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95)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95화(195/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95화
인재 (2)
“꽤나 잘 버티는구나, 베레슈티 백작.”
으득!
피렌의 대천사 하미엘이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베레슈티 공선전이 난항을 겪고 있었으니.
그는 연합군의 사령관 중 하나였다.
서측 방어성을 함락했다는 승전보에 이어, 곧바로 다시 빼앗겼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참.
베로니카 공작령의 지원군이 도착했으며, 성벽 위로 새 전자기포 설치되었다는 소식이 연달아 함께 전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공고해지는 베레슈티와는 달리, 연합군의 결속력은 실로 보잘것없었다.
당장 이곳 사령부에 모인, 상위차원의 수장들만 해도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그 토템 정말 도움 되는 것 맞습니까? 그거 만들 시간이면 신전이나 하나 더 짓는 게······.”
“누구 좋은 꼴 보라고? 효과가 입증된 성문화된 마력 회로를 활용하는 편이······.”
“그러니까 그 토템이 전투에서는······.”
올림푸스의 비아냥과 파우스트의 역정.
대천사 하미엘은 무거운 한숨만 뱉을 뿐이었다.
‘병력을 더 끌어오기도 힘들어.’
연합군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병력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상위 차원들은 수십 또는 수백 개에 달하는 식민 차원들을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
추가 병력을 징발하자면 식민지 관리에 문제가 생길 테고, 본 차원의 자원을 끌어오자니 베로니카로부터 역공격을 당할 위험이 있었다.
“바르나울, 아케인 이 새끼들이 보태만 줬더라도······.”
생각만 해도 짜증이 치밀었다.
바르나울은 차원 중핵이 뒤집어져 자멸했다는 소문이었고, 아케인은 같잖은 핑계를 대면서 연합군 참전을 고사했으니까.
심지어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부엔디아가 나타날 줄이야.’
그가 베레슈티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서문을 공략하던 연합군 병력이 궤멸한 참.
점차 지지부진해지는 공성전에, 부엔디아의 등장이 한층 더 버겁게 느껴지는 하미엘이었다.
그리고···
“하미엘 님.”
“무슨 일이냐?”
“아드리엘 천사장이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프랑코라는 마법사와 함께 왔더군요.”
그 이름에 반응한 것은 하미엘 뿐만이 아니었다.
.
.
.
“대천사님을 뵙습니다.”
아드리엘, 그리고 프랑코가 무릎을 굽혔다.
지구에서의 사업 실패로 문책을 받던 중, 종적을 감추었던 천사장 아드리엘.
하지만 하미엘이 더욱 놀란 것은 프랑코의 등장이었다.
‘죽었다고 들었는데?’
푸른 넥타이를 맨 청색 마법사 프랑코.
그는 아케인을 주름잡는 프랑코 가문의 후계 중 한 사람이었다.
경제사범 수용소에서 부엔디아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내용.
프랑코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미엘은, 어쩐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프랑코 가문이라면 그럴 수 있지.’
프랑코는 추격대의 책임자로서, 무리한 조사를 감행했다.
원래대로라면 수용소 측의 피해와 희생자들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을 터.
하지만 가문 쪽에서 살아남은 프랑코의 존재를 숨겼고, 넉넉한 보상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비난을 자연스레 흘려버렸다.
프랑코 가문이 직접 그를 보호하고 나선 것이었다.
하미엘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프랑코가 고개를 들었다.
“불쑥 찾아와 죄송합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라, 대천사님을 곤란하게 하지는 않았을지 염려가 되는군요.”
“신경 쓸 것 없다. 그거야 너희 집안에서 알아서 할 문제이니······. 뭐, 그래도 모습을 드러내면서까지 나를 찾아온 이유가 있겠지?”
프랑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준비해 왔다는 듯, 신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엔디아가 나타났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로베르토 님의 시체를 찾기 위해 움직이고 있지요. 알려진 사실대로라면 로베르토님의 시체는······.”
“부엔디아의 수족이 되어 있겠지. 놈이 그걸 전투에 써먹을 수도 있을 테고.”
부엔디아가 재판소에서 위계를 되찾았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
탈출 과정에서 로베르토의 시체인 본 드래곤을 이용했다는 것도.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본 드래곤에는 상처를 내지 말라는 건가?”
“감히 그런 말씀을 드리기는 어렵겠지요. 다만······.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부엔디아를 상대해 보겠습니다. 로베르토 님의 시체를 되찾아, 이 전쟁을 연합군의 승리로 마무리 짓고, 당당히 가문으로 복귀하고 싶습니다.”
“허······.”
하미엘은 헛웃음을 지었다.
새파랗게 젊은 청색 마법사가 부엔디아와의 결투를 입에 올리다니.
하미엘로서는 우스울 따름이었다.
‘염동마법인지 뭔지를 믿고 까부는 것 같은데······.’
무대포로 수용소를 뚫고 들어갔다는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이렇게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걸 보면.
그럼에도 하미엘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대 병력 하나를 내어주지. 놈이 나타난 위치가 서문 쪽이니, 그쪽 전선에 합류하도록 해.”
“가, 감사합니다······!”
프랑코가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하미엘이 그의 옷에 지휘관을 상징하는 견장을 달아주었고, 곧 지령을 내리겠다며 축객령을 내렸다.
하지만 아드리엘만큼은 이곳 막사 안에 붙들어 놓았다.
“······대천사님.”
“못난 놈 같으니.”
아드리엘은 쭈뼛쭈뼛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는 중대한 사업을 망쳐놓고, 그 문책에서 도피한 죄인이었으니.
“명령에 불복하고 피렌을 떠난 것은 중죄이지만······ 당장은 너를 벌하지 않겠다. 아니, 어쩌면 그럴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르지.”
“예?”
아리송한 말에 아드리엘이 고개를 들었다.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는 하미엘.
이윽고 이어진 그의 말은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놈은 프랑코 백작의 조카다. 지금 아케인은 프랑코 가문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백작을 꾀어낼 수만 있다면 전쟁에 아케인을 끌어들이는 것도 가능하겠지.”
“죄송합니다, 대천사님.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잘······.”
“길게 생각할 것 없다. 네 역할은 간단하니까. 저 조카 프랑코 놈이 이곳 베렌슈티에서 전사하도록 유도해.”
“······!”
“붙여준 병력은 모두 잃어도 상관없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데 집중하도록.”
하미엘의 목적은 이 전쟁에 아케인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명분을 만들어 줌으로써.
“아케인만 들어온다면······ 저 가짜 흡혈귀들쯤은 하루아침에 짓밟을 수 있을 거다.”
***
“아······.”
“흠흠.”
공녀가 멋쩍은 표정으로 코를 매만졌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이미 코끝이 주홍색으로 물들어 있는 그녀.
차마 이들의 신파극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내가 포탈로 형과 분신체를 데리고 왔고, 분신의 능력을 설명하는 대로 참을 수 없는 민망함이 내려앉은 참이었다.
‘그러길래 왜 설레발을 쳐가지고······.’
백작의 과한 충성심이 빚은 해프닝이었지만, 아무쪼록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누구도 희생할 필요 없이, 더 좋은 방법이 제시된 것이니까.
하지만 분신체를 더듬더듬 만져보던 백작이 딱 한 가지 걱정스럽다는 듯 덧붙였다.
“확실히 선발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겠습니다만······. 그 이후로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알아낸 것은 성혈이 인재개발원에 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개발원에 도착하는 대로, 성혈이 숨겨진 장소를 다시 조사해 봐야 한다는 뜻.
하지만 별다른 능력이 없는 분신체로서는 탐색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은신 가죽’을 쓰려고 했었습니다만······.”
백작이 꺼내 든 것은 투명한 비닐에 가까운, 날개 모양의 가죽이었다.
일종의 투명망토와 같은 효과의 아티팩트였지만, 오직 뱀파이어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제약이 붙어 있었다.
백작이 잠입을 자처했던 것도 이 은신 가죽을 염두에 둔 것.
몸을 숨길 수만 있다면, 인재개발원 건물 내로 잠입하는 일 또한 한결 쉬워질 터였다.
분신체는 흡혈귀가 아니니, 사용이 불가능한 물건이었지만······.
“그러면 흡혈귀로 만들면 되죠?”
“······예?”
나는 혈액 팩 하나를 꺼내 흔들었다.
베르톨루스 남작을 처치하고 얻은 ‘진혈’.
나는 줄곧 그 피를 세브란스 병원에 보관하고 있었으니까.
“수혈합시다.”
분신체를 강화해 잠입시킬 생각이었다.
투명 뱀파이어로.
.
.
.
까드드득!
형, 성겸의 분신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등을 뚫고 올라온 새카만 날개가 펼쳐지자, 그제야 분신은 허리를 곧추세웠다.
피부는 눈에 띄게 창백해졌고, 눈동자가 새빨갛게 변했으며, 송곳니가 뾰족하게 자라났다.
완벽한 뱀파이어의 혈족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
하지만 얼굴은 텅 빈 표정을 지은 채, 마네킹처럼 굳어 있었다.
형이 덧붙였다.
“아직 조작한 적이 없어서 그래. 내가 의식으로 들어가 직접 움직일 수 있고······ 수칙을 정해주면 알아서 움직이게도 할 수 있어. 좀 기계적으로 보이겠지만.”
당장은 특별한 조작을 하지 않기로 했다.
‘텅 빈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상공회의소의 직원이 되기 위한 제1의 조건이었으니.
이제 남은 문제는 상공회의소의 사원 공채 시기를 맞추는 일이었다.
다행히, 이에 관련한 정보는 제르가 빠삭했다.
“원래대로라면 몇 주 정도 더 기다려야 합니다만······. 최근 들어 자주 수시모집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조건을 완화해서요.”
“수시모집?”
“예, 갑자기 인력이 필요해진 모양입니다.”
짐작 가는 것이라면 여러 가지가 있었다.
멀쩡했던 차원 본부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거나, 대뜸 경제사범 수용소가 폭발했다거나, 차원 재판소의 장서관과 증거품 보관소가 박살이 났다거나.
제르가 덧붙였다.
“요즘은 구직자들이 모여있다 보면, 며칠 간격으로 개발원의 셔틀이 날아와 태우고 가는 식입니다. 거기서 1차로 일단 걸러내고, 2차에서 걸러진 구직자들은 도로 와서 내려놓고 가지요.”
“가장 최근에 왔던 건 언제지?”
“나흘 전이니까······ 이제 슬슬 올 때가 됐군요.”
바로 분신을 그라디바에 데려다 놓을 차례였다.
나는 형과 꼭 닮은, 얼빠진 분신의 얼굴을 공연히 바라보았다.
‘합격할 수······ 있겠지?’
수험생을 둔 어머니들의 심경.
그 기분이 퍽 이해가 되는 지금이었다.
***
그로부터 이튿날.
우리는 셔틀에 탄 분신의 시선을, 추적 거울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바로 붙어버릴 줄이야.’
어제, 나는 그라디바에 설치된 포탈로 분신을 내보냈다.
분신은 어기적어기적 구직자들의 행렬에 합류했고, 하루쯤 지나 인재개발원의 셔틀이 날아들었다.
뺀질뺀질한 표정의 직원은 농작물을 솎아내듯 1차 합격자를 가려냈다.
특히 분신을 발견했을 때는 “오.” 라는 짧은 탄성과 함께, 냉큼 녀석을 집어 갈 정도.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이른 시점이었다.
‘2차가 남았으니······.’
셔틀에는 얼추 스무 명가량의 구직자들이 타고 있었다.
슬슬 도착할 때가 되었는지, 뺀질뺀질한 표정의 직원이 다시 나타나 안내를 시작했다.
“인재개발원에 도착하기 전, 경유 공간에서 먼저 면접을 진행할 거다. 세 명의 합격자는 그대로 인재개발원으로 향하겠지만······ 나머지는 다시 돌아가게 되겠지. 아무쪼록, 합격을 기원한다.”
우우웅······.
과연 그의 말대로, 곧 차원선이 어딘가에 정박했다.
창문이 열리지 않아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장소.
직원의 안내에 따라 한 명씩 밖으로 나가 면접을 진행하는 식이었다.
“네 차례다. 따라와.”
그렇게, 마침내 분신의 차례가 되었다.
눈이 가려진 채 얼마간 통로를 걸었고, 환하게 밝혀진 밀실에 들어섰다.
그제야 우리는 면접관을 마주할 수 있었다.
면접관은 다름 아닌······.
‘이 인간이 왜 여기서 나와······?’
프랑코 백작.
베로니카의 성혈을 인재개발원에 숨긴 장본인이 눈앞에 앉아 있었다.
‘설마설마했더니, 아예 인재개발원에서 직책을 맡고 있었을 줄이야.’
백작이 직접 면접을 보고 있다는 게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어쩌면 그만큼이나 이곳 인재개발원이 중요한 핵심 기관인지도 몰랐다.
머리가 복잡하기는 했지만 우리는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상황이 어찌 되었건 반드시 합격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우리를 꿰뚫어 보는 듯한 백작의 시선에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다.
잠깐의 적막 끝에, 백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호오······. 흡혈귀인가?”
구직자 중에는 이종족도 다수 섞여 있었다.
하지만 유독 흡혈귀만큼은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아무래도 그 때문에 백작의 시선을 끈 모양이었다.
“드문 일이군. 보통은 가문에 종사하느라 이쪽으론 잘 넘어오질 않는데······. 아, 혹시 고아 출신인가?”
“아······. 그렇습니다.”
형이 머뭇머뭇 대답했다.
고아가 아니라면 가문의 이름을 대야 할 테고, 그러다 보면 꼬리를 밟힐 테니.
백작이 알아서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아주기에, 냉큼 맞장구를 쳤다.
백작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한참이나 분신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성큼 다가와 눈앞에 마법진 회로를 펼치기 시작했다.
지이이잉!
“······!”
“놀랄 것 없네. 평소에 그라디바를 보며 얼마나 깨달음을 얻었는지 확인하는 절차이니······. 그런데 참 이상하군. 의식에 걸린 굴레가 전무한데 깨달음도 없으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아무래도 기간이 문제인 듯했다.
분신이 그라디바를 관조한 시간은 고작해야 하루 정도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코 백작은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지이잉······.
마법진이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백작은 몸을 돌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사실 나도 사생아 출신일세. 가문은 내게 성조차 내려주지 않았지. 하지만 나는 결국 스스로 우수함을 증명해, 대 프랑코 가문의 가주 자리를 꿰찼다네. 내 말이 무슨 소리인지 알겠나?”
분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프랑코 백작이 왜 자신의 과거를 늘어놓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
다행히 백작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알아서 말을 이어주었다.
“혈통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피를 이어받았다는 건 그만한 자격과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일세. 그리고······ 나는 자네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믿네.”
“감사······ 합니다.”
분신이 물 먹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관절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으나, 대충 감동을 받았다는 제스처였다.
그러자 대뜸, 프랑코 백작이 손을 내밀었다.
“생각지도 못한 인재를 얻었군. 이름이 뭔가?”
이름?
나 또한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5초가량 고심한 끝에, 나는 분신을 조종하는 형에게 녀석의 이름을 귀띔해 주었다.
“······혈겸입니다.”
김가네 셋째 아들, 혈겸이 사생아에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