한 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렇다면 사람이 아닌 것으로, 그 벽을 뚫어버리면 되지 않을까?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출하.”
꽈아아아앙—-!
와르르르!
귀를 찢을 듯한 폭음과 함께 사방이 무너져내렸다.
법률 조항이 담긴 책장 몇 개가 우르르 무너져내렸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앞서 마석을 발라놓은 덕에, 우리가 개정한 ‘위계’ 관련 법률은 건재했으니까.
“이 무슨······!”
장서관장은 차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너져내리는 법 조항들 위로, 거대한 회색 물체가 몸을 일으켰으니.
바르나울에서부터 줄곧 숨겨놓고 있었던, 본 드래곤이었다.
“쑥쑥 자라고 있군.”
아공간 포탈은 레벨이 올라갈수록 커지고 있다.
꺼낼 수 있는 본 드래곤의 뼈도 점점 더 커진다는 뜻.
덕분에 덤프트럭만 하던 녀석의 크기는, 3~4층까지 건물 크기까지 불어나 있었다.
그어어어어어어!
녀석이 울부짖었다.
보기엔 저래도, 시시포스로 양질의 교육을 사사받은 ‘백구’.
(나를) 절대 물지 않는 착한 본 드래곤이었다.
“가라, 백구야.”
백구는 그대로 몸을 던졌다.
이곳 장서관의 캄캄한 밀실이 답답하다는 듯, 그대로 이곳 장서관의 벽면을 들이받았다.
꽈르르르릉!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벽면.
이를 감싸던 봉쇄막이 함께 후두둑 떨어져 내리자, 그 밖으로 푸릇푸릇한 재판소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 안 돼!”
장서관장의 비명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되는 양, 녀석이 우리를 향해 몇 개의 저주문을 날려 보냈다.
힘이 떨어진 것인지, 앞서 사용하던 것보다 훨씬 약화된 것들.
부엔디아는 귀찮다는 듯, 손짓 몇 번으로 장서관장의 저주를 모조리 떨궈버렸다.
“그만 질척거리게.”
“······!”
곧장 본 드래곤에 올라탔다.
펄럭 소리와 함께 구멍 뚫린 날개가 바람을 실었고, 그렇게 우리를 태운 본 드래곤은 유유히 장서관을 빠져나왔다.
-······!
등 뒤로, 장서관장의 애닳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
.
휘이이이!
몰려드는 시원한 자유의 바람을 맞으며, 나는 봉쇄돼 있던 아공간 능력이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만큼은 다행.
하지만 동시에 아쉬운 소식을 발견하게 됐다.
‘······말뚝이······ 뿌리를 내려버렸다.’
장서관장으로부터 구매(?)한, 한번 심으면 다시는 뽑을 수 없는 저주 말뚝.
아공간에 수용해버리는 것까지는 계획대로였다.
하지만 그대로 물류센터 복도에 뿌리내릴 줄이야.
말뚝은 토템처럼 설치하는 것으로 효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물류센터는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내 아공간 속 세계.
아공간 속으로 끌어들이는 게 아닌 이상, 적들에게는 사용이 불가하다는 뜻이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최대한 감정을 털어냈다.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후회할 일은 아니었다.
이 방법이 저주를 풀고 장서관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휘이이!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아쉬움을 털어내고 있을 즈음, 부엔디아가 내게 물었다.
“능력은 돌아왔는가?”
“예, 이 근처만 벗어나면 바로 포탈로 넘어가도 됩니다.”
“잘 됐군. 혹시 빠져나가기 전에 어디 한 곳 들렀다 가도 괜찮겠나?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걸세.”
“어디를요······?”
재판소의 시설은 비단 장서관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은 매일같이 공판을 벌어지는 치열한 전장.
그런 전장에서는 특별한 무기가 사용되는 법이었다.
“이 앞으로 곧장 내려가면 증거품 보관소가 있네. 거기에 내가 왕년에 사용하던 지팡이가 있거든. 놈들이 증거품이랍시고 압수해간 물건일세.”
“지팡이······!”
부엔디아는 다차원을 주름잡던 전설적인 흑마법사였다.
하기야 그쯤 되면 손에 익는 애병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
그 물건이 이 아래 ‘증거품 보관소’에 남겨져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공격 마법에는 별 재능이 없네만······. 그래도 그 지팡이가 있다면 남들 하는 만큼은 해볼 수 있다네. 장서관장 저놈과 싸우다 보니 문득 생각이 나서 말이지.”
부엔디아는 씁쓸한 웃음을 내보였다.
그의 흑마법은 조작과 지원에 특화되어 있었고, 조금 전 전투에서 그 단점을 여실히 체감한 참이었으니까.
“지팡이만 있으면 5위계 수준의 공격 마법은 대부분 사용할 수 있네. 캐스팅 시간만 보장된다면 그 이상도 가능하고······ 자네들에게도 도움이 될 게야. 그 밖에도 이것저것 쓸만한 물건들이 보관돼 있을 걸세.”
부엔디아의 지팡이는 보관소 최상층에 보관되어 있었다.
증거품 중에서도 보안 등급이 최상에 달하는 물건들을 모아놓은 장소.
보물이 없다면 이상할 장소였다.
나는 곧장 결정을 내렸다.
“그럼, 가시죠.”
“알겠네. 나도 준비하지.”
쐐애애액!
그렇게 우리는 하강을 시작했다.
부엔디아의 흑마력이 본 드래곤을 감쌌고, 힘을 얻은 녀석이 힘차게 콧바람을 뿜었다.
그렇게 부엔디아가 지목한 보관소 건물에 다다랐을 즈음.
카가가가각!
와장창!
본 드래곤의 발톱이 보관소 천장을 그대로 뚫어버렸다.
위이이-이잉!
보관소 전체가 경보음으로 둘러싸였지만, 별문제는 없었다.
장서관을 빠져나왔을 때부터 재판소 전역에서 사이렌이 울려 퍼지고 있었으니.
사실은 소행성을 처박았을 때부터 줄곧 그랬다.
.
.
.
“······.”
증거품 보관소에는 갖가지 보안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장서관에 비하면 하품이 나오는 수준.
우리는 순식간에 보관소의 보안을 파훼해나가기 시작했다.
화르륵!
부엔디아와 아우렐이 흑마력을 피워올렸다.
두 사람은 흑마력을 손가락으로 찍어 휘적거렸고, 보안 장막은 ‘밀어서 잠금해제’된 것처럼 스르륵 자취를 감췄다.
“여기가 보관소······.”
내부에는 은은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박물관에 온 것처럼 갖가지 증거품들이 유리 벽에 진열돼 있었는데, ‘증거품’이라는 이름처럼 보물만 있지는 않았다.
“그건 그냥 잡동사니일세. 그것보다는 저기······ 그리고 저것도 챙겨가면 좋겠군.”
“아뵤!”
와장창!
부엔디아가 즉석에서 증거품을 감정했다.
쓸만한 물건이라 판명되는 즉시 김솔이 유리창을 깨부수었고, 나는 땅에 떨어진 물건들을 주섬주섬 주워들어, 포탈을 통해 엘븐하임으로 던져넣었다.
그렇게 정체도 모를, 몇 개의 아이템을 손에 넣었을 즈음······.
“아, 저 물건일세.”
드디어, 부엔디아의 지팡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보안 시스템을 모조리 파훼한 만큼, 지팡이를 꺼내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부엔디아는 고개를 저으며 지팡이를 포탈로 휙 던져넣을 뿐이었다.
“그새 금제를 걸어뒀군. 해제하려면 시간 좀 걸리겠어.”
파우스트가 걸어놓은 금제 탓에 당장은 사용이 불가한 물건.
때문에 우리는 아직 남아 있는 다른 증거품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발견한 것은······.
“······!”
진열장 한 편에 그득하게 쌓여 있는, 금괴 모양의 마석이었다.
팍스를 통해 물어보니 하나하나의 가치가 마석 1만 개에 달했다.
이를 바라본 부엔디아가 쯧쯧 혀를 찼다.
“파우스트가 질질 끌고 있는 횡령 소송이 하나 있다고 했는데······ 이게 그 물건인 모양이군.”
부엔디아가 감옥에서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였다.
파우스트가 다른 상위 차원인 피렌과 이해관계가 얽힌 탓에, 애매하게 묶어놓은 돈이라고.
일종의 자존심 싸움에 가깝다는 평가였지만······.
“내 알 바 아니지.”
슈우우우욱!
망설일 것 없었다.
바로 유리창을 박살 낸 뒤, <상품회수>로 진열된 마석을 모조리 빨아들였으니.
내 차원 계좌의 잔고는 순식간에 230만 개까지 불어났다.
“레벨 업 진행해.”
띠링!
[알겠습니다] [레벨업에 필요한 마석, 1,500,000개를 받았습니다] [남은 마석은 815,297 개입니다]어차피 ‘공짜티켓’까지 소진한 상황.
일말의 고민 없이 파우스트와 피렌의 돈을 자원으로 삼았고, 아공간 12레벨을 달성했다.
그리고 때마침······.
-놈들이 여기 있다!
-모조리 검거해! 끝까지 따라붙어!
우리를 추격해오던 재판소 경비대가 바싹 따라붙었다.
타닥!
슈우우욱!
군홧발 소리와 함께 놈들이 보관소 계단을 타고 올라왔고,
천장에서도 경비대가 밧줄을 타고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퍼어엉!
빠악!
김솔이 사방에 방어막을 두르며 놈들에 맞섰고, 아우렐과 부엔디아 또한 흑마력을 쏟아부으며 놈들의 진입을 저지했다.
하지만······.
-밀어붙여!
-계속 진입한다!
경비대는 물량을 앞세워 통로 곳곳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다급한 목소리로, 부엔디아가 내게 말했다.
“필요한 물건은 다 챙긴 것 같군. 바로 빠지면 되겠나?”
“그러시죠. 하지만 그 전에······.”
포탈을 사용하면 언제든 도망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이 많은 적들을 상대로 한 가지 테스트해 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새로운 능력이 생겼더라고요.”
아공간 12레벨을 달성한 지금.
꽤 오랜만에 새로운 능력이 개방된 참이었으니까.
물류센터가 꺼낼 수 있는, 마지막 한 수를 나타내는 이름이었다.
나는 곧장 시동어를 외쳤다.
그리고,
“창고대방출.”
순식간에 변화가 찾아왔다.
타다다다다닥!
타라라라라락!
와자장창!
증거품을 보관하고 있던 주변의 유리가 사정없이 깨져나갔다.
물류센터의 철제 프레임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눈 깜짝할 사이에 갖은 사물들이 박스 단위로 매대를 채우기 시작했다.
-뭐, 뭐야! 무슨 일이냐!
-공간이······! 보관소가 통째로 변하고 있습니다!
경비대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벽면이 뒤집어지고 바닥이 출렁거리는 둥, 시시각각 급변하는 환경.
창고대방출.
그것은 일대에 물류센터를 깔아버리는 일종의 영역 효과였다.
매대에는 다발의 성창, 볼링공처럼 진열된 운철구, 강화된 소총 등등, 어쩌면 무기고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지도 모를 품목들이 즐비하게 깔려있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출하.”
타라라락!
슈화아아아악!
피잉-!
-피, 피해!
꽈아아아아아아아앙!
비치된 품목들을 모조리 한꺼번에 출하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날카로운 성창이 미사일처럼 솟구쳤다.
거대한 운철구가 대포알처럼 날아들었고, 정글도와 장검이 유령처럼 공중을 누볐다.
-······!
아비규환이 된 증거품 보관소의 최상층.
사방에서 날아드는 갖가지 무기에, 경비대는 어쩔 줄 몰라 혼비백산할 뿐이었다.
몇몇 놈들이 기지를 발휘해 꼿꼿이 서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걸 이렇게 써먹네.”
물류센터에는 새 품목이 입고되어 있었다.
장서관장에게서 빼앗은 저주 말뚝이, 다름 아닌 내 물류센터에 박혀 있었으니까.
“······허억!”
쿠우우우웅!
말뚝의 효과가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영역 단위로 위계를 깎아버릴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사기템.
원래라면 한 장소에서 밖에 사용할 수 없는, 1회성 토템이었지만······.
“이제는 어디에서든.”
‘창고대방출’을 사용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일대에 말뚝의 효과를 전개할 수 있었다.
물론,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강화가 부족한 것인지, <창고대방출>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분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그 짧은 시간만으로도······.
“허어어억!”
“끄어억!”
추적자들을 제압하는 데는 충분했다.
위계가 하락한 경비대는 무릎을 꿇었다.
쏟아지는 화물 세례를 받아들였고, 감격과 함께 눈을 감으며 하릴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렇게 주변을 깔끔하게 쓸어버린 우리는······.
“세일 종료.”
유유히 아공간 포탈을 넘어갔다.
이윽고 나타난 포탈이 쏟아진 매대와 상품들을 깔끔하게 쓸어 담았다.
남은 것이라곤,
휘이이······.
폐허, 그리고 적막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