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89)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89화(189/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89화
쌍둥이 형제 (2)
시간이 흘러, 그러고부터 며칠 뒤.
그라디바를 맴돌던 차원선이, 마침내 새 운반선과 마주했다.
-······!
느닷없이 흉악한 죄수들이 선체를 덮쳤고,
흑마법사의 자장가에, 운반선의 선원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몰려드는 잠에 못 이겨 스르륵 두 눈을 감는 사이, 운반선의 경보 버튼은 오늘도 뻣뻣하게 굳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우렐도 훌륭하네요.”
“물론일세. 흑마법사여서 그렇지······. 아케인이었다면, 적색쯤은 거뜬히 달았을 테니까.”
운반선 약탈이 한창인 지금.
나는 이곳 ‘물류상황실’의 위성 시스템을 통해, 부엔디아와 함께 현장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있었다.
무언가 생각이 났다는 듯, 부엔디아가 수염을 쓸며 덧붙였다.
“그건 그렇고, 마침 잘됐군. 분신 능력이라니······.”
모니터에는 갑판을 가로지르는 나의 형, 김성겸 씨의 얼굴이 비쳐있었다.
정확히는 본인이 아닌, 각성 능력으로 만든 분신체.
지금 레벨에서 만들 수 있는 분신은 총 두 개였는데, 그중 하나를 해적 단원으로 삼은 참이었다.
스윽.
잠시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어, 옆을 바라보았다.
푹신한 옆 의자에는 혀를 내밀고, 눈알을 까뒤집은 형님께서 드러누운 듯 앉아 계셨다.
“아으으어오우아.”
“음······. 제대로 집중하고 있는 듯하네요.”
한창 분신체를 다루는 중이었다.
능력을 이용하면 시시각각 다른 분신으로 의식을 전환할 수 있었으니까.
사실상 형이나 다름이 없는 분신은 마석을 수거하기 위해, 아우렐과 함께 바쁘게 갑판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분신보다는 아바타(avatar)에 가까운 느낌이었지만······.
‘처음이니까. 점점 더 좋아지겠지.’
당장은 시범 운용일 뿐이었다.
직접 의식으로 들어가 움직여 줘야 하는 건 초반뿐.
행동 원칙이 설정되고 숙달된 뒤에는, 별다른 조종 없이도 알아서 움직여 주는 것이 이 분신 능력의 특징이었으니.
저벅저벅.
형은 언질해둔 대로 정확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석이 들어 있는 적재함 내부로 들어섰다.
푸른빛에 휩싸인 적재함 한가운데에서, 분신은 팔랑 소리와 함께 노란 부적이 겹쳐진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상품회수.”
지이잉!
종이를 쥔 분신이 나지막이 외치자, 큼지막한 포탈이 생겨났다.
그러곤 적재함에 쌓여 있던 마석들을 모조리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슈화아아악!
내 아공간 능력이 담겨 있는 <이능 검사지>.
위로 다이치의 부적을 덧댄 덕분에, 최장 2시간까지 능력을 보관할 수 있었다.
물론 <쇼퍼홀릭>을 이용해 검사지를 아공간에 넣어둔 덕분에, 시간에 상관없이 언제든 복사해서 꺼내는 것도 가능했지만.
한 가지 특기할 점이라면, <이능 검사지>가 각성 능력을 통째로 담아내는 것이 아닌, 딱 한 가지 효과만 담아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요컨대 이번에 보관한 것은 아공간 능력 전체가 아닌 <상품회수> 단 하나뿐이었고, 마석을 회수하는 것 외에도 간편한 도주기로도 요긴하게 써먹을 수가 있었다.
‘덕분에······ 위험부담도 훨씬 줄어들었지.’
검사지가 애먼 누군가의 손에 들어간다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상품회수>로 포탈을 열어젖힌다 한들 어차피 아공간에는 등록된 사람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었고, 마찬가지로 등록된 사물만 수용할 수 있었기에, 이상한 물건이 아공간에 멋대로 들어올 일도 없었다.
슈화악!
그렇게, 포탈은 알차게 마석을 빨아들였고······.
“얼추 끝난 것 같군.”
“네. 그러네요.”
남은 것은 이제 뒷정리뿐이었다.
먼저, 아우렐이 적재함에 기재된 마석의 잔량 수치를 조작했다.
그러곤 분신과 함께 다시 갑판 위로 올라왔고, 잠든 선원들의 기억을 하나둘 지워나갔다.
형의 분신과 아우렐이 능숙하게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보며, 부엔디아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할을 나누길 잘한 것 같네. 앞으로 며칠 단위로 운반선을 마주할 테니······. 바쁘다고 그대로 지나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일세.”
“우리가 직접 움직이지 않아도 되고요.”
그것이 며칠 전 창설된, ‘팍스 해적단’의 역할이었다.
침투조를 이루는 흉악한 경제사범들과 증거인멸을 맡은 아우렐, 마지막으로 마석 회수와 도주로 생성을 맡은 형의 분신체까지, 사실상 드림팀이나 진배없는 구성이었으니.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띠링!
[남은 마석은 1,613,390개입니다.]“좋군.”
통장 잔고가 보기 좋게 불어났다.
***
“그럼······.”
주머니도 두둑해졌겠다.
나는 잠시 미뤄두었던 내 위계를 5위계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수중에 있는 8위계, 7위계, 6위계, 마지막으로 5위계까지.
재판소에서 수정한 헌법서 원문에 기반해 신청서의 내용을 수정했고,
그 결과 모든 위계 신청서의 조건을 오직 ‘마석’으로 통일할 수 있었으니까.
“비싸긴 하지만, 이쯤이야.”
5위계 조건 비용은 마석 100만 개.
통장 잔고가 순식간에 60만 개까지 처박혔지만, 아쉽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라디바를 누비는 팍스 해적단이 운반선을 만나는 족족, 마석을 수급 해 줄 테니.
곧장 비용을 지불했고······.
휘이이이익!
두꺼운 5위계의 척력이 전신을 휘감았다.
“······됐나.”
지금 지구에 걸려 있는 위계 제한은 6위계에 불과하다.
규정대로 들어온 침략자들이라면 썩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다는 뜻.
마침내 적들보다 한발 앞섰다는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고, 이와 더불어 한 가지 궁금증이 찾아들었다.
‘이제······ 상공회의소는 어떻게 나올까?’
지구인 각성자들 간의 분쟁이나 내전은 아직 남아 있었다.
하지만 ‘침략’ 자체만 두고 보자면, 지구는 명백히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지구에 설립된 차원 본부가 통째로 사라졌다.
피렌의 천사들 또한 지구에서 물러났으며, 테러를 준비하던 바르나울마저 역공을 맞아 아예 궤멸되어 버렸으니.
위계 신청서를 팔아먹었다는 죄목으로, 암암리에 놈들의 추격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건 나 한 사람에 대한 거니까.’
그것은 나, 김정겸 개인에 대한 처벌일 뿐, 지구 전체에 대한 입장일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창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즈음······.
“주군.”
휘이익!
망령 상태의 란슬롯이 내게 소식을 전해주었다.
과연 예상대로, 상공회의소는 이다음 행보를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프리카에 상공회의소의 용병 캠프가 설립됐습니다. 지금 지구인들을 상대로······.”
우리 지구에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개척자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
휘이이이······.
건조한 모래 먼지가 나부끼는 이곳은 북아프리카 사막.
여느 때와 같이 이글거리는 태양이 지평선 근처에 걸쳐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한 가지 이질적인 풍광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저건가.”
쿠구구구구······.
거대한 진동을 울리며, 사막 한복판에는 거대한 포탈이 드리워 있었다.
마치 풍경에 구멍을 뚫어놓은 듯한 포탈 내부에는, 새카만 어두움과 함께 사뭇 불길해 보이는 낡은 성채가 신기루처럼 놓여 있었다.
정체 모를 타차원으로 넘어가는 거대한 포탈.
그것이 상공회의소가 설치했다던, ‘용병 캠프’로 가는 길목이었으니.
안 그래도 이곳 북아프리카에 도착하자마자, ‘개척자를 모집하고 있다’던 상공회의소의 메시지를 마주한 참이었다.
띠링!
[다차원 상공회의소에서 안내드립니다] [지구 차원 존재들을 대상으로, 신규 개척 사업의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개척지는 ‘베레슈티’이며, 별도의 위계 제한은 부과되어 있지 않습니다.] [참여를 희망하는 경우 설치된 ‘용병 캠프 포탈’을 통과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베레슈티’에서 얻게 되는 수익의 20%가 수수료로 자동 차감됩니다.]“······.”
개척 사업.
다른 것을 의미할 리 없다.
포탈을 타고 들어가, 그곳의 주민들을 학살하라는 것.
상공회의소는 지구에서 펼치던 개척 사업을 반대로 뒤집어, 이제는 우리에게 다른 차원을 침략할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그 뻔뻔한 제안에 치가 떨려올 즈음······.
뭔가 아는 게 있는 모양인지, 부엔디아가 수염을 쓸며 덧붙였다.
“베레슈티라면······ 흡혈귀 백작의 영지로군. 상공회의소와 사이가 제대로 틀어진 모양이야.”
“흡혈귀요?”
심지어 평범한 개척사업도 아니었다.
적들의 정체는 뱀파이어, 앞서 루마니아에서 한차례 겨뤄본 기억대로라면, 그들은 희생자라 부르기엔 지나치게 강력한 종족이었으니까.
“일반적인 개척사업의 형태는 아닐세. 상공회의소가 차원 하나를 박살 내버리기 위한 방법······. 아마 지금쯤 어지간한 상위 차원들이라면 모두 저 베레슈티로의 통행이 허가돼 있겠지. 그나저나 백작령이라면 어지간한 중상위 차원 수준은 될 텐데, 이렇게까지 통째로 찍어 내버리는 건 처음 보는군.”
정확한 싸움의 원인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상공회의소가 베레슈티와 등을 돌렸다는 것.
그리고 ‘개척사업’이라는 미명하에, 그들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이었다.
“어딜 손도 안 대고 코를 풀려고······.”
구태여 놈들의 장단에 맞춰줄 이유가 없었다.
개척 참여고 뭐고, 솔직히 무시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띠링!
[‘베레슈티’ 개척사업의 목표 금액이 설정되었습니다.] [목표 금액 미달 시, 베레슈티에서 지구 차원으로의 통행이 전면 개방됩니다.]“사실상 협박이로군.”
“역시 그렇죠?”
사실상 허울뿐인 참가자 모집이었다.
개척에 미적지근했다간, 오히려 지구에 역풍이 불게 생겼으니.
간단히 말해, ‘얻어맞기 싫으면 먼저 가서 때려라’는 식이었다.
-웅성웅성.
아니나 다를까, 거대한 포탈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각성자들 간의 갖은 내전이 일어나고 있던 이곳 일대.
하지만 상공회의소가 던져준 공통의 적이 생기자, 홀리기라도 한 듯 하나둘 시커먼 포탈 너머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하물며 혹자는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라며, ‘지구를 지키자’는 식의 연설을 주억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베레슈티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침략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 어쩌면 우리의 공격을 막아낸 그들이 역으로 지구에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사실까지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죽일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상공회의소가 던져놓은 양자택일의 선택지를 두고, 부엔디아가 내게 의견을 물었다.
“어찌할 생각인가?”
“백작령이라면······ 차원 본부보다 높은 상급 기관이 들어서 있을까요?”
“보통은 차원 본부가 고작이겠지. 공작령 정도는 되어야 중앙 본부 같은 게 세워지곤 하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위차원들을 끌어들이며 대대적인 개척 사업을 벌이고 있으니······. 차원 본부보다 더 높은, 상급 기관이 들어와 있을 가능성이 크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놈들의 개척 사업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상공회의소의 상급 기관, 그리고 그 기관에서 출력할 수 있는 더 높은 등급의 위계 신청서였으니까.
5위계로 올라선 지금, 4위계 이상의 신청서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거기에 덧붙여,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추적 거울도 한 번 써먹어 봐야죠.”
상급 기관이 설치된다면 이를 관리하는 인력 또한 함께 파견될 것이다.
나는 고위 관료들의 면상을 거울이 비추고, 행적을 추적해 놈들의 비밀을 캐내 볼 작정이었다.
예컨대 상공회의소 본청의 위치 같은, 귀중한 비밀 정보를.
“가보죠, 용병 캠프인지 뭔지.”
그렇게 우리는 참가를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