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32)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32화(232/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232화
외전 3화. 재활
크게 뒤집어진 세상이다.
그만큼 되돌려 놓는 데에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할 터.
치안을 담당할 경찰과 군인은 물론이고, 구호 활동을 벌일 소방시설과 의료기관, 거기에 혼란을 수습하고 생존자들을 관리할 행정가들 또한 필요했다.
요컨대 적당한 제도와, 이를 시행할 공기관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으로선 대부분 유성철을 필두로 한 합참본부가 힘써주고 있었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내가 한 시설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었다.
슈우우우우웅!
청명한 마른하늘이다.
은빛의 기간트가 커다란 그늘을 만들었다.
그리고······.
쿠우우우웅!
사방으로 증기를 내뿜으며, 자리에 착륙했다.
곧이어 해치가 열렸는데, 조종석에서 내린 것은 이용수, 그리고 그의 딸 유정이였다.
아빠 품에 안겨 땅으로 내려온 유정이는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는 듯 폴짝폴짝 뛰며 호들갑을 떨었다.
“너무 재밌어!”
이용수의 얼굴을 한층 더 핼쑥해져 있었다.
멸망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던 그때만큼이나.
-육아는 전쟁이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던가.
이용수는 온몸으로 그 명제가 사실임을 증언하고 있었다.
내 앞까지 터덜터덜 걸어온 그가 떨리는 손으로 내 어깨를 부여잡았다.
“학교, 학교가 필요합니다.”
그거였다.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공공 기관.
이용수야 반쯤 농담으로 하는 소리였지만, 멸망이 시작된 이래 실제로도 ‘교육’ 그 자체가 모조리 중단된 상태였으니까.
조심스레 아이스크림을 출하해 유정이에게 물려주었고, 이용수와는 등받이 의자를 하나씩 꺼내 앉았다.
이용수가 싫지만은 않은 표정으로 배부른 투정을 부렸다.
“바쁜 거 끝났다고 더 부려 먹히고 있어요.”
물론 표정에는 걱정이 묻어났다. 놀아주기 힘들다고만 저러는 게 아니다.
이 시기 어린아이들이라면 배울 건 배워야 하니까.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며 사회성을 기르는 것은 물론이었다.
다행히, 그래도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주택, 병원 다음 순서로 복원하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학교’였으니까.
지이잉.
아니나 다를까, 마당에 딸린 포탈을 타고 유성철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큼 곁으로 다가온 그는 앉지도 않은 채 내가 부탁했던 일의 진행 상황을 들려주었다.
“총수님, 시설은 1차로 확보가 됐습니다. 기존에 있던 학교들이 대부분 파괴되기도 했고······. 남아 있다 하더라도 안전 검사가 필요했습니다. 이것저것 따져보니, 건축 각성자들이 새로 짓는 게 더 빠르더군요. 어차피 당장은 시범 학교 설립이니까요.”
그의 성격답게 일사천리로 사업을 진행한 모양이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생존자들을 위한 초등학교, 중학교를 설치했다는 것.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그가 진중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남은 건 교과과정인데······. 3학년부터는 독도법과 교련, 그리고 총검술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
“실탄 사격은 좀 나중에 한다고 하더라도, 모의 사격이랑 각개전투는······.”
뭔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초등학교 3학년이요?”
“네, 초등학교.”
유성철을 왜 그러냐는 듯 두 눈을 끔뻑거릴 뿐이었다.
저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는 유정이가 곧 총자루를 잡고 학도병이 될 거라 생각하니 절로 두통이 찾아왔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아니나 다를까, 이용수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서둘러 유정이를 감싸 안은 채, 그런 건 절대 가르칠 수 없다는 듯 사나운 눈으로 유성철을 노려보았다.
“면허부터 따야죠!”
“아, 운전병을!”
다시금 두통이 찾아왔다.
물론 저마다 교육 철학은 있는 법이지만, 좀 더 전문적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할 필요가 있었다.
멸망, 그리고 그것의 극복은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을 기회다.
멸망 이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사회가 후퇴했다는 이야기만큼은 듣고 싶지 않았다.
‘역시 그 사람이지.’
이럴 땐 적임자가 있었다.
많이 배우고, 또 많이 가르쳐본 그 사람.
나의 형, 성겸에게 연락을 넣었다.
.
.
.
형, 성겸이 도착했다.
대강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형은 유성철과 함께 자세한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분신 능력을 각성하기 전만 해도 합참과 손을 맞춰 일했던 형이었기에, 그대로 맡겨두어도 유성철과는 알아서 합이 잘 맞았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형이 초중등 교육까지 모조리 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교육에 관련한 전문가들을 두루 알고 있었고, 교육 인력을 선별할 줄은 알았다.
대학원 시절 내내 교수들의 총애를 받았던 만큼, 다른 건 몰라도 ‘학연’만큼은 엄청난 사람이었으니.
대강이나마 계획을 떠올려보던 형이 문득 내게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연락하지? 다들 살아있을지 어떨지도 모르겠는데······.”
“합참에서 신원 기록을 새로 작성하고 있어.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던 데이터도 남아 있는 게 있다고 하니······. 살아만 있다면 조만간 연락이 닿을 거야.”
학교 설립의 또 다른 목적이기도 했다.
멸망으로 인해 서로 떨어진 사람들의 다리를 놓아주는 것.
동사무소도, 실종신고도 없는 지금, 각 지역에 학교를 설치해 생존자들의 인구실태를 조사하는 한편, 서로 간의 연락망을 형성해줄 계획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대학도 만들어줘.”
벚꽃이 살랑살랑 떨어지는 4월의 캠퍼스.
나 또한 복학이 하고 싶었더랬다.
***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유성철, 그리고 성겸과 이야기를 나눈 뒤, 이번에는 강남 세브란스 병원으로 향했다.
강남은 이제 명실상부하게 팍스FC 최대의 의료센터로 기능하고 있었다.
거센 멸망을 거쳐오면서 팔다리를 잃은 사람도, 치료 시기를 놓친 사람도 많았다.
그나마 힐러들 덕에 치료 능력이 극대화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많이 나아졌네.’
병원은 분주했다.
내과 과장과 한바탕 싸운 게 어제 일 같은데, 이제는 아예 멸망하기 전의 병원과 그리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건물 곳곳이 철판으로 땜방 되어 있는 것만을 제외한다면.
건축 각성자들이 수리하긴 했지만, 그 흔적마저 지울 순 없는 거였다.
드르륵!
드르륵!
로비에 들어서자 바퀴 달린 침대가 부단히 돌아다녔다.
긴 봉에 달린 수액 주머니나 깃발처럼 찰랑찰랑 흔들렸다.
코끝이 아리는 소독약 냄새는 멸망 이전이나 지금이나 같았다.
하기야, 병원은 아픈 사람이 오고, 고름 냄새는 이곳의 일상이니.
“왔어?”
흰 가운을 입은 큰누나가 나를 반겼다.
사실상 이곳 세브란스의 책임자를 맡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덕분에 이전처럼 간호사로 일할 기회가 거의 없어졌다고 했다.
기존의 일은 응급요원으로 새로 훈련된 사람들이 하고 있다고.
“밥 안 먹었지? 밥부터 먹자.”
큰누나의 얼굴이 살짝 야위어 있었다.
환자 신음만 들어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인데, 이 큰 병원을 통째로 맡았으니 어떻게 지냈을지 알만했다.
그나마 동생이 온다는 소식에, 넉넉하게 밥 먹을 시간을 뺀 것이었다.
“먹자, 먹어.”
군말 없이 병원 식당으로 향했다.
원래도 식당으로 사용되던 곳인데, 간단한 조리 장비나 식기류들만 내 물류센터에 있던 것들로 교체된 상태였다.
먹는 방식 또한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환자들 식사는 가져다주지만, 의료진이나 통원 환자들이 구내식당처럼 이용할 수 있는 구조. 식판을 들고 줄을 서자, 위생모와 마스크를 쓴 아주머니들께서 한가득 반찬을 떠주셨다.
“아유, 이분이 김간 동생이었어요? 잘생겼네!”
“어머 이모님, 마스크에 가려서 잘 안 보이시나 봐요!”
큰누나가 슬쩍 내 얼굴을 들여보았다.
그러곤 토하는 시늉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마지막으로 갈비찜을 받아 유유히 배식대를 벗어났다.
그 사이, 내 배식판에는 융단 폭격이 시작됐다.
“상공손지, 회의손지 하고 싸웠담서요?”
“아 글쎄, 이 사람 아니면 우리 다 죽었다지 뭐야!”
“맞죠? 그때 진성학 과장 쫓아내 줬던?”
“준혁 엄마, 그거 기억 못하는 사람이 여기 어딨어?”
야채 샐러드, 시금치 무침, 호박전, 갈비찜, 미역 된장국에 김치까지.
직접 뜬 흑미밥을 제외한 모든 메뉴가 탑처럼 식판 위에 쌓였다.
식판을 들고 가자, 자리를 잡고 있던 큰누나가 기함했다.
“내 동생 인기도 좋지. 예쁘다고 주신 거니까, 남기지 말고 다 먹어야 한다?”
“······이걸 어떻게 다 먹냐?”
투덜거리면서도 크림색 참깨 소스가 뿌려진 샐러드를 집어 들었다.
어떻게든 다 비우긴 해야겠는데, 갈비찜부터 속에 넣었다간 절대 다 먹지 못할 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식당에는 잔반을 버리는 곳이 없었다.
멸망을 극복했다곤 하지만, 아직 그럴 만할 때는 아니었으니까. 양상추와 반 잘린 토마토를 집어먹은 나는, 즉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거 뭐야?”
“맛있지? 채소는 전부 엘븐하임 산이야.”
한국에 보급되는 식재료들은 대부분 내 아공간에서 나온다.
프레시 센터에 있는 식자재들은 여전히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엘프들은 손수 자신들의 손으로 작물을 가꾸고 싶어 했고, 때때로 수확한 작물을 외부로 선물처럼 흘려보내기도 했다.
이곳 밥상에 오른 채소 또한 그중 하나일 터.
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몰라도, 물류센터의 채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활력이 돋는 맛이었다.
큰누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씨익 미소를 지었다.
“다······ 먹어야겠지?”
나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라면 식판을 두 번 채워도 될 맛이었으니까.
샐러드고 나물이고, 모조리 입에 때려 넣던 중이다.
부엔디아의 조언이 떠올라, 큰누나에게도 팍스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큰누나가 젓가락을 멈춰 세웠다.
“팍스라면 너 아공간에 있던 그 AI?”
“응, 이제는 불러도 대답이 없더라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이런저런 소식을 나누고 싶었을 뿐.
그런데 큰누나는 참으로 그녀다운 방식으로 그 원인을 추측했다.
“어디 아픈 거 아니야?”
“AI가 아플 수도 있나······?”
달칵.
큰누나가 아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참 모른다는 듯이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
“마냥 기계는 아니었다며? 정신적인 문제일 수도 있는 거지. 여기 종합병원이잖아. 입원 환자까지는 아니어도, 실어증 때문에 오가는 사람도 많았어.”
“실어증이라······.”
실어증.
말 그대로 말을 잃어버리는 병이다.
그런 방향으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팍스가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
어쩌면 녀석은 나를 줄곧 지켜보면서도, 입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아 전전긍긍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입에 재갈이 물린 채, 자기를 구해주길 바라는 인질처럼.
“그건 어떻게 고쳐야 하는데?”
“약 먹어서 뚝딱하고 낫는 건 아니지. 나도 전공자는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보통은 원인이 있다고 하더라고. 그 원인을 추적하는 것만으로도 제법 도움이 된대.”
부엔디아의 조언과도 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아공간을 거쳐 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어쩌면 팍스가 입을 다물게 된 원인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건 그렇고······ 요즘 병원에 필요한 건 없어?”
필요한 보급품을 출하해주는 것.
이 또한 내가 병원에 찾아온 이유였다.
큰누나가 뭔가 대답하려던 때, 누군가 식판은 들고 와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아니나 다를까, 송현구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정겸씨.”
“그러네요. 식사하러 오셨어요?”
“네, 마침 두 분이 같이 계시기도 해서.”
세브란스를 중심으로 병원 세력을 이끌던 송현구다.
어머니의 건강도 챙길 겸, 아예 이곳 세브란스에 자리를 잡았다고.
괴물들도, 약탈자들도 사라진 지금은 아예 행정가로 변신해, ‘송실장’이라 불리며 주변 병원들의 물자나 인원들을 총괄하고 있다고 했다.
익숙하다는 듯, 송현구가 큰누나와 업무를 주고받았다.
“간호사님, 정형외과 쪽 대기가 너무 길어지고 있습니다. 초반에는 신경외과 쪽으로 토스했는데, 지금은 그쪽이 더 미어터지는 것 같아요.”
“환상통 때문에요?”
“그것도 그렇고······ 치료가 끝나도 이상하게 몸을 제대로 못 움직이는 환자가 많습니다. 영상의학과에서도 멀쩡한 환자들 좀 그만 내려보내라 난리구요.”
큰누나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문제였던 모양.
자세한 내막을 묻자, 큰누나가 입을 열었다.
“힐로 치료해서 그래. 괴물들 때문에 절단이나 관통상, 자상으로 오는 환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대부분 힐로 치료하거든. 근육도 신경도 말끔하게 치료되는 건 분명한데, 이상하게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아.”
멸망의 후유증인 셈이다.
정신적인 문제일까 싶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았다.
큰누나가 송현구에게 미약하게나마 해결점을 거론했으니까.
“재활 치료가 효과가 있었다면서요?”
“그건 그런데······ 실질적으로 재활의학과를 가동하기 어려운 상황이니까요. 가뜩이나 응급환자가 많은 상황이다 보니. 애당초 재활 관련한 인력도 거의 없다시피 하고요.”
송현구가 난처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리 봐도 필요한 게 있는 기색이었다.
보급품을 놓아주려 했지만, 그게 꼭 물건일 필요는 없는 법.
나는 단백질이 풍부한 갈비찜을 집어 먹으며······.
“마침 부탁할 만한 친구들이 있는데.”
레텔인들을 떠올렸다.
다차원 제일의 헬스 트레이너들인 그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