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29)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29화 (본편완결)(229/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229화
사물들 – (본편완결)
두두두두!
헬멧을 눌러쓴 군인들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빛처럼 직선을 그렸고, 포탄이 괴물들의 정수리 위로 떨어졌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새카만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괴물들의 모습은 건재했다.
합참본부를 향해 몰려드는 괴물들을 보며, 유성철이 입술을 짓씹었다.
“탄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모조리 쏟아부어!”
피웅! 피웅!
병사들은 말 그대로 총을 갈기고 있었다.
수시로 탄창을 갈아 끼웠고, 총알이 걸리면 아예 새 총을 꺼내 들었다.
정겸의 보급이 아니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전투였다.
그것도 평범한 무기가 아닌, 강화석으로 강화된 병기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물들은 총알과 포탄을 튕겨내며 꾸준히 밀려들었다.
“제기랄! 대체 왜 총알이 안 박히는 거야!”
상공회의소의 공지도 없었다.
지금껏 지구에 나타난 것 중 가장 강한 적이라 해봤자 5위계 수준.
아무런 소식도 없이, 그 이상의 적들이 그것도 떼거리로 지구를 침공하고 있는 것이었다.
치익!
손에 들린 무전기에서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경비단 쪽에서 지원 요청입니다!”
“도와줄 사람 없어! 그냥 빠지라고 해!”
정겸의 포탈이 남아 있었다.
여차하면 요새를 버리고 포탈로 후퇴하면 될 터.
엘븐하임 같은 비교적 안전한 지역으로 병사들을 대피시킬 생각이었다.
다다닥!
그때, 유성철이 선 초소 쪽으로 병사 하나가 달려왔다.
“본부장 님! 피하셔야 합니다!”
“됐으니까, 작전과 애들 데리고 먼저 빠져! 내가 지통실로 돌아갈 테니까!”
물론 그 계산에 유성철 자신은 빠져 있었다.
지금 공격받고 있는 곳은 비단 서울뿐만이 아니었으니.
전국 각지에서 괴물이 창궐했는데, 각 지역의 대표들이 합참본부의 지휘에 따르고 있었다.
유성철마저 자리를 비운다면 지역 대표들 또한 혼란에 빠질 터.
그 때문에 유성철은 마지막까지 지휘통제실을 지킬 생각이었다.
그때······.
“본부장님! 저길 보십시오!”
“어? 저게 뭐야?”
병사가 하늘을 가리켰다.
대기권을 파고드는 정체불명의 비행체.
그 비행체가 합참본부를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으니까.
유성철과 병사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앙!
거대한 폭음과 함께 주변이 매연으로 가득 찼다.
“제기랄!”
몸을 움츠렸던 유성철이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것은 파괴된 합참본부가 아니었다.
지이이잉!
두꺼운 황금빛의 방어막이 본부를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
비행체에서 걸어 나오는 누군가를 보며, 유성철은 비로소 방어막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차원 총수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 것 같았지만, 유성철은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건, 정겸이 지구에 도착했다는 것이었으니까.
마침내 바깥에서의 싸움을 마무리 지은 채.
정겸은 가볍게 유성철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러곤 빠르게 현장으로 뛰어나갔다.
지잉!
지잉!
사방에서 포탈이 열리며, 이종족들로 이루어진 지원군이 쏟아져나왔다.
엘프들의 화살, 흡혈귀들의 손톱에 벽처럼 느껴지던 괴물들이 두부처럼 꿰뚫렸다.
“······!”
유성철은 끝까지 자리를 지킬 생각이었다.
더 이상 물러설 필요가 없었다.
***
그라디바와의 싸움을 마무리 지은 다음이다.
우리는 곧장 유성철이 있는 합참본부로 합류했고, 서울부터 부산, 제주까지, 그사이 출몰한 상당수의 괴물을 소탕했다.
완전 씨를 말리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지역 대표들에게 뒤처리를 맡길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면 이제······.”
급한 불을 껐으니, 치르던 일을 마무리할 때였다.
상공회의소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그라디바까지 처리한 참.
하지만 아직 놈들이 운용하던 시설이나 설비, 특히 포탈 중 일부가 여전히 운용되고 있었으니까.
부엔디아가 감격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다 오는구만.”
<본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각 차원으로 이어지는 포탈 관리국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당장은 마르케스의 흑마법사들, 그리고 베로니카의 흡혈귀들로 조사단을 꾸려 파견하기로 했다.
상공회의소와 그라디바가 사라졌다.
남은 세계는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부엔디아가 그에 대해 한 가지 단서를 남겨주었다.
“우리가 지닌 능력들 또한 서서히 힘을 잃게 될 걸세. 각성 능력은 물론······ 마법, 흑마력, 종족적인 특성에 따라 발현된 기질까지 모두. 그라디바가 사라졌으니까.”
사뭇 잘 상상이 되질 않았다.
알게 모르게 아공간 능력이 친숙해졌던 모양.
부엔디아의 말을 듣고 나니, 한 가지 염려되는 부분이 있었다.
“각성 능력이 사라지면······ 제 아공간에 넣어둔 그라디바는 어떻게 되는 거죠?”
“그대로 함께 사라져 버릴 수도, 어쩌면 밖으로 쏟아져나올 수도 있겠지. 하지만 걱정할 일은 아니야. 구체가 되었다는 건 불순물이 완전히 소거되었다는 뜻이니까.”
“누군가 와서 다시 깨우려 한다면요?”
“각성 능력이 사라질 시점이 아닌가? 그쯤 되면 그럴 힘도 없을 걸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그라디바가 다시 깨어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일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상위 차원 대부분이 사실상 공멸한 상황이지만, 또 누군가가 패권을 잡겠다며 설치고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까.
부엔디아의 예고처럼 모든 각성 능력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다차원의 혼란을 수습할 만한 별도의 규율이 필요할 터였다.
이 부분에서는 엘프들의 수장, 엘리가 나섰다.
“갈라돈 의회에서 다종족들을 아우르는 새로운 법안들을 고안해 볼게요. 핀드릭 님도 도와주신다고 하니······ 나중에 정겸 씨가 한 번 더 검토해 주시기로 하고요.”
한 번 맡겨보기로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엘프들의 인성만큼은 믿을 수 있었으니까.
엘븐하임에 수천 명의 피난민을 밀어 넣었음에도 불편한 기색 하나 없던 그들이다.
더불어 사는 방법에는 엘프들 만한 전문가가 없을 터.
이번에는 엘리가 궁금하다는 듯 내게 되물었다.
“그럼 정겸 씨는 이제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저는······.”
바깥의 일은 바깥사람들에게 일임했다.
나는 나대로 지구의 문제를 신경 쓸 차례였다.
***
한국은 얼추 정리가 끝난 상황이다.
하지만 그 밖의 국가, 지역들은 그렇지 못했다.
괴물들이 여전히 그득하게 쌓여 있었고, 능력을 앞세운 소수의 각성자가 군벌처럼 세력을 형성해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는 곳도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난 1년여 시간의 전투로 인해, 문명과 생태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파괴된 상태였다.
‘그렇다면······.’
내가 떠올린 방법은 딱 하나뿐이었다.
팍스FC의 배송지역을 전 세계로 넓히는 것.
그간 광활한 다차원을 누볐으니, 이제 와 지구에 배송을 시작한다 해도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었다.
물론, 이용수와 함께 이동할 생각이었다.
“인덕원까지만 가려고 했었는데······.”
이용수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군포 물류센터에서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리는 것.
이렇게나 함께 오래, 그것도 멀리 이동하게 될 줄은 피차 예상하지 못했다.
운송 수단은 혈맹에게서 얻은 십자선을 이용하기로 했다.
본 드래곤보다야 승차감이 훨씬 좋기도 하고, 궤도 비행에 특화된 물건이기도 했으니.
“가시죠.”
푸쉬익······!
이용수가 버튼을 누르자 십자선의 문이 열렸다.
조금 늦었지만, 지구에도 ‘로켓 배송’을 시작할 계획이었다.
.
.
.
슈우우우웅!
꽈아아아아아앙!
<로켓>이 지구 한복판을 강타했다.
거뭇거뭇하게 오염돼 있던 동해 바다에도, 언데드가 창궐해 새카맣게 타버린 북한의 청진 지역과 블라디보스토크에도 자연력이 담긴 <로켓 프레시>를 뿌려주었다.
부욱! 부우욱!
<로켓>이 떨어진 자리에 울창한 수풀이 자라났다.
폭발이 오염된 물과 토양을 집어삼켰고, 맑고 깨끗한 자연이 알갱이처럼 퍼져 나왔다.
“지도를 아예 다시 그리는 것 같은데요?”
이용수가 속이 다 후련하다는 듯 웃었다.
우리가 떠 있는 위치는 고도 5만 피트 이상의 상공.
눈앞에 놓인 것은 생생한 지도 그 자체였고, <로켓>이 떨어질 때마다 오염된 얼룩을 싱그러운 색채로 뒤집고 있었으니까.
“출하.”
슈우우웅!
슈우우우웅!
<로켓 프레시> 뿐만이 아니었다.
부상자가 많은 곳에는 <로켓 헬스케어>로 광역 힐을 넣어주었고, 보호가 필요한 곳에는 <로켓 배리어>를 쏘아 안전지대를 설치해주었다.
식량을 비롯한 기본 물자를 보급해준 것은 물론이었다.
그리고······.
퍼어어엉!
다다다다닥!
정착촌에는 <로켓 건설>을 발사했다.
아버지의 건설 능력이 들어간 <로켓>.
<로켓>이 무너진 건물 사이를 파고들었고, 부러지고 휜 철근을 새로 엮어, 생존자들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물론, 지원만 한 것은 아니었다.
괴물들이 밀집한 구역, 또는 각성자들이 횡포를 부리는 지역에는 폭액이 담긴 순수한 <로켓>을 쏘아 보냈으니까.
“여기는 두고 보기로 했고······. 저기는 족치기로 했고······.”
데이터는 유성철로부터 얻었다.
그는 합참본부에 머무르는 동안, 전 세계에 자리 잡은 각성자들의 세력 구도를 누구보다도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니.
이용수가 대단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그걸 어떻게 다 알고 계시대요?”
“세계 정부 만들어야 한다고······.”
나를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하겠다는 유성철을 가까스로 뜯어말렸다.
별의별 감투를 만들어 씌우려 했는데,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을뿐더러 잘 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자잘한 행정은 유성철이나, 형 성겸에게 맡기기로 했다.
경력으로 보나, 전공으로 보나 나보다 훨씬 더 적합한 사람들이니.
나는 그저 일상을 되찾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본부장님이 많이 서운해하셨겠는데요.”
“대신 선물이라도 사가죠, 뭐······.”
“착륙해서요?”
“물류센터에 해외 과자 있어요.”
지구 곳곳에 <로켓>을 투하하는 일이다.
십자선을 타고 움직이는 데도,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지역을, 그것도 여러 번에 걸쳐 둘러보아야 했으니.
모두가 세계의 재건을 위해 힘썼다.
나 또한 이용수와 함께 지구를 수십 번이나 맴돌았다.
***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초저녁의 어둠이 깔리는 잔디밭.
새빨갛게 달아오른 숯 위로, 길쭉한 삼겹살이 지글지글 끓어올랐다.
“끼에에에에.”
괴물이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마침내 태어난 내 조카가 칭얼거리고 있는 것.
혈겸이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아이를 달래주고 있었다.
‘저래도 되나?’
사실 혈겸이나 성겸이나 그게 그거다.
아빠가 둘이라 정체성에 혼란이 오지 않을까 싶지만, 그거야 당사자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
그러거나 말거나, 이용수의 딸 유정이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조카를 바라보고 있었다.
치이이익.
치이익······.
고기 굽는 소리가 먹음직스럽게 들렸다.
테이블 한편에는 진한 된장찌개와 노릇노릇한 버섯구이 옆으로, 엘프들이 가져다준 싱그러운 쌈채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집게를 잡은 아버지가 부산스럽게 우리를 불러세웠다.
“야, 이거 익었다, 먹어. 먹어!”
가족들은 더이상 아공간에서 지내지 않는다.
지구는 안전해졌고, 희여멀건한 아공간보다야 청명한 지구의 하늘이 훨씬 더 보기 좋을 테니까.
멸망이 지나간 이래, 아공간은 지금껏 과분했다는 듯 내 가족들을 토해냈다.
“앗!”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바비큐에 빠질 수 없는 탄산음료가 빠진 것.
미지근한 물통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실로 중차대한 위기였다.
“내가 가져올게.”
“스킬 안 쓰고?”
“이럴 땐 안 쓰는 게 좋아.”
지구 곳곳에 <로켓>을 뿌리며 알게 된 사실이다.
그라디바를 가두면서, 내 아공간 능력이 불안정해졌다는걸.
무식하게 레벨 업을 거듭한 결과였는데, 자칫하다 사이다가 시속 500km로 발사되기라도 한다면 파티고 뭐고 없는 거였다.
.
.
.
“······조용하네.”
포탈을 타고 들어온 아공간.
작은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이제 아무도 없었다.
일상이 돌아오면서, 사람들 또한 본연의 자리를 되찾았으니.
물류센터 또한 허전한 아공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모든 시설이 가동을 멈췄다.
더이상 불빛을 내지 않는 AGV로봇.
그래서인지 선반에 내려앉은 먼지가 유독 더 선명했다.
뚜벅뚜벅.
나는 음료수를 챙기기 위해 재고 선반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건가?”
덜커덩.
사이다 여섯 병이 한꺼번에 딸려왔다.
낱개로 팔면 마진이 남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아니나다를까 질긴 비닐이 여섯 덩어리를 한 운명으로 동여맸다.
“······.”
휘이이······.
숨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린 선반 사이로 바람이 오갔고, 물류창고가 큰 숨을 들이고 내쉬었다.
털썩.
나도 모르게 자리에 주저 않았다.
결코 그럴 리 없을 텐데도, 잠자코 사물들의 숨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푸석한 냉기가 골반을 타고 올라왔다.
“팍스.”
텅 빈 아공간이었다.
거대한 물류센터가 들어있다지만 그게 그거였다.
그래도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고마웠다.”
내 빈 자리를 채워준 사물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