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34)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34화(234/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234화
외전 5화. 폐허
펄럭!
펄럭!
“마침 저기 오는 것 같소만?”
쿠퍼가 손등으로 이마를 가렸다.
아니나 다를까, 활주로가 금새 새카만 날개로 뒤덮였다.
베로니카의 흡혈귀들이 복귀한 것이었는데, 마침 베로니카 공녀가 내 앞에 내려앉았다.
“고생 많았습니다.”
먼저 인사를 건넸다. 지난 한 달간, 관리국에서 수고가 많았을 테니.
그녀는 두 날개를 우산처럼 말아 넣고는, 빙긋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공녀가 관리국에서 조사한 내용을 내게 들려주었다.
“예상했던 대로, 각 차원으로 이어지는 포탈이 대거 설치돼 있었어요. 각 차원에 설치돼 있던 본부 건물들은 모두 점거했고요.”
이제 상공회의소는 사라졌다.
하지만 이들이 남긴 그늘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위 차원들은 여전히 상위 차원에 의해 점령되어 있었으니까.
“식민지들은 이제 모두 해방됐다고 봐도 무방해요.?필요한 경우엔 무력을 써서라도 제압했고요.”
크고 작은 전투가 있었다고 했다.
한 달 전에도 지원을 위해 카멜롯의 기사들을 보내둔 참.
오히려 너무 부족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던 참이었다.
“더 도와드릴 수도 있었는데요.”
“다행히 충분히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어요. 관리국에 쌓여있던 시체를 정리하는 게 더 피곤할 정도로요.”
내분으로 인해 최후의 혈전을 벌인 상공회의소다.
프랑코 백작이 온건파를 절멸시키다시피 한 덕에, 상위 차원의 전력이 거의 남아나질 않았던 것.
하위 차원에 주둔하던 병력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세를 되찾은 베로니카 공작가에 견줄 바는 아니었다.
“마르케스 분들이 하위 차원들의 피해 사실을 조사하고 있어요. 어느 차원이 어느 차원을 침략했는지······. 마석이나 자원들을 얼마나 수탈했는지, 머지않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겠죠.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모든 일을 끝마치고 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기사들도, 흑마법사들도, 아직 포탈 관리국에 머무르고 있었으니.
잠시 말을 늘어뜨리던 공녀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전후처리를 함께 논의해 주셨으면 해요.”
***
관리국까지는 금방이었다.
포탈을 타고 넘어가면 그만이었으니.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역시 폐허가 된, 포탈관리국의 전경 그 자체였다.
‘······완전히 박살이 났군.’
마법을 비롯해, 갖가지 공격에 휩쓸린 흔적이다.
그 크기도 형태도 각양각색이었지만,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지난 1년간 질리도록 보아 온 것이 바로 저 멸망의 풍경이었으니.
상공회의소에게 멸망을 고스란히 되돌려주었을 따름이었다.
무너진 관리국을 천천히 둘러보던 중,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한 명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열두 명의 소리가 하나로 뭉쳐진 것.
아니나 다를까, 기사들이 갑옷을 절그럭거리며 멀리서 뛰어오고 있었다.
“이게 얼마 만입니까, 주군!”
“그렇네. 이만큼 떨어져 있었던 게 처음이지 아마?”
“그렇습니다, 주군. 잠깐이라도 뵙고 오고 싶었지만······. 포탈을 지키느라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습니다.”
란슬롯의 말대로, 뒤로는 푸른색 포탈이 일렬로 드리워 있었다.
하나하나가 상위 차원의 본진으로 이어지는 포탈.
얼마 지나지 않아, 베로니카 공녀가 아우렐과 함께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우렐은 반투명한 석판을 들고 있었는데, 흑마법으로 쓴 글씨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공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여기, 하위 차원들이 입은 피해 내력들이에요. 이 내용을 토대로 상위 차원들에 대한 처우를 결정하면 될 것 같구요.”
“구체적으로 뭐가 적혀 있는 거죠?”
“그들이 어떤 차원들을 무단으로 침범하고 점령했는지, 그리고 어떤 자원을 얼마나 수탈했는지, 그밖에 벌였던 갖은 악행들에 대한 기록이에요.”
주변이 일순에 조용해졌다.
하지만 공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마저 말을 이었다.
“처벌을 근거로 삼아,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어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세력을 동원한다면 초토화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
그럼에도 나는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것까지는 없지 않을까요.”
“왜죠?”
“상위차원들이라고 해도······. 그 안에도 민간인들이 있을 거잖아요?”
차원들은 일종의 국가와도 같았다.
전쟁과 침략을 결정하고 승인하는 수뇌부가 있다는 뜻.
그 책임을 물어 대대적인 학살을 벌이는 것은 지나치게 잔인한 처사였다.
물론, 그렇다고 그대로 넘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지도부에 대한 처벌은 확실하게 하죠. 경제 사범 수용소를 다시 운용해서 가둬두는 식으로요.”
“그러면······ 하위 차원들이 받았던 피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까요?”
공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내게 연달아 질문을 던졌다.
한편 아우렐은 내가 하는 이야기를 빠짐없이 석판에 기록하고 있었다.
“상위 차원들이 배상해야겠죠. 그걸로 재원을 만들어 하위차원들의 피해를 복구하는 데 사용하면 될 테고. 물론 상위 차원들에는 상공회의소와 어울렸던 죄목을 확실하게 달아두는 식으로요.”
“그래요, 알겠어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전후 처리를 논의하고 싶다며 나를 데려온 공녀.
하지만 내 의견을 물어보고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공녀가 이번에는 돌연, 화제를 바꿔 질문했다.
“그러고 보니······ 제게 물어보실 게 있으시다고 하던데요?”
“아, 그거 말이죠.”
쿠퍼와 제임스가 그새 이야기를 한 모양이었다.
지구 밖에도 십자선이 정박할 만한 정거장을 건설했으면 한다는 것.
레텔 차원 이외에도 베로니카 공작령이나, 베레슈티에 설치하면 딱 좋을 듯싶었다.
짜악!
공녀가 손뼉을 치며 말을 받았다.
전후 처리에 대한 주제를 벗어나서인지, 한결 밝아진 표정이었다.
“꽤 큰 프로젝트네요?”
“그렇진 않아요. 레텔이나 베로니카 정도면 교류하면 되니까.”
“그래요? 하지만 각각의 차원들을 모두 관리하시려면······.”
“······?”
그제야 나는 공녀의 생각을 알 것 같았다.
전후 처리와 관련해 내게 조언을 구했던 그녀.
그녀가 왜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는지.
‘설마······?’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곧장 본론을 꺼내 들었다.
“정겸 씨는 다차원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될 거예요. 하위 차원들에 대한 구제 방안도 물론이고······. 상위 차원들에 대한 처벌 또한 정겸 씨의 이름 하에 집행이 되겠죠. 이 사실을 공표하고 다차원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대대적인 운송 수단이······.”
‘세상에.’
그녀는 나를 아예 다차원의 왕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보고 내게 의견을 구하러 온 것.
관리국을 수습하고 상위 차원들을 토벌한 것 또한, 신하로서의 임무 수행이었던 것이었다.
‘······미치겠네.’
그런 건 추호도 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그저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 벚꽃잎 아래서 평화로운 등교를 하고 싶을 뿐이었다.
“저는 그런 거 할 생각 없다니까요.”
“하지만 정겸 씨, 상공회의소가 사라진 지금의 혼란을 수습하려면······.”
공녀가 간곡하게 나를 설득했다.
옆에 있던 카멜롯의 기사들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마땅히 내가 왕좌에 앉아야 한다며, 이상하게 생긴 황금 의자를 가져오기까지.
‘······이런 건 또 언제 만든 거야?’
참으로 기가 찰 지경이다.
이 자리에 유성철이 없다는 사실이 감사할 지경이었다.
그라면 다차원의 왕이 탄생했다며 온갖 나팔을 불어댔을 것이 틀림없었으니.
“정겸 씨······.”
“안 한다니까요.”
단호한 거절이 몇 번이나 계속된 참이다.
지친 공녀가 마지못해 그 배경을 털어놓았다.
“정겸 씨는 잘 모르시는 것 같지만······. 지금 정겸 씨는 하위차원들의 맹렬한 지지를 얻고 계세요. 말씀하신 전후 처리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그 지지가 필수적이고요.”
“······제가요?”
“정겸 씨가 팍스FC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거든요.”
왜 내게 ‘다차원의 왕’ 따위를 권유하는가 했다.
알고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 하는 수 없이······.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적정선에서 타협하기로 했다.
각성 능력이 사라질 때까지만 그렇게 하기로.
그때쯤이면 모든 포탈이 사라지며 다차원에 존재하던 대부분의 위험 요소는 자연스레 소거될 터였다.
그리고,
“내 이름도 굳이 쓸 필요 없어요.”
팍스FC의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팍스FC나 나나, 속 알맹이는 크게 다를 게 없으니.
“후우!”
마침내 논의가 끝났다.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 같았다. ***
각성 능력이 서서히 소멸하는 지금이다.
그리고, 베로니카의 흡혈귀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에센스가 없어도 괜찮다고요?”
“네, 물론 아직 조금씩은 필요하지만······. 의존도가 뚜렷하게 줄어들고 있어요. 아예 다른 종족들처럼 평범한 식사를 하는 흡혈귀들도 늘어나고 있고요.”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베레슈티의 공장을 되찾았음에도 에센스 생산에는 고전하고 있었으니까.
내 아공간이 있는 동안은 괜찮겠지만, 모든 능력이 사라진 뒤에는 흡혈귀들 또한 자연스레 밥줄이 끊어지게 되는 셈이었다.
“그럼 미리 연습 좀 하셔야겠네요.”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멀리 서 있던 란슬롯을 불러왔다.
“부르셨습니까?”
“한 달 동안 고생했잖아. 회식 한 번 할까? 먹고 싶은 거 있어?”
“주군, 괜찮으시다면 그걸······.”
픽 웃음이 나왔다.
어떤 걸 부탁하는지 대번에 알 것 같았으니까.
곧장 먼 곳을 조준한 채 포탈을 열었다.
그리고······.
툭!
투둑!
선홍빛의 한우가 담긴 선물 상자가 차곡차곡 쌓였다.
중간에 검은색 불판이 시속 500km로 출하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긴 했지만, 아무쪼록 고기를 굽기 위한 도구들까지 모두 무사히 꺼내 들었다.
“많이 먹어라, 나중 되면 못 먹어.”
“앉아만 계시지요 주군!”
란슬롯이 자신만만하게 집게를 들었다.
기사들이 의자를 가져다주었는데, 하마터면 그대로 앉을 뻔했다.
이 자식들이 은근슬쩍 아까 보았던 황금색 왕좌를 가져왔다.
치이이이······.
두툼한 고기가 노릇노릇하게 익어갔다.
란슬롯이 갑옷 위로 앞치마를 두른 채, 능숙하게 고기를 뒤집었다.
‘······보통은 모닥불에 멧돼지 아니냐고.’
전혀 기사답지 않은 모양새였지만, 고기 맛은 확실했다.
그간 동고동락하며 고기 굽는 스킬을 훈련한 덕분이었다.
고기를 몇 점 입에 넣던 중, 나 또한 몸을 일으켰다.
“나도 좀 구워보자.”
불판을 하나 확보했다.
남이 굽는 고기만 먹어 버릇하면 감이 떨어지는 법.
그때, 누군가 톡톡 내 어깨를 두드렸다.
“정겸 씨.”
고개를 돌리자 베로니카 공녀가 서 있었다.
흥건하게 고인 침을 꼴딱꼴딱 삼키면서.
“조금 덜 구워도 좋을 것 같아요.”
“아직 안 구웠는데요.”
“그게 진짜 좋은······. 아, 아니에요!”
그러곤 갑자기 줄행랑을 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부끄러움을 느낀 모양.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그릇에는 핏기 가득한 고기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레어를 좋아하는 것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만찬을 즐기는 것은 기사들뿐만이 아니었다.
“우와!”
“아니, 이거 왜 이렇게 맛있지?”
최고급 한우는 피를 탐하는 흡혈귀들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메뉴였으니.
치이이익!
펄럭!
펄럭!
고기를 굽는 족족, 흡혈귀들은 독수리처럼 고기를 물고 사라졌다.
기사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후후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쉬지 않고 고기를 구워나갔다.
단란하기 짝이 없는 한 달 만의 회식 자리.
그러던 중······.
‘저게 뭐지?’
한 가지 눈에 들어오는 게 있었다.
관리국의 무너진 건물 사이로 드러난 숨겨진 공간.
교차하는 기둥 사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희끄무레한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위로 긴 타원 모양의 윤곽이었다.
부끄러움을 이겨낸 공녀가 고기를 씹으며 내게 다가왔다.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 했는데······. 포탈로 추정되기는 해요. 둥근 막으로 싸여 있는데, 무슨 수를 쓰더라도 벗겨낼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불판을 잠시 내버려 둔 채, 공녀와 아우렐, 그리고 기사들을 데리고 기둥 안쪽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공녀의 말대로, 포탈로 추정되는 타원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막에 싸여 있었다.
‘어디······.’
탕탕!
두드리자 손이 반사적으로 튕겨 나왔다.
단순히 깨지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때린 만큼 그대로 되돌려주는 느낌.
분명 어디선가 느껴본 적 있는 익숙한 느낌이었다.
마침······.
“이거 벗겨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은데요.”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