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11)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11화(211/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211화
로켓 배송 (1)
콰앙!
“제기랄!”
다차원을 배회하는 피렌의 차원선 한 척.
지휘실에 앉은 하미엘이 거칠게 책상을 내리쳤다.
“어떻게 이런 일이.”
지난 며칠간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씨가 마른 줄 알았던 개화파가 나타나 그라디바를 깨워버린 것은 물론, 그렇게 깨어난 그라디바가 바로 파괴되어버렸으니까.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그라디바는 상공회의소의 존재의 근간이나 다름없었다.
마석을 축적하여 다차원의 가치를 꽃 피우는 것.
그것이 상공회의소가 숭상하는 지상과제였으니.
대체 얼마일까?
수백, 아니 어쩌면 천년의 성과가 한 번에 날아가 버린 셈이다.
상공회의소를 이끄는 지도자 중 한 명으로서, 하미엘은 목이라도 매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끄으······.”
고난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라디바의 폭발을 피해 베레슈티까지 도망쳤던 참.
한데 습격으로 인해, 그 베레슈티마저 빼앗겨버렸다.
그간의 수고를 떠올리자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으득.
하미엘이 입술을 씹으며 비참함을 곱씹고 있을 즈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덜컹!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부관이었다.
날개를 접으며 들어온 그가 하미엘에게 보고를 올렸다.
“베로니카 공작가가 독립······ 아니,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선전포고? 어딜 상대로?”
“상공회의소 전체가 대상입니다.”
“허······.”
하미엘이 헛웃음을 흘렸다.
상공회의소는 개척자들의 신이자, 전쟁을 연주하는 악사였다.
그런 상공회의소에 감히 칼을 들이밀다니.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그리 생각하던 참이었다.
“다른 세력도 끌어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마르케스, 그리고 팍스FC라는 세력과도 손을 잡았습니다.”
“팍스FC?”
“예, 확인해 보니, 지구에서 발흥한 신흥세력이라 하더군요. 세 집단이 연맹을 결성해서······ 팍스IFC라는 이름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젠장, 또 지구인가!”
하미엘은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지구에 있던 차원 본부가 떡하니 사라져, 다차원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일이.
기어코 독립을 선언한 베로니카, 상공회의소의 오랜 숙적인 마르케스, 거기에 상공회의소의 코털을 건드린 팍스FC까지.
당장에라도 박살을 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하아······!”
하미엘을 답답하다는 듯 가슴만 쿵쿵 두드릴 뿐이었다.
지금 상공회의소에게는 그들을 응징할 만한 여력이 없었으니까.
잠시 숨을 고른 하미엘이 부관에게 물었다.
“개화파는 어떻지?”
“예상하신 대로 포탈 관리국을 장악한 것으로 보입니다.”
“돌아버리겠군.”
하미엘은 똑똑히 목격했다.
그라디바를 중심으로 펼쳐진 수백 개의 포탈.
그곳에서 하나같이 개화파의 ‘흑색법률’이 튀어나왔던 것을.
‘포탈 관리국’이 넘어가지 않았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었다.
부관이 마저 보고를 이어갔다.
“하지만 개화파도 그라디바가 파괴될 줄은 몰랐던 모양입니다. 상당히 급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어느 미친놈이 그걸 어떻게 예상하겠나?”
하미엘도, 온건파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니, 애당초 그라디바가 파괴될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다.
한 번 벌어진 일, 두 번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었다.
남은 열다섯의 그라디바 또한 언제든 파괴될 수 있다는 뜻.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지만······.
“팍스인지 뭔지 하는 놈들은 일단 미뤄둔다. 포탈 관리국을 손에 넣었으니, 개화파 놈들이 <본사>를 노릴 게 분명해.”
하미엘은 일단은 개화파에 집중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본사.
그곳만큼은 지켜내야 했으니까.
그라디바가 하나둘 파괴되는 한이 있더라도.
***
“실패일세. 열다섯 개 모두, 그대로 살아 있어.”
부엔디아가 고개를 저었다.
앞서 우리는 자그마치 수백 마리의 본 드래곤을 출하해, 다차원에 남은 열다섯 개의 그라디바에 날려 보낸 참이었다.
부엔디아가 특유의 감응력으로 그라디바의 위치를 모두 파악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아쉽게도 파괴에 실패했다는 것.
“혹시 중간에 격추된 건 아닐까요?”
“제대로 타격한 건 맞다네. 그라디바들의 기운이 조금씩 약해지기는 했었거든. 금세 회복되어서 문제지.”
그 이유를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분명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었던 사념 폭탄.
하지만 그라디바는 흩어진 잔해를 흡수하며, 금세 상처를 수복했더랬다.
‘상품회수가 없으면 잡기 어렵다는 거군.’
결국 하나하나 찾으러 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먼 거리에 있는 그라디바를 본드래곤으로 요격하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파괴된 잔해를 빨아들이기 위해서는 근처로 다가가 직접 ‘상품회수’를 발동해 주어야 할 테니까.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우리의 사정일 뿐.
그라디바는 우리를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그새 두 개가 깨어났네.”
“두 개나요?”
“그래, 아예 결합까지 해버린 것 같아.”
그라디바의 결합.
열다섯 개가 열넷이 되었지만, 숫자가 줄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개화파가 목적에 한 발짝 다가섰을 뿐만 아니라, 그라디바 또한 한층 더 강력해졌다는 뜻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어차피 그라디바에 직접 접근해야 하는 상황이다.
남은 열네 개의 그라디바.
어느 걸 먼저 쳐야 하는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쪽으로 가보죠.”
.
.
.
이동은 새로 얻은 ‘십자선’으로 했다.
아공간 능력으로 혈맹에게서 빼앗은 물건.
안에 담겨 있던 비석들을 모두 걷어내고 나니, 줄곧 타고 다니던 차원본부보다 몇 배는 속도가 빨랐다.
덜컥!
끼이이익!
슈후우우우욱!
이번에도 역시 운전은 이용수가 맡았다.
차원 도약을 감안하더라도 한나절이 꼬박 걸리는 운행이었는데, 베레슈티와 그라디바에서 싸우는 동안 줄곧 심심했다며 기꺼워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우리는 두 개가 합쳐진, 문제의 그라디바에 도착했다.
그런데 창문을 통해 확인한 그라디바의 모습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색이 왜 저렇지······?”
직전에 보았던 그라디바는 눈이 부실 듯 청명한 푸른색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그라디바는 어두운 보랏빛으로 물들었고, 표면에는 거무죽죽한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색.
하지만 나보다 더 잘 알아볼 수 있는 이가 있었다.
“아주 제대로 썩어버렸군······.”
부엔디아가 허탈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
.
.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앙!
“······소용없나.”
부패한 그라디바.
수십, 수백 발의 사념 폭탄을 날렸지만, 성과는 없었다.
철벅. 철벅.
같은 곳을 연달아 타격해도, 특유의 진흙 소리만 울릴 뿐.
<상품 회수>를 발동하기는커녕, 놈을 부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펑펑, 의미 없는 폭죽을 터뜨리는 그라디바를 보며, 나는 부엔디아에게 물었다.
“왜 저렇게 된 거죠?”
부엔디아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라디바의 개화는 유례없는 초유의 사태, 그라고 한들 다른 정보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도 다행히 어딘가 짐작 가는 구석은 있는 모양이었다.
“그라디바는 순수한 가치의 총체······. 원래대로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움직일 수 없는 존재야. 말 그대로 순전하고 완전무결하니까. 하지만 개화파는 거기에 불순물을 넣어 그라디바를 강제로 깨워낸 것 같다는 게 내 추측일세.”
‘흑색법률’이 촉매 역할을 했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비석에 적힌 내용은 그라디바에 주어진, 일종의 행동 지침이라고도 볼 수 있었으니.
문제는 지금처럼 그라디바가 깨어난 뒤, 다른 그라디바와 결합했을 때였다.
부엔디아가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각각 다른 종류의 개념을 심어둔 뒤, 두 개의 그라디바를 결합하게 만든 것 같군. 서로 다른 의식이 충돌하면서 거대한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그 결과가 표면에 굳어진 것 같아. 저 녀석의 경우엔 <부패>라는 개념이 형성된 것 같지만······. 다른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겠지.”
간단히 말해 두 개의 그라디바가 결합하며 레벨업을 했다는 소리였다.
<부패>라는 특성을 얻어, 그걸 방어막처럼 표면에 둘렀다는 것.
덕분에 그 강한 사념 폭탄으로도 뚫어낼 수가 없었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거대한 의식이 힘을 얻어 특성을 발현하는 것······. 사실 이 과정은 누군가 그라디바의 영향을 받아 각성하게 되는 과정과 구조적으로는 다를 바 없네. 물론 순서는 다르지. 개인에게 있어 욕망에 힘이 더해져 각성이 이뤄진다면, 그라디바에는 힘에 욕망, 즉 불순물이 끼어드는 셈이니까. 지금 그라디바는 하나의 거대한 욕망덩어리라고 할 수 있네. 욕망에 겨룰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욕망일 뿐이지. 그러니······.”
복잡한 생각의 타래를 이어가던 부엔디아가 결론을 내렸다.
“사념 폭탄을 개조해 보게. 사념에 욕망을······. 그러니까 각성 능력을 투사(投射)해서.”
.
.
.
이야기를 마친 우리는 곧장 <아공간 실험실>로 향했다.
사념 폭탄에 욕망을 담으라는 부엔디아의 말.
쉽게 말해, 각성 능력으로 이루어진 폭탄을 만들라는 뜻이었으니까.
‘그렇게 가능한가?’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일단 시도라도 해 보는 수밖에.
나는 팍스에게 부탁해, 사념 폭탄을 홀로그램으로 띄워보았다.
“딱 한 방울만 따로 추출해 줘.”
띠링!
[알겠습니다.]후욱!
사념 폭탄의 홀로그램 이미지가 물러갔다.
남은 것은 보랏빛으로 물든, 작은 물방울 하나.
사념 폭탄 전체는 몰라도, 이 한 방울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테니.
단, 이번에는 홀로그램이 아닌 진짜 사념이 담긴 폭액이었다.
‘단순한 개조가 아니니까.’
사물끼리의 조합이 아니다.
각성 능력을 투사해야 하는 고도의 작업.
홀로그램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폭발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리고······.
“부르셨어요, 정겸 씨?”
“오랜만에 보오. 정겸 대표.”
초대한 손님 둘이 실험실로 들어섰다.
엘븐하임의 엘리, 그리고 드루이드 족장 핀드릭이었다.
핀드릭이 말했다.
“자연력이 필요하시다고요?”
부패로 뒤덮인 그라디바에 쏠 폭탄이다.
한 가지 특성을 고르라면 당연히 자연력이 좋을 터.
흑마력에 압도적인 상성을 보이던 엘프와 드루이드들이었다.
“네, 여기에 좀 부탁드립니다.”
내가 꺼내 든 것은 ‘이능 검사지’였다.
각성 능력을 저장할 수 있었고, 자연력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지이이잉!
종이를 확인한 엘리와 핀드릭이 각각 ‘정화’와 ‘자연력’을 뿜어냈다.
회색이었던 검사지가 점차 푸르스름한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그러면 이제······.’
두둥실 떠오른 폭액에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능 검사지를 가져다 댔다.
살포시 닿자마자, 검사지가 쏘옥 폭액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파지지지직!
빠드드드드드드득!
녹빛의 이능검사지가 순식간에 썩어들어갔고, 엘리와 핀드릭 또한 서둘러 달라붙었다.
“으읏!”
“합!”
지이이잉!
엘리의 정화가 검사지를 휘감았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검사지의 형상을 가까스로 유지했고, 핀드릭 또한 있는 힘껏 자연력을 불어넣었다.
치지지지지······!
보랏빛과 초록빛이 서로를 밀어내듯 경쟁했다.
밀릴 듯 밀리지 않는 팽팽한 싸움.
엘리와 핀드릭은 땀이 흥건하도록, 30분 넘게 검사지에 능력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하아······. 하아······.”
“다······, 다 된 것 같군.”
두 사람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마침내 검사지를 다시 초록빛으로 물들이는 데 성공한 것.
그들이 털썩 자리에 주저앉는 사이, 나는 곧장 팍스에게 요청했다.
“팍스, 다시 액체로 추출해.”
띠링!
[알겠습니다.]폭액 한 방울이 뽁 하고 튀어나왔다.
엘리의 정화와 핀드릭의 자연력이 담긴 액체.
하지만 사념 폭탄의 위력만큼은 그대로 가지고 있을 터였다.
“복제해서 병 한가득 채워 넣어. 그대로 상품으로 등록해.”
[알겠습니다.] [상품 이름은 무엇으로 할까요?]지금껏 존재한 적이 없는 물질이었다.
팍스가 그 이름을 물어보는 것도 당연한 일.
곰곰히 생각해본 뒤, 팍스에게 새 폭탄의 이름을 정해주었다.
“로켓 프레시.”
띠링!
[알겠습니다.].
.
.
작업을 마친 다음이다.
나는 부엔디아, 그리고 엘리와 핀드릭을 데리고 십자선으로 넘어왔다.
창문 밖으로 여전히 부패에 휘감겨 있는 그라디바를 보며, 나는 망설임 없이 공격을 감행했다.
“출하.”
슈우우우우우욱!
본 드래곤을 이용한 로켓 배송이다.
하지만 사념이 아닌, 자연력을 담은 로켓 프레시.
은은한 초록빛을 꼬리처럼 남기며, 본드래곤이 그라디바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꽈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주변을 휩쓸었다.
사방으로 흩어져 나가는 그라디바의 잔해, 그 중심에 피어난 것이 있었다.
“하하······.”
부욱!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브로콜리 한 송이였다.
막대한 자연력이 그라디바 한 가운데에 꽃을 피운 것.
꽈드드드득!
그 뿌리가 그라디바의 껍질을 부수며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