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17)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17화(217/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217화
재구성 (3)
한쪽에는 팍스맨들이, 다른 한쪽에는 무림인들이 투입된 상황.
<불안>과 <중독> 각각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의 양상은 각양각색이었다.
팍스맨들은 저마다 다른 종류의 각성 능력을 지니고 있었고, 무림인들의 경우 전체적인 결은 비슷해도 다루는 절기나 초식에 특색이 있었다.
두두두! 두두두!
촤아악!
팍스맨 한 명이 손뼉을 세웠다.
하얗게 빛나는 총알이 그림자를 향해 세차게 날아들었다.
총알은 그림자 오크의 몸에 스펀지처럼 촘촘한 구멍을 남겼고, 오크는 부르르 몸을 떨며 후두둑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무림인들의 전투는 느낌이 또 달랐다.
<불안>이 일상에서 불현듯 닥쳐오는 기습이라면, <중독>은 피가 바싹 마를 듯한 포위 공격이라 할 수 있었다.
술, 약물, 도박, 마지막으로 사람.
무림인들은 익숙하면서도, 또 그렇기 때문에 치명적 일 수밖에 없는 적들에 포위당해 있었다.
슈우우욱!
슈칵!
경쾌한 칼날이 술병을 갈랐다.
쿵쿵 울리는 박동과 비처럼 흐르는 땀이 약을 흘려보냈다.
권사들의 주먹이 놀이판과 주사위, 그리고 점토처럼 바스락거리는 인형들을 박살 냈다.
핑! 핑!
후두두둑!
쏟아지는 공격에도, 그림자는 꾸준히 생겨났다.
<불안>이 등 뒤에서 끈적한 몸을 일으켰고, <중독>이 질리도록 눈앞을 어른거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팍스맨들은 놀란 가슴을 다스렸고, 무림인들은 볼을 씹으며 필사적인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쿠구구······!
이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듯, 그라디바의 표면에 서서히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나는 부엔디아와 함께 <추적 거울>로 그들의 사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둥그스름하게 뭉친 검은 안개에 가까운 모습이었던 그라디바들.
하지만 팍스맨들과 무림인들이 그 <불안>과 <중독>을 체화해준 덕에, 녀석들은 빠른 속도로 실체화되며 단단한 형상을 갖추게 된 지 오래였다.
철벅! 철벅!
꾸드드드득!
검은 안개가 그림자처럼 납작해졌고, 질척이던 진흙이 단단한 덩어리로 굳어졌다.
팍스맨들과 무림인들의 입장에서는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지독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만 같겠지만, 실상은 그라디바의 자원을 꾸준히 고갈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열렸다!’
<불안>, 그리고 <중독> 양쪽에서 푸른 속살이 드러났다.
안개로 흩어져 있던 놈들의 기운을 받아 실체화를 일으킨 상황.
그렇게 실체화된 부정적인 관념을 성공적으로 이겨내고 격파한 결과였다.
불안과 중독은 놈들이 두르고 있던 겉껍질이었고, 우리가 그것을 걷어낸 것이었으니.
“상품 회수.”
나는 곧바로 팍스에게 지시했다.
아직 전투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라디바의 푸른 속살이 드러난 이상, 실체화된 그림자들은 내 사념 폭탄으로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었으니까.
슈우우우······.
처음에는 천천히 배를 끌어당겼다.
팍스맨들과 무림인들에게 후퇴를 알리기 위한 신호였다.
-후퇴한다!
-꽉 잡아!
<추적 거울>에 비친 그들이 퇴각을 준비했다.
재빨리 손잡이를 열어 우르르 갑판 아래로 내려갔고, 여의찮은 이들은 선체 틈새에 칼이나 창을 꽂아 넣고는 질끈 입술을 씹었다.
그라디바의 잔념이 여전히 그들을 괴롭혔지만, 기도나 염불을 외며 애써 마음을 다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슈우우우우욱!
나는 두 선체를 힘주어 끌어당겼다.
강력한 바람이 갑판 위를 휩쓸었고, 팍스맨들이 기둥에 껴안았다.
그 와중에도 무림인들은 칼끝을 잡고 버티고 서서, 새카만 유혹의 그림자와 최후의 사투를 벌였다.
꾸드드드······!
<불안>, 그리고 <중독>의 그림자가 거머리처럼 갑판에 매달렸다.
하지만 끝내 <상품회수>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스르륵 제 본체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우리 인원들을 태운 두 선체가 거의 다 돌아왔을 즈음······.
“출하.”
쐐애애애액!
나는 반 박자 빠르게 사념 폭탄을 날려 보냈다.
되돌아간 그림자들이 다시금 껍질을 이루고 있었다.
애써 열어젖힌 푸른 속살이 까맣게 메워지고 있는 상황.
서둘러 그 틈새를 노려, 폭탄을 찔러넣었다.
슈우우우- 콰악!
다행히 본드래곤들은 성공적으로 그라디바의 속살을 파고들었다.
그 결과······.
꽈과과광!
콰과과과과광!
<불안>, 그리고 <중독> 양쪽에서 부러지는 듯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두꺼운 껍질이 부서진 기왓장처럼 튀어 올랐고, 벌어진 틈새 사이를 사념 폭탄이 또다시 타격했다.
콰아아아아아앙!
슈우우우우우욱!
충격이 파도처럼 휩쓸리며 내려왔다.
팍스맨, 그리고 무림인들을 태운 두 개의 선체가 뒤집혀 날아왔다.
아버지와 쿠퍼, 그리고 제임스를 비롯한 제작자들이 다급하게 조작실을 쏘다녔다.
“다시 결합! 빨리!”
“알겠소!”
슈화아아악!
알 수 없는 인력이 각 선체를 끌어당겼다.
과일 조각처럼 쪼개져 있던 네 개의 파츠가 둥글게 하나로 모여들었다.
개조 그라디바가 다시금 하나의 구체가 되었다.
그리고 그 위로, 폭발의 남은 충격이 휩쓸리듯 날아들었다.
투두두두두둑!
투두두두두두!
팅! 팅!
우박이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하나하나의 크기가 농구공쯤 된다면 이런 소리가 날 것 같았다.
<불안>과 <중독>을 파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다음으로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상품회수.”
마석으로 이루어진 놈들의 잔해.
포탈이 그 파괴된 흔적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
슈우우우욱!
한바탕 싸움이 있은 다음이다.
팍스맨과 무림인들의 도움에 힘입어 파괴한 두 개의 그라디바.
주변을 공전하는 수십 개의 위성에 추가로 포탈을 설치했고, <불안>과 <중독> 각각에서 흘러나오는 잔해를 빠르게 먹어 치우도록 했다.
이제 <공포>와 <수면>, 두 개가 남았다.
특히 <공포>는 육안으로 보일 만큼 가까이에 있었다.
실제로는 한나절 정도 뒤에 도착할 거리.
부엔디아와 함께 작전을 세우던 중, 나는 한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고 보니······. 온건파도 그렇고 개화파도 그렇고, 코빼기도 보이질 않네요.”
적어도 이곳에서는 모습을 드러낼 줄 알았다.
자그마치 네 개의 그림자가 모인 장소였으니까.
처음 그들이 그라디바를 두고 사투를 벌였던 모습을 떠올리자니, 이토록 잠잠한 게 기이할 따름이었다.
혈겸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도 없었다.
첫 번째 그라디바에서의 싸움 이후, 혈겸은 아공간에 복귀해 있었으니까.
혈맹의 후퇴 타이밍을 놓친 탓이었고, 그 때문에 지금은 개화파는 물론 온건파마저도 어디서 무얼 하는지 도무지 모를 상황이었다.
그래도 딱 하나 단서가 있었다.
부엔디아가 더없이 진중한 표정으로 수염을 쓸어 넘겼다.
“남은 하나, 거기에 무언가 있는 모양이군.”
“그라디바 말씀이시죠?”
“그래, 유독 기운이 약해서 미뤄두고 있었네만······. 놈들에게는 그게 가장 중요했던 모양이지.”
남은 그라디바는 총 세 개였다.
가까이에 있는 <공포>와 <수면>, 그리고 파장이 약한 탓에 위치조차 파악할 수 없었던 마지막 하나.
개화파와 온건파 모두, 그 마지막 하나에 달라붙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다고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네 체의 결합을 방치했다면 세계는 그대로 멸망해 버렸을 테니까.
마지막 그라디바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남은 <공포>와 <수면>을 해치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이런, 또······!”
이 또한 끝이 아니라는 듯, 부엔디아가 다급하게 창가에 다가섰다.
“왜 그래요?”
“방향이 또다시 바뀌었네. <공포>와 <수면>이 서로 끌어당기고 있어!”
우리는 지금 <불안>과 <중독>의 남은 잔해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 작업을 마치는 대로 <공포>와 <수면>을 처리하려 했던 터.
하지만 그사이, 서로 직각 방향에서 날아오던 두 개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었다.
이쯤이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그라디바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라디바를 깨우는데 비석이 사용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무래도 개화파들의 소행일 공산이 컸다.
쿠구구구······.
공교롭게도 창문을 통해 <공포>와 <수면>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까운 위치에서 횡 이동을 하는 <공포>를 향해, 반대 방향에서 <수면>이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시간이 얼마나 있습니까?”
“그게······.”
부엔디아가 대답을 머뭇거린 이유가 있었다.
서로의 인력에 이끌려 전속력으로 날아든 두 개의 그라디바는······.
꽈아아아아아아앙!
강렬한 폭음과 함께 곧장 결합을 시작했다.
눈이 멀어버릴 듯한 광채 때문에, 우리는 황급히 손을 들어 빛을 가렸다.
콰과과과······.
빛이 서서히 저물어 갔다.
우리는 두 눈을 찌푸린 채, 다시금 검게 물들어 가는 그라디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전히 칠흑같이 검은색이지만, 그 거대한 외양만큼은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자욱한 안개로 이루어진 거인의 형상이었던 것이, 지금은 검은 연기에 싸인 오래된 유적처럼 보였다.
겹겹이 쌓인 지붕 주변으로, 찌를 듯이 뾰족한 첨탑이 우후죽순 늘어서 있었다.
<공포>와 <수면>이 합쳐졌다.
2단계 두 개가 합쳐져, 마침내 3단계에 다다른 것.
이번만큼은 부엔디아의 도움 없이도 그 이름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악몽······.”
놈이 꿈의 무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아악!
재료를 모으려는 듯, <악몽>이 커다란 마수를 펼쳤다.
은하수처럼 반짝거리는 검은 물결이 뻗어 나왔고, 이내 사방을 그물처럼 뒤덮었다.
그리고······.
슈화아아아아아악!
빠른 속도로 주변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상품 회수도 소용이 없었다.
아공간 포탈을 상회하는 강력한 흡입력.
<불안>, 그리고 <중독>의 잔해가 모조리 <악몽>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지금껏 포탈로 빨아들인 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양이었다.
타다다닥!
투두둑! 투둑!
<악몽>은 어느덧 선명한 건축물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불안>에서 빨아들인 그림자가 진흙처럼 날아들었고, 높다란 층계에 칸칸이 점토처럼 쌓이며 다시금 괴물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윽고 따라 날아온 <중독>의 잔해가 부딪히며, 괴물들에게 갑옷과 무구를 선사했다.
‘어쩐지······.’
악몽은 꿈이 가질 수 있는 양태 중 하나다.
그리고 그라디바에는 그 꿈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잠재돼 있었다.
팍스맨과 무림인들이 두려워했던 <불안>과 <중독>의 이미지.
그 이미지가 더 큰 힘을 얻어 조직적으로 실체화되었다.
전체적인 형상은 아주아주 높은 계단이었다.
그 끝에 맺힌 어슴푸레한 형상을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악몽이라 이거지.”
한때 상공회의소의 본거지를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웅장한 그리스식 신전으로 이루어진 영국 은행의 이미지.
조금 흐릿하긴 해도, 무심결에 떠올렸던 바로 그 이미지가 틀림없었다.
꿈은 무언가를 암시한다.
정확히는 암시하기만 할 뿐, 그 무엇도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는다.
신전을 향해 끝없이 이어지는 기다란 계단을 보며, 나는 그것이 어느 종착지로 이어지는 마지막 관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어디, 잘 한번 안내해 봐라.”
당장은 이 <악몽>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었다.
그다음에야 마지막 그라디바와 함께 상공회의소의 뿌리를 뽑을 수 있을 터.
적어도 이제부터는······.
‘모조리 간다.’
팍스FC의 모든 인력을 쏟아부을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