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02)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02화(202/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202화
물보다 진한 (1)
휘이이······.
오직 적막만이 남아 있었다.
마침내 베레슈티를 점령한 연합군.
하지만 실상은 상처뿐인 영광에 지나지 않았으니.
-뭐? 중앙본부가? 그게 무슨 개 같은 소리야?
-상공에서 그대로 자취를 감췄습니다······! 통신도 닿지 않고······.
완성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이곳 베레슈티의 자원을 수탈하기 위한 목적의 시설.
하지만 정체 모를 현상으로 인해, 그 시설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타고 있던 병력 상당수가 전사했습니다. 고위계 간부들이나 혈맹의 뱀파이어들이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보통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었다.
비행 능력이 있는 뱀파이어들이나, 고위계 전력 일부가 겨우 목숨을 건졌을 뿐.
몸이 약한 마법사들의 경우 그 피해는 더욱 막심했다.
그리고, 그 결과······.
-세상에, 어마어마한 놈이 숨어 있었군······.
연합군 지휘부가 정겸의 능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틈틈이 사라지던 로돌포의 투석기, 거기에 중앙본부까지.
그 무시무시한 효과를 몰라볼 수 없었으니까.
더욱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고?
-예, 지구에서 차원 본부가 사라진 기록이 있습니다. 본 드래곤도 그랬었죠. 아케인 귀족의 시체라던······.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던 사물들.
연합군 지휘부는 그 행적 하나하나를 열거했고, 결국 한 이름을 떠올렸다.
전설적인 흑마법사, 부엔디아의 이름을.
하지만······.
-부엔디아의 능력이라고 볼 수는 없어. 차원본부가 없어졌을 때 놈은 아직 수용소에 있지 않았나?
-하지만 관련이 있는 건 분명하오. 놈의 행적에 따라 능력이 사용되는 걸 보면······.
-그러면 잠깐······ 설마?
-마르케스! 그거라면 설명이 되지요······!
지휘관들이 술렁였다.
길게 이어진 추론은 차마 정겸에게까지는 닿지 못했다.
그 대신, 한때 상공회의소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어느 혁명 집단의 이름을 떠오르게 했다.
-허어······. 다차원이 어찌 되려고······.
결론은 간단했다.
마르케스가 시설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리는,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
그리고 그런 마르케스와 베로니카 공작가가 손을 잡았다는 것.
비록 베레슈티 성을 함락한 연합군이었지만······.
-문제가 복잡해졌군······.
그 누구도 웃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은 연합군뿐만이 아니었다.
프랑코 백작이 없었더라면, 누구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을 테니.
저벅저벅.
백작은 베레슈티의 공장 지대로 향하고 있었다.
바쁜 걸음 중에도, 그는 성에서의 치열한 싸움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갑자기 강해진 베레슈티의 흡혈귀들을.
“기존의 에센스가 아니었지······. 뭐지? 완성한 건가?”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성혈이 자신의 품에 있는 한, 그건 불가능했으니까.
“운 좋게 배합을 맞췄나 보군. 뭐 개량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니······.”
연합군 지휘부는 마르케스의 재림이니 하며 한창 호들갑을 떠는 모양이었지만, 프랑코 백작의 관심사는 따로 있었다.
애당초 그의 목적은 베레슈티의 에센스 공장을 확보하는 것이었으니까.
“예상외로 희생이 크긴 했지만······. 상관할 바 아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어.”
혈맹의 관심을 얻고, 결과적으로는 드라칸의 성혈을 확보하기 위해.
백작은 최대한 빨리 에센스 생산에 돌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역시 쉽게는 안 되는가.”
그가 마주한 것은 공장을 둘러싼 혈맹의 흡혈귀들이었다.
***
“후···”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공간 능력으로 중앙본부를 손에 넣은 직후.
베로니카 공녀와 다시 성내로 돌아왔고, 곧장 아군의 후퇴를 도왔다.
베레슈티의 흡혈귀들은 물론 영지민들까지 모조리 엘븐하임으로 보내둔 참이었다.
‘놈들이 우왕좌왕했으니 다행이었지.’
중앙본부가 사라지자, 연합군은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공세를 이어가야 할지, 사라진 중앙본부를 찾기 위해 후퇴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서 할 만큼.
덕분에 곳곳에 화력을 쏟아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은밀하게 포탈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드디어 얻었구나.’
아공간 섹터 한편에, 거대한 비행접시가 담겨 있었다.
탑승해 있던 불순물들을 깨끗하게 걷어낸 채, 시설만 그대로.
더 높은 위계 신청서를 출력할 수도 있을 테고, 어쩌면 그 잘난 선제타격 시스템을 활용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건 천천히 확인해 보기로 하고.”
우선 베로니카 공녀와 먼저 만나보기로 했다.
완성품 에센스를 얻었지만, 아직 베로니카의 성혈이 남아 있었으니까.
그렇게 다시 아공간 밖으로 나섰고······.
“왔는가? 고생 많았네.”
“이제 시작인데요, 뭘.”
엘븐하임에 도착했다.
적당히 쉬고 있으라 소파 몇 개를 출하해 놓은 터다.
내게 인사를 건네는 부엔디아를 따라, 공녀와 베레슈티 백작 또한 몸을 일으켰다.
“······.”
무언의 묵례를 주고받았다.
지치긴 했지만, 한결 후련한 표정.
완성품 에센스를 확보한 덕분이었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지만.
“정말 성혈을 되찾을 수 있다구요?”
“예, 안 되도 되게 해야죠.”
공녀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혈이 있어야만 공작위에 오를 수 있는 그녀.
상징적인 의미도 크지만, 성혈을 지닌 공작 뱀파이어의 힘은 무시할 만한 게 아니었으니까.
나는 셋을 향해 말을 이었다.
“어디 숨겨져 있는 것도 아니고······ 백작이 갖고 다니는 상황이잖아요? 게다가 때마침 그 성혈로 에센스까지 생산하려는 것 같고.”
“과연······. 놈이 성혈을 꺼내는 순간을 노리자는 건가?”
“그렇죠.”
부엔디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센스를 만들기 위해 프랑코 백작이 성혈을 꺼내는 시점.
그때가 성혈을 탈취할 만한, 가장 절호의 타이밍이 될 테니까.
하지만 베로니카 공녀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렇지만······ 프랑코 백작은 염동 마법의 대가예요. 물건을 빼앗기가 쉽지 않을 텐데······.”
백작이 직접 성혈을 가지고 다니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지간히 숨겨두는 것보다, 제 몸에 지니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는 계산.
거기에는 괴력에 가까운 염동력이 깔려 있을 터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해둔 방법이 있습니다. 그보다 일단 중요한 건······ 백작이 순순히 에센스를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겁니다. 그래야 빼앗을 틈도 생길 테니까요.”
에센스 공장은 일종의 ‘트로이의 목마’였다.
백작에게 건네는 선물인 동시에, 그의 소중한 성혈을 빼앗기 위한 수단.
다행히 백작 또한 서둘러 에센스를 생산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문제는 그게 쉽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었다.
“흠······.”
그 이유는 거울 속에 있었다.
우리는 소파 옆에 비스듬히 세워놓은, 혈겸의 시선이 담긴 <추적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
.
.
저벅저벅.
혈겸이 에센스 공장으로 들어갔다.
복잡하게 굽이진 파이프 아래, 어두운 표정의 프랑코 백작이 혈겸을 맞이했다.
“백작님.”
“아, 자네인가. 몸은 괜찮고?”
“예, 말씀드렸다시피 멀쩡합니다.”
“허허······. 그랬지. 자네가 흡혈귀라서 참 다행일세.”
백작의 명에 따라 중앙본부에 있었던 혈겸이었다.
중간에 <상품회수>로 합류해 우리에게 에센스를 넘겨주기는 했지만······.
정작 백작에게는 중앙본부에 있다가, 날개로 대피해 돌아왔다 둘러댄 참이었다.
“백작님, 한데 바깥에 저 흡혈귀들은······?”
혈겸이 물었다.
에센스 공장을 둘러싸고, 마법사들과 흡혈귀들이 살벌하게 대치하고 있었으니까.
백작이 마른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혈맹일세. 여기 생산 공장을 파괴하겠다며 벼르고 있지.”
“공장을 말입니까? 혈맹이 왜 공장을······?”
바로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프랑코 백작이 말하기를, 에센스는 혈맹을 위한 ‘선물’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는 백작의 입장이었을 뿐, 혈맹의 흡혈귀들은 베레슈티의 산물인 에센스 공장을 마냥 파괴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혈맹 지도부가 공장을 파괴하라 지시한 건 사실이야. 혈맹은 베로니카의 에센스를 소름 끼치도록 혐오해 왔으니······. 하지만 에센스가 피의 대체물이 아닌, 그 이상의 물질이라는 걸 알게 된다면 지도부도 생각을 달리할 걸세. 지금은 저 멍청한 아랫것들이 그 사실을 윗선에 보고할 생각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자네야말로 몸소 느끼고 있지 않은가? 에센스가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
확실히 백작의 말대로였다.
진혈과 뒤섞인 에센스는 혈겸의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려 주었으니까.
혈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제가 직접 설득해보면 어떻겠습니까? 에센스의 효능을 보여준다면······.”
“뭐, 그 효과를 몸소 체험한다면야······ 저 바보들도 느끼는 바가 없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건 안 될 일일세. 흡혈귀들은 자존심은 물론 질투심도 강한 족속들이야. 자네의 정체를 아는 순간 죽이려 들 게 분명해. 자네의 신분은 혈맹에 가서 밝혀도 늦지 않네.”
프랑코 백작은 괜찮다는 듯 혈겸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흡혈귀들의 위협 탓에 백작은 생산 공장을 가동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같은 연합군에 속한 혈맹과 전면전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백작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털었다.
“하는 수 없지, 느리더라도 생산설비를 조금씩 아케인으로 빼돌리는 수밖에. 자네도 준비하게. 내일 중으로는 아케인으로 넘어가자고.”
백작은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혈겸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프랑코 백작은 반드시 이곳 베레슈티에서 에센스를 생산해야만 했으니까.
‘······한번 도와주마, 백작.’
성혈을 빼앗기기 위해서라도.
***
찌르르.
여느 때처럼, 이날도 밤이 찾아왔다.
베레슈티의 방어는 허술했다.
중앙본부와 함께 상당한 병력을 잃은 것은 물론,
그나마 남은 병력마저 에센스 공장을 둘러싸고 대치하고 있었으니.
스슥!
스스슥!
덕분이었다.
야심한 밤을 틈타, 수십 개의 그림자가 베레슈티로 숨어든 것은.
그들은 에센스로 강화된 베레슈티의 흡혈귀들이었고, 혈맹의 진지로 향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웬 놈이냐!
빠르게 반응이 터져 나왔다.
콰아아아앙!
베레슈티의 뱀파이어들이 혈맹의 흡혈귀들과 맞붙었다.
-크윽!
-저, 적습이다!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혈맹이 에센스의 효과를 인정하게 하는 것.
더 나아가, 에센스 생산에 동의하게끔 유도하는 것이었다.
촤아아악!
어둠 속에서 피와 에센스가 흩뿌려졌다.
상대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아채자마자, 혈맹의 흡혈귀들은 사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한밤중의 결투란······, 흡혈귀들에게 있어 서열을 결정하는 신성한 대결이기도 했으니까.
‘밤의 강자’.
그것은 흡혈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수식언이었다.
하지만······.
-뭐지?
-이 새끼들······. 왜 이렇게······!
분명 서로 비슷한 체급이었다.
하지만 부딪힐수록, 혈맹의 흡혈귀들은 자신들이 서서히 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밤의 기운을 담고, 온 힘을 쏟아붓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없었다.
심지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쟤들······ 원래 저렇게 어깨가 넓었나?
-젠장, 허벅지 둘레가 몇이야 저게······!
묘하게 본질을 벗어난 것 같지만, 사실 이게 본질이었다.
이처럼 어두운 환경일수록, 흡혈귀들은 더욱더 상대의 신체를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으니까.
‘밤의 대결’, 그것은 사실 매력과 아름다움, 강함이 뒤죽박죽 혼재된 개념이었다.
-심지어 피부도······!
-말도 안 돼, 저게 160살이라고?
삐잉!
베레슈티 흡혈귀들의 얼굴이 도자기처럼 빛났다.
그들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농염하게 얼굴을 매만지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에센스······.”
-에센스? 아······!
혈맹의 흡혈귀들은 그제야 베레슈티와 자신들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몰아치는 심리적 저항감에, 차마 인정하지는 못했지만.
-웃기지 마라! 그깟 주황물 따위······!
그러는 중에도 시선을 거두지는 못했다.
야릇하게 돋아난 핏줄, 베일 듯 날카로운 콧날, 그리고 한층 더 붉어진 입술까지.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확실히 좀 커졌단 말이지······.”
베레슈티 흡혈귀들의 마지막 멘트였다.
-······뭐?
화들짝!
혈맹의 흡혈귀들이 우뚝 자리에 멈춰 섰다.
남성 뱀파이어든, 여성 뱀파이어든 마찬가지였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들을 뒤로하고, 베레슈티의 흡혈귀들은 안개처럼 흩어졌다.
그저 딱 한 마디만을 남겨놓았을 뿐.
“밤에 진짜 좋은······.”
혈귀들의 눈에 당황이 물들었다.
‘밤의 강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만큼 구미가 당기는 선택지는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