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12)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12화(212/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212화
로켓 배송 (2)
부욱!
부욱!
초록빛, 또 초록빛이다.
본 드래곤이 그라디바를 타격할 때마다, 크고 작은 브로콜리들이 솜처럼 터져 나왔다.
‘신기하기도 하지.’
부패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던 그라디바다.
이 먼 거리에서조차 불길한 기운이 소스라치듯 전해졌던 터.
죽음으로 가득 찬 행성에 어울리지 않는 녹읍이 잔뜩 꽃피고 있었다.
심지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세계수! 세계수예요!”
“저게요?”
“네! 기운으로 봐서는 틀림없어요.”
엘리는 환희하고 있었다.
엘븐하임에서 애지중지 다 죽어가던 잎새를 키우던 엘프들.
한데 <로켓 프레시>가 그라디바 한 가운데에 거대한 세계수를 꽂아 넣고 있었으니.
“효과가 있을 것 같기는 했는데, 세계수까지 피워낼 줄은 몰랐네요.”
“세계수는 사실상 자연력의 발현 그 자체이니까. 그라디바의 막대한 에너지와 반응한 게지. 부패한 겉껍질이 거름이 되어주기도 한 걸 테고.”
부엔디아 또한 만족한 표정이었다.
<로켓 프레시>의 막강한 자연력을 보며, 흘흘 미소를 지었다.
꽈드드드득!
까드득!
세계수가 뿌리를 뻗었다.
강철처럼 단단한 뿌리가 채찍처럼 사방을 휘둘렀고,
<부패>로 감싸인 그라디바의 겉껍질을 빠르게 파고들었다.
그 결과, 아직 굳지 않은 그라디바 특유의 푸른 속살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됐군.’
껍질을 걷어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제 세계수가 벌려준 틈 사이로 사념 폭탄을 쏟아부으면 될 터.
하지만 그라디바를 마무리하기 전, 나는 엘리와 핀드릭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파괴해도 상관없겠습니까? 그래도 세계수인데요.”
세계수를 끔찍하게 아끼는 엘프와 드루이드들이다.
그라디바를 파괴한다면 표면에 심어진 세계수 또한 함께 사라질 터.
아공간에서 키운 세계수보다 압도적으로 크다 보니, 그들 입장에선 아까울 법도 했다.
하지만 엘리는 고개를 저었다.
“미련 갖지 않는 편이 좋겠어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자연력도 아닌 것 같구요. 만약 저 수준이라면, 저희 엘프들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세계수의 자연력에 흡수되어 버릴 거예요.”
엘리의 말에 부엔디아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가 다시금 그라디바를 관찰하는 사이, 핀드릭 또한 같은 의견을 보탰다.
“지금 대표께서 아공간에서 키우고 계시는 세계수, 어쩌면 딱 그 정도가 우리에게 적당한 크기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곧잘 웅대한 자연 그 자체를 숭상하려 들지요. 하지만 무심코 만난 짐승이 우리를 잡아먹으려 들듯, 관계를 쌓지 않은 자연은 그저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들 뿐입니다.”
“음, 그렇군요.”
하기야, 지금의 우리에게는 아공간에서 어르고 달래며 키운 세계수가 더 알맞은지도 몰랐다.
이미 한 차례 멸망한 세상이다.
장성한 세계수를 얻는다 한들,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는 엘프와 드루이드들이었다.
“그럼 가릴 것 없겠군요.”
“그러시지요.”
고개를 돌려 다시금 그라디바를 바라보았다.
몸체 전반이 초록빛 브로콜리들로 모조리 뒤덮여 있었으며, 핏줄처럼 뻗은 뿌리 사이로 그라디바의 푸른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어어어어어어어어!
부패로 뒤덮인 그라디바가 마지막 울음을 토해냈다.
대체 어디로, 어떻게 우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저걸 생명체라고 부를 수는 있을까?
“출하.”
망설이지 않았다.
그라디바는 사유의 근원이자,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힘.
하나, 웅대한 자연이 인간을 집어삼키는 것처럼, 폭주하는 사유 또한 사람을 위태롭게 할 뿐이다.
슈화아아아아아악!
관계를 주고받는다고 했던가?
<로켓>을 날리며, 알게 모르게 녀석의 생각을 전해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화파로부터 주입받은, ‘온 세계를 부패시켜버리겠다’는 그라디바의 강렬한 욕망.
뻐어어어어엉!
나는 그 욕망을 우주 한 자락에서 지워버렸다.
.
.
.
슈화아아아아악!
마무리 과정은 직전과 동일했다.
주변을 맴도는 수백 개의 소행성에 각각 포탈을 설치해, <상품회수>를 발동하는 것.
부서진 몸을 회복하려 그라디바가 잔해를 끌어모았지만, 내 포탈에 집어삼켜지는 양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참 다행이지.’
원래 설치형 포탈은 물체를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는 사물에 설치한다 한들, 포탈만 덩그러니 허공에 남게 될 뿐이다.
하지만 유독 그라디바의 주변, 특히 그 궤도를 공전하는 소행성에는 움직이는 형태로 설치할 수 있었다.
슈와하아아아아악!
그 덕분이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천천히 도는 소행성.
그 소행성들에 의해 잡아먹히는 그라비다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은.
자신의 힘에 의해, 스스로 사멸해 가는 한 천체의 운명이 사뭇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부엔디아가 끔찍한 소식을 전해왔으니까.
“예? 전부 다요?”
“그렇네. 나머지 13개가 모조리 개화했어. 딱 하나 신호가 애매한 게 있기는 하지만.”
“뭐가 이렇게 빨리······!”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였다.
우리가 <부패>로 결합된 그라디바를 해치우는 사이, 개화파가 나머지 그라디바를 모조리 깨워낸 것이었으니까.
심지어 단순히 깨워낸 것뿐만이 아니었다.
“2단계도 두 개나 발생했네. 지금과 비슷한 수준일 텐데, 그 두 개가 다시 합치려 하고 있어.”
우리는 편의상 그라디바를 단계별로 표현하기로 했다.
최초의 그라디바는 1단계, 두 체가 결합한 그라디바는 2단계가 된다는 식.
지금은 2단계가 된 두 체가 근접하면서, 3단계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바로 출발하죠.”
“그러지, 나도 준비하겠네.”
서둘러 이용수를 부르러 나갔다.
파괴되고, 결합한 끝에 이제는 11개밖에 남지 않은 그라디바.
그럼에도 상황은 차츰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
슈우우우우!
십자선을 탄 채, 우리는 다차원을 질주했다.
몇 차례나 차원을 도약했고, 위험천만한 공간 균열을 넘나들었다.
부엔디아의 정확한 안내, 그리고 이용수의 신들린 듯한 조작이 없었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경로였다.
“딱 중간지점이라는 거죠?”
“그렇네, 지금 속도라면 그래도 결합이 이루어지기 전에 도달할 수 있을 게야.”
두 개의 그라디바가 서로를 향해 쇄도하고 있다.
부엔디아가 놈들의 속도와 방향을 파악해 주었는데, 우리는 두 개가 만나게 될 예측 지점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가능하면 결합이 이뤄지기 전에 처리하는 게 좋겠지.”
“그렇겠죠. 2단계에서만 해도······.”
1단계에서는 아무런 특성이 없었다.
하지만 2단계 이르러 <부패>라는 특성이 나타났다.
평범한 사념폭탄으로는 생채기도 낼 수 없는 강력한 껍질이.
곧 마주할 두 개의 그라디바는 이미 2단계에 이른 것들이다.
그 둘이 결합해 3단계가 된다면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예상할 수 없었다.
결국 타이밍 싸움이다.
숨 가쁘게 공간을 가로지르는 중에도, 조금이라도 지연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부엔디아는 그라디바들이 뿜어내는 특성을 읽어내려 애썼다.
<로켓 프레시>로 부패한 그라디바를 처치했던 것처럼, 그 특성을 알 수 있다면 미리 대응할 만한 <로켓>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크흐음······!”
부엔디아의 이마에 잔뜩 주름이 잡혔다.
탁월한 마나 감응력을 지닌 그라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
더욱이 지금처럼 다차원 곳곳에서 열 개 이상의 그라디바들이 동시에 날뛰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뚝뚝.
이마에서 출발한 식은땀이 수염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관자놀이를 움켜쥔 주름진 손이 힘없이 파르르 떨렸다.
그렇게, 한참 뒤.
“하······.”
창백한 신음을 뱉은 부엔디아가 무너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가 재빨리 부축했고, 그가 앓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은 큰 틀에서 해석할 수밖에 없었네. 서쪽에서 오는 그라디바에 부여된 욕망은 <쇠약>, 그리고 동쪽에서 오는 녀석에 부여된 욕망은 <분열>이야. 정확한 형태는 직접 도착한 다음에야 볼 수 있겠지만······.”
<쇠약>, 그리고 <분열>.
이제 나름의 창의력을 발휘해야 할 때였다.
자연력으로 <부패>를 상대했던 것처럼, 저 두 특성에 대응할 만한 각성 능력을 찾아 로켓에 담아야 할 테니까.
‘그거라면 얼추 될 것 같기는 한데.’
떠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능력이라면 <쇠약>과 <분열>을 상대할 수 있을 터.
하지만 과연 그것을 로켓에 ‘담을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어떤 능력이든 가능한 걸까요? 뿜어내는 것들이 아닌, 체화하는 능력들로도요.”
엘리의 ‘정화’도, 핀드릭의 ‘자연력’도.
모두 외부로 발산할 수 있는 형태의 힘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 힘이 바깥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라면?
밖으로 뿜어내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강하게 만들고 발전시키는 힘이라면?
잠시 고민하던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곤 부엔디아에게 했던 질문에 스스로 답했다.
“일단은 해 보는 수밖에 없겠군요.”
부엔디아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친 와중에도 만족스러운 답을 들은 표정이었다.
벌떡!
나는 서둘러 아공간에 있는 물류센터로 향했다.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빈 상자를 채울 수 있는 건, 역시 사람밖에 없었다.
***
“오우, 왓?”
제임스, 아버지, 그리고 쿠퍼와 브로크까지.
첫 번째로 데려온 것은 팍스FC의 제작자들이었다.
동쪽 그라디바가 품고 있는 욕망은 <분열>.
그것이 정확히 어떤 분열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 제작자들의 욕망이 분열된 것들을 끌어모아, 하나로 <조립>하는 것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했다.
제임스는 메카닉 능력을 각성한 제작자다.
아버지는 자재를 활용한 건설 능력이 특기이며, 쿠퍼는 마력 원자로를 통해, 브로크는 강화석 세공을 통해 탁월한 품질의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다.
‘이게 뭘 발사하고 그런 능력들은 아니지만······.’
걸리는 점은 그것뿐이다.
이들은 각성 능력을 발휘할 뿐, 뿜어내지는 않는다는 것.
엘리나 핀드릭처럼 발산하는 능력이라면 마음이 편했겠지만, 어쩌면 누군가의 능력이란 이렇게 그들 자신 속에 숨겨져 있는 경우가 더 많은지도 몰랐다.
“일단은 엘리가 설명해 줄 거예요. 위험할 수 있으니 모두 마음 단단히 먹으시고요.”
사념 폭액은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
아무리 한 방울이라고 해도, 물류센터 내부를 통째로 날려버리고도 남을 만한 위력.
다행히 엘리의 <정화> 능력이 폭액을 안정시키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었기에, 그녀는 이후 제작에서도 빠질 수 없는 인력이 된 참이었다.
엘리가 아버지를 비롯한 제작자들에게 방법을 설명하는 사이.
나는 또 다른 인물들을 불러들였다.
“정겸님.”
“선조님! 정말 오래간만입니다!”
베로니카 공녀, 그리고 레텔인, 테레브였다.
서쪽 그라디바가 품은 욕망은 다름 아닌 <쇠약>.
나는 에센스를 이용한 흡혈귀들의 신체 강화, 그리고 레텔인들의 괴력을 <로켓>에 담아볼 작정이었으니까.
이름으로 치자면 대충 <로켓 헬스케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번에는 핀드릭이 나서, 공녀와 테레브에게 제작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웅성웅성.
한쪽에서는 드워프들을 비롯한 제작자들로, 다른 한쪽에서는 베로니카의 흡혈귀들과 레텔인들로 북적해지기 시작했다.
저마다, 자신들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로켓>을 준비하기 위해.
그렇게···
“어디 한번 부딪혀 보자.”
우리는 로켓처럼 날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