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33)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33화(233/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233화
외전 4화. 왕래
“선조님!”
테레브가 밝은 표정으로 나를 찾았다.
도와줄 수 있냐는 말에, 레텔인 수십 명을 데리고 곧장 포탈을 타고 온 그.
오랜만에 본 이들의 몸은 한층 더 탄탄하게, 그리고 구릿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잘 지냈어?”
“물론이지요, 되찾아 주신 <힘의 전당>부터 보급해 주신 식량까지······. 저희로서는 이보다 더 잘 지낼 수가 없지요. 미놀라 기억하십니까? 그 녀석이 벌써 3대 오백을 칩니다, 허허!”
테레브가 껄껄 웃으며 가슴 근육을 퉁겼다.
미놀라는 기억하기론 머리가 내 허리까지밖에 안 오는 꼬맹이.
레텔인들의 괴력에 대해서는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테레브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선조님께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어가고 있어요.”
픽하고 그저 웃어넘겼다.
나는 너희의 선조가 아니라고 수만 번은 말했었다. 이쯤 되니, 내가 진짜 선조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떤가 싶었다.
거하게 인사를 주고받고 난 뒤, 테레브가 물었다.
“몸이 아픈 사람들이 있다고 하셨죠?”
“그랬지, 이쪽으로 와볼래?”
나는 테레브를 데리고 병동을 가로질렀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지하에 위치한 컨퍼런스 룸.
대형병원이다보니 자잘한 회의를 위해 준비된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안의 집기를 빼낸 뒤 푹신한 바닥을 깔아 ‘재활치료실’로 개조해둔 상태였다.
안에는 큰누나와 송현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육질의 이종족들이 와르르 몰려든 탓에 두 사람 다 제법 놀란 눈치였지만, 애써 마음을 추스른 채 인사를 건넸다.
“테레브 씨······. 맞으시죠?”
“예! 제가 테레브입니다!”
테레브가 껄껄 웃으며 큰누나와 악수를 했다.
송현구와는 눈썹을 씰룩거리며 무언으로 된, 사나이의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 또한 신체 능력 각성자여서인지, 테레브 못지않게 몸이 크고 두꺼웠다.
그리고······.
“끄으으으윽!”
“히야아압!”
비명에 가까운 기합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큰누나와 송현구가 재활실에 환자들을 데려온 것.
형형색색의 짐볼과 필라테스 기구들, 갖은 소도구들이 즐비하게 깔려 있었지만, 환자들은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
안타깝게도 괴물에 의해 절단된 두 팔.
힐로 뼈와 신경까지 모두 회복되었음에도 환자는 팔을 움직이지 못했다.
“흐으으윽! 흐윽!”
곱슬머리의 젊은 남성이었다.
앞으로 저 팔을 쓰며 살아가야 할 날이 창창할 만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숟가락 하나 제힘으로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절단, 관통으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환자들.
나는 분투하는 그들을 보며 테레브에게 물었다.
“어때? 할 수 있겠어?”
“예, 뭔지 알 것 같습니다.”
테레브가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상태를 비슷하게나마 흉내 내보겠다는 듯, 테레브가 양팔을 쭈욱 아래로 늘어뜨렸다.
“팔이 너무 무거운 겁니다. 스스로 들어 올릴 힘조차 없을 정도로요.”
“근육은 전부 회복됐다던데?”
“몸은 멀쩡할 겁니다. 하지만 정신의 근육이 빠져버린 것이죠. 우리 레텔족들은 저런 상태를 일컬어 ‘조상님이 봉 무게를 안 들어주신다’고 표현합니다.”
“······.”
이종족의 입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뭔가 친숙하면서도 해괴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는 듯, 테레브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틀림없이 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확신하지 못하는 거죠. 스스로는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상태······. 저희가 부족을 이루고, 무게를 칠 때마다 선조님을 찾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조상님이 진짜로 무게를 들어주시는 건 아닙니다.그저?우리가 그걸 들 수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실 뿐이죠.”
테레브는 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던 중 우뚝 멈춰 서, 내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선조님, 당신도 그러셨습니다. 우리 힘으로 침략자들을 이길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려 주셨지요.”
테레브는 곧장 재활실로 들어섰다. 녀석을 따라, 기다리고 있던 레텔인이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환자들은 그야말로 기겁했으나, 테레브는 짝짝 손뼉을 치며? 빠르게 혼란을 수습했다.
“자자, 바로 수업 진행하겠습니다!”
환자들과 레텔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뤘다.
재활실 한편에 덤벨 세트가 놓여있었음에도, 누구 하나 눈길 주는 사람이 없었다.
환자들의 수준에 맞춰, 몸을 가누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을 뿐.
“자자, 들 수 있습니다! 들 수 있어요!”
“에이, 엄살 피우지 말고요.”
“어? 손 떨어집니다? 손 떨어져?”
“흐갸아아아아악!”
곱슬머리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이전보다는 분명히, 더 높은 위치까지 팔이 올라왔다.
아주 미약한 변화였음에도 테레브는 놓치지 않았고, 그보다 높은 가능성을 시사해 주었다.
단숨에 완치되는 식의 기적은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불가능의 영역을 가능한 것으로 파고들었다.
이번엔 레텔인들이 환자들의 ‘봉 무게를 들어주는 조상’이 되어주고 있었다.
‘······내가?알려줬다고?’
테레브는 내게서 먼저 배웠다고 했다.
우리 손으로 이 험난한 멸망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건 내가 가르쳐주었다기보단, 레텔인들이 스스로 배운 것이다.
지구인인 나를 대뜸 자신들의 선조로 만들었던 것을 보면 특히 그랬다.
“하으으으으읍!”
환자들의 기합이 들려왔다.
멸망을 벗어났음에도, 아직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들.
그들에게 새로운 확신이 차근차근 스며들고 있었다.
.
.
.
한창 수업이 끝난 다음이다.
호응도 좋았을뿐더러, 실질적인 효과도 있었던 수업.
봉 무게를 ‘대신’ 들어준 탓인지, 테레브의 이마에도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각성 능력이 아직 남아 있어 다행이었다.
설치된 포탈을 통해 레텔인들을 이곳까지 불러올 수 있었으니.
그래도 늦기 전에 테레브에게 언질해 둘 필요는 있었다.
“그래도 여기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될 거야.”
“예? 어째 섭니까?”
“각성 능력이 없어지고 있잖아. 레텔에 설치된 포탈이 언제 사라질지 몰라. 괜히 가족들이랑 생이별하고 싶지 않으면 그전에는 돌아가야지.”
나라고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침략자들과 싸우며, 종족을 넘어 따듯한 정을 주고받았으니까.
하지만 지구에 아예 정착한 엘프, 드루이드들과는 달리, 레텔인들에게는 자신들의 고향이 멀쩡히 남아 있는 상태였다.
테레브가 심히 서운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러면 저희 이제 못 보는 겁니까?”
“그렇지 않을까? 그렇게 되기 전에 필요한 물자도 최대한 받아 가고.”
레텔인들은 최근 고향을 재건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멸망에 때려 맞은 지구만큼이나, 사브로스에 짓밟힌 레텔 또한 황폐하긴 마찬가지였으니.
분명 머지않아 오래전의 평화롭던 고향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터였다.
그때, 테레브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선조님, 타고 다니시던 커다란 우주선이 있지 않습니까? 포탈이 사라지더라도······ 그걸 타고 왕래하시면 어떨까요? 아니, 저희가 계속 오겠습니다.”
“우주선?”
십자선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라디바를 해치우는 과정에서 혈맹에게서 빼앗았던 물건.
아직 내 아공간에 있을뿐더러, 무한히 복제까지 가능한 물건이었다.
잠시 머리를 긁적인 내가 테레브에게 대답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
이튿날, 나는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내게는 두 개의 차원 간 운송수단이 있다.
혈맹의 십자선과 운석 형태로 조각된 차원 본부.
요긴하게 사용하긴 했지만, 두 가지 모두 승차감이 썩 좋은 물건은 아니었다.
‘······나니까 타고 다녔지.’
십자선은 사실상 수송선에 가까웠다.
차원 본부는 더 심각했는데, ‘추락’을 ‘착륙’이라고 부르는 물건이었다.
아공간 능력이 있었던 덕에 그나마 사용할 수 있었던 것.
이래저래 개조가 필요했기에, 아공간의 기술자들을 찾아온 참이었다.
“오우, 정겸.”
제임스가 익숙한 말투로 나를 맞았다.
아공간에서 나온 이후, 그는 한국과 미국을 자주 왕래했다.
특히, 한국에 머물 때면 이곳 인천공항의 격납고에 머무르곤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격납고 옆에는 원자로가 설치된 드워프들의 공장이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원래도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이니, 포탈을 타고 이곳 인천공항까지 옮겨온 것이었다.
“대표님 오셨소?”
“오, 사장님!”
쿠퍼가 나와 인사를 건넸다.
줄줄이 뒤따라 나온 드워프들과도 한 명씩 인사를 나눴다.
그러던 중, 쿠퍼가 잊은 게 있다며 공장 안으로 되돌아가 갔는데, 공장 안에서 어쩐지 친숙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위이이이잉.
‘······뭘 만드는 건가?’
다시 돌아온 그가 가져온 것은 작업물 같은 게 아니었다.
크고 새하얀 머그잔, 그 안에는 차디찬 얼음과 함께 시원한 커피가 찰랑거리고 있었다.
“오······.”
날은 따뜻했고, 검은 아스팔트 또한 점심 햇살에 데워져 있었다.
덕분에 아직 추위가 다 물러가지 않은 시기임에도 아이스 커피를 즐기기엔 무리가 없었다.
“오우, 카아피.”
“좋다, 좋아!”
제임스는 물론, 다른 드워프들까지 커피잔을 잡았다.
문득 그들이 미국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던 때가 떠올랐다.
물 대신 커피를 마셔가며 밤낮없이 망치만 두드리던 그때를.
“이제 커피는 쳐다도 안 볼 줄 알았는데?”
“흐흐, 디카페인 커피이올시다.”
“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는 워커홀릭 드워프라니.
그래도 지구의 삶에 익숙해진 모습이, 썩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드워프들과는 달리,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레텔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쿠퍼에게 전해주었다.
십자선을 이용하면 어떻겠냐던 테레브의 아이디어까지도.
“흐음······.”
쿠퍼가 콧수염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결국 이런 식의 공항을 만들겠다는 거 아닙니까?”
“뭐 그렇죠. 그래도 여기처럼 누구나 오가는 시설까지는 아니고······. 우리 친구들끼리 왕래하는 용도면 되겠습니다.”
“말만 듣기론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데······. 뭐가 걱정이시오?”
“여객기로 쓰기엔 애매할 것 같거든요.”
쿠퍼는 물론, 제임스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새 십자선의 구조를 머릿속에 떠올려 본 모양.
잠시 서로를 마주 보던 두 사람은 대뜸 나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아니 뭐······. 난 또, 얼마나 어려운 부탁을 하신다고.”
“오우, 재밌을 것 같아.”
스르륵.
쿠퍼는 즉시 공장에서 도면을 꺼내왔다.
커다란 지면 위에 순식간에 십자선의 평면도를 그려놓고는, 슥슥 새로운 설계를 새겨넣기 시작했다.
“기왕 만드는 거, 이것저것 넣어봐도 좋을 것 같소. 공간은 넉넉하니까······. 안에 미니 카페를 차려봐도 좋겠고?”
“오락실도 넣어야 해, 정겸. 생맥주 기계랑.”
아니 이 사람들이?
‘하기야······.’
머나먼 차원 간 이동이다.
가만히 앉아서만 간다면 그것대로 고역일 터.
거대한 십자선이니만큼, 아공간만큼은 아니더라도 제법 많은 시설을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던 중, 쿠퍼가 내게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정거장은 어디에 만들 계획이시오? 이만한 기체가 뜨고 착륙하고 하려면 나름 시설이 갖춰져야 할 텐데.”
“아, 그건 말이지요······.”
물론 첫 번째는 한국이다.
완성된 십자선은 첫째로 내가 타고 다녀야 할 테니까.
레텔에도 정거장을 만들어야겠지만, 하나 더 떠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베로니카 쪽에도 물어봐야겠네.”
레텔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베로니카의 흡혈귀들 또한 포탈로 왕래하고 있었으니.
‘그렇지 않아도······.’
최근, 마르케스의 흑마법사들과 포탈 관리국 조사를 마치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