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88)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88화(188/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88화
쌍둥이 형제 (1)
“그럼······.”
재판소에서의 상황이 일단락됐다.
이제는 그 결과를 확인할 차례.
우리는 곧장 엘븐하임으로 향했고, 이곳 잔디밭에는 보관소에서 던져놓았던 여러 증거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크기도, 종류도 다양했지만, 크게 주목할 만 것들은 다음과 같았다.
“고맙네. 아케인 마법쟁이 놈들이 쓰는 물건에 비하면 싸구려나 마찬가지지만······ 이상하게 나와는 상성이 좋아서 말이지.”
첫째로는 부엔디아의 흑마술 지팡이.
짙은 흑갈색 나무를 깎아 만든 물건으로, 곳곳에 파인 옹이구멍이 인상적이었다.
파우스트가 걸어놓은 금제가 푸른 결계 형태로 지팡이를 맴돌고 있었지만, 부엔디아의 말로는 하루 이틀이면 손쉽게 해제할 수 있다는 모양.
그에게 지팡이를 맡겨둔 채, 나는 다음 물건을 주워들었다.
“음······ 거울인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손거울.
일단 챙기기는 했다만, 도통 쓸모를 모를 물건이었다.
은빛 거울을 들어 햇볕을 번쩍번쩍 비추고 있노라니, 이내 부엔디아가 다가와 내게 거울에 담긴 비화(秘話)를 전해주었다.
“아, 이것 참 재밌는 물건이지.”
“뭐 하는 물건인데요?”
“삼십 년 전쯤이었나······ 그런 일이 있었네. 고명하신 흡혈귀 공작 영애께서, 아케인의 젊은 백작과 연분이 났다고 다차원이 떠들썩했지. 혼인식이 치러진다 어쩐다 말이 많았네만, 결국 이어지지는 못했어.”
“······??”
부엔디아는 대뜸 귀족들의 연애사를 떠들고 있었다.
흡혈귀의 파혼 소식이 당최 거울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일단은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백작이 바람이 났다는 소문이 나돌았거든. 마탑주 딸의 침실에서 기어나왔댔나 어쨌나······ 아무튼 흡혈귀 공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네. 사건의 진의를 파악하려고 비밀리에 장인을 물색해 이 ‘추적 거울’을 만들었지.”
“추적 거울이라면······?”
“일종의 감시 장치일세. 겉보기엔 그냥 거울이지만······ 나중에는 얼굴을 비춘 사람의 시선을 따라 비추게 되는 식이지.”
흡혈귀 공녀는 미리 거울에 백작의 얼굴을 비추어두었다.
그리고 어느 날, 백작이 또다시 마탑주 딸의 집 앞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녀는 서둘러 거울을 확인하려 했지만······.
“거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네. 백작이 파우스트를 끌어들였거든. 거울은 알맹이도 없는 사건의 증거품으로 채택된 채 그대로 증거품 보관소에 틀어박혔네. 파우스트가 갖은 핑계를 대가며 공판을 미룬 것은 당연지사지. 그들 또한 백작의 사생활이 담긴 거울이 세상 빛을 보기를 바라지 않았으니.”
그것이 ‘추적 거울’이 증거품으로 보관돼 있던 이유였다.
상위 차원의 귀족들이 벌이는 스캔들쯤이야, 솔직히 내 알 바 아니었지만, 거울의 성능만큼은 확실했다.
“정보를 캐는 데 도움이 되겠군요.”
“그렇겠지.”
자주는 아니지만, 때때로 적들의 수뇌부를 마주할 때가 있었다.
차원본부를 타고 온 아드리엘, 재판소의 장서관장, 상공회의소의 고위 직원까지.
그들의 얼굴을 비출 수만 있다면, 어쩌면 거울을 통해 상공회의소의 심부를 들여다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일단은 잘 보관해 두기로 했다.
피렌이 물러간 지금, 지구에는 딱히 정보를 캘 만한 인물이 없었으니까.
다음으로 집어 든 물건은······.
“이건······.”
투명하면서도 뻣뻣한, 반쯤은 비닐 재질로 된 종이 뭉치였다.
이번에도 역시, 부엔디아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건 굳이 따지자면 증거품은 아닐세. 증거를 담을 수 있는 물건이지.”
종이는 포스트잇처럼 겹겹이 뭉쳐져 있었다.
부엔디아는 그중 한 장을 떼어내 흑마력을 불어넣었고,
순식간에 보랏빛으로 물든 종이는 곧 펑펑 터져나가며 허공에 자잘한 회로를 뻗었다.
“<이능 검사지>라고 부르네. 종이에 각성 능력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에······ 주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증거로 제출하는 데 사용되곤 해.”
“그렇다면 혹시······?”
“맞네. 이 종이만 있다면, 다른 사람의 능력까지도 대신해서 사용할 수 있지. 마치 마법 스크롤처럼 말이야.”
“······!”
그것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물건이었다.
필요한 각성 능력을 수집해, 마법 스크롤처럼 난사할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 역시나 제약이 있었다.
“실전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네. 능력을 온전히 불어넣는 데에만 10분이 넘게 걸리는 데다가······ 그 뒤로도 1분을 채 못 가서 휘발되어 버리거든.”
“아······.”
말 그대로 증거 제출에나 탁월한 물건이었다.
유통기한은 1분밖에 안 되면서, 담는 데 10분이 걸리는 통조림.
그런 물자를 전쟁에서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
“상공회의소 놈들. 검사지 새로 만들려면, 돈깨나 써야 할 게야. 흐흐.”
그런데도 꾸역꾸역 챙겨온 것은, 이 <이능 검사지>가 엄청나게 비싼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놈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하는 부엔디아.
하지만 나는 한 가지 활용 방법을 떠올렸다.
“다이치, 잠시만.”
“네?”
멀찍이서 몸을 추스르고 있던 다이치를 데려왔다.
부엔디아에게 부탁해 종이에 다시 흑마력을 불어넣었고, 그 위로 다이치의 ‘봉진’ 부적을 덧댔다.
그 결과······.
“오!”
검사지의 색이 휘발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1분은 물론, 훨씬 오랜 시간 동안에도 능력을 담아둘 수 있게 된 것.
실제로 10분 이상 시간이 지났음에도 검사지는 휘발되지 않은 채, 그대로 흑마력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러면 용도가 훨씬 다양해지겠군. 정말로 마법 스크롤이나 다름이 없으니······.”
“그렇죠?”
물론 그 유통기한이 정확히 얼마나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다이치의 봉진이 시간을 완전히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나마도 부적으로 따로 떨어졌을 경우엔 한결 효력이 약화되었으니까.
정확한 성능과 쓸모에 대해서는 차차 연구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걸 데려왔다고?”
“네!”
정말 정말 마지막으로, 하나가 더 남아 있었다.
장서관을 지키던 삼두견.
위계를 찢어먹는다던 그 개를 다이치가 잡아 왔으니까.
전말은 이러했다.
우리가 본 드래곤을 타고 빠져나왔을 당시, 장서관에서 곧장 삼두견이 뛰쳐나왔다.
증거품 보관소까지 우리를 추격한 녀석은 계약 장소를 벗어난 탓에 유기견 신세로 전락했고, 이를 불쌍히 여긴 다이치가 녀석을 케이지에 잡아넣었다고.
아니나 다를까, 다이치의 몸에는 그새 봉인 무적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보실래요? 착해요!”
“아냐, 갖고 있어.”
“네!”
세 마리 같은 한 마리 입양.
일단 그것으로 전리품 확인을 마쳤다.
.
.
.
“휘우!”
“호랑이 힘이 샘 솟는구만!”
이번의 수확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장서관에 있던 위계 조항들을 수정해, 부엔디아는 물론 죄수들의 위계까지 되찾아주었으니까.
이곳은 엘븐하임에 짓고 있는 죄수들의 새 거주지.
그들은 풀밭에 주차해 놓은, 소행성 버전 차원 본부에 걸터앉아 왁자지껄 우스개를 주고받고 있었다.
“너! 내 동료가 돼라!”
위계도 되찾았겠다, 이제는 아예 해적팀을 꾸리고 있었다.
상공회의소의 마석 운반선들은 여전히 그라디바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고, 앞으로도 우리는 궤도를 맴돌며 마석을 수급할 계획이었으니까.
그렇게, 풀밭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즈음······.
“정겸아.”
“아, 형 왔어?”
우리 김씨일가의 첫째.
나의 형 김성겸 씨께서 내 옆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본부장님은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앞서 하던 일이 있으셔서.”
“한강 다리 고치고 있다고 했었나?”
“그건 지난주에 끝났지.”
내가 지구 밖에서 두문불출하는 동안, 형은 작전본부장 유성철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수도권이나 주요 도시에서의 전후 복구 사업이나, 각성자들의 교육, 관리 등등의 일에 힘쓰고 있는 것.
내가 두 사람을 부른 이유는 다름 아닌 위계 때문이었다.
죄수들이 위계를 회복한 것처럼, 두 사람에게도 7위계 이상을 부여해줄 생각이었으니.
두 사람 모두 비각성자였지만, 수정된 신청서만 있다면 마석으로 위계를 올려줄 수 있었다.
한편, 이렇게 따로 보는 것이 꽤 오랜만이라 그런지, 형은 내 안부를 묻기에 여념이 없었다.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음······. 그런가?”
확실히 피곤한 감이 없지 않았다.
얼마 전 지구에 설치된 차원본부를 탈취한 이래,
바르나울을 멸망시키고, 수용소를 깨부수고, 재판소를 박살 내는 등, 하루도 바쁘지 않은 날이 없었으니까.
솔직히 쉬고 싶은 마음도 없는 건 아니었지만······.
“뭐, 어쩌겠어.”
여전히 할 일이 산적해 있었다.
죄수들과 함께 그라디바의 마석 운반선에서 마석을 수급하는 것.
상공회의소의 상황을 주시하고 대비하는 것.
거기에 최근 북아프리카 쪽에서 불거지고 있는 각성자들 간의 내전까지.
하나같이 직접 움직여야 할 문제들이었기에, 솔직한 마음으로는 몸이 여럿이기를 간절히 소원할 지경이었다.
‘마석 털이 만이라도 맡겨둘 수 있으면 좋으련만.’
사실, 이제는 운반선 장악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위계를 되찾은 만큼, 능력을 십분 활용한다면 죄수들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으니.
하지만 적재함에 있는 마석을 수거하는 일에는 내 아공간 능력이 필요했고, 그 때문에 앞으로도 일일이 운반선 털이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써볼까? <이능 검사지>?’
팔랑.
나는 다이치의 부적이 겹쳐진 검사지를 움켜잡았다.
검사지에 내 아공간 능력을 담을 수 있다면,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을 보내 마석을 챙겨와 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와 동시에 걱정 또한 앞섰다.
수금책 역할인 것은 물론이요, 잠깐이나마 내 아공간 능력을 내어주어야 하는 것.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하지만 동시에 위험한 일을 부탁해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현재로서는, 모두가 빠듯하게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다.
김솔은 애당초 바쁜 와중에 데려온 것이었고, 운양과 민우는 여전히 북아프리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카멜롯의 기사들이나 베론을 쓸 수도 있었지만 그러려면 그들의 역할에 다른 누군가를 또다시 투입해야만 하는 상황.
‘그냥 내가 하는 게 나을 수도······.’
특별히 이렇다 할 만한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피로가 몸을 타고 올라와 머리가 지끈거렸고, 화끈거리는 눈을 한참이나 비비적거렸다.
그렇게 한참 있자니······.
“정겸아, 정겸아?”
흔들흔들!
형이 내 어깨를 흔들었다.
“어, 어······.”
너무 깊게 생각에 빠져 있었던 모양.
하지만 아직 정신을 차린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뭐지?’
눈앞에 있는 형의 모습이, 갑자기 세 명으로 늘어나 있었으니까.
어안이 벙벙한 내 표정에, 형은 걱정스러운 반응이었다.
“얘 좀 봐라, 넋이 아예 나갔네. 괜찮냐?”
“진짜 피곤한가 봐. 왜 형이 세 명으로 보이지?”
“왜긴······.”
그리고 돌아온 것은······.
“내가 각성했으니까 그렇지.”
“······?”
서로 다른 미소를 짓는 세쌍둥이의 미소,
며칠 전 분신술을 각성했다는, 형 김성겸 씨의 난데없는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