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03)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03화(203/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203화
물보다 진한 (2)
짹짹!
화려한 밤이 지나고, 마침내 해가 밝았다.
치열하다면 치열했던 지난 밤이다.
따가운 새벽볓에 혈맹의 흡혈귀들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곤 느린 발걸음으로 천천히 자신들의 진지로 향했다.
-어? 니들 가냐······?
마주하고 있던 아케인의 마법사들이 물었다.
베레슈티의 에센스 공장을 사이에 두고 한창 대치하고 있던 그들.
하지만 혈맹의 흡혈귀들이 하나둘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뱀파이어라도 해도 낯에 움직일 수 없는 건 아니었기에, 더더욱 이상한 일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피곤하군······.
-베레슈티 놈들한테 본때를 보여주느라 무리를 해서······.
한적한 표정으로 느물거리는 혈맹의 흡혈귀들.
베레슈티에게 된통 당한 기색이 역력함에도, 은근하게 과거를 왜곡하는 그들이었다.
심지어는 공장을 지키는 마법사들에게 지나가는 말로 슬쩍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크흠! 너네 그거 만들려면 얼마나 걸린다고······?
-아니, 쓰겠다는 건 아니고! 그······ 우리는 막는 입장이니까?
에센스 공장의 파괴는 지도부의 명령이었다.
하지만 프랑코 백작이 답답해했던 것처럼, 이곳에 파병된 혈귀들에게도 에센스의 가치를 상부에 건의할 만큼의 자율성 정도는 주어져 있었다.
지금처럼 전쟁이 승리로 마무리되어, 급한 것이 없는 상황에는 더더욱 그랬다.
물론······.
-아니 이상한 말씀을 하시네? 우리는 그깟 주황물 없이도 아쉬울 게 없어······? 그냥 전리품에 대한 확인 절차를······.
알량한 자존심은 남아 있었지만.
***
당초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에센스 공장을 파괴하려던, 혈맹의 방해를 제거했으니.
하지만 그 효과가 지나치게 컸던 탓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혈맹의 맹주가······ 직접 말입니까?”
혈겸이 놀란 표정으로 프랑코 백작에게 대답했다.
에센스 생산을 시작할 것이라는 이야기와 더불어, 혈명의 맹주 크라고가 직접 베레슈티에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이었으니까.
크라고는 동시에 성혈을 지닌 공작 뱀파이어이기도 했다.
‘뭐지? 걔도 밤일이 잘 안되나······?’
어젯밤의 약팔이는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그 약이 혈맹의 수뇌부까지 팔려나갈 줄은 몰랐다.
그것도 보수적이고 폐쇄적이기 짝이 없다던 그 혈맹이 아니던가?
백작이 곧 의문을 해소해 주었다.
“자네 때문일세, 혈겸.”
“저 말씀이십니까? 제가 어쨌기에······.”
“베레슈티의 야습이 있었던 직후, 혈맹의 간부가 상부에 에센스 효과를 보고했다더군. 뭐, 전투가 있었으니 보고를 빠뜨릴 수는 없었겠지만, 겸사겸사 그 쓸모를 건의했던 거겠지. 그 소식을 듣고 혈맹 지도부가 뭐라고 반응했을 것 같나?”
혈겸을 모르겠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피식 웃음을 뱉은 프랑코 백작이 마저 말을 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 라고 했지. 그깟 주황물이 피보다 우수할 리가 없다며 말이야.”
확실히 앞뒤가 꽉 막힌 놈들이었다.
눈 앞의 현실을 부정할 정도로.
하지만······.
“그래서 혈맹 귀족들에게 비밀리에 소식을 넣었네. 이곳에 에센스를 마신······ 드라칸의 진혈이 있다고 귀띔해 주었지.”
프랑코 백작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혈맹과 접촉하기 위해 아껴두었던 카드, 혈겸을 아낌없이 내밀었던 것.
동족······ 아니, 혈계 가족이 에센스를 마셨다는 소식만큼은 좌시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더욱이, 혈겸은 훌륭한 비교 수단이기도 했다.
“크라고 공작이 직접 자네를 확인하겠다고 하더군. 자네가 다른 진혈귀들보다 뛰어나다는 사실만 확인한다면, 에센스 생산도 용인하겠다고 했네. 혈맹이 직접 에센스를 발주하겠다는 건 물론이고.”
에센스와 혈겸을 빌미로 혈맹에 다리를 놓겠다는 목적.
백작은 그 목적을 빠짐없이 이행하고 있었다.
***
그로부터 나흘 뒤.
쿵쿵 소리와 함께, 집채만 한 거구가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
짧고 뾰족한 털이 날처럼 선 새카만 날개, 거기에 기둥처럼 두꺼운 팔뚝.
흡혈귀보다는 오우거에 가까운 크라고 공작의 모습이었다.
“흠!”
그는 마땅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에센스 공장을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아래에 서 있는 그의 배다른 혈족, 혈겸을 발견했다.
“너냐? 드라칸의 피에 먹칠을 하고 다닌다는 놈이.”
“······혈맹의 맹주를 뵙습니다.”
“네가 타고난 피는 네가 감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한 것이다. 감히 거기다 주황물을 갖다 섞을 생각을 해? 네가 제정신이냐?”
크라고는 다짜고짜 혈겸을 힐난했다.
그러곤 참을 수 없다는 듯, 그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타아앙!
쿠구구구구구!
태산처럼 밀려드는 주먹.
주먹에는 크고 작은 핏줄들이 나무줄기처럼 엉켜 있었고, 세찬 박동과 함께 꿀렁이며 낮은 진동을 울리고 있었다.
“크흡!”
타아앙!
혈겸이 날개를 들어 그의 주먹을 막아냈다.
하지만 즉시 크라고가 일으킨 진동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쿵. 쿵.
혈겸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실핏줄을 따라 전해져 오는 크라고의 진동.
그것이 향하는 곳은 에센스가 담긴, 혈겸의 심장이라는 걸.
쿠구구구구구!
크라고는 재차 주먹을 내질렀다.
권풍이 쏘아졌고, 바닥의 집기들이 낙엽처럼 휘몰아쳤다.
다행히 공장의 설비는 안전했다.
백작과 한 약속이 있는 만큼, 공작 또한 힘 조절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더욱이, 그의 목적은 혈겸의 힘을 테스트하는 데 있었으니까.
두둥! 두둥!
“꺼흐윽!”
혈겸이 자리에 쓰러졌다.
더 이상의 전해지는 진동을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
혈겸은 그것이 단순한 공격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파악하는 건가.’
그것은 일종의 검사였다.
혈겸이 정말로 드라칸의 진혈을 지녔는지,
또, 그가 마신 에센스가 얼마만큼의 효력을 지녔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생각보다 나쁘진 않군. 음료수 정도로는 괜찮겠어. 생산하시오, 백작.”
프랑코 백작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크라고.
합격이었다.
숨을 헐떡거리는 혈겸을 뒤로 하고, 그들은 마저 대화를 주고받았다.
“얼마나 걸리지?”
“시제품을 먼저 만들어 드리죠. 시설 정리는 이미 끝내둔 참이니······ 바로 될 겁니다. 잠시 앉아서 기다리시지요.”
백작이 설비 쪽으로 다가섰고, 혈겸은 다시 이를 악물었다.
에센스 생산이 시작되는 지금이 진짜 본론이었으니까.
.
.
.
“기본 원료는 마력수입니다. 베레슈티에는 수심이 깊은 마력천이 흐르니······. 생산지로서는 이만한 곳이 없지요.”
설비는 온통 마력 회로로 뒤덮여 있었다.
주문을 외워 기계를 가동하는 중에도, 프랑코 백작은 에센스에 대해 이것저것 떠들어댔다.
콸콸콸!
수문을 열자, 원료가 될 마력수가 흘러들어왔다.
펌프를 타고 올라간 마력수는 밥통처럼 생긴 커다란 탱크에 수용됐고, 이내 우렁찬 진동 소리와 함께 여과 작업이 시작됐다.
지이잉!
지이잉······!
에센스 생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정제 과정.
원래라면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었지만, 프랑코 백작은 자신의 능력을 활용해 시간을 단축했다.
트레이에 담겨 부글거리는 마력수를 보며, 멀찍이 앉아 있던 크라고가 흥미를 보였다.
“흠, 염동인가?”
“맞습니다. 불순물을 걷어내려면 반응 횟수를 최대한으로 늘려야 하거든요. 마침 크기도 적당하니 말입니다.”
마력수는 끓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프랑코 백작의 염동력이 물방울 단위로 마력수를 움직이고 있었던 것.
크기가 크거나, 또는 너무 작을수록 통제력이 약해지는 염동력이었지만, 물방울은 가장 큰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크기였다.
백작은 그렇게, 한참이고 마력수를 정제했다.
그렇게 제법 시간이 흘렀을 즈음······.
“······.”
우리는 직감할 수 있었다.
마침내 최종 공정에 다다랐다는걸.
백작은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 같았다.
크라고가 더는 생산 과정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아니나 다를까, 크라고는 지루하다는 듯 연거푸 하품을 내뱉었지만, 공녀로부터 에센스 생산 과정에 대해 전해 들었던 우리는 백작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침내······.
터벅터벅.
프랑코 백작이 커다란, 투명 수조에 다다랐고, 그 옆에 설치된 사다리에 올랐다.
수조에는 지금껏 정제된 마력수가 한가득 차 있었는데, 그것만 해도 어지간한 건물 한 채만한 크기였다.
스윽.
프랑코 백작이 품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물방울만 한 붉은 보석, 베로니카의 성혈이 달린.
지이이이······.
백작은 성혈을 염동력으로 조작했다.
강한 염동력에 붙들린 성혈은 천천히 움직이며, 투명 수조의 한 가운데에 다다랐다.
그러곤 수조의 마력수를 서서히 주황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됐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성혈을 빼앗기 위한 모든 퍼즐이 완성되었으니까.
지난 야습에서 미리 이곳 공장에 포탈을 설치해둔 참이었다.
구석진 자리에 숨겨놓은 자그마한 포탈이지만, 물건을 내보내기엔 충분한 크기였다.
“출하.”
쐐애애애애액!
두 개의 물체가 순식간에 수조를 향해 날아들었다.
전자기포의 탄환이었던 ‘쐐기탄’, 그리고 다른 하나는 투석기에 사용했던 ‘반마력탄’.
나는 지난 베레슈티에서의 전투에서, 에센스의 독특한 현상을 발견했던 참이었으니까.
‘서로 그렇게 반응할 줄은 몰랐었지.’
나는 베레슈티에서의 싸움을 떠올렸다.
반마력탄에 맞아 고체 덩어리로 변한 에센스.
그리고 다시 쐐기탄에 맞아, 원래의 액체 상태로 되돌아간 에센스를.
반마력탄이 입자들을 경직시켰다면, 반대로 쐐기탄은 활발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 원리를 이용해 백작으로부터 성혈을 탈취할 생각이었다.
쐐애애애액!
쨍그랑! 파지지직!
먼저 도착한 것은 쐐기탄이었다.
깨진 수조 안으로, 뻗어 나온 전격이 안에 담긴 마력수를 휘감았다.
그러자 느림보처럼 서서히 배어 나오던 주황빛이 강하게 진동하며, 순식간에 수조 전체를 주황빛으로 물들였다.
콰아아아아앙!
그다음으로 반마력탄이 충격을 가했다.
수조가 깨졌음에도 아무것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안에 담긴 것은 그저 주황빛의 두꺼운 고체 물질일 뿐.
주변을 감싸고 있던 깨진 유리만 후두두둑 자리에 떨어졌다.
그리고······.
“상품회수.”
슈화아아아악!
나는 고체가 된 에센스를 끌어당겼다.
이 거대한 덩어리는 그 속에 베로니카의 성혈을 품고 있었다.
“이, 무슨······!”
탓!
당황한 프랑코 백작이 서둘러 염동력을 발동했다.
하지만 성혈은 이미 두꺼운 에센스 덩어리와 하나가 된 지 오래.
작은 크기의 물질에는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염동력이었을 테지만, 이처럼 거대한 크기에서는 내 <상품 회수>를 이길 수 없었다.
쿠구구구구!
덩어리는 속절없이 포탈을 향해 끌려들어 왔다.
마침내 거대한 에센스 덩어리가 포탈 표면에 다다랐을 즈음······.
까아아아아앙!
“······!”
덩어리가 무참히 깨져나갔다.
붉은 보석이 하늘로 솟구쳤고, 사방으로 주황빛 에센스 조각이 비산했다.
세 번째로 도착한 것은······.
“베로니카의 성혈이라······ 재밌는 걸 가지고 있었군, 백작?”
다름 아닌 크라고 공작의 주먹이었다.
‘······젠장.’
이제는 <상품회수>를 사용해도 끌어당길 수가 없었다.
에센스와는 달리, 성혈은 내 아공간에 등록된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
프랑코 백작은 당황한 듯했지만, 곧 다시 손을 뻗었다.
그러곤 침착하게, 성혈에 염동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슈우우욱!
빠른 속도로 백작에게 되돌아가는 붉은빛의 성혈.
하지만······.
텁!
“······!”
포탈에서 발사된 베로니카 공녀가 성혈을 집어삼켰다.
아버지로부터 마땅히 물려받았어야 할 유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