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1)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1화(21/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21편
(어둠 속으로 (1))
산산이 조각난 갑옷 속.
은은히 빛나는 강화석을 집어 들었다.
—-
[강화석(D)]속성 : 전기
옵션 : [관통], [감전]
—-
이번에도 간단하게 짝이 없는 설명.
다만 그 속성이 전기라는 것과 [점화] 대신 [감전]이라는 옵션이 달린 것만 달랐다.
직전에 만났던 해골기사 그웨인과 달리, 놈은 볼링공 몇 발을 맞고 단숨에 죽어버렸다.
똑같은 16파운드짜리 볼링공.
출하 속도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차이라고 한다면···
‘···강화를 한 것밖에 없는데.’
그러고 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옵션이 하나 달려있기는 했다.
[관통]말 그대로 꿰뚫는다는 뜻이다.
어려운 말은 아니지만, [점화]나 [감전]과 달리 정확히 어떤 기능을 하는지 명확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만약···
‘이게 놈들의 방어를 뚫는 수단이라면?’
[관통]이라는 글씨가 그저 장식은 아닐 터였다.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강화석은 현대 화기가 통하지 않는 상위 개체들을 처치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수단이 될 것이 분명했다.
‘한번 두고 보자.’
그 효과에 대해서는 차차 확인해나가면 될 것이었다.
마침 두 번째 강화석이 손에 들어왔으니.
물론 얻은 건 강화석 뿐만이 아니었다.
개당 100개로 환산되는 대형 마나석 두 개.
도합 200개의 마석이 추가로 내 주머니에 들어온 참이었다.
훌훌 먼지를 털어냈다.
“그럼···”
어찌어찌 해골 기사를 해치웠다.
이제 여기를 벗어날 차례였지만··· 그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난 며칠 성벽 안에서 고초를 겪은 김솔이 증언했다.
“나가려고 몇 번이나 해봤지. 근데··· 여기 애초에 나가는 문 같은 게 없어.”
중세 느낌의 고성.
쇠사슬에 매달린 육중한 문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곳은 아무리 봐도 거대한 정문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성벽에 맞붙은 내성(內城)에 작은 출입구가 나 있을 뿐.
그건 출구라기보다는 또 다른 장소로 이어질 입구에 가까웠다.
물론 우리에게는 불필요한 고민이었다.
아공간에 담아 온 헬기가 있었으니.
[UH-60, 블랙호크, 가격이 설정되지 않았습니다.]덜컹!
포탈에서 헬기가 빠져나왔다.
능력을 사용하는 족족, 김솔은 진심으로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젠 하다 하다 헬기를 소환하네···”
탈출하는 건 좋지만, 내심 분한 눈치였다.
김솔은 일평생 게임에서만큼은 내게 밀린 적이 없었으니까.
투두두두-!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헬기는 무심하게 세차게 날개를 회전시킬 뿐이었다.
머리를 쓸어 넘기는 바람을 느끼며, 우선은 작은누나를 포탈에 집어 넣었다.
주먹이 무기인 김솔이 공중에서 활약할 일은 딱히 없을 테니까.
머리 위로 보이는 것은 칙칙한 성벽에 둘러싸인 푸른 하늘.
우리가 뚫고 지나가야 할 길목이었다.
하지만···
투두두두두-!
헬기가 하늘로 떠오른 지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이변이 일어났다.
“······?”
분명 뻥 뚫려 있던 하늘이었다.
쿠구구구구···
그 위로 거대한 솥뚜껑이라도 덮이는 것처럼, 금세 우리를 향해 칠흑 같은 어둠이 들이닥쳤다.
쿠우웅······
그 거대한 문이 닫히는 소리 앞에, 헬기는 독 안에 든 파리처럼 무력해졌다.
그리고···
카가가가각!
성벽을 넘어 들어올 때 만났던 박쥐들이 또 다시 달려들었다.
같은 상황의 반복이었다.
놈들을 떨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나갈 수도 없어.’
놈들이 없다하여, 탈출이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지붕에 의해 위로 뚫려 있던 거대한 하늘이 일순 자취를 감추었으니까.
파다다다닥!
헬기 창문을 새카맣게 채우는 박쥐들.
콰아앙!
콰앙!
강화된 볼링공을 쏘아 천장, 그리고 성벽을 연신 때려보았지만···
거대한 성채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더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이용수와 눈빛을 주고받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즉시 아공간 포탈 속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휘청.
텅 비워진 조종석과 흔들리는 헬기의 풍경.
두 번째 블랙호크 다운이었다.
.
.
.
아공간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그야말로 검은 도화지 그 자체였다.
하늘이 덮이며 외부로부터의 빛이 완전히 차단된 탓이다.
전력마저 완전히 끊긴 도시이니,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외에는 달리 찾을 것이 없었다.
밖의 상황이래봤자 불 보듯 뻔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격추된 블랙호크.
그 근처를 스켈레톤과 좀비 들개들이 서성거리고 있을 터였다.
이제는 우리를 덮친 미친 박쥐 떼까지.
이로써 나는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나는 우리가 이곳에 갇혔다는 자명한 사실.
그리도 두 번째는···
김솔이 탈진 직전이었다는 것.
“······”
마냥 쌩쌩한 줄 알았던 작은 누나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물류센터 한편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던 매트리스.
통신대대장 한경호를 간호하던 곳이다.
아무래도 이곳 아공간이 안전하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그간의 긴장이 풀려 잠에 든 모양이었다.
새삼 낯선 모습이었다.
나는 일평생 김솔의 강인한 모습만 보며 자라왔으니.
아무리 그녀라 한들, 멸망한 세계는 버겁고 무거운 것이었다.
“일단은···”
한숨 돌리기로 했다.
포탈 너머,
때 이른 밤을 맞이한 도시가 물결처럼 아른거렸다.
***
짧은 휴식 시간이 끝나갈 즈음.
-!
두런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휴게실 침대로 옮겨 두었던 김솔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어딜 갔지?”
김솔은 금세 발견되었다.
픽킹 스테이션에 도착하자마자, 눈꼽도 떼지 않은 채 상자 하나를 껴안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품에 가득 안기는 커다란 상자.
팍스가 뒤늦게나마 주문목록을 확인해주었다.
[플레이스테이션5 디스크에디션, CFI-1218A01, 가격은 618,090원입니다.]작은 누나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김정겸, 사랑한다.”
“······”
이 지독한 겜순이께서 이런 아포칼립스 상황에서도 도파민을 추구하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지금 하겠다는 건 아니지···?”
“···그게 내가 우울한 이유란다.”
그녀는 벅벅 손톱을 세우면서도, 정작 박스를 뜯지는 못했다.
그새 언제 친해진 것인지는 몰라도, 이용수의 딸 유정이가 친근하게 김솔의 근처로 다가왔다.
김솔이 유정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유정아, 이 상자 안에는 세계가 담겨 있단다.”
나는 유정이를 떼어내 주변을 서성이던 이용수에게 맡겼다.
초면에 실례도 이런 실례가 없었다.
이런저런 소란으로 잠기운을 몰아낸 참,
“야! 일어났어?”
계단 쪽에서 큰누나가 우리를 불렀다.
그녀를 따라 2층으로 향하자, 아니나 다를까 이용수의 아내 오지수가 직원 식당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큰누나가 일을 거들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와는 별개로, 오지수가 내게 불만 사항을 접수했다.
“···왜들 이리 식사를 안 챙겨요? 기껏 만들었는데 식고, 버리고··· 지금까지 냉동실로 들어간 음식도 수북하다고요.”
“아···”
바깥일에 치중하다 보니, 그간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프레시 센터의 신선한 음식들을 뒤로하고 그때그때 가공식품으로 허기를 채웠던 걸 생각해보면··· 어쩌면 우리는 아포칼립스를 가장하며 지내왔는지도 몰랐다.
내가 말했다.
“···안 상하게 상품으로 등록해드릴까요?”
“정 없게··· 그런 말이 아니라요···”
정 없다는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결국, 그녀의 요지는 간단했다.
“잘 좀 먹고 나가요. 그래야 힘내서 남은 가족들도 찾죠.”
그녀의 뒤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오색찬란한 밥상이 놓여 있었다.
밥심은 강인한 마음의 힘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그 강력한 힘에 굴복하여 전투적으로 수저를 들었다.
그렇게,
젓가락이 전투기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뭐부터 먹어야 하지?’
공습 위치를 도무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달큰한 소스가 뭉근하게 발라져 있는 장어구이.
자작하게 부쳐낸 호박전과 육전.
육질이 촉촉하게 젖은 소갈비찜과 새콤한 고추장 양념 위로 깨가 솔솔 뿌려져 있는 도라지무침까지.
화려한 라인업이었지만···
그럼에도 모두 출발은 동일했다.
구수하게 김을 피워내는 아욱 된장국.
보드라운 아욱이 솜이불처럼 혀를 덮었고, 섬유 사이로 구수한 국물이 흘러나왔다.
에너지 그 자체를 마시는 기분.
피로 그 자체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
그 정겨움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
어둠에 싸인 도시.
유일한 길이었던 하늘이 막혀버렸다.
‘어떻게든 나가야겠는데···’
처음에는 이곳 성 자체를 아공간에 넣어버리는 것도 생각했다.
이미 나는 레벨 3을 달성하고 난 뒤였으니.
이 기묘한 성의 정체가 무엇이었든 간에, 곧장 빠져나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커.’
스스로 자라나는 성.
왜 자라나는지, 갑자기 뚜껑은 왜 덮인 것인지.
나는 이 성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전혀 없었다.
섣불리 넣었다가 물류센터에까지 영향을 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능력이 아깝기도 하고.’
레벨마다 단 한 번만 수용이 가능한 아공간 능력이다.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최대한 도움이 될만한 공간을 넣는 편이 좋았다.
이런 거대한 흉물이 아니라.
그리 생각을 정리하고 아니, 결국 남은 길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김솔이 말했다.
“성으로 들어가야 돼. 뭐가 됐든 성벽과 연결된 곳이니까, 안을 해집다 보면 밖으로 나가는 길도 언젠가 나오겠지.”
하지만 문제는···
이용수가 말했다.
“출입구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요? 박쥐들 탓에···”
헬기가 성벽의 그늘에 다다랐을 때, 그리고 방금처럼 완전히 어둠에 잠겼을 때.
놈들은 여지없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미루어 짐작하기론, 어두운 곳에 머무르는 것이 놈들의 습성일 듯싶었다.
소총을 난사해서 잡아내는 수도 있겠으나···
“크기가 작기도 하고··· 개체 수가 너무 많아요.”
접근해 들어오는 놈들을 빠짐없이 잡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불붙은 볼링공이나, 단검을 이용한 <동시 출하>, 그리고 <추적 배송>도 마찬가지였다.
초당 네 발씩 무기를 뿜어내더라도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을 만큼, 놈들은 많고 또 촘촘했다.
큰누나가 의견을 냈다.
“여기 물류센터에서 파는 조명을 쏴보면 어때? 최대한 강한 걸로.”
빛 속성 힐러다운 좋은 의견이었다.
하지만···
“조명이랑 배터리랑 전부 들고 다녀야 할 텐데···”
어쩐지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장비 탓에 두 손이 묶일뿐더러, 움직일 때마다 사각지대가 생길 수도 있는 노릇이니.
잠시 고민하던 나는 팍스를 불렀다.
한 가지 실험해보고 싶은 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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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250]◈ 아공간 실험실 (New!)
-아공간에 등록된 상품들을 조합하고 분류 및 가감할 수 있는 연구실을 설치합니다.
아공간에 등록된 상품이라면 여러 가지가 있다.
팍스 풀필먼트 센터의 각종 잡화류는 물론, 국통사의 통신장비와 총기, 탄약, 차량까지.
그것들을 조합하고 변형할 수 있다는 것이 정확히 무얼 의미하는지 쉽사리 감이 오질 않았다.
팍스가 간단히 부연해주었다.
[첫째로, 조합을 사용하게 되면 물리적인 조건을 무시하고 두 개 이상의 사물을 서로 덧붙일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일전에 사용하신 볼링공 두 개를 겹쳐 눈사람 모양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합니다.]이전에도 탄창에 총알을 넣어 상품으로 등록한다든지, 안전핀과 클립이 빠진 수류탄을 등록한다든지 하는 꼼수는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간단한 조작을 넘어, 완전히 물건을 원하는 형태로 덧붙여버리는 느낌이었다.
다음으로는 ‘분류 및 가감’이었다.
[분류 및 가감을 사용하면 등록된 사물의 원하는 부분을 따로 떼거나, 그 양을 늘리거나 줄여 출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2L짜리 생수에서 페트 재질을 제거하여 오로지 50L의 물만 출하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설명을 듣고 나니, 얼추 이해가 되었다.
‘조합’을 이용한다면 도끼나 칼을 조합해 기상천외한 무기를 디자인해볼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분류 및 가감’을 이용한다면 한 번에 수십 리터의 기름을 쏟아버릴 수도 있으리라.
확실히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되리라 싶었기에, 냉큼 비용을 지불했다.
[마석 250개 받았습니다.] [남은 마석은 37 개입니다.]팍스가 대답했다.
***
나와 이용수, 그리고 두 누나까지.
총 네 명이 군용 코란도 스포츠에 몸을 실었다.
검게 칠해진 바깥 풍경.
곧 이용수가 액셀을 밟으면 은빛 코란도가 저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갈 터였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차량이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엄청 튼튼하겠는데요.”
이용수가 흥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겉으로만 보면 장갑차를 방불케 했다.
실험실에서 ‘분류 및 가감’을 이용해 프라이팬의 손잡이를 제거했다.
그렇게 철판만 남은 둥근 프라이팬을 유리면을 비롯한 차량의 약한 부분에 덧대 붙였다.
차체가 좀 무거워지기는 했지만, 박쥐들의 자잘한 공격을 막아내기엔 충분할 터.
우우웅.
코란도의 두꺼운 등껍질이 된 수십 개의 프라이팬.
완전히 하나의 사물이 되어서인지, 차량의 떨림에도 그 흔한 달그락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부우웅!
우리는, 그렇게 포탈 밖을 빠져나왔다.
끽!
끼익!
여느 때와 같이, 박쥐들이 날아들었지만···
이제 상황은 여느 때와 같지 않았다.
달칵!
조수석 천장에서 데롱 내려온 스위치를 켜자, 차량의 헤더에서 사방으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차에 융합한 건 비단 프라이팬뿐만이 아니었으니까.
트렁크에 실어 놓은 캠핑용 파워뱅크 배터리가 전원을 공급했다.
차량의 헤더에는 으레 사진관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사각 조명이 360도 사방으로 결속되어 있었다.
구의 형태를 띠게 된 조명은 완연한 하늘의 태양을 모방하듯 티끌만 한 그늘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쏘아진 빛은 비단 박쥐들을 내쫓는 데 그치지 않았다.
“···아예 타 버리는데요?”
가아아아악!
우리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박쥐들이 화마에 삼켜졌다.
그리고···
툭.
투둑.
흔적도 없이 사라진 놈들 아래로, 마석이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투두두둑.
투두두두두!
난데없는 기상변화.
우박처럼 떨어진 마석들이 프라이팬에 팅팅 부딪히며 승전고를 울렸다.
그 축연을 <상품 회수>를 통해 모조리 빨아들였음은 물론이다.
어둠 속에 잠긴 성채.
우리는 천천히 출구를 찾아 나섰다.
단 한 마리의 반딧불이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