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18)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18화(218/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218화
악몽 (1)
슈화아아아악!
<불안>과 <저주>를 먹어치운 <악몽>.
녀석이 안개와 걸쭉한 그림자를 반죽하며 한껏 제 몸을 부풀렸다.
처음에는 어떻게 접근할까 싶었는데, 불필요한 고민이었다.
놈이 우리를 거칠게 잡아끌기 시작했으니까.
덜컹!
타다다다다다!
조종실 내부가 거칠게 흔들렸다.
주변의 잔해가 날아와 둥근 선체를 거칠게 때려댔다.
슈우우우우우!
후우웅!
주변 풍경이 삽시간에 뒤바뀌고 있었다.
창밖의 빛들이 쭉쭉 그어진 것이, 모든 성체가 별똥별이 된 것만 같았다.
그라디바의 안개에 접어든 다음에야 훅 소리와 함께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곧,
쿠구구구구구······.
진동이 잦아들었다.
아찔할 만큼 빠른 속도였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선체는 <악몽>에 정박해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도착했다.
초대받은 손님처럼.
***
휘이이······.
얼추 십여 분쯤 흘렀을 것이다.
그제야 맹렬하던 바람이 수그러들었다.
<악몽>은 이제 완전히 모습을 갖춘 상태였다.
육지가 있었고, 계단으로 이어진 높다란 건물이 있었다.
주변으로는 새카만 물길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어휴······, 깜짝 놀랐습니다.”
“여기 잡으세요, 용수씨.”
해치에서 고개를 뺀 이용수가 부산을 떨었다.
손을 끌어당겨 주어주자, 조종실에 있던 제작자들과 흑마법사들이 곧 뒤따라 올라왔다.
첨벙.
타고 온 선체는 부표처럼 해안 위에 떠 있었다.
놀랍게도 주변은 새하얀 하늘이었고, 바다는 먹물처럼 검었다.
그 한 가운데에 <악몽>이 외딴섬이 되어 둥둥 떠 있을 따름이었다.
“······그대로 악몽에 들어와 버렸군.”
부엔디아는 그리 싫지 않다는 듯, 흘흘 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봐도 현실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가 다 같이 악몽에 빠져 있는 셈.
그라디바가 빚어낸 독특한 풍경이 흑마법사의 흥미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물론······.
‘부셔야 할 텐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바로 이 <악몽>을 파괴하는 것.
하지만 계획을 세울 겨를도 없이, 놈의 인력에 붙잡혀 끌려온 참이었다.
휘이이잉!
아릴 듯한 추위가 살을 파고들었다.
그 기운이 하도 흉흉한 탓에, 나는 부엔디아에게 물었다.
“악몽에 빠져든 거라면······. 일단 다시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자네의 포탈을 이용하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겠지. 한데······ 그렇게 나간다 한들 정말 꿈에서 깨어났다고 자신할 수 있겠나?”
부엔디아가 영화 같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포탈로 빠져나간다고 해도, 그게 진짜 탈출인지, 꿈속에서의 발버둥일지 구별할 방법이 없다는 것.
안타깝게도, 부엔디아는 후자의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었다.
“<악몽>이 순순히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각성 능력 또한 그라디바에서 비롯된 것이니······. 그 힘을 거스르기는 어려울 걸세.”
결국, 포탈을 통한 탈출은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후우.
나는 길게 한숨을 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곤 선체에 올라선 채, 흉흉한 기운을 내뿜는 <악몽>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까마득하게 높게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거대한 신전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신전 입구에 아른거리는 푸른 빛을 보며, 적어도 한 가지는 직감할 수 있었다.
‘······출구인가.’
저곳을 통과해야만 이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다는걸.
그러기 위해서는, 이 높다란 계단을 끝까지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걸.
내 생각을 읽은 것인지, 부엔디아 또한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질문했다.
“저기로 나가야 한다는 거죠?”
“그렇네, 저기가 <악몽>의 핵인 것 같거든. 경로는 뒤죽박죽이네만······.”
곧게 쭉 이어지는 계단이다.
뒤죽박죽이라는 말이 의아했지만, 곧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파지지직!
계단이 쉴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는 것이 아닌, 낡은 텔레비전 화면을 보듯 그 형상이 번지고 있었다.
“저건 왜 저러는 겁니까?”
“우리의 꿈을 반영하고 있는 걸세. 여러 사람의 꿈이 동시에 발현되다 보니 혼선이 생기는 게지. 이전과 다르게 생각할 것 없네. <악몽>을 실체화시키면서, 저 계단을 밟아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돼.”
“저런 상태라면 절대 못 올라갈 것 같은데요.”
단순히 흔들리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악몽>이 선사한 계단은 물리적 현실이 아닌, 허상.
사소한 잡념으로도 휘청거리는, 위태로운 길목이었다.
계단의 일부는 오류라도 난 것처럼 깜빡이며 생겼다 말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혹여나 아래로 추락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겠지. 어떻게든 저 실체를 제대로 고정해놓고 올라야 할 걸세.”
“방법이 있을까요?”
그라디바의 의식으로 빚어진 <악몽>이다.
그에 관해서라면 부엔디아만큼 잘 이해하고 있는 이도 없을 터.
휙 몸을 돌린 부엔디아가 선체에 올라서 있는 일행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
“당장은 저 <악몽>을 선명한 실체로 만드는 것이 우선일세. 이미지를 뚜렷하게 만들어야 한다고나 할까. 지금 상황에서는······. 유사한 악몽을 공유하는 이들만 남는 편이 도움이 되겠군.”
요컨대 인원을 추려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비슷한 <악몽>을 공유할 수 있는 이들로.
부엔디아는 또한 가능한 그 수가 많을수록 좋을 거라 덧붙였다.
“이만한 악몽을 홀로 감당하기는 어렵지. 악몽에 대처하는 데에는 여러 사람과 함께 있는 편이 도움이 돼. 두려움을 비약적으로 줄여주니까. 악몽을 공유하는 사이라고나 할까······.”
인원을 추리는 것은 아공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탈출구로 사용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능력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런 식으로 해보면······.”
차례로 일원들을 교체했다.
아공간에 사람들을 넣고, 또 빼 보면서 계단의 이미지를 확인했다.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
‘됐다.’
<악몽>의 계단을 완전히 실체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남은 것은 카멜롯의 기사들, 성기사단장 베론과 아발론 출신의 성기사들, 엘프들, 그리고 부엔디아와 아우렐을 필두로 한 마르케스의 흑마법사들이었다.
“······제법 많은데요?”
“그렇군, 그 이유를 알 것 같네.”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었다.
바르나울로부터 상당한 고통을 받았거나, 지독하게 겨뤄본 이들.
아니나 다를까 <악몽>이 실체화한 계단에서는 바르나울의 흉흉한 기운이 물씬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츠츠츠······.
보랏빛 흑마력이 곳곳에서 피어올랐다.
계단은 중세식 벽돌로 이루어져 있었고, 층계를 지키는 괴물들 또한 어느덧 무더기의 스켈레톤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란슬롯과 기사들이 칙칙한 계단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기분이 묘하군요······.”
“좀 그렇지?”
계단에서 카멜롯 성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기사들과 아발론 사람들의 아픔을 상징하는 공간.
그 고통을 직시하려는 것인지, 란슬롯은 입술을 굳게 다문 표정이었다.
그때, 부엔디아가 툭툭 먼지를 털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바로 갈 건가?”
“그래야지요.”
나 또한 바르나울을 상대한 적이 있었다.
지구에서 맞붙었던 것은 물론, 본진까지 찾아가 놈들을 일망타진했으니.
기사들만큼은 아니겠지만, 내게도 어느 정도는 이 <악몽>의 지분이 있을 것이었다.
턱!
둥그스름한 선체에서 내려와 육지를 밟았다.
<악몽>의 이미지가 충분히 잡힌 것인지, 단단한 지면이 발을 받아주었다.
“······.”
그래서일까?
흉흉한 기운이 몇 배는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기다란 층계 위로, 칸칸이 몸을 세운 해골병들이 텅 빈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
-와아아아아!
카아앙!
투우우웅!
달그락! 달그락!
우리는 기합과 함께 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란슬롯과 기사들이 날렵하게 칼을 휘둘렀고, 베론이 이끄는 성기사들이 용맹하게 망치를 휘둘렀다.
퉁! 퉁!
후방에서는 엘프들이 위계 화살을 날렸다.
화살촉에 담긴 위계의 힘이 해골들의 뼈를 통째로 박살 내며 파고들었다.
“아우렐, 그쪽 한번 묶어보게.”
“알겠습니다, 어르신.”
후우우우욱!
달칵! 달그락!
부엔디아와 아우렐은 그야말로 물을 만난 것 같았다.
그라디바가 실체화한 악몽의 이미지는 다름 아닌 바르나울의 것.
같은 흑마법사로서, 이보다 더 좋은 재료는 없을 터였다.
사사삭!
아우렐이 만든 족쇄가 해골들의 발을 묶었다.
곧이어 부엔디아가 보랏빛 마력 실을 뿜어냈고, 그들을 세뇌해 다른 해골들과 싸우도록 만들었다.
해골들이 서로 투덕거리는 사이, 성기사들의 망치와 엘프들의 화살이 놈들의 뼈를 분쇄하며 내리꽂혔다.
물론, 나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콰아아아앙!
뻐어어어어엉!
H빔과 성창을 연달아 날려주었다.
H빔에는 신성력이 가미되어 있었고, 성창은 애당초 ‘신성 폭발’을 일으키는 물건이었으니.
해골들을 가루로 만든 H빔이 데굴데굴 계단을 굴러 내려왔지만, 그럴 때는 다시금 아공간에 넣어주면 그만이었다.
채애앵!
타앙!
기사와 성기사들이 앞을 막아주고, 엘프들과 흑마법사들이 원거리 지원을 하는 사이.
나는 아예 위에서부터 폭포수처럼 놈들을 쓸어버리는 식이었다.
챙챙, 칼 소리를 울리던 란슬롯이 불현듯 말을 꺼냈다.
악몽을 마주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옛 생각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주군을 처음 뵀을 땐, 저희도 이런 해골이었겠지요.”
“란슬롯 경, 우리를 빼면 곤란합니다.”
이번에는 베론이 얼른 말을 붙였다.
당시에는 아발론 사람들 또한 창백한 해골에 불과했으니까.
채앵!
타아앙!
으스스한 악몽을 상대하는 와중이다.
하지만 란슬롯과 베론은 어딘가 벅차오르는 듯한 기색이었다.
언데드로 살았던 끔찍한 세월이 떠오름과 함께, 되살아나 침략자들의 숨통을 노리고 있는 지금에 감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엘프들도 지지 않았다.
쉬지 않고 시위를 당기는 중에도, 엘리는 나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 감아주었다.
해골까지는 아니어도, 뼈에 살가죽이 달라붙을 만큼 고된 시간을 겪었던 엘프들이었다.
엘리가 흐뭇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악몽이라더니······. 같이 꾸니까 별거 아니었네요.”
확실히 그랬다.
우리는 이미 같은 악몽을 공유하고 있었으니까.
비록 악몽일지언정, 모두가 함께 겪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챙!
채앵!
전투는 한참동안 더 이어졌다.
계단을 밟고, 또 밟으며 파죽지세로 치고 올라갔다.
하지만 새로운 층계참에 다다랐을 즈음, 우리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끼고 있었다.
‘왜 달려들지를 않지?’
층계마다 언데드들이 규칙적으로 도열해 있었다.
지금도 층계참을 두고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상황.
하지만 문득 떠올려보니, 지금껏 한 번도 우리에게 먼저 달려든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죠?”
엘리가 흰 팔뚝을 쓸었다.
층계에 선 스켈레톤들이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검은 눈자위에 맺힌 푸른 귀화가 동그란 눈동자가 되어,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휙!
불현듯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껏 밟아온 길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어둠에 잠겨 있었다.
나는 우리가 꼭대기에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
악몽은 다가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구석 어딘가에서 빤히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을 뿐.
스윽.
수백 개의 눈동자가 하나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