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99)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99화(199/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99화
역공 (3)
백작의 속내는 읽을 수 없었지만, 우리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혈겸은 단호하게 백작에게 대답했다.
“싫습니다.”
백작의 눈이 이채로 물들었다.
‘선물’이 거절당했음에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은 기색.
되레 이유를 듣고 싶다는 듯, 팔짱을 낀 채 혈겸의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혈겸이 말했다.
“지금껏 안 먹어도 잘 살아왔습니다. 이제 와 입에 대고 싶지는 않군요.”
“······그런가.”
똑 부러지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사실이었다.
진혈을 수혈한 이후, 혈겸은 배고픔을 느낀 적이 없었으니까.
해적질을 하고 있는 다른 분신이 수시로 허기를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저벅저벅.
백작이 두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시험을 거절한 순간부터, 우리는 충분히 각오하고 있었다.
‘······죽이려 들 수도 있겠지.’
혈겸이 프랑코 백작을 힘으로 이길 가능성은 낮다.
명색이 아케인 차원의 백작이 그리 만만할 리 없으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혈겸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성혈 확보에 사활을 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줄 알았다.”
“예?”
프랑코 백작은 혈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줄 뿐이었다.
그러곤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지이이이잉!
바닥에 쓰러진 인족 아이가 사진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녀석의 몸이 푸른 마법진으로 뒤덮이더니, 조금씩 그 크기가 줄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리에 남은 것은······.
-찍!
회색 털을 가진, 자그마한 생쥐 한 마리일 뿐이었다.
생쥐는 좌우를 빠르게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겁에 질린 듯 모서리에 난 구멍으로 냉큼 도망쳐 버렸다.
묶여 있던 아이가 생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혈겸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이게 대체······.”
“흡혈귀들은 한 달은 피를 먹지 않고 버틸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반대로······ 한 달만 금식해도 피에 굶주린 혈귀가 된다는 뜻이지. 네가 피를 먹지 않고도 멀쩡할 수 있었던 건 너의 몸에 진혈이 흐르기 때문이다. 너는 미처 몰랐겠지만.”
백작이 혈겸을 피로 유혹한 것은, 마지막 확인을 위해서였다.
만약 혈겸의 몸에 흐르는 것이 순수한 진혈이 아니었다면, 이성을 잃어버린 채 아이의 목을 물어뜯으러 달려들었을 테니까.
혈겸은 자신이 진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세상에 그런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너의 성향을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뭐, 진혈이라고 피를 먹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아니 오히려······.”
백작이 몸을 돌렸다.
그러곤 연구실 책상을 향해 느릿느릿하게 걸으며, 말을 이었다.
“너의 뿌리인 드라칸 공작······. 그의 혈족들은 피 마시기를 즐긴다. 진혈들은 피를 빨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지만, 드라칸의 일족 중 인족을 먹이로 삼지 않는 자는 드물지. 너와는 달리 말이다.”
드르륵!
백작이 서랍을 열었다.
그러곤 무언가 꺼내더니, 몸을 빙글 돌려 다시 혈겸에게로 다가왔다.
“그동안 네 사상에는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다차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네가 뜻을 펼칠 기회를 주면 어떨까 했지. 받거라, 이게 진짜 내 선물이다.”
찰랑.
그가 꺼낸 것은 길쭉한 유리병이었다.
병 안에는 선명한 주황빛 액체가 찰랑거렸는데, 붉게 물들었다가 다시 주황빛으로 돌아가기를 끝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
그때, 베로니카 공녀가 왁 하고 소리를 질렀다.
“왜 그래요?”
“에센스······. 틀림없이 우리가 만들려던 에센스예요. 부작용을 소거한······!”
붉은색과 주황색을 오가는 것.
그건 저 액체가 베로니카 공작가가 그토록 고대하던, 완성된 버전의 에센스라는 걸 의미했다.
죽은 공작을 통해, 공녀 또한 그 특징을 전해 들은 적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프랑코 백작은 혈겸에게 에센스를 건네주며 말을 이었다.
“내 오래된 친구로부터 받은 물건이다. 피가 아닌, 정순한 마력을 고도로 집약해, 피의 형식에 맞추어 개량한 액체······. 그 어떤 피보다 흡혈귀를 더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지.”
백작은 후후 웃으며, 쭉 들이키라는 듯 손짓했다.
시험에 불과했던 아까와는 달리, 이번에는 진심을 담아서.
“너의 혈족들은 혈맹이라는 단체를 이루고 활동하고 있다. 혈맹은 실로 보수적인 집단인 탓에······. 자신들의 방식을 조금도 바꾸려 하지 않지. 하지만 에센스를 먹고 강해진 너를 본다면, 그들도 생각을 고쳐먹을지도 모른다.”
혈겸은 어린아이의 피를 먹기를 고사했고, 백작은 그로부터 혈겸의 사상을 읽었다.
유리병을 쥔 혈겸을 향해, 백작은 연달아 달콤한 이야기를 속삭였다.
“네 말대로다 혈겸. 이 에센스는 생물의 피가 아닌······ 순수한 물적 자원이니까. 다차원 상업 세계를 흔들, 획기적인 아이템이 될 테고, 상공회의소의 말단 직원이 맡기엔 지나치게 큰 프로젝트가 되겠지. 하지만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너는 대륙 본부장, 혹은 차원 본부의 기획실장급으로 일을 시작하게 될 게다.”
뿌득.
베로니카 공녀가 이를 갈았다.
백작이 죽은 공작을 ‘친구’라고 불렀을 때부터 줄곧.
그녀는 백작의 진짜 목적을 알아차린 참이었다.
“혈맹에 접근하려는 거예요. 워낙에 폐쇄적인 집단이니······ 진혈을 가진 혈겸을 다리로 삼으려는 거겠죠. 백작이 노리는 건 결국······.”
“······이번에도 성혈인가요?”
“예, 혈맹이 드라칸의 성혈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무슨 목적으로 성혈을 노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베로니카의 성혈만으로는 양이 모자랐던 모양.
백작은 여전히 혈겸에게 말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너의 진짜 가족들을 만나보고 싶지는 않으냐?”
“가족들······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가 너에게 드라칸의 혈족들을 소개해주마. 네가 버려졌음에도 그들보다 훨씬 더 우월한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게 해주거라.”
실상은 반대였다.
혈맹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건, 백작이 아닌 진혈을 지닌 혈겸이었으니까.
혈겸은 유리병을 잡은 손을 덜덜 떨었다.
딱히 마음이 동요했다기보다는, 백작의 분위기에 맞춰주기 위해.
그러곤······.
꿀꺽.
에센스를 단숨에 들이켰다.
별문제가 없으리라는 걸, 이미 공녀가 확인해준 터였으니까.
“뭔가 약 같은 게 섞여 있으면 어쩌죠? 세뇌라든가······.”
“백작의 목적이 혈맹에 접근하는 거라면, 그러지는 않을 거예요. 세뇌나 약물의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는데······. 흡혈귀들이 그걸 못 알아차릴 리가 없거든요. 그러지 않고도 충분히 혈겸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고.”
백작은 혈겸을 믿고 있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장기 말로서.
쿨럭! 쿨럭!
에센스를 마신 혈겸은 잦은 기침을 했다.
그러곤 결국 토를 하며 새카만 노폐물을 뱉어댔다.
“으으······.”
까드득! 까득!
실핏줄이 전신을 뒤덮었다.
그러곤 꿀렁꿀렁 사방으로 피를 전달하며, 진혈과 에센스를 고루 섞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득!
팔다리에 단단한 살이 차올랐고, 온몸의 근력이 강화됐다.
등 뒤로는 날개 한 쌍이 추가로 돋아나기까지.
그렇게 모든 변화가 지나간 뒤······.
“이건······.”
혈겸은 놀라움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힘을 얻게 되었으니까.
몸에 흐르던 진혈과 완성된 에센스가 합쳐진 결과였다.
그리고······.
“찾았다.”
한 가지 변화가 더 있었다.
바로 후각이 미친 듯이 발달한 것.
진혈의 수준으로는 맡을 수 없던 냄새들이 새로새록 콧속을 자극했다.
연구실을 채우고 있는 마법 시약들의 냄새가 속속들이 구분됐다.
냄새들이 어디서 피어오르고, 어디서 들어오고, 또 어디로 나가는지까지.
그중에는 비록 희미하지만, 유달리 고귀하면서도 달콤한 향내가 나는 곳이 있었다.
혈겸을 조종하던, 형이 말을 이었다.
“······백작한테 있었어.”
백작의 가슴팍에서 나는 고결한 피의 냄새.
프랑코 백작은 줄곧 성혈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몰랐을 뿐.
혈겸의 변화를 보며, 백작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주저앉아 있던 혈겸을 일으켜주었다.
“혈겸, 너는 실무교육을 받으러 갈 필요 없다. 이제부터 나를 따라 움직이도록.”
“그렇다면 바로······ 혈맹에 가는 것입니까?”
“아니, 그 전에 들릴 곳이 있다.”
백작이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들었다.
혈겸이 마신, 완성된 에센스가 담겨 있던 유리병.
“선물은 채워서 가야겠지.”
이제는 텅 빈 유리병을 흔들며, 백작이 나지막이 덧붙였다.
***
콰아아앙!
콰아앙!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우리는 난데없는 포화를 겪고 있었다.
“대체 왜 저러지?”
“모르겠습니다. 몰아친다고 될 일이 아닌 걸 알 텐데···”
베레슈티 백작이 허둥지둥 고개를 저었다.
연합군의 공격이 갑자기 거세진 탓이었다.
사정거리가 충분할 텐데도, 놈들은 억척스럽게 투석기를 전선 앞까지 끌고와 반마력탄을 내던지고 있었으니.
섣불리 <쇼퍼홀릭>을 사용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투석기 수십 대를 한 번에 끌고 나온 통에, 우선순위를 골라 빼앗아야 했으니까.
병력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고, 특히 진격에 앞장선 것은 다름 아닌 청색 마법사, 프랑코였다.
-범죄자, 부엔디아는 듣고 있느냐! 나 루도비코 에센 프랑코와 싸우자!
며칠 전부터 줄곧 외치던 소리.
생각해보니 이놈도 프랑코 가문에 속한 족속이었다.
프랑코 백작이 염동 마법을 사용한다고 하니, 주특기도 같은 셈.
타아아아앙!
정문의 전자기포 2문이 반마력탄에 맞아 무력화됐다.
이 틈을 타 프랑코가 가깝게 접근했고, 염동력을 발휘해 고장 난 전자기포를 땅까지 끌어내렸다.
파가가각!
바닥에 떨어진 전자기포가 산산조각이 났다.
차마 발사되지 못한 쐐기탄이 사방으로 굴러다녔다.
하지만 저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십으로 구성된 피렌의 천사부대가 프랑코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으니까.
베레슈티의 흡혈귀들이 접근하기도 어려웠고, 출하 스킬을 이용한 원거리 공격도 제대로 먹혀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
뭔가 이상했다.
세차게 날아들던 반마력탄의 폭격이 거짓말처럼 사라졌으니까.
더욱 이상한 것은, 프랑코와 놈이 이끌던 천사부대가 갑자기 정문을 향해 쇄도하는 것이었다.
“이대로 뚫고 들어올 생각인가? 그러면 반마력탄은 왜······?”
오래 고민할 수는 없었다.
폭격만 재개된다면, 자칫하다간 정문이 뚫릴 수도 있는 상황.
나는 수성을 보조하고 있던 부엔디아를 데리고 급하게 정문을 향해 내려갔다.
그렇게 1층 지면을 내디뎠을 때에는······.
파지지지-지지직!
마력을 되찾은 전자기포가 놈들을 향해 전격을 토해내고 있었다.
.
.
.
‘······뭐하는 짓거리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불나방처럼 적진을 향해 날아드는 격이라니.
그것도 잘 먹혀들고 있던 반마력탄 투석을 멈춘 타이밍이었다.
정문 쇠창살 너머로는 모든 상황이 종료돼 있었다.
전자기포의 전격이 휩쓸고 지나간, 새카만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
피렌의 천사들은 모조리 죽어 있었다.
죽은 그들의 깃털이 공중에 지저분하게 나부꼈다.
그 틈새로 보이는 것은 휘청거리는 루드비코 프랑코, 그리고······.
‘······!’
콰아아아앙!
그를 덮치는 전자기탄의 모습이었다.
싸아아······.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전자기포에서 발사된 것이 아니었으니까.
시선을 집중하자, 그보다 먼 거리에서 손을 움직이는 누군가를 볼 수 있었다.
흰색 로브에 황색 넥타이를 맨, 아케인의 마법사,
‘백작······?’
프랑코 백작이었다.
그는 죽은 루도비코 프랑코의 시체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그러곤 이제 되었다는 듯 툭툭 손을 털고는, 유유히 자리를 벗어났다.
‘······미친.’
묘한 예감이 찾아들었다.
이 전쟁이 말도 안 되게 격화되리라는 직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