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9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90화(190/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90화
연합군 (1)
190화. 연합군 (1)
사라락.
이곳은 베레슈티의 황량한 수풀.
체육복을 입은 김솔이 성큼 걸어가, 훌쩍 자란 갈대 사이로 푹 방패를 꽂아 넣었다.
“나와.”
지이잉!
방패 한가운데에 푸른색 포탈이 펼쳐진다.
주변에는 눈에 띄지 않을 만한 작은 크기.
그 좁은 틈새를 나, 그리고 부엔디아가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나도 들어갔다 나오라, 이거지?”
“엉.”
“귀찮게······.”
김솔이 투덜거리며 포탈에 고개를 들이밀었다.
겉보기엔 별반 차이 없을지 몰라도 제법 중요한 사전 작업이었으니까.
상공회의소가 수수료를 거둬들이는 것은 다름 아닌 게이트 포탈을 통해.
하지만 게이트가 아닌 내 아공간 포탈로 넘어온다면 그 굴레를 깔끔하게 벗어던질 수 있었다.
이제부터 편하게 활동해도 된다는 뜻.
“아오 더럽게 좁네, 진짜.”
김솔이 다시 두더지처럼 포탈을 타고 나오는 사이, 베레슈티의 전경을 눈으로 훑었다.
이곳 수풀을 제외하면 대부분 붉은 황야로 이루어진 황량한 땅.
하지만 두 세력이 그 넓은 땅을 양분하고 있었다.
“······저게 베레슈티 백작성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성채였다.
높은 건 둘째 치고, 딱 봐도 두껍고 단단해 보이는 성.
그 위로는 정체 모를 노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많이도 모였네.”
상공회의소가 다차원 곳곳에서 소집한 병력이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군단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압도적인 전력.
우리가 소환된 곳이 진영의 가장 외곽 쪽이었다면, 중심부에는 벌써 일종의 사령부처럼 보이는 높다란 시설들이 설치되고 있었다.
“야, 나 나왔다.”
“오케이.”
김솔이 나오자마자, 나와 부엔디아는 각자 가면을 꺼내 썼다.
그는 다차원 곳곳에 수배된 특급 범죄자였고, 나 또한 최근 그 반열에 올랐으니.
치열한 전장에서 과연 우리 얼굴을 신경이나 쓰겠냐마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버프가 붙은 가면쯤이야 제법 흔하게 굴러다니는 아이템이니 크게 의심을 살 일도 없었고.
그래도 혹시 몰라 부엔디아의 지팡이는 꺼내지 않았다.
사락.
그렇게 우리는 수풀을 빠져나왔다.
멀찍이 게이트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지구인들의 행렬, 그리고 그 행렬이 향하는 지구인들의 막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때, 막사의 관리자가 우리를 향해 다그쳤다.
“거기! 빨리빨리 움직여라!”
“예예!”
다행히 수풀에서 빠져나온 것은 보지 못한 모양.
그렇게 우리는 기나긴 행렬에 몸을 맡기며, ‘용병 캠프’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웅성웅성.
곳곳이 찢어진, 하지만 놀라우리만치 거대한 막사.
‘용병 캠프’에 수백 명의 지구인 각성자들이 모여 있었다.
게이트에서 넘어오는 행렬이 점점 얇아지는 것으로 보면, 다해도 사백 명이 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기야, 보통 담력으로는 넘어오기 쉽지 않겠지.’
평상시 괴물을 뽑아내던 게이트 포탈이다.
상공회의소의 설명이 있기는 했지만, 누군들 정체 모를 위험을 겪고 싶겠는가?
그렇게 따지면 사실은 여기 모인 놈들이 대단한 거였다.
비범한 영웅이거나, 혹은 피에 맛들린 살인귀거나, 둘 중 하나일 터.
단, 한 가지 거슬리는 점이 있다면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었다.
“씨팔, 언제까지 여기 처박혀 있으란 거야?”
“아! 다 죽여버리고 싶다!”
“키키킷······.”
녹슨 갑옷을 주렁주렁 매단 채 투덜거리는 야만인부터, 고성을 내지르는 관심종자, 기분 나쁘게 혼자 낄낄대는 미친놈까지.
막사의 관리자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지만 않았다면 진즉에 이곳 지구인들끼리 죽고 죽이는 살육전이 벌어졌으리라.
그러던 중, 나는 각성자들 틈새에서 열심히 주둥이를 놀리고 있는, 익숙한 얼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줄곧 얻어맞기만 하던 우리 지구가, 이제는 그간의 전란을 수습하고 다차원으로 진출하고 있잖아요. 상공회의소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할 만큼, 그 정도로 우리는 성장한 겁니다. 아, 물론 아직 상위 차원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그들의 지원 아래 꾸준히 성장한다면······!”
금발 머리의 뺀질뺀질한 인상.
캐나다의 각성자, 리암 파커가 군중 사이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쟤는 또 저러고 있네.’
영웅, 살인귀,
나는 그 옆에 ‘머저리’라는 키워드를 새로 추가했다.
이번 용병 모집이 지구인들의 진출이니, 상위차원의 인정을 받은 것이니 하며 황당한 해석을 갖다 붙이고 있었으니.
요컨대 지구에서 건너온 각성자들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전공을 세워, 상위차원과 상공회의소의 인정을 받는 것.
둘째는 베레슈티를 썰어버리고 마석과 보상을 얻는 것.
어쩌면 나처럼 다른 꿍꿍이가 있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은 대체로 그랬다.
그렇게 몇 분째, 각성자들의 웅성거림이 이어졌을 즈음······.
“조용!”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공간을 휩쓸었고, 각성자들의 일순에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마력 같은 힘이 담겨 있는 모양이었는데, 위계 덕분인지 내게는 별 느낌이 없었다.
새하얀 천사 날개를 매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위차원 피렌의 천사 중 하나인 것 같았다.
“나는 연합군의 사자다! 너희 지구인들에게 역할을 하달하기 위해 왔으니 똑똑히 듣도록. 날뛰는 놈들은 군법에 의거해 먼저 모가지를 끊어줄 테니, 쓸데없이 경거망동하지 마라.”
연합군.
이 거창한 이름이 베레슈티를 공격하는 세력의 총칭이었다.
지구인들은 금세 얌전해졌다.
이 연합군의 주축은 엄연히 상위차원들이었고, 우리를 개미처럼 밟아 죽일 수 있는 강자들이었으니까.
“이번 베레슈티 공성전에는 여러 상위 차원이 대거 참여했다. 피렌, 파우스트, 올림푸스, 로돌포······. 너희들이 감히 우러러볼 수도 없는 명망 높은 차원들이지. 정통성 있는 흡혈귀족들 또한 함께 나섰으니 연합군의 승리는 불 보듯 뻔한 결과일 것이다.”
줄줄이 나열되는 상위차원들의 이름.
각성자들 또한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기 호명된 상위 차원들의 후원을 받고 있는 각성자들도 적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베레슈티의 흡혈귀들과 싸우기 위해 흡혈귀족들이 나섰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부엔디아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흡혈귀들에겐 규합된 차원이란 게 존재하지 않네. 그보다는 혈족이나 귀족의 장원 단위로 움직이지. 애당초 흡혈귀들끼리의 전쟁도 그리 드문 일이 아니고.”
상공회의소와 붙어먹는 흡혈귀들이 있다면, 또 한편으로는 베레슈티처럼 사이가 나쁜 흡혈귀들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들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것 또한 당연한 일.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연합군 사자의 연설이 들려왔다.
“너희에게도 다차원의 역사에 이름을 새길, 영광스러운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지구는 물론 너희 개개인에게도 보상이 돌아가겠지. 그걸 명심하라! 베레슈티는 너희 같은 하위차원들을 잡아다 고문하고, 끔찍한 영약으로 추출하는 잔인한 족속들이니, 손속을 봐줄 필요는 없다.”
쩌렁쩌렁한 목소리.
우리 지구인들의 전의를 고취하려는 연설이었지만, 부엔디아는 고개를 저었다.
“새빨간 거짓말이군. 뱀파이어가 구태여 사람을 달여 먹을 이유가 뭐가 있겠나? 목덜미에 이빨만 박아 넣어도 신선한 피가 쭉쭉 들어올 텐데. 오히려 베레슈티는 에센스 공장으로 유명하네. 혈액을 대신할 수 있는, 독특한 영약인데······.”
태생적으로 뱀파이어는 피를 갈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곳 베레슈티에는 이를 대체할 만한 영약 ‘에센스’가 생산되고 있었다.
뱀파이어와 상공회의소 연합군 간의 전쟁, 또는 뱀파이어와 뱀파이어 간의 전쟁.
어쩌면 이 모두가 그 에센스로 인해 불거진 싸움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 외성벽을 뚫기 위한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 베레슈티 성에는 까다로운 수성 병기가 설치돼 있는 만큼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지.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연합군은 너희 지구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기기로 했으니까. 너희가 베레슈티의 허를 찌르게 될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각성자들이 웅성거렸다.
상위 차원은 물론, 다른 중위 차원들까지 모두 뭉친 거대 연합군.
그 와중에 우리에게 핵심적인 역할을 맡기겠다는 소리였으니까.
그 말을 들은 리암 파커는 좋다 못해, 아예 숨이 넘어갈 듯한 표정이었다.
연합군 사자의 말은 계속됐다.
“너희에게는 위장 장막을 둘러줄 것이다. 파우스트가 고안한······ 고도의 주문이지. 전투가 시작되더라도 일단은 대기해라. 그리고 장막에 몸을 숨긴 채 천천히 성벽 아래로 접근해. 흡혈귀족들이 너희에게 신호를 줄 것이다. 그러면 그때 쏟아져 나와, 전장의 균형을 무너뜨리면 된다. 알겠나?”
우리를 연합군의 비장의 카드로 쓰겠다는 소리.
하지만 나나, 부엔디아나 피식 웃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확실히 중요한 역할이기는 하겠구만. 가장 중요한 타이밍에 고기 방패를 하라는 소리니······.”
“역시 그렇죠?”
“저들에게도 베레슈티의 수성 무기는 까다로울 수밖에 없어. 흡혈귀들이 성벽에 장착한 무기를 파괴하는 역할을 맡은 모양인데······ 그 타이밍에 시선을 끌라는 걸세.”
정리하자면 진짜 작전은 다음과 같았다.
연합군은 베레슈티와 나름 팽팽한 싸움을 연출한다.
지구인들이 위장 장막을 두른 채 성채 앞까지 전진한다.
지구인들이 미끼로 나서는 사이, 흡혈귀들이 수성 무기를 파괴한다.
부엔디아는 이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했다.
“그야말로 개죽음이로군. 뭐 그 와중에도 살아남는다면 나름 공적이 인정되겠네만······.”
마음먹는다면 살아남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저 연합군 나으리들께서 잘했다며 칭찬까지 해주시겠지.
하지만 파커와는 달리, 내 목적은 그딴 게 아니었다.
‘상공회의소의 중앙 본부를 찾아야지.’
그것이 일차적인 목표였다.
더불어 추적 거울을 써먹을 만한 거물을 만나게 된다면 더더욱 좋고.
하지만······.
“저 안에는 없을 거라 이거죠?”
“그렇네. 있어봤자 차원 본부가 고작이겠지.”
차원 본부라면 이미 내 손안에 있다.
그리고 그 윗급에 해당하는 중앙 본부는 저기, 연합군 진영 한가운데에 빠르게 건설되고 있었다.
‘지금은 접근하기가 어렵지만······.’
상위 차원의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곳.
하지만 공성전이 답도 없이 길어지고, 연합군이 병력을 잃게 된다면 어떨까?
헐거워진 연합군 진영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저 연합군 놈들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기에······.
“그럼 이렇게 하시죠.”
나는 서둘러 부엔디아와 김솔에게 내 계획을 공유했다.
***
그로부터 몇 시간 뒤.
퍼어엉!
퍼어어어어엉!
바깥으로부터 강렬한 폭음이 들려왔다.
베레슈티 백작성에 장착된 수성 무기가 불을 뿜는 소리.
두 개의 창이 솟은 레일건 같은 형태였는데, 땅 하늘을 가릴 것 없이 거리가 닿는 족족 연합군의 병력을 번갯불로 지져대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악! 흐아아아아악!”
끔찍한 비명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상위차원이 아닌, 중하위 차원에서 차출된 병력.
이 또한 미끼에 불과했으니, 연합군의 작전은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볼 수 있었다.
한편······.
“으으······.”
우리 지구인들은 공포에 질린 채, 조금씩 성벽에 다가서고 있었다.
행렬 중심에 들린 파우스트의 토템이 위장 장막을 뿜어냈고, 그 효과 덕분인지 우리는 레일건의 총구를 피해 천천히 전장을 가로지를 수 있었다.
하지만, 토템의 효과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주를 걸어놨군······. 정신 계열인가?’
그 누구도 연합군의 작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묵묵히, 사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길 뿐.
다행히, 위계 덕분인지 부엔디아와 내게는 정신 저주가 통하지 않았다.
6위계인 김솔은 미리 포탈 안으로 들여보낸 상태였고.
각성자 중에서도 5위계 이상은 없는 듯싶었다.
‘이제······.’
슬슬 때가 무르익고 있었다.
성벽에도 어지간히 가까워졌고, 밖에서도 전투가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으니.
나는 계획대로 아공간에서 검은색 가면 하나를 꺼내 바꿔 쓴 뒤, 행렬의 꼬리로 이동했다.
쉬리릭!
그 사이, 검은 코트를 입은 열두 개의 그림자가 따라붙었고, 나 또한 입고 있던 코트의 매무새를 다듬었다.
“흠흠.”
그렇게 열셋.
우리는 행렬의 머리 쪽으로 이동한 뒤, 그대로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뱀파이어의 날개’로 만든 코트를 양옆으로 활짝 펼치며, 좌중을 향해 외쳤다.
“지금이다, 미개한 하등종족 지구인들아! 나 위대한 혈족, 김 팍스 정겨미우스가 너희들은 인도할 것이니 이제부터 나를 따라와라!”
“오오······.”
힘없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토템의 저주 탓에, 다들 반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저 뱀파이어 날개를 따라 반사적으로 발걸음을 옮길 뿐.
“곧 베레슈티로부터 공격이 날아들 것이다! 너희 같은 머저리들은 가만히 뒀다간 냉큼 개복치처럼 죽어버리기 때문에, 위대한 본인이 친히 너희를 인솔해 주는 것이다! 머리가 있다면 감사한 줄 알아라!”
“오오······ 감동······.”
펄럭.
뱀파이어 날개가 휘날렸다.
나를 중심으로 펼쳐진 13개의 날개가 낯선 이국땅에서 지구인들을 이끌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완전히 전장을 이탈하게 된다! 정말이지,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는구나! 너희가 유능한 천치들인 덕분에 무사히 임무를 달성할 수 있었다!”
“아아······!”
아무런 제지도 없었다.
토템이 뿜어낸 위장막은 베레슈티는 물론, 연합군에게서도 우리의 모습을 지워버렸으니까.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성벽 위로, 펄스건에 실시간으로 지져지는 흡혈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중요한 타이밍에 미끼를 잃어버린 것이 결정적이었던 모양.
뭐, 그러거나 말거나······.
“너희는 정말이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쓰레기다! 복창해라!”
“우우······ 쓰레기······!”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