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화(2/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2편
(핵가족의 아포칼립스 (2))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봤다.
포탈 너머로, 여전히 나를 찾는 오크의 모습이 보였다.
녀석은 여러 차례 걸어들어오려 했지만,
[외부의 존재가 입장을 시도합니다]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존재입니다]파지직!
투명한 벽에 가로막혀버렸다.
타앙! 탕!
분하다는 듯 벽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놈은 더 이상 입장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실 뿐.
“살았다···”
안도의 숨을 몰아쉬려던 찰나.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공간에 최초로 진입하였습니다] [튜토리얼 사용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 마석 1개]이게 그 마석이라는 것일까?
내 손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푸른색 보석이 쥐어져 있었다.
능력을 각성했을 때부터 볼 수 있었던 메시지였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메시지 창에 익숙한 목소리가 더해져 있었으니.
내가 목소리의 주인을 불렀다.
“팍스···?”
[반갑습니다, 정겸 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내 일터의 유일한 친구.
AI 팍스가 상태창 메시지를 읽어주고 있었다.
“대체···”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금 전만 해도 내가 있던 장소.
물류센터의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지만, 정작 창문 바깥의 풍경은 흰 백지처럼 텅 비어 있었다.
마치 우주의 바깥, 혹은 존재하지 않는 시공간에 덩그러니 놓여진 것처럼.
내가 물었다.
“여긴 어디야···? 넌 뭐고?”
AI 팍스의 대답은 빨랐다.
[이곳은 경기도 군포시에 위치한 팍스 풀필먼트 센터입니다. 지상 5층, 연면적 1만 평 규모의 시설을 갖춘 팍스 풀필먼트 센터는 고객들의 삶에 필요한 온 세상의 모든 상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150대가량의 AGV가 비치되어 있으며···] [저는 김정겸 님의 업무를 도와드릴 풀필먼트 센터의 마스코트, 팍스라고 합니다.]젠장, 근무 첫날인 줄 알았다.
여느 때와 같은 물류센터의 전경이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모든 조명이 꺼져 있는 것은 물론, 선반을 옮기는 AGV 로봇들과 컨베이어 벨트가 우뚝 멈춰 서 있었다.
팍스가 말했다.
[시설의 전력 공급이 끊어졌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전력을 복구해야 합니다. 공급이 지연될수록 상품 품질 유지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기분탓일까?
AI치고는 어쩐지 다급한 목소리였다.
“어떤 심각한 문제?”
[가장 심각한 것은 프레시 센터입니다. 냉장고, 냉동고의 작동이 중단되었고, 그밖에 자동 출하 시스템 또한 가동이 중단된 상태입니다.]냉장고가 멈췄다고?
그건 좀 곤란했다.
지금 바깥 풍경은 전쟁통을 방불케 하는 상황.
어쩌면 이곳 아공간 내에서 오랜 시간 버티며 지내야 할지도 몰랐다.
가장 중요한 자원인 식량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막아야 했다.
“전력을 어떻게 공급하는데? 여긴 아공간이잖아.”
의외로 방법은 간단했다.
[마석을 자원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개당 24시간 동안 가동이 가능합니다.]아공간에 들어오자마자 받은 마석.
팍스는 그걸 원하고 있었다.
군말 없이 마석을 넘겨주었다.
“자, 받아.”
나 또한 이곳의 물건들이 무사하길 바랐으니.
허공으로 마석을 들어 올리자,
[마석 1개 받았습니다.]스르르, 흩어지듯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이내,
탁!
위이이잉-
물류센터의 조명이 켜지며 AGV 로봇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잉 소리와 함께 환기장치까지 켜지니, 한결 안심이 되었다.
“···하루 벌었네.”
[그렇습니다.]“마석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거야?”
[각성 시스템에 의해 마석이 주어지는 건 이번 한 번뿐입니다.] [이계의 존재들로부터 마석을 채취할 수 있습니다.]“이계의 존재라면······”
고개를 휙 돌리자, 여전히 포탈을 앞을 지키고 있는 잘생긴 녹색 오크가 눈에 들어왔다.
“저런 거?”
[그렇습니다.]간단히 말해 저 오크를 잡아야 마석이 나온다는 소리였다.
목표는 정해졌지만, 처치 방법이 묘연했다.
저 괴물 같은 놈은 무슨 수로 잡는단 말인가?
활용할 수 있는 도구라면 놈을 가로막고 있는 투명한 벽.
그리고···
이곳 풀필먼트 물류센터였다.
내가 물었다.
“혹시 예전처럼 물품 검색도 가능해?”
[가능합니다. 어떤 상품을 찾으시나요?]“무기 같은 건 없겠지? 창이나 장검 같은.”
[무기류는 취급하지 않습니다만, 가검 또는 캠핑용 단검은 여러 종류 취급하고 있습니다]가검이라면 진검이 아닌 장식용 칼이란 소리였다.
단검도 나쁘진 않지만, 그걸로 저 오크를 처치하기는 어려울 듯싶었다.
“도끼는?”
[손도끼 정도라면 있습니다. 선반 위치는 G-76. 위에서 네 번째 칸까지 모두 도끼와 관련한 공구류가 담겨 있습니다.]자동 진열대로 들어가 G열 선반을 찾았다.
아득히 이어진 칸막이들 속에서 숫자를 찾고 있자니, 거대한 도서관에라도 들어온 기분이었다.
마침내 G-76번 선반을 찾았고, 수십 종의 손도끼 중 쓸만한 녀석을 찾았다.
아무래도 살상용이라고 보긴 어려웠지만, 개중에서는 그나마 무게도 있고, 날도 날카로워 보이는 녀석이었다.
[파스카스 도끼(소형), 가격은 72,500원입니다.]대략 7만원의 가격.
하지만 지불할 필요는 없었다.
이제부터 이곳의 모든 물건의 주인은 다름 아닌 나니까.
그렇게 도끼를 집어 들었을 찰나였다.
“뭐지?”
손에 들린 도끼.
선반에 딱 하나 남아 있던 물건이었다.
하지만 물건을 꺼내자마자, 선반에는 귀신같이 다시 물건이 채워져 있었다.
연달아 몇 번을 꺼내도 똑같았다.
[이곳의 물건들은 실체를 정보화 한 것입니다.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훼손되거나 변형될 수는 있어도 고갈되지는 않습니다.]달리 말해서···
“물건이 복사가 된다고? 사기잖아?”
[그렇습니다.]무한 재고의 물류센터라니.
아공간에 들여온 풀필먼트 센터는 그야말로 괴물같은 공간이 되어 있었다.
“···그래, 아무튼.”
그렇게 나는 도끼를 챙겨 진열대를 빠져나왔다.
오크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포탈 너머에서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집요한 놈이었다.
“니가 니 무덤 판 거야.”
등으로 도끼를 숨긴 채, 조금씩 놈에게 다가갔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위협이 된다면 녀석이 도망갈 수도 있었으니까.
충분히 가까워졌을 즈음.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포탈 면적의 대부분을 가득 메울 만큼 몸집이 큰 녀석이다.
이 정도 거리라면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녀석의 ‘머리’를.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녀석의 눈이 신중해졌다.
하지만···
“이미 늦었어.”
휘익!
어깨에 온 힘을 넣어 도끼를 휘둘렀다.
팽그르르 회전하며 날아간 도끼는 이내···
파악!
놈의 머리에 적중했다.
촤아아악!
놈의 머리에서 녹색 피가 분수처럼 솟아올랐고,
쿵!
놈이 뒤로 넘어갔다.
녀석의 사체는 몇차례 꿈틀거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휴우···”
지난 3일 동안의 숙원이 시원하게 풀어졌다.
.
.
.
저벅저벅.
오크를 처치하고 난 후, 가장 먼저 향한 곳이 있었다.
전력이 돌아온 덕인지, 시설의 조명은 물론 주문을 처리하는 컴퓨터의 전원도 돌아와 있었다.
픽킹 스테이션(Picking station)에 도착한 나는, 모니터 하단에 놓인 키보드에 빠르게 정보를 입력했다.
타다다닥.
이곳 픽킹 스테이션은 일종의 ‘수령 장소’로, 주문한 물건을 AGV 로봇들이 이곳까지 가져다주는 구조였다.
전력이 돌아온 만큼, 이곳 시설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주문 좀 할게.”
타다닥!
키보드로 물건을 입력할 때마다, 팍스가 낭랑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경량 컴뱃 워커, 가격은 52,500 원입니다.] [밀리터리 전술 조끼, 가격은 58,000 원입니다.] [알루미늄 수통, 가격은 11,800 원입니다.] [제주 삼다수, 2L, 24개, 가격은 25,920 원입니다.] [대용량 밀리터리 백팩 80L, 가격은 29,900 원입니다.] [비상식량 2식단 제육 비빔밥 10개 110g, 가격은 22,500원입니다.]“이게 다 공짜라 이거지.”
배낭, 전투화와 군용조끼, 물이 담긴 수통과 비상식량까지.
쇼핑하는 맛이 제법 쏠쏠했다.
하지만 그렇게 받아든 물건을 하나하나 가방에 욱여넣다 보니, 남모를 기시감이 몰려왔다.
“···젠장, 이거 군장 싸는 거잖아.”
전역한 지 얼마나 됐다고, 상황이 참으로 야속했다.
얼추 준비를 마친 나는 두 가지를 추가로 주문했다.
툭.
AGV 로봇이 책 한 권과 볼펜 박스를 던져 주었다.
“진짜 없는 게 없네.”
이놈의 풀필먼트 센터에는 책도 있었다.
내가 주문한 것은 수도권 전지역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200페이지짜리 지도책이었다.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인터넷이 끊어진 탓인지 아무리 해도 지도 어플이 실행되지 않았다.
팔랑.
수도권 전체가 표시되어 있는 첫 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볼펜으로 몇 군데 표시를 시작했다.
“강남에서 일하는 큰 누나, 을지로에 있는 작은 누나, 도봉구에 신혼살림을 차린 큰형 내외···”
마지막으로 의정부에 있을 부모님과 할아버지까지.
드래곤볼처럼 퍼져있는 김씨 일가를 빠짐없이 표시했다.
그야말로 핵분열이 따로 없었다.
“왜 다 쓸데없이 흩어져 갖곤···”
그나마 다행이라면 모두 북쪽에 있다는 점이다.
가까운 순서로 하나씩 찾아내면 될 테니.
당장은 강남에 있을 작은 누나부터 찾아볼 생각이었다.
“다들 무사해야 할 텐데.”
지금 나의 위치는 군포시.
나름 수도권이라 할 만하지만, 그래도 서울까지의 거리는 결코 가깝지 않았다.
꽤 먼 거리지만··· 가족애로 무장한다면 어떻게든 가볼 수 있지 않을까?
더군다나, 이곳 풀필먼트 센터는 정말이지 위대해서, 쓸만한 애마(愛馬)까지 한 대 뽑을 수 있었다.
낑낑.
AGV 로봇이 낑낑대며 내 물건을 가져다주었다.
번쩍번쩍.
화려한 전조등을 비추는 녀석.
팍스가 호명했다.
[투알톤 코디악 스포츠 전기자전거 16.5Ah, 블랙색상, 가격은 1,890,000원입니다.]철컥!
자전거를 받아들곤, 안장의 높이를 조절했다.
“일하기 전엔··· 설마 이런 물건까지 있는 줄은 미처 몰랐지.”
자동차, 오토바이까지는 못 되지만 당장은 도움이 되리라.
상품 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충전 한 번에 최대 100km까지 달리는 녀석이었다.
지금만큼은 테슬라가 부럽지 않았다.
안장에 걸터 앉은 채, 포탈 바깥을 바라보았다.
머리에 도끼를 꽂은 오크 시체가 늘어져 있었고, 그 뒤로 뒤집히고 부서지고, 불에 탄 트럭과 건물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썩 행복해 보이는 세계는 아니지만···
“가볼까.”
위이잉-
전기 자전거의 시동을 걸었다.
등 뒤로는 상품 진열장이 빼곡한 풀필먼트 센터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마실 것, 먹을 것부터 심지어는 놀거리까지.
말 그대로 없는 것 빼고는 다 있으리라.
저 바깥에 비하면 어쩌면 천국이라 불러도 무방할 지도.
하지만···
“웬수 같은 우리 가족이 없잖아?”
띠링!
[‘웬수 같은 우리 가족’은 등록되지 않은 상품입니다]팍스가 맞장구를 쳤다.
그렇게, 나는 포탈 밖으로 나섰다.
연면적 1만평에 달하는 팍스 풀필먼트 센터를 등에 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