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22)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22화(222/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222화
본사 (2)
슈화아아아악!
우리는 계속해서 장막을 뚫고 들어갔다.
양파 껍질을 벗기며 들어가는 느낌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내부는 좁아지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두드러지는 것 딱 하나였다.
둥둥 떠다니던 입방체들의 이미지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
바닥을 굴러다니는 것도 있었고, 줄에 매달린 것처럼 하늘을 왔다 갔다 하는 것들도 있었다.
‘······장난감?’
투명한 입방체들의 모습을 본 소감을 그랬다.
공처럼 자수가 박힌 구체, 글씨가 적힌 정육면체.
좀 더 들어갔을 때는 아예 새나 말과 같은, 동물의 형상을 한 것들도 어렵잖아 발견할 수 있었다.
툭. 투둑.
그러는 중에도 시체는 계속 발견됐다.
반투명한 장막이 하나둘 뱉어놓는 마법사들의 시체.
아기자기한 입방체 때문인지, 시체들의 모습이 한층 더 끔찍해 보였다.
슈화아아악!
한층 바람이 거세져 고개를 숙였다.
본 드래곤의 뼈를 단단히 붙잡고 있는 상태.
슬쩍 뒤로 고개를 돌리자, 마찬가지로 머리와 수염을 휘날리고 있는 부엔디아가 눈에 들어왔다.
“왜 마법사들이 죽어있는 걸까요? 이놈들도 개화파인지 그쪽 세력이었을 텐데.”
“그중에서도 파벌이 있었던 거겠지. <본사>에 들어오는 데까지는 그럭저럭 뜻이 맞았겠지만 말이야.”
원래는 상공회의소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던 놈들이다.
온건파와 개화파로 분리된 것도 모자라 한 번 더 내분이라니.
머릿수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었을 텐데도, 쉬워지기는커녕 점점 더 어려운 적을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챙챙. 슈우우우욱!
또다시 몇 겹의 장막을 뚫고 들어갔다.
투명 입방체들이 잇따라 정면으로 날아온 탓에, 이용수가 급하게 핸들을 꺾었다.
드드득!
따각! 따가각!
본 드래곤의 뼈로 만든 핸들이 경쾌한 뼈 소리를 냈다.
곡선을 타고 전해지는 압력에 달팽이관을 댕댕 울렸고, 김솔이 새 방어막을 주변에 둘렀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뭘까?’
나는 입방체들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했다.
특별히 흥미가 있는 것도, 그렇다고 낯이 익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저 투명한 사물들로부터 남모를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미 알고 있던 무언가를 또 다른 형태로 마주하는 느낌.
그 기묘한 감각을 느끼며, 우리는 전진을 거듭했다.
그러던 중······.
“쉿! 잠깐 멈춰보게!”
부엔디아가 번쩍 주먹을 들었다.
이용수가 고삐를 당겨 본 드래곤을 멈춰 세웠는데, 바닥에는 지금까지를 통틀어 가장 많은 마법사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내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 너머에 마법사들이 대거 모여있네. 그라디바의 기운도 느껴지고······ 미리 상황을 파악한 뒤에 들어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여기가 중심인 모양이네요?”
“음······ 그건 아닐걸세. 공간 자체는 이 뒤로도 쭉 뻗어있는 것 같거든. 놈들이 이 앞에 모여있을 뿐이지.”
이미 한참을 날아온 참이다.
그런데도 아직 중심에 도달하지 못했다니.
새삼 <본사> 공간의 괴물 같은 크기가 실감이 되었다.
이러나저러나, 당장은 눈앞에 적을 맞닥뜨린 상황이었다.
부엔디아의 말처럼, 대뜸 본 드래곤으로 이목을 잡는 것보다는 먼저 상황을 살피는 편이 좋을 터였다.
어쩌면 놈들의 허점을 먼저 파고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구멍 하나 내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김솔이 직접 나서, 커다란 방어막을 주먹 크기로 뭉쳤다.
그러곤 반투명한 장막을 중화시켜 작은 크기의 구멍 몇 개를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저마다 구멍에 시선을 맞췄다.
흰 로브를 걸치고, 넥타이를 맨 아케인의 마법사들.
개화파 중에서도 최후의 권력을 쟁취한 이들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프랑코 백작.’
성혈을 탈취해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을 알린 장본인.
그가 <본사>, 즉 최후의 장소에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제야 알겠다는 듯, 부엔디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 남아 있는 건 프랑코 가문의 마법사들뿐이야.”
내분이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프랑코 백작이 개화파의 다른 세력들을 축출했던 것.
개화파와는 다른, 프랑코 가문만의 목적이 따로 있다는 뜻이었다.
놈들의 의도를 먼저 파악했으면 싶었다.
분명 이곳 <본사> 안에 있는 그라디바와도 관련이 있을 테니까.
어쩌면 죽을 수도 있지만······.
“혈겸을 보내보죠.”
백작의 제자를 먼저 보내보기로 했다.
***
화르륵!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물리적인 불이 아닌, 마력으로 피운 불.
프랑코 백작과 아케인의 마법사들이 이를 둘러싸고 모여 있었다.
그때, 경계를 서던 마법사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침입자다!
-안쪽으로 들어간다! 잡아!
퍼엉! 퍼어엉!
몇 발의 매직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중요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인지, 그 이상의 강한 마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펄럭!
덕분에 새카만 날개를 단 침입자가 어렵지 않게 내부로 파고들었다.
“허허, 이것 참.”
프랑코 백작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러곤 손을 들어 마법사들에게 공격을 중지하라 명했다.
벌떡 몸을 일으킨 백작에게 검은 날개를 접은 혈겸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이게 누구야······. 혈겸 자네 맞는가?”
혈겸의 등장에도 백작은 그리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싱긋 미소를 지어 보일 뿐.
“······.”
혈겸은 대답 대신, 천천히 주변을 관찰했다.
부엔디아의 말처럼, 이곳은 아직 중심부가 아니었다.
여전히 내부로 이어지는 반투명한 장막이 둘려 있었다.
하지만 그 밖에도 눈여겨 볼만한 것은 많았다.
특히, 투명한 입방체들이 제법 구체적인 형상을 띄고 있었다.
모빌처럼 하늘을 둥둥 떠다니고 있는 새 모양, 평평하고 흐릿한 무지개 모양, 그리고 허공에 매달린 넥타이 모양······.
‘저건······?’
우리는 <추적 거울>을 통해 혈겸의 시선을 공유받고 있었다.
투명하게 조각된 사물들을 보며, 그제야 그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함께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던 일행들에게 말했다.
“모두 비석에 적혀 있던 물건들이네요.”
“흑색 법률 말인가?”
“네, 개화파 놈들이 뿌리려던 것 말고, 백작에게서 빼앗았던 그 비석이요. 그것만 내용이 다른 게 이상하기는 했는데······.”
“아하······!”
부엔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내용을 해독해주었던 것 또한 부엔디아였으니까.
어린애 일기 같은 내용이 적혀 있어 이상하게 여겼던 참이다.
한데 이번에는 그 내용이 투명한 조각으로 빚어져 <본사>의 내부를 채우고 있는 것이었다.
혈겸이 발견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커다랗게 그려진 푸른 마법진,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는······.
‘······요람?’
갓난아이가 눕혀져 있을 것만 같은, 작은 요람이 놓여 있었다.
“혈겸.”
프랑코 백작이 눈앞까지 다가온 탓에, 혈겸은 잠자코 시선을 거뒀다.
바짝 긴장한 혈겸과는 달리, 백작은 여유롭게 혈겸의 어깨를 두드렸다.
“누군가 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네. 온건파에서 살아남은 잔챙이가 있는가 걱정했는데, 자네일 줄이야. 대체 여긴 어떻게 온 건가?”
“포탈을 타고 왔습니다. 줄무늬 색으로 된······.”
달리 할 말이 없어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그럼에도 백작은 백번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랬군. 자네라면 그럴 만하지. <본사>는 다차원 근원의 비밀이 담겨 있는 공간이니까. 세계의 진실을 마주하고 싶었을 테지? 알량한 혈연에 집착하는 것보다 더.”
인재개발원에서의 혈겸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백작.
친절하게 없는 이유까지 알아서 만들어주고 있었는데, ‘알량한 혈연’을 유독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혈맹의 복수 같은 소리를 지껄인다면 당장에라도 목숨을 끊어주겠다는, 무언의 경고였다.
“마지막 수업을 해주지. 그 정도면 자네도 만족할 테니.”
프랑코 백작이 나지막이 덧붙였다.
.
.
.
타닥! 탁!
푸른 불꽃이 타들어 갔다.
마법사들이 의자를 가져다준 참.
혈겸은 불길 옆에 마주 앉아 프랑코 백작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다차원의 중심인, <본사>에서 듣는 ‘마지막 수업’을.
잠시 우두커니 불을 바라보고 있던 백작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본사>는 최초의 그라디바가 잠들어 있는 곳, 따라서 각성의 축복을 처음으로 꽃 피운 곳으로 알려져 있지. 물리 세계 이면의 다차원 세계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각성자를 탄생시켰던 태초의 공간······. 하지만 이 공간의 진정한 적자(嫡子)가 아케인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들을 많지 않아.”
“······마법이 각성 능력보다 앞선다는 말씀이십니까? 역사적으로요.”
“이해가 빠르군, 정확히 말하자면 마법 전체가 아니라 프랑코 가문의 시작이 그렇네.”
“가문이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소리였다.
가문의 시작을 세계의 시작에 견주고 있었으니까.
백작은 그런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다차원 세계는 단 두 가지에서 시작되었네. 첫째는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텅 빈 공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움직이는 사물들. 내적 공간은 사유를 형성해.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사유는 인적 관계를 배제한 사물의 움직임을 이끌어 내지. 우리가 발휘하는 마법, 그리고 각성 능력처럼 말이야.”
혈겸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립된 공간과 움직이는 사물들.
그건 이곳 <본사>와, 부유하는 입방체들을 이야기하는 것일 테니까.
다시 시선을 가져온 혈겸에게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사물을 움직이는 내적 사유······, 프랑코 가문은 바로 그 <본사>의 힘을 가장 원본에 가깝게 계승해왔어. 비전 마법인 염동(念動)으로 말이지.”
그것이 개화파의 다른 세력들을 제거한 이유였다.
다른 차원과 종족은 물론, 아케인의 다른 가문들까지 모두.
<염동>을 발휘할 수 있는 프랑코만이 <본사>를 계승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을 지닌 유일한 가문이었으니까.
달리 말하자면, 이곳에 침입한 혈겸을 살려둘 리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덜컹.
백작이 먼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마법진에 놓인 요람을 향해 움직였고, 혈겸도 그를 따라갔다.
뚜벅뚜벅 앞장서 걸으며, 백작이 입을 열었다.
“이쯤이면 세계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은 모두 풀었겠지. 사실 열정적으로 지혜에 뛰어드는 자네를 볼 때면······ 억울하게 죽은 내 아들이 떠오르곤 했었어. 워낙 탐구심이 많은 아이라 그대로 자라났다면 자네처럼 열정적인 학생이 되었겠지.”
억울하게 죽은 아들.
마법진 위에 덩그러니 놓인 요람.
장난감처럼 생긴 투명한 입방체들까지.
우리는 그제야 프랑코 백작의 진짜 목적을 가늠할 수 있었다.
‘······죽은 아들의 부활인가.’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지금 우리는 세계의 종말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니까.
혈겸이 요람에 가까이 다가갔지만, 백작은 제지하지 않았다.
그저 슬픈 눈으로 우두커니 요람을 바라보고 있을 뿐.
쿠구구······.
요람에는 어린아이가 누워 있었다.
푸른색 에너지로 뒤덮인, 불완전한 형상.
그 정체가 마지막 남은 그라디바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백작이 바랐던 것은 죽은 아들의 소생, 그것 하나뿐이었을 지도 몰랐다.
개화파가 주장하던, 미치광이 같은 세계의 ‘정화’가 아니라.
“······스승님.”
혈겸은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곧, 헉 소리와 함께 목소리를 집어넣었다.
지이이······.
파랗게 빛나는 마법진의 구석.
바로 그곳에 흰 로브를 입은 노인들이 꼿꼿하게 서 있었으니까.
그들은 마법진에 힘을 빼앗겨, 온몸이 해골처럼 변한 채 죽어있었다.
혈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재빨리 요람으로 시선을 돌린 다음이었다.
“이 아이가 깨어나면······ 세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자네답지 않은 질문이군. 상공회의소의 오랜 역사를 돌이켜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을. 새로운 세계는 언제나······.”
백작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흥건한 피와 폭력에서 시작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