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04)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04화(204/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204화
물보다 진한 (3)
쿠당탕!
공녀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염동력에 싸여 있던 성혈이지만, 그녀의 입에 들어온 순간 빠른 속도로 몸에 녹아들었다.
투두두···
흰 피부 위로 오소소 실핏줄이 돋아올랐다.
긴장과 안도가 뒤섞인 채, 공녀는 서서히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한편,
“쯧!”
백작의 표정이 금세 어두웠다.
공녀가 성혈을 집어삼킨 탓에, 더 이상 그의 통제력이 닿지 않았으니까.
백작은 당장 대응에 나서기보단, 주변을 살피며 다음 전략을 구상하려는 듯했다.
마침내 베로니카의 성혈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직 안심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
슈화아아아악!
세찬 바람과 함께, 크라고 공작의 거대한 주먹이 날아들었다.
베로니카는 혈맹의 오래된 주적이었으며, 그녀는 그런 베로니카의 수장이었으니.
쉬리리릭!
타아아앙!
공녀가 재빨리 등허리의 날개를 펼쳤다.
‘Z’자로 겹친 날개가 가까스로 공격을 받아냈고, 충격을 추스르자마자 뾰족한 날개가 역으로 공작을 노렸다.
쉬익!
티이잉!
그녀의 날개가 뾰족한 창처럼, 때로는 넓은 검처럼 날아들었다.
힘으로나 기술적으로나 한층 더 발전된 형태.
성혈의 효과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콰득! 까드드득!
공작의 두꺼운 손이 그녀의 날개를 잡아챘다.
그러곤 특유의 괴력을 발휘하며, 되레 그녀를 자신에게 끌어당겼다.
휘이익!
공작이 공녀의 목을 잡아챘다.
그러곤 하늘로 높게 매달며 물었다.
“베로니카의 겁쟁이께서 여긴 어쩐 일이신가?”
“···끄흑!”
“그랬군, 그래서 공작위에 오르지 않은 거였어.”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공작.
그의 새빨간 두 팔이 공녀의 목을 졸라맸다.
두껍게 확장된 혈관이 진득한 피를 실어 날랐고, 쉼 없이 펄떡거리며 공녀의 의식을 어지럽혔다.
‘안 되겠구나. 일단은···’
한순간 희망을 가졌었다.
성혈을 되찾은 만큼, 공작과 대등한 힘을 지니게 될 테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성혈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상품회수.”
곧장 그녀를 아공간으로 끌어당겼다.
하지만 공작의 손에 붙들린 탓에, 공녀는 옴짝달싹 빠져나오지 못했다.
나로서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그녀의 흑색 날개가 기회를 만들길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
“음···?”
슈우우우우욱!
공장 한쪽에서 푸른 빛의 고리들이 날아들었다.
여러 개의 반원 고리들이 겹친, 독특한 손 모양.
수갑처럼 펼쳐진 손이 크라고 공작의 팔, 다리, 목을 각각 붙들었다.
콰아앙!
갑작스러운 공격에, 공작의 손이 풀렸다.
마침내 자유를 얻은 공녀가 순식간에 아공간으로 빨려 들어왔다.
자신의 몸에 부착된 정체불명의 사물을 바라보며, 크라고 백작이 눈을 이글거렸다.
“이게 무슨 짓이지, 백작?”
프랑코 백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몸에 걸린 고리가 찰칵 잠기며, 그 대답을 대신할 뿐.
크라고 공작은 그제야 얼굴을 흉악하게 일그러뜨린 채, 사라진 공녀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곤 알겠다는 듯, 백작을 향해 뿌득 이를 갈았다.
“처음부터 성혈이 목적이었나? 작정을 했구나, 프랑코. ‘마녀의 손’까지 챙겨왔을 줄이야.”
“혈맹의 맹주를 뵙는데 준비를 소홀히 할 수야 없지요. 대신 선물도 준비하지 않았습니까?”
사방에 널브러진 에센스 덩어리를 보며, 공작이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피 대신 에센스를 마시며 살아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성혈이 뜯겨나가는 이상 생명을 부지하기는 어려웠다.
공작은 문득, 또 다른 성혈을 품고 있을 베로니카 공녀를 떠올렸다.
“괜한 욕심은 접어두고, 가지고 있던 물건이나 잘 챙기지 그러나? 지금 어디에도 안 보이는 것 같은데.”
“베로니카의 성혈이라면 괜찮습니다. 베로니카의 여식이 채간 건 의외였지만··· 이미 필요한 만큼 충분히 사용했거든요. 제가 필요한 건 당신이 품고 있는 드라칸의 성혈뿐입니다.”
공작이 뿌득 이를 갈았다.
그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조차 분간이 안 가는 상황.
하지만 백작은 담담한 어투로, 공작의 성혈을 취하겠노라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왜지? 흡혈귀도 아닌 네가 성혈로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공작은 몸에 결속된 수갑을 풀어내려 애썼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마녀의 손’은 공작의 몸을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온몸의 혈관이 가로막힌 탓에, 공작의 혈색은 점차 파리해져만 갔다.
그리고···
“설마, 네놈···? 아니, 네놈들은···!”
프랑코 백작의 목적을 알아차린 것일까?
두 눈을 휘둥그레 뜬 크라고 공작이 발작하며 나섰다.
마녀의 손에 짓눌린 혈관이 터지며, 붉은 물줄기가 푸쉬이 새어나갔다.
“이제 그만 하시지요.”
더이상은 들어줄 말이 없다는 듯, 백작이 손짓했다.
팔, 다리, 그리고 목까지, 크라고 공작을 붙잡은 다섯 개의 손이 사방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마지막 손 하나가 공장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쐐애애애액!
푹!
날카로운 손은 그대로 공작의 심장을 관통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공작은 남은 피를 모조리 가슴팍에 몰아넣고는, 사력을 다해 마녀의 손을 막아 세웠다.
마지막까지 쿵쿵 피를 실어 나르는 심장.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 아닌, 마지막 전언을 남기기 위함이었다.
그 상대는···
“···후손이여.”
“······”
멀찍이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혈겸이었다.
그는 공작의 시험을 견뎌낸 이후부터 줄곧, 이곳 공장 안에 있었으니까.
“네가 가진 드라코의 진혈이 공명한다면··· 반드시 이 사실을 혈맹에 알려라. 지금 불완전한 완성을···”
“말씀이 너무 많으십니다, 공작.”
꽈득!
촤아아아악!
공작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마녀의 손이 기어코 그의 심장을 뚫고 지나갔으니까.
주르륵 흘러내리는 붉은 폭포를 뒤로하고, 마녀의 푸른 손에는 새빨간 드라칸의 성혈이 쥐어져 있었다.
둥··· 둥···
혈겸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크라고가 남긴 박동이 사념처럼 그의 심장을 쥐어짜고 있었으니.
그 힘을 견딜 수 없어, 혈겸을 털썩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휘리리리릭!
백작은 무심히 마녀의 손을 거둬들였다.
마침내 자유를 얻은 공작의 시체가 쿵 하며 떨어졌다.
진득한 피와 녹은 에센스가 뒤섞인 흥건한 바닥이 철썩이며 물소리를 냈다.
백작이 혈겸을 향해 걸어왔다.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심장을 옥죄었다.
그러고는···
“곧 마법사들이 뒷정리를 하러 들어올 거다. 알아서 몸을 피하는 게 좋을 거야.”
그대로 혈겸을 지나쳤다.
크라고의 죽음을 목격한 만큼, 후환이 될 수도 있을 터.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어쩌면 백작의 마지막 호의일지도 몰랐다.
쿠구구구구구···
마녀의 손을 거둬들인 백작은 또 다른 물건을 불러냈다.
그의 손짓에 따라, 드드륵 진동이 일었고, 공장 벽면에 붙어 있던 검은 덩어리가 서서히 밀려 내려왔다.
쿵!
바닥에 깔린 것은 검은 비석이었다.
백작은 곧장 비석에 올라탔고, 염동력을 발휘해 비석과 함께 공중에 떠올랐다.
그러곤 공장의 천장을 부수며, 그대로 비석을 탄 채 하늘 멀리 사라져버렸다.
***
상황은 그렇게 종료됐다.
백작이 떠나자마자, 나는 혈겸을 <상품회수>로 빨아들였다.
위성 능력을 이용해 공장의 모습을 마저 관찰했지만, 별다른 것은 없었다.
곧 도착한 아케인의 마법사들이 죽은 크라고 공작의 흔적을 말끔하게 지워버렸을 뿐.
“···버려진 건 아쉽지만.”
혈겸을 현장에 두었던 건, 혹시나 백작이 그를 데려가지 않을까 해서였다.
어쩌면 백작의 목적이 무엇인지, 왜 성혈을 필요로 했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섣불리 혈겸을 아공간에 빨아들인다면, 백작에게 혈겸의 배신을 실토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통합물류실에서 빠져나온 나는 곧장 물류센터로 돌아왔다.
그러자 간이침대에 누워있던 베로니카 공녀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공작과의 전투로 상처를 입은 그녀는 큰누나의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잠시 숨이 졸렸을 뿐, 다행히 큰 부상은 없는 듯했다.
“괜찮아요?”
“네,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군요.”
공녀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었다.
크라고 공작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이 못내 부끄럽게 여겨지는 모양.
하지만 그건 성혈을 아직 충분히 흡수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었을 뿐, 시간이 주어진다면 점차 공작에 맞먹는 힘을 되찾게 될 그녀였다.
‘뭐 어쨌든···’
가장 중요한 건 계획했던 목표를 이뤘다는 것이다.
완성품 에센스, 그리고 베로니카의 성혈을 모두 되찾은 참이었으니.
베레슈티 백작 또한 감격에 찬 표정이었다.
“당분간 꽤 바쁘겠습니다. 흩어져 있던 공작가 세력을 쭉 만나보고 와야 할 테니까요.”
비록 베레슈티를 잃기는 했지만, 공작가의 전력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곧 완성된 에센스로 무장한 흡혈귀들이 베로니카의 전력으로 들어오게 될 터.
공녀가 지원을 약속한 만큼, 우리에게도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나는 일행들을 불러세웠다.
프랑코 백작이 타고 나갔던, 검은 비석.
마침 그 정체가 떠올랐으니까.
.
.
.
우리는 아공간의 또 다른 섹터로 이동했다.
이곳엔 내가 아공간에 넣어두었던, 검은 비석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프랑코 백작이 가지고 있던 것과 정확히 똑같은 물건이었다.
“이게 뭐죠···?”
“그라디바에 있던 비석입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일종의 ‘불순물’이었죠.”
검은 비석의 정체.
그것은 차원 폭풍을 야기했던, 그라디바의 불순물이었다.
그걸 왜 프랑코 백작이 가지고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추론해볼 수 있었다.
‘그라디바에 불순물을 집어넣은 게··· 프랑코 백작이었던 건가?’
단순한 불순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비석을 수용하는 데 든 비용은 자그마치 마석 120만 개.
단순한 우주 쓰레기라면 이만한 가격이 책정될 리 없었으니까.
“흠···”
비석을 천천히 내려다보던 중, 나는 공녀에게 물었다.
프랑코 백작이 원하던 것은 흡혈귀들의 성혈.
어쩌면 그녀가 품은 성혈이 단서가 되어 줄지도 몰랐다.
공녀가 대답했다.
“성혈에는 막강한 생명력이 응축돼 있어요. 어찌나 강한지 노화나 죽음 같은, 시간의 힘을 거스를 정도로요. 무한히 늘어나거나 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고갈되거나 하지는 않죠.”
문득 에센스를 만들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제된 마력수에 퐁당 성혈을 담그는 것이 고작.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평범한 마력수를 강력한 에너지원인 에센스로 탈바꿈했더랬다.
“어쩌면 여기에도···”
그녀가 천천히 비석을 향해 다가섰다.
성혈을 흡수한 그녀는 어쩌면 성혈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녀가 실핏줄이 돋은, 하얀 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그 결과···
슈우우우우우욱!
기다렸다는 듯, 비석은 세차게 진동했다.
그러곤 공녀가 뿜어낸 붉은색 기운을 그대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휘리리릭!
붉은 기운은 핏방울처럼 응어리졌고, 작은 물줄기가 되어 비석을 맴돌았다.
그렇게 한참 뒤, 우리가 발견한 것은···
‘이건···’
비석 위에 아로새겨진, 붉은 문양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온전해 보이지는 않았다.
원은 텅 비어 있었고, 선은 뚝뚝 잘려 있었으며, 그림의 대칭 또한 어긋나 있었으니까.
문양을 가만히 살펴보던 부엔디아가 턱수염을 만지며 말했다.
“반쪽짜리 그림이군··· 어떻게든 나머지를 채워야 해석이 되겠어.”
나머지 반쪽이 무엇일지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드라칸의 성혈.
프랑코 백작이 그 반쪽을 얻어간 참이었으니.
그는 두 개의 성혈을 모아, 이 검은 비석을 완성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비석을 완성해서 대체 뭘 하려고 했던 거지?’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그 의문을 풀 방법 또한 주어져 있었다.
나는 부엔디아를 비롯한 일행들에게 말했다.
“혈맹에 접촉해보기로 하죠. 혈겸을 보내서.”
죽은 크라고 공작.
분명 그는 프랑코 백작의 의도를 간파했었으니까.
그의 유언대로라면··· 백작의 속셈을 확인할 수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