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08)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08화(208/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208화
그라디바 (2)
콰아앙!
그라디바의 표면에 운반선이 운석처럼 떨어졌다.
난파선을 중심으로 파르르 끓어오르는 마력 플라스마.
솟아오른 불길이 촉수처럼 선체를 칭칭 휘감았다.
그라디바는 곧,
꽈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운반선을 먹어 치웠다.
엔진룸에서 폭발이 일었지만 그라디바 앞에선 폭죽 한 발에 지나지 않았다.
선체 하부, 무쇠 적재실, 갑판이 차례로 녹아들었다.
그 사이로 드러난 것은······.
툭.
‘역시······.’
새카만 불순물, 즉 ‘흑색법률’이었다.
곳곳에서 경악성과 함께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안돼!
-이런 제기랄!
온건파 세력들이 혼비백산했다.
다가올 결과를 차마 예상하지도 못한 채, 제자리 굳어버린 놈들도 있었다.
내게서 비석을 빼앗긴 프랑코 백작은 궤도를 표류하며, 멍한 표정으로 그라디바를 바라보았다.
“······.”
기분 탓일까?
백작의 표정이 유난히 어두웠다.
그라디바를 깨우겠다는 목적을 달성한 참일 테도.
하지만 의문을 오래 품을 수는 없었다.
두웅-
무거운 북소리가 울렸다.
베로니카와 드라칸의 성혈이 담긴 흑색 법률.
개화파의 행동 명령이 고스란히 그라디바에 전달됐다.
싸르르.
적막이 있었다.
기묘한 쾌감이 정수리를 쓸었다.
모든 것이 폭삭 내려앉았을 때 찾아오는 아찔한 배덕감.
그리고······.
콰화아아아아아악!
“크윽!”
쿵!
드드드드득!
차원 폭풍이 사방에서 몰아쳤다.
이전과는 비교조차 수 없는, 살갗을 찢을 만큼의 맹렬한 바람.
그 기세를 마주하고 있자니, 영혼이 안쪽까지 저려 오는 기분이었다.
드드드드······.
투둑!
“꽉 잡아요!”
즉시 <상품 회수>를 발동했다.
망원경째로 뽑혀 날아가는 제르를 붙잡아, 가까스로 아공간으로 들어왔다.
쿠당탕 바닥을 나뒹굴며, 포탈을 창문 삼아 폭풍이 휘몰아치는 바깥을 관찰했다.
-피해!
-아아아아악!
폭풍에 휘말린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그라디바를 중심으로 한 고리가 줄넘기하듯 요동쳤고, 궤도를 맴돌던 마석운반선이 거대한 마력 파장에 난파되었으며, 온건파 세력은 물론 개화파의 병력 또한 바람에 휩쓸렸다.
작렬하는 태양처럼, 바다를 뒤섞는 태풍처럼, 사막을 휩쓰는 모래바람처럼.
‘불순물’을 받아든 그라디바는 마침내 알에서 깨어났다.
‘······뭐지 저게?’
바닥에 쓰러진 제르가 눈을 빛냈다.
부엔디아와 아우렐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아공간에 있던 식구들이 우르르 몰려와 반듯한 포탈의 표면을 응시했다.
.
.
.
둥그스름한 파장에 휩싸인 채, 그라디바가 거칠게 요동쳤다.
껍질에 묶인 듯 버둥거리는 움직임.
때마침 녀석이 먹잇감을 발견한 것 같았다.
쉬리리릭!
그라디바에서 거대한 촉수가 꺾이듯 튀어 나갔다.
그렇게 자신의 중력에 붙들린 십자선을 낚아채고는, 유유히 촉수는 제 몸뚱이로 되돌아갔다.
그러곤,
우드득!
우드드득!
혈맹이 동원한 십자선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저걸 저렇게 먹어버린다고?’
안에는 못해도 수십 마리의 흡혈귀들이 타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온건파가 회수한 검은 비석이 십수 개나 실려 있다는 점이었다.
물결처럼 용솟음치며 혈맹의 십자선을 오물오물 씹어 삼킨 녀석은······.
쿠드드드드!
꾸드드드득!
마침내 힘을 얻었는지, 제대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둥근 몸통으로부터 줄줄이 튀어나오는 마력 줄기들, 그 줄기가 촘촘이 엮이며 하나의 형상이 되어갔다.
“사람······?”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팔다리를 뻗은 놈이 번뜩 두 눈을 빛냈으니.
하지만 아직 다리 쪽은 발달이 더딘 상태였다.
놈도 그걸 모르진 않는 눈치였다.
망설임 없이, 재차 팔을 휘둘렀다.
용케 살아남은 또 다른 십자선 한 척을 향해.
후우웅!
파가가가가각!
육중한 팔이 공간을 갈랐다.
바람이 파도처럼 나부꼈고, 덩달아 모래 먼지를 실었다.
팅! 팅팅!
따다다닥!
휩쓸린 암석 덩어리들이 총알처럼 포탈을 때렸다.
하지만 정작 십자선은 그라디바의 손길을 벗어났다.
물속에 잠긴 먼지 알갱이를 잡기 어려운 것처럼, 그라디바가 뿜어내는 거대한 충격파가 되레 십자선을 밀어냈기 때문이었다.
놓칠 수 없다는 듯, 놈이 재차 팔을 뻗었지만······.
“팍스! 구매해!”
띠링!
[알겠습니다.]근처 소행성에 설치된 포탈을 열었다.
그러곤 재빨리 손을 뻗어 그라디바보다 먼저 십자선을 낚아챘다.
이것마저 집어삼킨다면 녀석은 단숨에 성장을 거듭할 테니까.
[수용 완료했습니다.]책정된 가격은 마석 110만 개 수준이었다.
십자선 선체와 안에 들어있는 비석의 가치가 합산된 금액.
값을 지불하고 나니, 잔고에는 마석이 30만 개도 채 남지 않았다.
후우우우웅!
그라디바의 거대한 팔이 이번에도 허공을 갈랐다.
또다시 한 바탕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휘이이······.
이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
.
.
그어어어어어!
쿵, 쿵, 북소리와 함께, 그라디바의 쩌렁쩌렁한 울림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아앙!
파지지지-지지지직!
따다당-! 따당!
각양각색의 폭음이 촘촘히, 그리고 풍성히 연주되고 있었다.
소행성에 설치된 것까지 포함해 포탈을 최대치로 전개해 둔 참.
운철구, 쐐기탄, 반마력탄부터 성창과 H빔까지 갖은 무기를 출하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게 벌써 몇 시간째냐.”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라디바의 목적지가 지구라는 것은 앞서 확인했던 사실.
아직 불완전한 몸임에도, 녀석은 꿋꿋이 움직이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느릿느릿해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
콰아아아앙!
파드드득!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최대한 무기를 쏟아붓는 것뿐이었다.
적어도 반마력탄만큼은 효과가 있었으니까.
그래봤자 놈의 움직임을 지연시키는 게 고작이었지만, 이마저도 없었다면 차원을 도약해 진즉 지구에 도달했을 터였다.
‘그래봤자······.’
시간 벌이에 불과했다.
이대로라면 언젠가 지구에 도달하고 말 테니까.
뭐라도 다른 방법은 없을까?
나는 꿋꿋하게 움직이는 그라디바를 공연히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아!’
문득 아공간 섹터에 처박아 두었던 물건 하나가 떠올랐다.
지나치게 위력이 강해 차마 사용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물건을.
나는 서둘러 부엔디아의 소매를 붙잡았다.
“잠깐 괜찮으시죠?”
“왜 그러는가?”
적어도 이 무기에 관해서는, 부엔디아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 테니.
지이잉!
곧장 포탈을 열었다.
이제는 섹터별로 칸칸이 구분되어 있는 아공간 속.
그중에는 위험천만한 물건이 안전하게 보관돼 있는 곳도 있었다.
쿠구구구······.
바깥에서와는 또 다른 감각이었다.
그라디바가 압도적인 위력과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면, 흉흉한 보랏빛으로 빛나는 앰플에서는 쉴 새 없이 불안과 동요 같은 어두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건······.”
섹터에 덩그러니 놓인 앰플을 보며, 부엔디아는 한참이 동안이나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또한 흑마법사이니만큼 몰라볼래야 몰라볼 수 없는 물건일 터.
관찰을 끝낸 부엔디아가 놀랍다는 듯 내게 물었다.
“이게 그 물건인가? 전에 말했던?”
“예, 사념 폭탄입니다.”
한차례 이야기한 적은 있었다.
바르나울이 지구에 최후의 공격을 감행했을 당시,
본 드래곤을 수용하면서 녀석이 쥐고 있던 사념 폭탄까지 함께 수용하게 되었었다고.
그리고 그 안에는 바르나울이 지금껏 축적해 온, 막대한 양의 사념이 응축되어 있노라고.
이렇게 직접 보여주는 건 처음이었다.
자칫 잘못 사용했다간, 대륙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릴 만큼 위험한 물건이었으니까.
내 뜻을 이해한 것인지, 부엔디아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이라면 써도 문제가 없겠어.”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사실상 가장 큰 화력을 지닌 무기다.
하지만 그 화력 탓에 차마 사용할 엄두를 못 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수용소도, 차원재판소도, 베레슈티도 그랬지.’
수용소에 떨어뜨렸다면 부엔디아까지 폭발에 휘말렸을 것이다.
재판소에 떨어뜨렸다면 장서관이 불타 사라졌을 테고, 베레슈티 전쟁에서 썼다면 연합군 진영은 물론 베레슈티 성까지 흔적도 없이 지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라면 괜찮다.
여기는 다차원 우주의 망망대해 한 가운데.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잠에서 깨 날뛰고 있는 저 그라디바밖에 없으니까.
정착촌이 있기는 했지만, 이미 차원 폭풍에 휩쓸려 가루가 된 지 오래였다.
“팍스, 품목 좀 바꾸자.”
띠링!
[알겠습니다.]우뚝.
반마력탄을 쏘아대던 수십 개의 포탈이 일제히 멈추어 섰다.
그라디바가 거대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했지만, 이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속도를 붙여 앞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출렁!
화아아아악!
물살을 가르듯, 공간을 비집고 나아가는 녀석.
나 또한 놈을 위한 새 ‘품목’을 준비해 둔 참이었다.
‘되겠지.’
승산이라면 있었다.
그라디바는 순수한 마력이 응집한 에너지 결정체.
반마력탄이 효과를 보였던 것처럼, 그에 반하는 흑마력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구관이 명관이라고.’
크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바르나울의 사용법을 그대로 차용할 계획.
다만 언제나 그랬듯이, 양을 그득히 불려 되돌려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출하.”
끼에에에에액!
쐐애애액!
그라디바의 주변을 맴돌던 수십 개의 포탈.
각각에서 수십 마리의 본 드래곤이 출하되었다.
사념 폭탄은 실로 불안정한 물건이었다.
운송 중에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취급 주의 상품.
그런 점에서, 안정적인 흑마력을 두른 본 드래곤은 최고의 배달부였다.
그어어어어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일까?
그라디바가 울부짖으며, 커다란 팔을 휘둘렀다.
덕분에 몇 마리의 본드래곤이 그 자리에서 산화했다.
하지만······.
쐐애애액!
그렇다 한들, 전방위에서 달려오는, 수십 마리의 물량 폭격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팟!
본 드래곤들이 빠르게 그라디바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집어삼킨 검은 비석을 가시처럼 세운 채, 마력 플라스마로 몸서리치는 놈에게.
그리고 곧······.
짜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윽!”
단순한 폭발음이 아니었다.
마치 주변을 찢어버리는 듯한 소리.
사념으로 이루어진 잔음이 꺄아악 비명처럼 들려왔다.
한 차례 소리가 물러난 뒤,
깡! 까앙!
따다다닥!
후두두두둑!
뒤늦게 날아온 잔해가 포탈 표면을 때렸다.
“워우······.”
무엇을 상상했든, 그 이상의 폭발력이었다.
새삼 이걸 지구에 쏘려 했던 바르나울이 얼마나 미친놈들인지 여실히 느낄 만큼.
그리고,
그어어어······.
그라디바의 서글픈 울음이 들려왔다.
불길처럼 치솟던 플라스마가 한풀 꺾여 있었고, 운석이라도 맞은 듯 몸 곳곳에 큼지막한 크레이터가 파여 있었다.
주위로는 폭발로 인해 깎여나간 잔해가 푸른 빛 알갱이가 되어 흩어져 있었다.
그어어어어어!
놈이 다시금 발작했다.
그러곤 흩어져 나간 잔해를 다시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빠르게 입은 상처를 회복하려는 심산이었지만······.
“어딜!”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은 없었다.
본 드래곤을 날리고, 또 날려 보냈다.
찢어질 듯한 폭음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짜아아아악!
파스스······.
그라디바가 온통 모래 먼지로 뒤덮였다.
본 드래곤의 잔해와 그라디바의 잔해가 서로 뒤섞이며 시야를 가렸다.
“상품회수.”
잠시 공격을 멈추고 회수 작업에 들어갔다.
부서졌다고는 하나, 본드래곤의 잔해는 도로 빨아들일 수 있을 테니.
시야가 확보되는 대로 다시금 공격을 쏟아부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띠링!
띠링!
띠링!
[남은 마석은 1,272,085 개입니다.] [남은 마석은 2,483,336 개입니다.] [남은 마석은 3,177,604 개입니다.] [남은 마석은······.]차원 계좌의 잔고가 겁도 없이 치솟기 시작했다.
“······뭐야? 왜 이래?”
갑작스러운 기현상에, 나는 서둘러 그라디바를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수십 개의 포탈이 주변 잔해들을 빠른 속도로 빨아들이고 있었다.
본 드래곤의 잔해뿐만이 아닌, 그라디바의 잔해까지 모두.
‘저것까지 전부······?’
그제야 떠올랐다.
그라디바의 몸이 마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