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97)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97화(197/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97화
역공 (1)
“허허허!”
프랑코 백작이 웃음을 터뜨렸다.
강의에서 눈을 초롱초롱 빛낸 것도 모자라, 예리한 질문까지 던지는 학생이라니.
그것도 인재개발원에 입소한 첫날부터 말이다.
백작이 혈겸의 어깨를 잡았다.
마음에 쏙 든다는 만족의 표현, 하지만 정작 연구실로 가도 되냐는 요청에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내가 일정이 있어 그건 어렵겠네. 하지만 좋은 태도야. 개척 사업의 본질을 탐구하고, 더 나은 방향을 고심할수록 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는 법이지.”
“예, 부원장님······.”
혈겸의 표정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한창 재밌게 읽고 있던 사회과학 서적을 빼앗긴 11살 영재 소년 같은 표정.
교수들의 가슴을 들었다 놓았던, 성겸의 미친 플러팅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너무 아쉬워 말게. 더 좋은 방법이 있으니까.”
백작 또한 그 눈빛을 마냥 지나치지는 못했다.
그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이번에는 교육생들 모두를 향해 말했다.
“궁금증을 자네들 스스로 풀어보는 건 어떻겠나? 정확한 정답이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 말이야. 모두 오늘 강의를 들었을 테니······ 내가 소개했던 개척 사례들에 대해 각자의 제언을 담아 소논문을 써보도록 하게.”
“······!!”
“모레 같은 시간에도 강의가 예정돼 있으니, 기한은 그때까지로 하지. 재밌는 토론이 되겠어. 허허.”
술렁술렁.
교육생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대뜸 출현한 범생이가 현란한 교태를 부리며 환심을 사더니, 이에 감응한 백작이 아빠 미소를 띄우며 과제 폭탄을 투하했으니까.
멍하니 강의를 듣고 있던 교육생들로서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뭐 하는 새끼야 저거?
-소논문? 제언? 저게 다 무슨 소리냐?
찌릿!
사방에서 살벌한 눈초리가 날아들었다.
하지만 혈겸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그저 뻔뻔한 미소로 일관할 뿐이었다.
오히려 깜짝 선물이라도 받은 양,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 보일 따름.
백작이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혈겸에게는 별도로 상점을 부여하도록 하지. 강의 태도도 좋았고, 모두에게 도움이 될 만한 흥미로운 화두를 던져주기도 했으니. 상점은 다음 강의에서도 배부할 테니, 다들 소논문 재밌게 한번 써 와보시게, 허허!”
덜컹!
백작은 그 말을 끝으로 강의실을 벗어났다.
얼마나 빨랐던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모를 정도로.
아무튼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성황리에 마무리된 인재개발원에서의 첫 일정.
연구실에 접근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당장은 백작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음.”
적어도 백작에게만큼은 그랬다.
혈겸을 바라보는 다른 동기들의 표정이 참으로 흉악스럽긴 했지만.
***
“거참······.”
나와 부엔디아, 그리고 공녀와 베레슈티 백작까지.
우리는 소파에 멍하니 누워 있는 성겸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주섬주섬 팔다리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 곧장 다시 혈겸에 접속하려는 모양이었다.
“레포트 써야지.”
“아······.”
“그러고 보니 강의록도 적었는데. 이거 같이 제출하면 좋아하겠다.”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상대가 뭘 좋아할지 훤하게 알고 있다는 표정.
어쩐지 즐기는 듯한 태도였지만······. 깊게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백작에게 접근하는 것은 필요한 임무였다.
성혈을 숨긴 장본이니만큼, 가장 많은 단서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후우.”
혈겸을 조종하는 형을 뒤로하고, 나는 나머지 일행들에게 다가갔다.
다들 긴장한 채 거울들 들여다보다가, 이제야 한시름 놓는 분위기.
하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이곳 베레슈티의 전황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나는 오면서 품었던 생각을 그들에게 늘어놓았다.
“조금 찜찜한 게 있습니다.”
연합군은 소모적인 공격을 반복하며, 어정쩡하게 시간을 끌고 있었다.
만약 놈들이 시간을 자신들의 편으로 삼았다면, 그 자신감의 근거가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어딘가 숨겨 둔 수가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연합군 입장에서,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있습니까? 아무리 우리가 수성을 하는 입장이라지만······.”
물론 성을 고립시키는 것은 공성전의 주된 전략 중 하나다.
하지만 베로니카의 지원을 받는 베레슈티는 딱히 고립되어 있지도 않았고, 마력천이 흐르는 이상 내부에 자원이 부족한 상황도 아니었다.
비록 불완전한 것이기는 하나, 에센스 생산 시설 또한 이곳 성안에 위치해 있었으니.
다행히, 그사이 베레슈티 백작이 새로운 정보를 입수했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 정찰조가 돌아왔습니다. 연합군 본진 쪽을 담아왔는데, 여기 보시면······.”
그가 거울을 내밀었다.
혈겸을 비추던 추적 거울보다 한층 더 큰 크기.
그 네모난 화면에 연합군 본진의 풍경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뚝딱! 뚝딱!
영상 속에는 작업복을 걸친, 양철 도마뱀들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입에는 두꺼운 못을 물고, 조끼에 주렁주렁 망치를 매달고 있는 그들.
놈들의 정체에 관해 묻자, 백작이 대답했다.
“로돌포 차원의 도마뱀들입니다. 다차원 건설 산업으로 떼돈을 번 졸부들이죠. 전투력 자체는 별 볼 일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얼추 상위차원으로 취급받는 놈들입니다.”
연합군에서의 생산직이라 보면 정확했다.
상공회의소의 중앙본부를 건설하고 있는 것 또한 이들 로돌포 차원의 도마뱀들.
듣자 하니, 중앙 본부 이상의 시설은 로돌포 차원이 전담해 설치한다는 것 같았다.
백작이 덧붙였다.
“아무래도 중앙본부가 완공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격을 계속하고 있는 건······ 우리를 이곳 성안에 묶어두려는 속셈이 아닐까요?”
“사실 방어하고 있는 건 우리가 아닌 그들이다?”
“그런 셈이지요. 저들 또한 중앙본부 건설이 완료되기까지 방어에 취약한 건 사실이니까요. 지금 숨을 고르고 싶은 걸지도 모릅니다.”
중앙 본부.
완성되는 대로 손에 넣고자 했던 시설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기능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기에, 나는 이참에 백작에게 중앙본부의 기능에 관해 물어보았다.
“어떤 기능이 있는 겁니까? 그 중앙본부에는?”
“내부 시설에 대해서는 딱히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외부 효과는 확실하죠. 대단위 영역효과인데······ 파우스트의 토템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범위가 넓습니다. 놈들이 이곳 전장 한복판에 본부를 설치하는 것도 분명 그런 이유겠죠.”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한번 완성된 중앙본부는 파괴하기가 심히 까다롭다는 것.
자체적인 방어시스템을 두르게 되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쪽이 더 문제입니다. 중앙 본부가 완성되면 반경 내 각성 능력을 감지해 자동으로 선제 타격을 해버리거든요. 타격이라고 했지만······ 본부에서 공격이 발사되는 형태가 아니라, 아예 각성 능력을 폭주시켜 버리는 방식입니다.”
능력 감지와 선제 타격.
출력 폭주라는 게 정확히 어떤 공격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공간에는 못 넣는다는 거네.’
중앙본부의 사정권 안이라면, 중앙본부를 수용하기도 전에 먼저 공격이 날아든다는 뜻이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무적인 것은 아니었다.
“중앙본부가 감지하는 건 ‘본부를 타깃으로 하는’ 공격이나 능력뿐입니다. 아무리 사정권 내라도 신체 강화라든지, 병력을 상대로 한 공격 같은 건 모두 사용이 가능합니다. 일단은 저 중앙 본부가 완성되기 전에, 별동대를 구성해 타격해 보겠습니다. 완성되고 난 뒤라면 상황이 더 힘들어질 테니까요.”
백작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깃들어 있었다.
놈들이 중앙 본부를 건설하고 있는 이상, 시간은 더 이상 우리의 편이 아니었으니까.
그 사이 성혈을 되찾는다면 또 모르겠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건설을 최대한 저지하는 편이 옳았다.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아공간에 중앙 본부를 삼켜버리는 것이 당초의 계획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는 편이 나을 터.
나는 가만히 백작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데 저건 뭡니까?”
그러던 중, 묘하게 생긴 기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퀴가 달린 것으로 보아 이동 수단 같기는 했지만, 길쭉한 구조물이 위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베레슈티 백작은 잊을 뻔했다는 듯, 미간을 짚으며 대답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중앙본부 못지않게 귀찮은 물건인 게 틀림없었다.
“하······. 저것도 있었군요. 로돌포 놈들의 투석기입니다. 놈들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던 것 같군요. 시간을 벌려는 건지, 정말로 치고 들어오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귀찮게 됐습니다.”
“투석기가······ 그렇게 위협적인 물건입니까?”
물론 수성하는 입장에서 공성 무기는 까다로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곳 베레슈티 백작성은 일반적인 성이 아니었기에, 단순한 물리적인 충격만으로는 이렇다 할 피해를 주기 어려웠다.
연합군이 성문 입구들을 노려 진격해 왔던 것도 그런 이유.
하지만 놈들이 노리는 것은 성벽도, 성문도 아니었다.
“보나 마나 전자기포를 무력화시키려는 겁니다. 투석기에 실린 반마력탄······ 저걸 터뜨린다면 전자기포가 단번에 고물이 되어버릴 테니까요. 반마력탄이 한두 푼 하는 물건이 아니라 안심하고 있었는데, 상공회의소가 제대로 돈을 쏟아부은 모양입니다······.”
‘······EMP탄 같은 건가?’
전자기포는 베레슈티에게 있어 가장 주요한 수성무기였다.
그게 무력화된다면 더 이상 몰아치는 병력을 막아낼 여력이 없을 터.
연합군의 새로운 전력에, 베레슈티 백작은 생각이 여간 복잡해진 듯했다.
“중앙본부도 모자라 반마력탄까지······. 이걸 어찌해야 할지······.”
당장 성혈이 문제가 아니었다.
베로니카 공녀의 목적이 성혈로 에센스를 완성하여 독립 세력을 이루는 것이니만큼, 생산 시설이 있는 베레슈티가 함락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었으니까.
혹여 성혈을 되찾는다 한들, 공녀 자신의 힘만 되찾는 데 그칠 뿐이었다.
그리고······.
‘나로서도 그렇지.’
가능하다면, 베로니카 공작가 세력 전체를 등에 업는 편이 좋다.
성혈을 되찾은 공녀는 분명 강력한 전력이 되어주겠지만, 에센스를 얻은 공작가 세력 전체에 비할 순 없을 테니.
가만히 연합군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던 내가 베레슈티 백작에게 물었다.
“혹시 저 투석기와 중앙본부, 둘 중 어느 게 더 사정거리가 깁니까?”
“둘 중에서라면······. 아무래도 투석기 쪽이 근소하게 앞서긴 할 겁니다. 놈들 본진에서도 곧장 성벽을 노릴 수 있는 수준이니까요.”
“오······.”
희소식이었다.
중앙 본부와 반마력탄 투석기.
어쩌면 두 가지 문제를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지 않을까?
‘······일종의 EMP탄 같은 거였지.’
투석기를 먼저 빼앗으면 된다.
사정권 밖에서 중앙본부를 타격한다면, 반마력탄으로 본부를 무력화시킬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놈들의 투석기를 빼앗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중앙 본부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일단은 투석기부터.’
나는 다시 거울을 들여다보였다.
이제 막 완성된 투석기들이 털털 움직이고 있었다.
상위차원 로돌포가 만든 것답게, 꽤나 마감이 좋아 보이는 물건.
“비싸 보이는데······.”
띠링!
[남은 마석은 79,448개 입니다.]바로 주머니를 뒤져봤지만, 녹록지 않았다.
쐐기탄을 수용한 뒤로도, 전투를 치르며 이것저것 돈을 소비했기 때문.
정확한 가격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 정도 마석으로는 <쇼퍼홀릭>으로 투석기를 구매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는 수 없지.’
나는 성큼 소파로 다가갔다.
그러곤 혈겸을 조종하고 있던 형의 어깨를 흔들었다.
“······어어?”
비몽사몽 한 채로 눈을 뜨는 성겸.
나는 곧장 형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 돈 좀.”
“어······. 어?”
형의 분신은 혈겸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지금쯤 아우렐과 함께 그라디바의 마석운반선을 털고 있을 터.
“돈 있지?”
슬슬 수금 타이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