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0화(20/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20편
(파이어 볼 (2))
빛이라고는 한 줌도 들어오지 않는 어둑한 궁전.
긴 복도로 늘어선 알현실에는 외로운 존재가 홀로 왕좌를 지키고 있었다.
펄럭.
그의 발걸음에 따라, 걸치고 있던 흑색 휘장이 바닥을 긁었다.
절그럭절그럭 요동치는 갑옷.
그 위로 백골의 붉은색 안광이 드리웠다.
“허···”
짧은 탄식을 뱉었다.
수하의 비보를 들은 터였으니.
물론 진정한 죽음은 아니었다.
카멜롯의 기사들에게는 생이란 개념 자체가 전무했으니.
그저, 망령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그들을 표현하기엔 충분했다.
바로 그 망령, 해골기사 그웨인의 혼이 자신에게 되돌아온 터였다.
혼은 전했다.
-마법사를 조심하십시오.
하지만 기사왕은 그 말을 부정했다.
“그럴 리 없다. 마법사라니? 그 콧대 높은 놈들이 벌써부터 이런 구멍가게까지 들쑤시고 다닐 리 없어.”
이제 막 ‘개척’이 시작된 지구 차원이었다.
다차원 상공회의소가 진입을 허가한 등급은 9위계부터 최대 8위계까지가 고작.
이 빠듯한 조건을 맞추기 위해, 본래 5위계였던 기사왕 자신 또한 굴욕적인 등급하락을 감수한 참이었다.
반면, 마법사들이 어떤 존재인가?
귀족적인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등급과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족속들이었다.
기사왕 자신처럼 비굴한 방식으로 지구를 찾을 리 만무했다.
시이익-
또 다른 혼 하나가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기사왕을 따르는 망령 중 가장 강력한 혼, 란슬롯이었다.
“아무래도 주군만큼이나 과감한 놈인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놈도 개방이 전면화 되기 전에 여길 선점할 생각인 거야.”
“어떻게 대처하실 생각이십니까?”
“음···”
기사왕은 잠시 고민했다.
등급 하락까지 감수하는 기행을 차원 단위에서 벌일 리가 없었다.
보나마나 돈독이 지독하게 오른 사짜 마법사의 무모한 단독 행동일 터.
잠시 기사들을 모아 놈을 처리할까도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놔둬라. 어차피 성 밖에서 벌어진 일이니. 무엇보다··· 지금은 그럴 시기가 아니야.”
“···‘수확’ 말씀이시군요.”
“그래. 그웨인이 당한 건 아쉽지만··· 강화석이야 다시 얻으면 그만이야. 슬슬 ‘숙성’도 마무리되어가고 있으니.”
서울 한복판에 세워진 성, 카멜롯.
그것은 일종의 생명의 용광로였다.
그 안에 담긴 생명체들을 대가로 강화석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즉, 기사왕으로서는 어쩌다 끼어든 날파리를 처리하는 것보다, 카멜롯을 통해 강화석을 추수하는 문제가 훨씬 더 시급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있으면 돼.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한탕 하는 거야.”
남모를 흥분에 싸인 기사왕.
한편 무언가 낌새를 차린 란슬롯이 그에게 전했다.
“···뭔가 성으로 들어왔군요. 인간들인 것 같습니다.”
“또 그 장난감이겠지. 놈들도 호기심이 여간하군. 결국 다 죽을 운명인 것을···”
“어떻게 할까요?”
“내버려 둬라. 어차피 곧 지붕이 올라갈 테니. 카멜롯에게 줄 밥이 늘어났을 뿐이야.”
어차피 이곳 성에 있는 인간들은 모두 독 안에 든 쥐였다.
‘숙성’이 완료된다면 알아서 그 제물이 될 테니까.
그렇게, 기사왕은 잊어버렸다.
낯선 손님의 방문을.
***
투두두두두-!
블랙호크의 프로펠러가 우렁찬 소리를 뿜었다.
끼에엑!
와이번 몇 마리가 나타나 주변을 기웃거렸지만···
화르르륵!
주변으로 아찔하게 불타는 볼링공 몇 개를 휘둘러주니 금세 줄행랑을 쳤다.
기사왕의 성이 남산을 끼고 명동까지 드리워 있었기에, 도착까지는 십여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눈앞에 드리운 성채.
하지만 정작 성벽은 황량했다.
널리 알려진 중세 성벽의 형태라면 그 위를 지키는 병력이 있어야 했겠지만, 기사왕의 성은 애당초 그런 설계로 이루어지지 않은 듯했다.
투두두두-
우리는 작은 누나의 자취방이 있는 을지로4가에 다다랐고,
이용수의 유려한 운전 솜씨를 앞세워, 천천히 운동 경기장 구멍처럼 생긴 성벽의 커다란 천장 구멍으로 빠져들어 갔다.
우리의 머리맡으로도 금세 그늘이 쏟아졌다.
그리고 즉시, 공격이 시작됐다.
카가가가각!
시작은 프로펠러였다.
끼익!
끽!
새카맣게 모여든 박쥐들이 미친 듯이 프로펠러를 향해 달려들었다.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프로펠러가 놈들의 살갗을 찢었지만, 놈들은 죽음도 불사했다.
투두두두-!
소총을 쏘아 놈들을 떨어냈지만, 그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로터에 달라붙은 놈들을 공격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자칫하다간 우리 손으로 로터를 고장 낼 수도 있으니.
트득!
트드드득!
헬기는 놈들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해서 휘청거렸다.
이용수가 기지를 발휘했고, 차츰 누나의 자취방인 구축 오피스텔에 가까워졌으나···
카각!
종로 4가 사거리에 높게 솟아 있던 카드사 건물에 날개 끝이 걸려버렸다.
후웅!
헬기가 휘청거렸고···
결국 우리의 운명은 추락이었다.
위잉!
재빨리 <상품 회수>를 사용했다.
대상은 이용수와 나.
후루룩!
우리 두사람은 눈 깜짝할 새 아공간에 들어와 있었다.
한편, 포탈 너머로 보이는 바깥 풍경이 수차례나 이리저리 뒤집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퍼엉!
액션의 한 장면을 마무리하듯, 군으로부터 받은 블랙호크가 폭발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폭발이 이곳 아공간으로 흘러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어쨌거나 착륙은 착륙이었다.
성공적이지는 않았어도.
[표준 가정용 분말 소화기 3.3kg, 가격은 19,900원입니다.]우리는 저마다 소화기를 든 채, 타오르는 불길을 잡으며 천천히 헬기를 빠져나왔다.
폭발로 인해 우리가 죽었으리라 생각한 것인지, 박쥐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곳저곳에 떨어진 박쥐들의 사체.
<상품회수>를 사용해 알뜰하게 마석을 챙겼다.
사거리 곳곳을 메우고 있는 조명 가게들.
그중 한 곳을 끼고 돌아 들어가자, 작은 누나의 오피스텔로 향하는 길목이 나왔다.
그 거리가 멀지 않았지만···
아쉽게도 뚫려있지도 않았다.
일전에 보았던 스켈레톤은 물론, 좀비처럼 온몸이 썩어 문드러져 가는 들개들이 우리를 반겼다.
심지어 그 크기가 사람만 했는데, 줄줄 녹색 침을 흘리는 것이 가능한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물론 위협적이진 않았다.
볼링공을 던져 놈들을 불살라 버릴 수 있을 테니.
“어디···”
하지만, 그렇게 공격을 시작해보려던 때였다.
퍼억!
스-팡!
경쾌한 소리가 길목 반대편으로부터 울려 퍼졌다.
그 박자에 맞추듯, 스켈레톤의 두개골이 빙그르르 회전하며 하늘로 치솟았다.
끼잉!
깽!
그 아래로는 좀비 들개들이 양옆으로 걷어차이며, 골목 주변으로 녹색 스프레이를 뿌려댔다.
골목을 메우고 있던 놈들의 시선이 일제히 뒤를 향했지만···
달그락!
깨앵!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싸늘한 사체가 되어 길바닥을 장식했다.
그렇게, 나는 소리의 주인을 마주할 수 있었다.
“···김솔!”
그녀의 정체는 김씨스터즈 2호.
작은누나였다.
.
.
.
어린 시절.
큰누나가 그저 공부를 못했다면, 작은누나는 그야말로 파멸적인 성적으로 학업과 관련한 모든 기대를 저버리게 했다.
대신 운동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는데, 일찍이 발견한 재능을 살려 어려서부터 격투기 선수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 명성이 어찌나 대단했던지, 나의 중학교 시절 내내 별명은 ‘김솔 동생’으로 고정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그 어떤 양아치 고딩들을 마주쳐도 김솔이라는 이름만 대면 홍해처럼 길이 갈라지곤 했다.
힘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고 했던가.
김솔은 자신의 무력을 허투루 사용하는 경우가 없었고, 덕분에 누굴 때렸다는 이유로 불려가거나 한 소식을 들어본바 또한 없었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정작 내게 있어서는···
“김정겸, 뒤지기 싫으면 컴퓨터 놓고 나와라.”
그 누구보다도 형제 같은 존재였다.
.
.
.
서로를 마주보는 두 여자.
김씨스터즈가 재회했다.
“···오랜만이다. 1호.”
“못 본 사이 더 강해졌구나, 2호···”
가벼운 포옹을 나눈 두 사람이 주먹을 맞부딪혔다.
합체 로봇의 잃어버린 두 다리가 마침내 하나가 된 순간이었다.
큰누나는 내과과장의 횡포와 싸우고 있었고, 작은 누나 김솔은 해골과 좀비를 쥐잡듯 패며 갑작스레 나타난 멸망에 대처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이 아포칼립스 시대를 굳건히 해쳐나갈만큼 강인한 신여성들이었다.
김솔은 난데없이 헬기가 추락하는 걸 보고 집에서 뛰쳐나왔다고 했다.
“뭐··· 원래 이 시간에 산책하기는 해. 겸사겸사 나왔지.”
“산책···?”
아포칼립스에 산책이라니.
김솔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고 있었다.
물론, 마냥 즐겁게만 있던 건 아닌 듯했다.
“혹시 엄마아빠 소식은 못 들어봤어? 여기는 무슨 이상한 벽이 세워져서 그런지 전화도 안 터지더라고··· 마지막으로 너랑 연락했던 거 기억하지?”
“바깥에서도 전화 안 터지는 건 마찬가지야. 그래서 지금 천천히 위쪽으로 올라가는 중이고.”
나는 함께 있던 이용수에 대한 소개와 함께, 내가 각성한 아공간 능력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녀는 놀라워하는 반응이었다.
“아니, 그런 게 된다고···? 레벨이 몇인데?”
이 모든 게 게임이라도 되는 듯, 그녀는 고조된 목소리였다.
하지만, 정작 놀란 건 나였다.
“···레벨이 5라고?”
“뭘 그리 놀라냐? 마석 250개만 모으면 되는 걸···”
그녀는 레벨업마다 마석 50개가 요구되었으며, 지금까지 레벨을 올리더라도 그 요구치가 늘어나는 경우는 없었다고 했다.
아무래도 각성한 능력, 사람에 따라 요구되는 마석의 양이 제각기 다른 모양이었다.
이용수도 똑같이 50개였던 걸 보면, 아무래도 100개, 1000개씩 마석이 요구되는 내 쪽이 특이 케이스일 듯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혈혈단신으로 마석 250개를 수급한 김솔의 괴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전, 괴물들로 가득 채워져 있던 길목을 뚫어버린 걸 두 눈으로 목도했으니.
그러거나 말거나, 땅에 떨어진 돈을 줍지 않을 순 없었다.
상품회수를 사용해 후루룩 마석만 골라 빨아들이고 있자니, 김솔이 나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너 혼자 치트 돌렸냐? 왜 이딴 게 되는 거야?”
“설명하자면 길다.”
“개사기네 진짜···”
그녀는 세상 불합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툴툴 바닥에 놓인 뼈다귀를 걷어찼다.
그때였다.
쐐애애액!
나를 향해 뾰족한 물체가 날아들었지만,
타아앙!
김솔이 주먹을 내질러 막아냈다.
그야말로 귀신 같은 속도였다.
김솔의 설명에 따르면, 그녀가 각성한 능력의 이름은 <배리어>였다.
신체에 닿는 부위까지 자유자재로 방어 장막을 생성할 수 있는 능력이었는데, 김솔은 이를 센스 좋게 공방에 두루 활용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주먹이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뾰족한 물체는 손이었다.
정확히는 갑옷을 입은 또 다른 해골기사가 두 손을 채찍처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파지지직-!
전기 성질이 부여된 것인지, 바늘처럼 뾰족한 손가락 뼈마디에 푸른빛의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놀랍게도, 김솔은 녀석과 구면인 듯했다.
“얘 또 나왔네. 그거 아냐? 얘 말도 할 줄 안다?”
알고는 있지만, 그걸 듣고도 여태 살아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내가 물었다.
“···이길 수 있어?”
“아니? 얘는 암만 때려도 안 죽더라고. 그래도···”
카앙!
김솔이 놈의 날카로운 공격을 튕겨냈다.
그러곤 답했다.
“···진 적은 없어.”
공격이 여러 차례 막혔음에도, 해골 기사는 꿋꿋이 공격을 이어 나갔다.
김솔을 향해 쇄도하는 공격.
가뿐하게 자세를 굽힌 김솔이 놈의 배에 로우 어퍼를 꽂아 넣었지만···
터엉!
놈에게는 별다른 타격이 없어 보였다.
김솔이 나를 보며 외쳤다.
“계속 주고받으라면 할 수는 있는데···, 어떡할까? 네 아공간인지 뭔지에라도 들어갈까?”
예상했던 대로 또 다른 해골기사, 그웨인처럼 가공할 만한 맷집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작은 누나를 데리고 아공간으로 피신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그 사이 새로운 무기를 얻은 참이었다.
“일단 그놈 발 좀 묶어줄 수 있어?”
“왜?”
“잘하면 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아.”
타앙! 탕!
김솔이 주먹을 연달아 내질렀고, 그때마다 쫄깃한 파공음이 공기를 가르며 퍼져나갔다.
애당초 별 타격이 없는 공격.
놈은 아예 방어를 포기한 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자신의 손끝을 찔러 넣을 타이밍을.
하지만, 다른 타이밍도 있었다.
내가 신호를 주자, 김솔이 훌쩍 놈으로부터 비켜섰고···
쐐애애액!
불 붙은 볼링공 네 개가 놈을 향해 쇄도했다.
반면, 놈은 놀란 눈치였다.
날아드는 불길을 바라보며, 놈이 망연히 읊조렸다.
“파이어 볼···?”
콰과광!
이어지는 폭음.
“아니야, 이건······”
놈의 허망한 목소리가 먼지 섞인 연기와 함께 천천히 흩어졌을 땐···
놈이 박살 난 갑옷과 함께 쓰러져 있었다.
나 또한 망연히 읊조렸다.
“···이렇게 바로 죽는다고?”
놈의 갑옷 사이, 푸른빛으로 빛나는 강화석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