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2)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2화(22/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22편
(어둠 속으로 (2))
성벽에 연결된 내성.
그 출입구로 들어서자, 어둠에 잠긴 고풍스러운 회랑이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늘어선 기둥.
차로 지날 수 있는 구역은 아니었기에, 우선 이용수는 아공간에 들어가 있도록 했다.
배리어 능력을 두른 작은 누나 김솔이 전위에 섰고, 큰누나를 중간에 둔 채 내가 뒤따랐다.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은 저마다 휴대용 서치라이트를 든 채, 천천히 어둠을 헤쳐 나갔다.
내부는 소름 끼치도록 고요했다.
눈앞으로 뻗은 회랑은 아주 깊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끝에 좌우로 연결되는 또 다른 복도가 이어져 있었다.
간단히 말해 양 갈래 길이었지만···
아직은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아!”
앞장서던 김솔이 목덜미를 짚었다.
그리고···
사삭!
움직이는 그림자 하나가 포착됐다.
하지만 서치라이트를 아무리 휘저어봐도, 두꺼운 기둥으로 둘러싸인 회랑, 그리고 어두운 적막 외에는 아무것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큰누나가 작은누나 김솔의 목덜미에 빛을 비추자, 두 개의 이빨 자국이 선명히 드러났다.
김솔이 길길 날뛰었다.
“뭐야, 뭐 물린 거야?”
“잠깐 기다려 봐.”
큰누나의 손을 가져다 대자, 은은한 빛과 함께 금세 상처가 아물었다.
“아··· 간지러워.”
김솔은 목덜미를 벅벅 긁으며 짜증 나는 여름날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삭!
또다시 놈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기에, 나는 지체하지 않고 물건을 출하했다.
코란도에 장착했던 스튜디오 조명이었다.
화악!
어둡고 축축하던 회랑이 선명한 태양 빛 아래 놓였다.
그러자···
멀찍이 기울어진 기둥의 그림자와 함께, 놈들의 신체가 눈에 들어왔다.
날카로운 두 송곳니, 그리고 박쥐 날개.
우리는 판타지 세계에 등장하는, 아주 고전적인 종족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뱀파이어?”
.
.
.
“아 왜 이렇게 가렵지?”
“조금만 참거라 중생아.”
다행히 김솔은 눈동자 색이 뒤바뀌며 괴로워한다든지, 대뜸 피를 갈구한다든지 하는 흡혈귀들의 클리셰를 답습하지 않았다.
오히려 큰누나의 치유 능력 덕에, 남아 있던 상처마저 말끔하게 사라진 터였다.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사삭!
사사사삭!
삭!
놈이 한 마리가 아니었다는 것.
회랑 기둥마다 십수 마리의 뱀파이어들이 각각 자리 잡고 있었다.
삭!
사삭!
한 마리가 날아들어 시선을 끌더니, 이내 다른 한 마리가 다가와 목덜미를 노렸다.
다가온 놈을 낚아채려 들면 또 어느새 새로운 한 마리가 나타나 팔뚝에 이빨 자국을 새기곤 돌아갔다.
물론 큰누나의 힐 덕분에 크게 위협적으로까지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빼앗긴 피까지 재생되는 것은 아니었기에, 금세 어질어질한 현기증이 찾아들었다.
사사삭!
사삭!
말도 안 되게 빠른 스피드.
좀처럼 공격을 받아칠 기회가 오지 않았다.
투다다다다다!
소총을 꺼내어 쏘아보았지만, 대다수 빗나갔을뿐더러 몇 발 맞더라도 일전의 해골 기사들처럼 아무런 타격도 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밖에 상주하던 박쥐들보다는 확실히 상위 개체에 속하는 모양이었다.
[관통] 옵션이 붙은 볼링공+1이라면 효과가 있겠지만, 아무리 150km/h의 속도로 자동추적을 날린다 해도 놈들의 속도를 따라잡기는 어려웠다.그저···
콰아앙!
애꿎은 회랑의 기둥만 때릴 뿐.
상황이 이쯤 되자,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이 있었다.
작은누나 김솔이 우리 중 최고의 맛집이었다는 사실.
사삭!
뱀파이어가 달려들었고···
타앙!
김솔이 배리어를 두른 주먹으로 놈을 쫓아냈다.
스삭!
탕!
이들은 서로 캐치볼을 하듯, 묘한 여름날의 생태계를 연출했다.
그리고 뱀파이어들은···
부우우우애애앵푸드득!
잊을 만하면 귓가에 소름끼치는 날갯짓 소리를 들려주었다.
“아, 진짜 개 짜증 나네!?”
김솔이 주먹을 휘둘렀다.
모기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여자.
그것이 내 누나였다.
그녀가 억울하다는 듯 하소연했다.
“왜 자꾸 나만 무는 거야?”
“땀내 나서 그런 거 아닐까?”
“죽는다, 김정겸.”
서서히 후텁지근한 느낌이 찾아들었다.
난공불락처럼 느껴지는 회랑.
당장은 방법이 없었다.
잡을 수 없다면 피하는 수밖에.
우리는 모기장 같은 포탈을 펼쳐두곤, 곧장 아공간 내부로 되돌아왔다.
팅! 팅!
뱀파이어들이 망에 걸린 모기처럼 포탈 주변을 기웃거렸다.
지저분한 날갯짓 소리를 흘리며.
***
“어렵네···”
아직 제대로 된 출구조차 찾지 못한 상황이다.
뱀파이어의 공격에 지속해서 노출된다면 앞으로의 여정이 얼마나 피곤해질지 불 보듯 뻔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결정을 내렸다.
두 번째 해골기사를 잡고 얻은 강화석을 사용하기로.
처음에는 소총을 강화하는 쪽을 고민했다.
하지만 소총은 탄환을 발사하는 역할을 할 뿐, 직접 적을 타격하는 물체는 아니었다.
소총에 [관통] 옵션을 달아봤자, 탄환에까지 그 효과가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그렇다고···
“···총알에 쓰기도 좀 그래.”
본래 소총은 공이가 탄피의 뇌관을 때리며 발사되는 구조다.
일종의 작은 폭발을 일으킨다는 소린데, 만일 [감전] 옵션이 이때 발동되기라도 한다면, 소총을 잡고 있는 내가 먼저 사망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
일전에 [점화]가 붙어 있던 불속성 강화석을 소총 대신 볼링공에 사용했던 것 또한 같은 이유였다.
그래서···
뭘 골랐냐고?
이곳은 실험실의 모의 가상공간.
팍스가 내가 주문한 상품의 홀로그램을 공중에 띄워주었다.
[전기 해충 모기퇴치기 특대형 IA-ic200, 가격은 59,000원입니다.]우우우웅-
은은한 푸른빛에 감싸인 신비로운 물건.
모서리가 둥근 타워 모양의 포충기였다.
“은근히 그럴싸하네.”
고심해서 고른 물건이다.
그 어떤 물건이라도 시속 150km의 공격 속도로 놈들을 타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니까.
공격이 최고의 방어라지만, 방어는 그 자체로 최고의 방어이기도 하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지난여름, 방충망을 넘어오던 우리의 그리운 아디다스 모기와 팅커벨 친구들이 떠올렸다.
탁! 타닥!
더운 여름, 우리의 날벌레 친구들을 한층 더 뜨겁게 만들어주었던 짜릿한 물건.
나는 그 물건에 어제 얻은 강화석을 사용해볼 작정이었다.
[강화석(D)]속성 : 전기
옵션 : [관통], [감전]
이러나저러나 이것도 [관통] 옵션이 부여되어 있었다.
소총이 통하지 않는 뱀파이어들에게도 충분히 위협적인 수단이 될 터.
나는 이 포충기를 방패, 또는 장벽처럼 두른 채 회랑을 벗어날 계획이었다.
팍스가 물었다.
[해당 상품에 강화석을 사용하시겠습니까?]“그래, 적용해 줘.”
[알겠습니다.] [강화석 한 개 받았습니다.] [강화 적용 중···] [강화가 완료되었습니다.]지지-지지직!
따악!
듣기만 해도 살벌한 소리가 포충기로부터 들려왔다.
저기에 손끝이라도 닿았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진정 흥미로운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시스템창이 띄워준 아이템 설명이었다.
—-
[전기 해충 모기퇴치기 특대형 IA-ic200 +1]등급: [레어]
설명: [정보를 불러오는 데 실패했습니다. 직접 설명을 입력할 수 있습니다.]
속성: [전기]
옵션: [관통], [감전], [도발]
—-
본래 강화석에 붙어 있던 옵션은 [관통], 그리고 [감전]이 전부였다.
하지만 한 가지 덧붙여진 것이 있었다.
“···도발?”
보통은 적의 어그로를 끄는 능력을 말한다.
더 좋은 타격 위치로 유인하거나, 또는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달리 말해···
“포충기가 하는 역할이잖아···?”
강화된 모기퇴치기에는 여전히 은은한 블루라이트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날벌레들을 사로잡기 위한 매혹적인 불빛.
그 기능이 강화된 옵션에 달려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구태여 포충기를 방패처럼 두를 필요도, 뱀파이어를 향해 힘들여 포충기를 ‘출하’할 필요도 없었다.
애당초 그렇게 쓰는 물건이 아니니까.
다시 말해···
그냥 밖에 놔두기만 하면 됐다.
***
따악!
딱!
전깃불에 콩 굽는 소리가 포탈 너머로 들려왔다.
옵션에 달린 [도발]이 뱀파이어들에게 확실히 먹혀들고 있었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다닥!
“오, 한놈 아주 제대로 걸렸나 보네.”
<실험실>의 홀로그램을 조작해 한땀한땀 수십 개를 이어 붙인 포충기였다.
각각에는 캠핑용 대용량 파워뱅크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새끼들 다 뒈졌어.”
우리의 김솔 여사께서 몽둥이를 들고 출타하셨다.
내가 <실험실>을 이용해 만들어 준 무기였다.
—-
[전기 해충 모기퇴치기 특대형 IA-ic200 + 나무 야구 배트]등급: [준 레어]
설명: [정보를 불러오는 데 실패했습니다. 직접 설명을 입력할 수 있습니다.]
속성: [전기]
옵션: [관통(-1)], [감전(-1)], [도발(-1)]
—-
푸른색 원형 코일이 감긴 야구 배트는 퓨전 펑크적인 광선검과 야만적인 부족장의 나무 방망이 사이를 오가는, 현대적이면서도 시대착오적인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진실을 말하자면···
‘···그냥 전기 파리채지.’
강화된 포충기와 비교하면, 성능 자체는 떨어졌다.
+1 표시가 사라졌고, 등급은 준 레어로 격하되었으며, 옵션에도 마이너스 딱지가 붙었다.
아무래도 강화된 아이템을 다른 사물과 조합하면서 기존의 힘이 약화된 듯했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관통’이 붙어있기는 했다.
다시 말해···
퍽!
퍼억!
김솔 여사께서 날아드는 뱀파이어를 후드려 패기에는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이어지는 연타석 홈런.
하지만 뱀파이어의 맷집을 감당하기엔 부족했는지, ‘포충 배트’는 때리는 족족 부러져버렸다.
김솔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유히 빠던을 선보이며, 내게 손을 내밀 뿐.
나는 상품으로 등록된 ‘포충 배트’를 새로 출하해주었다.
퍽!
빠악!
그렇게, 회랑에서의 여름나기가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거국적인 인간의 승리였다.
.
.
.
전깃불에 구워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뱀파이어들의 사체.
아쉽게도 강화석은 나오지 않았지만, 마석은 좀 챙길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우리는 낯선 존재감을 느꼈다.
뱀파이어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은은한 푸른빛을 보고 달려들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니.
큰누나가 작게 입을 열었다.
“···귀신?”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회랑의 기둥 사이를 타고 움직였다.
셋··· 넷··· 그 숫자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쿠구구구구!
석벽, 기둥, 회랑을 이루는 모든 구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치 하나의 생명체라도 되는 것처럼.
아치형 구조의 복도는 거대한 괴수의 목구멍을 연상시켰고, 결정적으로는 위아래로 내성의 계단이 톱니처럼 쏟아져나왔다.
두두두두두!
부르르 떨리는 자갈처럼 요동치는 바닥.
그 위아래를 뚫고 나온 계단이 서로 맞부딪히며 우리를 향해 쇄도했다.
그 모습은 마치···
‘···이빨?’
성의 구조는 당장에라도 우리를 먹어 치울 듯 맹렬했다.
며칠은 족히 굶은 짐승들의 우리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물론, 꼭 그럴 필요는 없었다.
<상품 회수>를 이용해 누나 둘을 데리고 포탈로 들어갔다.
그러곤, 안전한 창문이 된 포탈을 바라보며 천천히 바깥 상황을 살폈다.
드드드드드득!
쇠 톱니가 맞물리는 파쇄기에 들어간다면 이런 풍경을 보게 될까?
하지만 그 어떤 충격이 있어도 파괴되지 않는 아공간 포탈이었기에, 우리는 그저 돌무더기가 이리저리 뒤섞이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했다.
우리가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
그때, 풍경 속에서 죽은 뱀파이어의 사체가 돌무더기와 함께 두둥실 떠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계단을 이빨처럼 사용하는 괴상한 성채.
놈의 목적이 모두를 먹어 치우는 것이라면···
우리의 목적지는 놈의 대사 과정의 끝에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