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96)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96화(196/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96화
인재 (3)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군. 드라칸의 피가 이런 식으로 굴러들어올 줄이야.”
프랑코 백작이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 지었다.
모든 면접을 마치고 인재개발원의 연구실로 돌아온 그.
그가 혈겸을 인재개발원의 교육생으로 선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키이이잉!
그가 손끝에 마법진을 피워올렸다.
마법진에는 그가 조금 전 만나고 온, ‘혈겸’의 생체 정보가 기록돼 있었다.
백작은 손가락을 짚으며, 천천히 기록된 정보를 읽어내렸다.
“위대한 피로부터 한 발짝······. 보폭이 좀 크기는 하지만 그래도 건넌 다리는 하나뿐.”
그의 피가 틀림없는 드라칸 진혈이라는 뜻이었다.
보폭이 크다는 것은 그것이 다소 이질적인 종족과 섞였다는 뜻.
백작은 혈겸이 자신의 출생도, 고향도 모르는 이유를 어쩐지 알 것 같았다.
“흐흐······. 꽉 막힌 늙은이들 같으니. 너희 피가 이토록 삿되게 나돌아다닌다는 걸 알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프랑코 백작은 혈맹과 접촉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하지만 성혈을 지닌 수뇌부와는 좀처럼 접점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혈맹의 흡혈귀들이 윗 계급으로 가면 갈수록 극도로 폐쇄적인 경향을 보이는 탓.
하지만 드라칸의 진혈을 지닌 사생아라면, 충분히 그들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었다.
“흠······.”
마법진을 꺼뜨린 그가 가만히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새카맣게 양 벽을 메우고 있는 마도서와 사이사이 널브러져 있는 마법술식지, 거기에 각종 마력 시약이 담긴 수십 개의 플라스크까지.
그가 이곳, 인재개발원의 부원장에 부임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터였다.
지이이잉!
그때, 책상 위에서 소리가 울렸다.
외부와 연락을 주고받는 데 사용하는 통신용 수정구.
백작이 손을 올리자,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백작님, 베레슈티에서의 전언입니다.”
“왜, 그 전쟁광들이 또 생떼를 부리더냐?”
“연합군 측은 아니고, 정보원들 전해온 소식입니다. 루도비코 도련님이 연합군 소속으로 참전하셨다 하더군요.”
“······루도비코가?”
루도비코 프랑코.
그는 프랑코 백작의 조카였다.
또한 동시에 가문이 내정한, 프랑코 가문의 후계자이기도 한.
수용소에서 참사를 일으킨 책임을 묻던 중 자취를 감추었는데, 다름 아닌 베레슈티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놈의 멍청한 짓거리는 끊이질 않는군.”
“다행히 아직 직접 전투를 치렀다는 소식은 없고, 부엔디아를 잡기 위한 별동대로 편성되어 있다는 것 같습니다.”
“웃기는 소리. 그놈 실력에 잘도 그러겠어.”
백작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곤 천천히 팔짱을 끼며, 연합군의 상황을 가늠했다.
‘뭐, 놈들도 조급한 거겠지.’
상위 차원들은 베로니카 공작가를 겁내고 있었다.
에센스가 완성된다면, 베로니카는 전례 없는 힘을 구가하게 될 테니까.
공녀가 성혈을 계승한 줄로만 아는 그들로서는, 베로니카가 다차원의 패권을 잡기 전에 미리 선수를 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프랑코 백작은 알고 있었다.
베로니카의 성혈이 자신에게 있는 만큼, 에센스가 완성될 일은 없다는걸.
백작은 베로니카 공작과 함께 설계했던 에센스 공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공장에서 그를 살해하며 성혈을 탈취했던 그때의 기억을.
‘에센스라······. 혈맹을 위한 선물로는 나쁘지 않겠군. 마침 좋은 실험체도 손에 넣었으니·······.’
치이익!
수정구를 꺼뜨린 백작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책장에 설치된 스위치를 움직였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정교한 조각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물건이었다.
드르르륵!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책장이 천천히 옆으로 밀려났다.
그러자 푸른색 마법진이 그려진, 거대한 종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몇번이나 수정을 거듭한 것인지, 종이에는 그렸다 지운 흔적이 뿌연 먼지처럼 쌓여 있었다.
천천히 일렁이는 푸른 빛을 보며, 프랑코 백작은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다오, 훌리오······. 네게 모든 걸 물려줄 테니.”
그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건네온 다짐이자, 목표였다.
***
그렇게 혈겸은 무사히 인재개발원에 도착했다.
직원을 따라 건물 안으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백작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혈통이라······.’
그것이 합격 사유였다.
프랑코 백작이 혈겸의 몸에 흐르는 진혈을 알아차렸다는 뜻.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만큼은 틀림이 없었지만,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덕분에 혈겸을 무사히 인재개발원 내부로 들여보낼 수 있었으니.
“여기가 네 방이고, 앞으로······.”
인재개발원의 직원이 혈겸에게 숙소를 배정해 주었다.
그러곤 당분간 진행될 행사 일정과 간단한 생활 수칙을 귀띔해 주었다.
그는 특히, 이곳의 금지구역에 관해서는 유독 목청을 틔웠다.
“알겠어? 별관 2, 3층, 연구동, 그리고 개발원 내 지하 시설에는 얼씬도 하지 마라. 뭐? 하지 말라면 하지 마. 퇴소 정도론 안 끝나니까 더는 궁금해하지 마라.”
궁금했다.
그중 어딘가에 성혈이 숨겨져 있을 테니까.
본디 비밀이란 숨기는 과정에서 밝혀지는 것이었기에, 금지된 장소라는 뜻은 그만큼 그 안에 은밀하면서도 예민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는 뜻이었다.
‘금지구역 위주로 찾아보면 되겠군.’
인재개발원을 통째로 아공간에 담는 건 불가능했다.
그건 내 스킬이라기보다 일종의 레벨업 보상에 가까웠으니.
혈겸이 내 능력이 담긴 ‘이능 검사지’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사용할 수 있는 건 <상품 회수>가 고작이었다.
결국 백작이 숨겨놓은 성혈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소리.
‘찾기만 하면 돼. 찾기만.’
다행히 그다음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상품 회수>는 도주용 스킬로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혈겸이 성혈을 찾는 대로 삼켜 제 몸의 일부로 만들고, 그대로 <상품회수>로 유유히 인재개발원을 빠져나오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직원이 재차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 있는 건 일주일뿐이야. 그 뒤로는 2차 교육 장소로 넘어가서 본격적인 실무교육을 받게 될 거고. 원래라면 여기서 한 달은 있어야 하는데, 요즘 바깥이 꽤 뒤숭숭해서.”
인력 부족 탓에 결정된 사항이라는 것 같았다.
우리가 벌여놓은 사고들이 크기는 컸던 모양.
결국 주어진 시간이 일주일에 불과하다는 뜻이었지만, 베레슈티를 수성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도 최대한 빨리 결판을 짓는 편이 좋았다.
직원이 혈겸의 등을 턱턱 두드렸다.
“곧바로 부원장님 강의가 있으니까 따라와. 궁금한 건 강의 끝난 다음에 다시 물어보도록 하고.”
“예.”
놀랍게도 프랑코 백작의 강의였다.
놈은 이곳 인재개발원의 부원장을 맡고 있었으니까.
성혈 같은 보물을 숨길 수 있었던 만큼, 이곳 인재개발원에서도 제법 높은 직책을 쥐고 있는 그였다.
그렇게 혈겸이 직원과 함께 강의실에 도착했을 즈음, 바깥에서 소식을 전해졌다.
인재개발원이 아닌, 우리가 있는 베레슈티 성에서의 소식이었다.
퍼어엉!
“슬슬 나갈 때가 됐나.”
굵고 선명한 폭음이 들려왔다.
외성벽을 둘러싸고 매시간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성벽에 설치된 전자기포를 모조리 복구하고 베로니카의 지원군이 도착했음에도, 연합군은 여전히 소모전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뭐, 나로서는 나쁠 게 없지.’
나는 베로니카의 성혈을 찾는 일 외에도, 연합군이 건설하고 있는 중앙 본부를 노리고 있었다.
본부를 지킬 연합군의 병력이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건데, 나로서도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그런 중에도 불가피하게 한 번씩 방어선이 뚫리는 상황이 생겼기에, 종종 이렇게 나가서 화력지원을 해줄 필요가 있을 뿐.
“······.”
나는 천천히 알현실을 돌아보았다.
부엔디아와 베레슈티 백작은 먼저 전투를 지원하고 나간 상태였고, 거울 속 공녀 또한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
중앙에 놓인 소파 위에는 형, 성겸이 홀로 분신을 조종하며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들썩!
옴짝달싹하지 못했던 이전과는 달랐다.
분신을 조종하고 있음에도, 형은 내게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보냈다.
혈겸은 알아서 잘 다루고 있을 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뜻.
이제 분신을 다루는 데에도 제법 능숙해진 모양이었다.
“오케이, 다녀올게.”
추적 거울을 통해, 혈겸의 시선이 전해졌다.
그새 도착한 계단식 강의실에는, 새로 선발된 서른 명가량의 교육생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눈앞에 놓인 것이 커다란 검은색 칠판이어서일까?
문득, 형이 나름 박사과정까지 밟은, 고학력자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정치 외교······. 대충 그런 이름의 전공이었던 것 같다.
물론 세상이 망한 지금으로서는, 조금 덧없는 이야기였다.
그 어렴풋한 옛 기억을 뒤적이며, 나는 서둘러 알현실을 빠져나갔다.
***
그로부터 두 시간이 흘렀다.
치이이이······.
황량한 바람이 식은 전장을 쓸고 지나갔다.
전자기탄의 충격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꾸준히 뒷문을 공략하던 하급 지휘관들의 사체 몇 구가 널브러져 있었다.
서문 외성까지 점령했던 기세가 무색하게, 연합군은 더 이상 이렇다 할 번뜩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주기적으로 병력을 몰아치며, 불필요한 소모전을 거듭할 따름.
마치 싸움을 연기하는 듯한 싸움이었다.
‘따로 노리는 게 있는 건가?’
슬슬 우리 쪽에서도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언제까지고 이곳 성 안쪽에만 박혀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전투를 마친 나는 알현실을 향해 빠르게 걸으며 부엔디아, 그리고 베레슈티 백작과 한 번 더 전략을 상의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원래 있던 알현실로 돌아왔을 때에는······.
“음?”
이야기를 잠시 보류해 둘 수밖에 없었다.
부엔디아와 백작, 그리고 공녀 모두가 추적거울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으니까.
분신을 조종하는 형 성겸은 소파에 등을 묻은 채, 혈겸을 조종하는 데 전력하고 있었다.
“뭘 하고 있길래······.”
혈겸은 프랑코 백작을 마주 보고 있었다.
어느덧 진행한다던 강의를 끝마친 모양.
주변에는 다른 교육생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들의 시선은 프랑코 백작이 아닌, 혈겸에게 향해 있었다.
백작이 물었다.
“그러니까 자네가 볼 때에는······. 마석이 너무 편률적으로만 소모되는 것 같다는 거군?”
“예, 물론 상공회의소의 전략이 합리적이기는 합니다. 마석은 개별적인 차원 존재들의 재능을 원천으로 하고, 또 새로운 재능에 투자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과정이 존재와 존재 간의, 개척을 통해서만 드러나다 보니······ 상공회의소가 중개할 수 있는 영역 또한 한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을 반으로 잘라놓고, 그중 하나에서만 장사를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죠.”
“그러면 나머지 반쪽짜리 시장이 뭔가?”
“인적 관계와는 또 다른 쌍을 이루는, 사물들의 관계입니다. 즉, 아이템이죠. 차원 존재들이 마석을 쌓아 능력을 강화하는 것처럼, 사물들도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죠. 희소가치, 시장평가, 허황된 소문······. 그 변동성을 주도한다면 실질적으로 더 큰 폭의 이윤을 거둘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말이 한창 더 이어지려던 찰나.
프랑코 백작이 혈겸의 말을 막아 세웠다.
“알겠네, 알겠네만······. 여기 다른 교육생들도 좀 쉬어야 하지 않겠나? 강의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어. 아쉽지만 오늘은 이만하도록 하지. 마음만 같아서는 자네와 오늘 내내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만······.”
아니나 다를까, 다른 교육생들은 완전히 죽을상이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백작과 혈겸이 내내 떠들어대고 있었기 때문.
혈겸을 그런 그들을 흘깃 둘러보고는 백작에게 말했다.
“저······ 부원장님?”
“음?”
“아까 강의에서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자유개척과 입찰방식의 개척 사업의 실효적 비례관계에 관한 조언이셨는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연구실로 찾아뵈어 질문을 드려도 되겠는지요?”
“허허? 이 친구 보게······!”
백작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예뻐 죽겠다는 듯,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혈겸을 바라보는 백작.
금지구역인 연구실에 쫓아가겠다는 말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건넬 줄은 나도 미처 몰랐다.
‘그랬지······.’
이제야 기억이 났다.
우리 형은 멸망 전에도 저 짓거리를 하다 대학원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