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2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20화(220/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220화
악몽 (3)
드드드득!
달그락!
거센 진동과 함께 층계가 뜯겨나갔다.
위로부터 수백 마리의 해골이 굴러떨어졌다.
츠츠츠······!
계단은 빠르게 실체를 잃어가고 있었다.
주사위처럼 굴러떨어지는 두개골을 보고 있자니, <악몽> 전체가 거대한 게임판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
“뛰어!”
언제 꺼질지 모르는 층계다.
우리는 한껏 속도를 끌어 올렸다.
뜨드드드득!
부우욱! 부욱!
계단이 갈라지고, 구멍이 뚫리는 중에도 공간의 변화는 계속됐다.
상품을 가득 채운 매대가 난간 손잡이처럼 양옆을 채웠고, 열매가 탐스럽게 영근 나무들이 간격을 두고 자라났다.
중세식 성, 물류센터, 그리고 울창한 수림의 이미지가 어지럽게 뒤엉켰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쿠구구구구!
세 이미지는 전혀 조화롭지 않았다.
서로 다른 심상이 충돌하면서 <악몽>의 붕괴가 한층 더 빨라졌다.
파삭!
“으앗!”
“여기! 잡아!”
흑마법사들이 계단에 생긴 구멍에 발을 빠뜨렸다.
가뜩이나 최후방에 서 있던 흑마법사들이었는데, 칠흑이 그 뒤를 바짝 따라붙고 있었다.
“상품 회수!”
슈화아아아악!
부엔디아와 아우렐을 포함해, 모든 흑마법사를 포탈로 빨아들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아래쪽 계단이 우르르 블럭처럼 무너져 내렸다.
계단을 칠흑이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달그라라락!
붕괴하고 있는 것은 계단뿐만이 아니었다.
빼곡하게 앞을 막고 있던 해골들 또한 <악몽>이 가진 이미지의 일환.
심상들이 충돌하는 탓에 뼈가 부러진 해골들이 말 그대로 ‘시체’가 되어 우르르 밀려 내려왔다.
콰아아앙!
콰직!
성기사들이 죽은 해골들을 망치로 걷어냈다.
해골이 무력화된 덕에, 그래도 나아가는 속도가 한결 빨라졌다.
슈화아아악!
다음으로 수용한 것은 엘프들이었다.
이제 화살을 날릴 필요도 없었고, 추격해 오는 칠흑의 속도 또한 매서웠으니까.
나는 란슬롯이 이끄는 카멜롯의 기사들, 그리고 베론을 필두로 한 성기사들과 함께 쉬지 않고 발을 옮겼다.
그러던 중, 새로운 현상이 발생했다.
계단 앞쪽에서 아공간 포탈이 제멋대로 생겨났다.
그리곤······.
슈우우우욱!
“아버지?”
“정겸아!”
대뜸 아버지가 튀어나왔다.
뿐만 아니라, 조금 전 수용한 흑마법사들까지 덩달아 쏟아졌다.
“제기랄!”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던 부엔디아의 말이 떠올랐다.
외부와의 소통으로 인해 빠르게 붕괴하고 있는 <악몽>.
엘븐하임과 물류센터의 이미지가 포탈을 타고 넘어왔던 것처럼, 이번에는 아공간에 있던 사람들이 새어 나오는 것이었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상품 회수!”
구멍 난 독이나 다름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새어 나온 사람들을 다시 아공간에 쓸어 담는 것.
계단 밑으로 추락하려던 아버지와 흑마법사들을 겨우겨우 상품 회수로 집어넣었다.
찰나였지만, <악몽>은 아버지의 심상을 반영했다.
계단에 푸른 잔디가 깔렸고, 적들의 모습이 이번에는 고블린으로 변했다.
의정부 집에 갇혀 고블린들에 둘러싸여 있었던 때의 기억이 악몽으로 드러난 것 같았다.
달그락!
끄르륵······.
그와는 별개로 해골들은 더 이상의 변화를 견디지 못했다.
대다수가 반쯤 가루, 또는 진흙이 되어 우수수 무너져 내렸다.
지이잉!
그 와중에도 나는 <상품 회수>를 발동하고 있었다.
제멋대로 열린 포탈에서 계속 일행들이 튀어나왔으니까.
다이치가 나왔을 땐 타종 소리와 함께 절간 기둥이 세워졌다.
쿠퍼와 제임스가 나왔을 때는 주변이 용광로의 열기로 채워졌다.
그리고······.
“정겸씨!”
쿠우우우웅!
이번에 나타난 것은 이용수였다.
그는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기간트를 타고 있었다.
조종에 신경을 쓴 것인지, 다행히 밟은 자리가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다.
“이야기 듣고 왔습니다! 타시죠!”
미리 준비하고 온 이용수였다.
아공간에서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 모양.
기간트가 뻗은 손에 올라타자, 이용수가 뒤에 달린 안장까지 나를 올려주었다.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나 또한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참이었으니까.
터질 듯이 비명을 지르는 허벅지, 끊어질 듯 아픈 허리까지.
이곳이 꿈속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라울 정도였다.
터벅! 터벅!
하지만 기사들, 성기사들은 여전히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곧장 포탈을 열어둔 채 외쳤다.
“일단은 다 들어가 있어!”
“주군!”
슈우우우욱!
<상품 회수로> 기사들과 성기사들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란슬롯이 무언가 대답하려는 것 같았지만, 말을 주고받을 시간은 없었다.
기사와 성기사들이 사라져서인지, 계단에서 카멜롯 성의 모습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그 대신······.
드드드드드!
계단이 회색 아스팔트로 뒤덮였다.
물류센터의 재고 선반이 더욱 즐비하게 늘어섰다.
이용수, 그리고 나의 심상이 반영된 결과였다.
물론 그렇다 한들 붕괴가 멈춘 것은 아니었다.
아스팔트가 쩌적 갈라졌고, 사방에 싱크홀이 생겼다.
땅이 울리며 선반에 꽂혀 있던 상자들이 블럭처럼 쏟아져 내렸다.
쿵! 쿵!
쿵! 쿵!
이용수의 기간트가 미친 듯이 계단을 올랐다.
세 칸, 네 칸, 두 번의 점프만으로 새로운 층계참에 다다랐다.
슈우우우우욱!
그 와중에도 내 포탈에서는 사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엘프, 레텔인, 흡혈귀······. 그리고 내 가족들까지.
이용수가 계단을 뛰어오르는 사이, 나는 저글링을 하듯 내 사람들을 주워 담았다.
“헉, 헉!”
이용수의 거친 숨이 들려왔다.
구동부가 몸에 연결된 구조.
기간트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용수 자신 또한 뛰는 수밖에 없었다.
쿵! 쿵!
쿵! 쿵!
바닥은 아스팔트에서 어느새 자갈 무늬의 타일로 바뀌어 있었다.
흔하디흔한 아파트 계단.
이용수의 심상이 또다시 계단의 이미지를 바꾼 것이었다.
오래전 기억에서처럼, 이번에도 그는 무릎을 혹사시키고 있었다.
쿵! 쿠웅······.
쿵! 쿠우웅······.
서서히 발이 느려졌다.
물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무겁게.
근육의 피로가 천천히 그의 다리를 잡아끌었다.
그렇게, 꼭대기 신전이 지근거리까지 다가왔을 즈음······.
콰지직!
기간트의 몸체가 갸우뚱 옆으로 기울었다.
왼발을 지탱하고 있던 계단이 그대로 깨져나갔다.
하지만 이용수는 이미 다른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철컥!
오른손이 번쩍 어깨 위로 솟았다.
나를 단단하게 붙잡은 기간트의 차가운 주먹.
몸체가 어두운 심연으로 무너지는 와중에도, 이용수는 길게 팔을 당겼다.
그러곤······.
휘이이익!
꼭대기에 놓인 신전.
그 입구에 어른거리던 푸른색을 향해 나를 집어 던졌다.
쉬이이이이이익!
<악몽>의 풍경이 눈앞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대부분이 어둠에 삼켜진 탓에, 제대로 보이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자고 일어난 뒤의 꿈이, 햇빛을 만나 녹듯이 사라지는 것처럼.
“용수 씨! 그거 빨리 버려요!”
“예! 정겸 씨!”
철컥!
취이이이이익!
거친 증기를 뿜으며, 기간트의 해치가 열렸다.
기간트를 벗어던진 이용수가 해치를 밟고 뛰어올랐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포탈이 그를 내 물류센터로 끌어당겼다.
그렇게······.
쏴아아아아!
선명한 푸른빛이 시선을 덮쳐왔다.
***
우리는 그렇게 <악몽>을 벗어났다.
꿈을 꾸어줄 사람이 없는 한, 악몽은 존재할 수 없는 법.
부엔디아에 따르면, <악몽>은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소멸하게 되어 있었다.
그와는 별개로······.
‘······여긴 또 뭐야?’
처음 <악몽>에 진입했던 장소가 아니었다.
신전을 통과하면서 아예 다른 공간으로 전송된 모양.
한데, 그 풍경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화르르륵!
고도의 시설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매끈하고 둥근, SF영화를 연상시키는 건물들.
하지만 어째서인지 하나같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주변에는 시체들이 싸움의 흔적과 함께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그때,
“끄으으으······.”
수북하게 쌓인 시체로부터 옅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들이 누구인지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날개 달린 천사들, 파우스트의 법관들, 마지막으로 혈맹의 흡혈귀들까지.
온건파를 구성하는 상위 차원의 종족들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신음 소리를 흘리던 것은 혈맹의 원로 흡혈귀였다.
사삭!
일단 나는 이용수와 함께 아공간으로 숨어들었다.
그러곤 형, 성겸에게 부탁해 혈겸을 원로에게 보냈다.
원로가 입은 상처는 모르는 눈으로 보아도 영락없는 마법의 흔적이었다.
“원로님!”
“혈겸이냐? 어떻게 여길······? 쿨럭!”
“예! 원로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혈겸이 천연덕스럽게 원로에게 접근했다.
갑작스러운 혈겸의 등장에 원로는 의아한 듯했지만, 그를 의심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아예 그럴 여유조차 없는 것 같았다.
“······다차원의 역사가 오늘로 종지부를 찍었다. 그라디바의 무한한 가치와 유구한 개척의 역사가······. 쿨럭! 오늘로 막을 내렸어! 원통하다······! 조금이라도! 하루만이라도 빨리 저 미치광이들의 계획을 알았더라면······! 쿨럭!”
그에게 남은 것은 후회와 푸념뿐이었다.
입안 가득 진득한 핏물을 뱉어내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는 그.
그러거나 말거나,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였다.
혈겸이 슬픈 낯빛을 띠며 식은 원로의 손을 붙잡았다.
“대체 누가 원로님을 이렇게 했습니까? 그놈들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개화파! 아케인! 그 미치광이들이 <본사>로 갔다. 각성의 뿌리와 원초의 가치가 있는 그곳에······.”
“본사······ 말씀이십니까?”
원로가 파들파들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작은 건물만 한 크기의 포탈이 놓여 있었다.
윤곽에 붉은빛과 푸른 빛이 줄무늬처럼 교차하는 독특한 색상의 포탈이었는데, 그 크기가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잠깐, 저건······.’
가만히 보니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악몽>에서 빠져나온 포탈.
그로부터 흘러나온 <악몽>의 잔해가 그리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쿠구구구구······.
크기가 줄어들면서, 줄무늬 포탈이 세차게 진동했다.
그 끝을 예감한 것인지, 혈맹의 원로가 팔다리를 흔들었다.
거품을 물며 악다구니를 쳤다.
그리고······.
“이럴 줄은 몰랐다. 갑자기 이런 식으로 세상이 멸망할 줄은······!”
꽈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그의 비명을 집어삼켰다.
<악몽>의 잔해를 집어삼킨 포탈이 폭발을 일으킨 것.
다행히 내가 혈겸을 <상품회수>로 끌어들인 다음의 일이었다.
삐이이······.
폭발의 여운은 포탈 안쪽까지 전해졌다.
바깥이 어떤 장소인지는 모르겠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게 분명했다.
“이제 어떻게 하죠?”
이용수가 물음이었다.
줄무늬로 된 포탈을 타고, <본사>로 향한 개화파 세력.
하지만 포탈이 사라진 탓에, 놈들을 추격할 방법이 묘연해졌으니까.
그러나······.
“따라가야죠.”
지이잉!
아공간 한편에 줄무늬로 된 포탈이 피어올랐다.
폭발과 함께 사라지기 직전, 포탈 자체를 아공간에 수용한 참이었으니.
‘돼서 다행이지.’
포탈은 물질이 아닌, 일종의 현상이었다.
수용이 가능할지 반신반의했지만, 다행히 결과는 성공이었다.
이렇게 아공간 한쪽에 똑같은 포탈을 피워낼 수 있었으니까.
지이이이······.
사람이 충분히 지나갈 만한 크기.
이제 놈들의 <본사>로 향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